책향기

마음사전- 김소연

구름뜰 2011. 11. 3. 10:31

 

 

 

배두인들에게는 낙타를 지칭하는 낱말이 천 가지도 넘는다고 한다.

이누이트들에게는 '눈' 종류를 구별하는 어휘가 수십 가지는 된다고 한다.

스콜이 매일매일 퍼붓던, 적도 근처의 어느 뜨겁던 나라엔 '소나기'를 뜻하는 낱말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내 앞에 낙타 한 마리가 도착해 있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길고 긴 속눈썹으로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나의 낙타에게.

나는 '낙타야'하고 불러야만 하나,

이 녀석을 호명할 알맞은 말 한마디가 없어서 ,

나 또한 녀석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다.

 

마음의, 무수히 중첩되고 해체되고 얽혀드는 실핏줄,

나는 언제나 핏발이 선 채 피곤해하지만,

두 눈 똑바로 뜨고 정면 응시하면서 바라보려 한다.

세상을, 사람을, 당신을,

마음은 우리의 현실 이상의 깊은 현실과 만나게 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시선이기에

2008년 1월

마음에 대한 즐거운 억측을 시작하며

김소연

- 책 머리에.

 

 

 

<마음사전> '사전'이라 했으니

  혼란스러울 때 이 사전만 펴면 마음이 정리될 수 있을까.

 지인의 추천으로 알게된 독특한 장르의 책이다. 

어휘에 대한 예와 세부묘사까지

비슷하고, 익숙해서 혼돈하여 쓴 어휘들도 더러 보이고,.

공감 덜한 부분도 있지만 대체로 재밌다.

 

마음이 갈피를 못 찾을 때 이 책 펴서 정리된다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그보단 단지 내가 지금 외로운건지 쓸쓸한건지

심심한건지 권태로운건지.

허전한건지 공허한건지 

이사람이 내게 소중한건지 중요한건지.

좋아하는지 사랑하는지

나는 그를 존경하는지 동경하는지

흠모하는지 열광하는지 

마음에서 일어난 작용들의 어휘를 찾아볼 수 있는 사전이다.

 

쓰고 있지만  좀 더 이해하고 어휘력 늘일 수 있게  도와주는 책 같다.

특히 글쓰는 사람에게 도움 될 것 같다.

 

 

 

 

깊이 거리

 

두 개의 귀를 다 열어두어야 방향을 잘 알 수 있듯이.

우리의 몸은 두 개의 눈으로 깊이와 거리를 잘 감지 한다고 한다.

한쪽 눈만으로는 깊이 와 거리에 착오를 일으키지만,

맑은 마음의 두 눈이 초점을 서로 잘 맞추고 있을 때에는

당신과 나의 깊이와 거리를 나는 잘 깨달을 수 있다.

 

깊어지고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을 오해 없이,

오류 없이 받아들이기 위해서 나는 지금 아름다운 것을 보는 눈과

추한 것을 보는 눈을 함께 뜨고 있다.

 

 

 

 

 

착시

 

당신을 착시하기 때문에 나는 당신이 아름답다.

노을이 아름답게 타오르는 것이 우리 눈에 착시이듯이.

내가 보고 있는 당신이 허상인 줄 알면서도 나는 당신을 믿는다

노을을 믿듯이.

 

 

 

 

감정 〈 기분 느낌

 

감정은 세세하기 때문에 명명될 수 있지만,

기분과 느낌은 명명이 불가능하다

감정이 한 칸의 방이라면, 기분은 한 채의 집이며,

느낌은 한 도시 전체라 할 수 있다.

감정은 반응하며, 기분은 그 반응들을 결합하며, 느낌은 그 기분들을 부감한다.

 

감정을 억압하고 참을성을 발휘할 때에 느낌과 기분은 심각한 오류를 범하기 쉽다.

참았다가 터지는(아무리 잘 참아도 언젠가는 터진다)감정은 기꺼이 바보가 된다.

그 바보를 기분은 낯설고 수상쩍다고 접수한다.

그러나 느낌이라는 것은 영악하고 타협적이어서,

이내 그것을 낯익은 것들로 요약해버린다.

'잘 모르겠네'라고 말했어야 옳았을 느낌이지만, 잘 모르겠다고 말해서는 안 될 때가 있다.

이런 오작동을 몇 번쯤 겪어본 자라면, 직관이나 직감을 믿지 못하게 된다.

 

바보스럽게 표출되는 참아왔던 감정들을 모아서,

낯설고도 괴로운 요약을 감수해낸 이 잘못된 느낌을 우리는 불신할 줄 안다.

그러나 자신의 느낌을 신뢰할 수 있는 순간 속에 안주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하다.

그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공감가능한 감정들만을 운영하고,

동감 가능한 기분들만을 영위하고,

기시감으로 충만한 느낌들 안에 정주한다.

 

 

 

중요하다 소중하다

 

소중한 존재는 그 자체가 궁극이지만,

중요한 존재는 궁극에 도달하기 위한 방편이다.

돈은 전혀 소중하지 않은 채 가장 중요한 자리에 놓여 있다.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한다. 

 

어느샌가 소중했던 당신이 중요한 당신으로 변해가고 있다.

조금씩 덜 소중해지면서 아주 많이 중요해지고 있다.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

소중하기 때문에 필요한 존재가 되고 싶은 게 당신과 나의 소망이었다.

 

이 세상 애인들은 서로에게 소중하지만 아직은 중요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소중함이 사라지고 나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있다.

 

이 세상 부부들은 서로를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이미 소중하게 여기는 마음은 어디론가 숨어들고 있다.

중요한 사람으로 서의 자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려는 의욕이 있는 한,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각자의 믿음만이 고개를 내민다.

 

각자의 자기 역할에 대한 믿음은

서로의 존재에 대한 신뢰라고 착각하면서 관계가 유지된다.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약속과 소중한 약속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며 중요한 약속에 몸을 기울이고 있다.

 

 

 

 

-처참하다 처절하다 처연하다 

 

처참함은 너덜너덜해진 남루함이며,

처절함은 더 이상 갈데가 없는 괴로움이며 ,

처연함은 그 두 가지를 받아들이고 승인했을 때의 상태다.

 

처참함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정황이라면,

처절함은 차마 손댈 수 없는 정황이며,

처연함은 눈뜨고 볼 수도 있고, 손 댈 수도 있지만, 눈길도 손길도 효력이 없으리란 걸 알고 있는 상태다.

 

처참함은 입맛을 잃어 물조차 삼킬 수 없는 지경이라면,

처절함은 밥솥을 옆구리에 끼고 전투적으로 숟가락질을 하게 만드는 지경이며,

처연함은 한그릇 밥 앞에서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게 하는 경지이다.

 

처참함 때문에 우리는 죽고 싶지만,

처절함 때문에 우리는 이 악물고 살고 싶어진다.

처연함은 삶과 죽음이 오버랩되어서 죽음처럼 살고, 삶처럼 죽게 한다.

 

 

 

은은하다 은근하다

 

은은한 것들은 향기가 있고, 은근한 것들은 힘이 있다.

은은함에는 아련함이 있고, 은근함에는 아둔함이 있다.

은은한 것들이 지닌 아련함은 그 과정을 음미하게 하며,

은근한 것들이 지닌 아둔함은 그 결론을 신뢰하게 한다.

은은한 사랑은 과정을 아름답게 엮어가며

은근한 사람은 결론을 아름답게 맺는다.

 

 

 

 

 외롭다

 

'외롭다'라는 말은 형용사가 아니다.

활달히 움직이고 있는 동작동사다.

텅 비어버린 마음의 상태를 못 견디겠을 때에 사람들은 '외롭다'라는 낱말을 찾는다.

그리고 그것을 발화한다.

그 말에는 외로움을 어찌하지 못해 이미 움직여대는 어떤 에너지가 담겨 있다.

그 에너지가 외로운 상태를 동작동사로 바꿔놓는다.

은근한 사람은 결론을 아름답게 맺는다.

 

 

 

허전하다

 

상실감 같은 것, 무엇인가 있다가 없어진 상태.

혹은 있기를 바라는 그것이 부재하는것,

그래서 허전함에는 무언가를 놓아버려 축 처진 팔이,

팔 끝엔 잡았던 느낌을 오롯이 기억하고 있는 손이 달려 있다.

 

 

 

공허하다

 

허전함이 무언가를 잡았던 느낌을 기억하고 있는 손이라면,

공허함은 무언가를 잡으려고 애써보았던 손이다.

더 나아가 그 손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후회'같은 것이다.

휘둘렀던 무수한 손들이, 그 에너지들이, 공허함의 배후에 후광처럼 있다.

애쓴 흔적이 썰물처럼 쏴, 하고 빠져나가면서 무의를 남겨놓았기 때문이다.

그렇게 무언가를 애써 잡아보려고 마음을 크게 먹었던

모든 손아귀에는 공허함이 묻어 있다.

 

허탕이 되었던, 무언가 잡히긴 했으나 바라던 것은 아니었든,

원하던 걸 잡긴 잡았는데 꼭 쥔 손을 펴보았을 때에 그것이 초라해 보였든,

잡아챈 그것이 원하고 원하던 바로 그것이든, 그 모든 손 안에 공허함은 존재한다.

 

공허함은 휘둘러보았던 마음의 손,

그 손이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매복해 있다.

 그런 점 때문에 공허함은 허전함보다는 훨씬 절대적이며,

훨씬 더 철학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도달해 있다.

 

 

 

흠모와 열광

 

'존경'에 '동경'과 '매혹'이 재빠르게 섞여들 때가 '흠모'다.

존경에 열정이 화학작용을 일으킬 때는 '열광'이다.

흠모는 열광보다 느리며 대상과의 거리도 멀다.

멀기때문에 동경과 비슷하지만,

흠모가 앓고 있는 상태라면, 동경은 그렇지가 않다.

 

동경과 흠모는 언제나 도로교통법처럼,

대상과 안전거리를 확보하고 진행된다.

그에 비하면 열광은 위험하다. 질주를 해야 하므로,

여러 차선을 넘나들며 앞지르기를 한다.

향후, 호감보다 질주에의 환희를 더 즐기게 되는 것도 열광의 위험한 요소다.

 

 

 

 

좋아하다

 

호감에 대한 일차적인 정서이면서도,

정확하게 분화하지 않은('분화되지 않은'이 아닌)상태를 뭉뚱그릴 때 쓰기 좋은 말이다.

'좋아한다'는 고백은 어쩌면, 내가 느끼고 있는 이 호감이 어떤 형태인지

알기 싫다는 뜻이 포함되어 있을지 모른다.

 

사랑이라는 말을 쓰기가 꺼려질때에 흔히 쓰며,

존경에도 흠모에도, 신뢰에도 매혹에도 귀속시키기 미흡한 지점에서

우리가 쓰는 말이 바로 '좋아한다'는 표현이다.

 

어쩌면 더 지나봐야 알 수 있겠다는 마음 상태이거나,

이미 헤치고 지나온 것에 대한 온정을 표하는 예의 바른 말이거나,

적극적으로 판단 짓기에 미온적인 상태이거나,

더 강하고 자세한 호감의 어휘를 비껴가기 위한 방법적 거절이거나....

 

'좋아한다'는 말은, 이런저런 것들의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버려진 영역에서

싹을 틔우는 호감들을 아우르는 말임은 분명하다.

 

 

반하다

 

'반하다'라는 말 앞에는 '홀딱'이라는 수식어가 적격이다.

'홀림'의 발단 단계. 그 어떤 호감들에 비해,

그만큼 순도 백 퍼센트 감정에만 의존된('의존한'이 아니라)선택인 셈이다.

순식간에 이루어지지만, 그리 쉽게 끝나지는 않는다.

어차피 아무런 판단을 동원하지 않고 행한 호감의 의식이므로,

벼락처럼, 자연재해처럼 한순간에 완결되는 감정이지만, 수습은 쉬은 일이 아니다.

 

 

매혹되다

 

'홀림'이 근거를 찾아 나선 상태.

'반하다'는 것이 근거를 아직 찾지 못해 불안정한 것이라면

 '매혹'은 근거들의 수집이 충분히 진행된 상태다.

 

풍부하게 제시된 근거 때문에 매혹된 자는 뿌듯하고 안정적이다.

그러므로 매혹은 즐길 만한 것, 떠벌리고 싶은 것이 된다.

게다가 중독된 상태와 비슷해서, 종료되는 순간은 쉽게 오지 않는다.

실망의 언저리를 맴돌다가도 어느새 다시 감정은 복원된다.

 

매혹되어 있어서 자신이 망가지는느낌이 들거나 매혹으로 인해 포만감을 느껴본 이후라면,

홀연히 매혹의 올가미로부터 자유로워질 수도 있다.

그럴 땐 매혹의 경험이, 가슴에서 반짝이는 자랑스런 금색 훈장과도 같다.

 

 

 

 

매력

 

착하고 순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우리는 결코 '매력 있다'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다.

그럴 경우 '미덥다'는 표현을 더 쓰게 된다.

한 존재가 가진 결핍과 과잉, 모자라거나 지나친 성향들,

그것에 대하여 부정하지 않고, 오히려 적극적으로 환호할 때.

이 낱말을 제법 용이하게 쓰이곤 한다.

 

누군가의 모자란 점과 지나친 점을 곱게 보아줄 때. 매력은 날개를 펼친다.

매력 있는 존재만을 쫓는 사람은 자신이 매력 있어 하는 대상과의 관계에 대해 늘 불만족스럽다.

게을러서 아름다운 사람은 관계에도 게으르며,

섬세해서 아름다운 사람은 상대방의 섬세하지 못함을 이따금 책망한다.

그렇기 때문에 매력 덩어리들은 언제나 상대방을 허하게 하거나 피곤하게 한다.

그렇지 않을 때도 있긴 있다.

 

결핍은 결핍으로 똑바로 인식하고,

과잉을 과잉으로 똑바로 인지하는 때.

그때란 대개 관계의 내리막길을 걸어내려갈 때다.

간혹, 매력 때문에 생겨난 호감의 양 날개를 뚝뚝 분지르며 걸어내려 가기도 한다.

 

 

 

 

손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어여쁜 역할은

누군가를 어루만지는 것이다.

그 촉감 앞에서 우리는

어떤 공포로부터,

어떤 설움으로부터,

어떤 아픔으로부터 진정되곤 한다.

 

 

 

 

농담

 

농담은 무장을 풀게 한다.

A부터 Z까지 자연스럽게 흘러 다니는 수다의 향연 속에서,

문득문득 발생하는 생각의 차이에 농담을 얹어 말할 줄 아는 자는,

유대감에 있어서는 최고의 실적을 올린다.

 

사람들은 흔히, 생각이 같아서 치는 맞장구에는 저절로 안도를 느끼지만,

배타적이게 되므로, 그 차이를 멋진 농담으로 언급한다면, 차이가 발견될 때마다,

상대방은 흥미가 생기고 미리 기분이 좋아져서 귀를 쫑긋 세우게 된다.

 

차이 때문에 타자가 멀게 느껴지는 게 아니라 오히려 더 멋지게 보이는 느낌,

그럴 때 우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어 멀어지거나 기댔던 등을 세워 앞으로 당겨 앉는다.

꼭  그렇게 자세를 바꿔서 대화를 심적 거리에 환기를 두게 된다.

 

농담을 잘하는 사람은 대화를 하며 상대방을 그네에 태운다.

다가올 때마다 등을 힘껏 밀어 높이 띄워준다.

마주 앉은 자리보다 훨씬 높고 먼 곳으로 가게 한 다음.

더 크게 자신 쪽을 오게 하기 위해서다.

 

 

 

목소리

 

어떤 목소리는 물러서게 하고, 어떤 목소리는 다가서게 한다.

어떤 특별한 목소리는 우리의 귀를 포박한다.

또 어떤 특별한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까지 포박한다.

그 어떤 훌륭한 악기도 그 특별한 목소리만 못하다.

 

목소리에는 달콤함과 쓰디씀과 시원함과 저릿함과 애절함과 다정함과 굳셈과 갈증과

설득력과 단호함과 슬픔과 기쁨과 무서움과 비통과 환희가 담겨 있다.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애착과 교감이 거기엔 있다.

그래서 속기도 쉽고 속이기도 간단하다.

그래서 목소리는, 그 사람의 참됨을 알아내는 데 있어서는 철천지원수와 같다.

 

 

 

 

사랑 그 불가항력의 낭비에 대한 보고서

 

사랑의 시작을 여는 필수조건에는 실수가 있다.

그 실수를 우리는 운명이라고도 말하고, 필연이라고도 말하지만,

그것은 우연히 일어난 실수일 뿐이다.

실수의 첫 발이 사랑을 점화시킨다.

그 실수는 이후 가장 특별한것,

가장 현명한 것,

가장 필연적인 것으로 미화된다.

미화하는 힘 자체가 사랑의 힘인 셈이다.

 

사랑에 있어서 예의는 사랑의 장애물이 되거나 심지어 모독이 되기도 한다.

사랑은 결례의 와중에서만 완성된다.

의복이 하나의 예가 되어 버린 우리의 풍습에서,

옷을 벗는 것이 거의 부끄럽지 않고 살이 닿는 것이 행복할 때가 사랑이라면,

결례의 속살 속에서 사랑은 반드시 진실을 드러낸다.

결례는 버겁고 피곤한 것이지만,

그 중압감이 황홀할 때가 사랑에 빠진 때다.

 

 

 

 

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봄날의 경이에 예민해지는 자, '그는 사랑을 아는 자다'라고 조심스레 적어본다.

무슨 힘으로 그 딱딱한 것들을 뚫고 싹이 나고 꽃이 피는지.

그 힘이 시끄러워서 괴로울 정도의 봄, 봄이 오고 또 간다는 이 은근한 힘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무슨 기적처럼 여겨지는 사람은 아마도 사랑을 아는 자일 것이다.

 

우리는 저마다 꽃을 갖고 있다.

꽃은 부드럽게 떨리며 하루하루 꽃잎을 여닫는다.

단조로우면서도 환희에 찬 하루를 산다.

그 꽃은 한꺼번에 피어서 온 세상을 화사하게 뒤바꾸기도 하며,

때로는 홀로 수줍게 피어 어느 한 산책자의 발길을 묶기도 한다.

 

사랑은 꽃을 키우듯 재배한다.

꽃보듯, 바라보고, 느끼고 이해한다.

시든 잎을 따주고 물을 준다.

물을 주지 않는다고 해서 금세 시들지는 않는다.

사랑의 강령은 식물처럼 조용하고 간곡하다.

온기를 향해 두 팔을 내뻗으며 우리를 살갑게 안내한다.

사랑은 가장 고요하고, 가장 고독한 행복이다

햇살 가득한 아침에 기지개를 깨닫게 한다.

 

오해와 곡해 사이에에서 언뜻언뜻 비치는 진실들을 씨앗처럼 조심스레

주위 땅에 심고는 새로운 싹에 미리 설레며 다음 계절을 기다리게 한다.

 

 

 

갈등 - 욕망이 가장 솔직하게 균형 잡힌 상태

까다로움 - 발품을  팔아서라도 충족하고 싶은, 예민한 고급함.

- 현실이 처형하지 못하지만, 현실을 처형할 수 있는 것,

독하다 - 닥치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이러는 내가 조금은 안쓰럽다. 그래도 이 악물련다. 참 모질다

미움 - 사랑의 질 나쁜 상태

배려 - 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장 은은하게 나타내는 자세.

부끄러움 - 자기 혼자만 생각해온 것이 들켰을 때에 느끼는 난감한 안도감,

                    무안함이나 창피함은 '당하는 것'이지만, 부끄러움은 '타는 것'이다.

설렘 - 뼈와 뼈 사이에 내리는 첫눈.

애틋함 - 뼈와 뼈 사이에 내린 첫눈이 녹아내릴까 봐 안타까워하는 것.

야속함 - 뼈와 뼈 사이에 내린 첫눈이 녹아내리는 것을 지켜보는 일.

여리다 - 부드러운 살 속에는 강인한 뼈가 들어 있다. 참 강하다.

열정 - 혼자서는 불타오르지 못하는 정념, 석탄이나 석유처럼 점화와 발화의 순간이 외부에 있다.

침묵- 말의 여백, 말의 내밀한 웅변, 말보다 가련한 가책, 말보다 순정한 꾸중

흔들림 - 가장 부드럽고 진솔한 상태, 견딜 만한 혼란.

- 뼈와 뼈 사이에서 들리는 음악

희망 - 삶의 진자운동을 일으키는 자기장, 흔들리고 흔들리다 보면 닿게 되는 지점. 

 

 

'틈'이라는 부제로 마음사전 뒷편에

 마음 관련 어휘들이 100개 정도 실려 있다.

그 중 눈에 띄는 단어 몇개 올려 보았다.

 

나는 언제나 '갈등'한다.

쬐끔 '까다로운'편이며

 어떤 상황에서도  '꿈'은 버리지 않으므로

어느땐 '독하다.ㅎㅎㅎ

 

'미움'이란 놈이 가끔 똬리 틀어 주인행세 하려하지만 그래 오래가게 내버려 두진 않는다.

되도록이면, '배려'하며 살고자 하지만

내가 가진 가장 큰 맹점은  이 나이에도 '가끔 '부끄러움'의 소용돌이에  빠진다는 것이다.

(당혹스러워지는 순간이지만, '박카스' 같은  감정이다.)

 

'설렘'으로 세상을 보며, 그 응시를 인식하는 나 자신이 내겐 즐거움이다.

'애틋한' 대상 앞에선 속수무책일 때 있다.

'야속함' 때문에  냉혹해 질 때 있다. 단호한 편이어서 끊고 맺음 분명하여 차갑다는 소리 듣는 편이다.

 

여리디 '여린' 편이어서

'열정' 표출하지 못하는 경우 잘 없다.

글이 많아서 말이 많아서, ㅋㅋ '침묵'이 아름답다는 것 늘 염두에 두고 있지만, 

매번 그 사이에서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건  내 안에서 출렁이는 '흥'의 대결인지도 모른다.

 

희망은 그 흔들림 안에서 그때 그때 내 마음이 가 닿는 순간들인지도 모른다!!

 

 ㅋㅋㅋ표제어만 엮어도 나와 관련한 마음 표현이 된다.

 

써놓고 보니, 활용하고 보니, 

 마음 관련사전들이라 그런지 생뚱 맞지 않은 것이 신기할 정도다.

어휘력이 풍부할 수록 우리들 감성도 풍부해지는 건 분명하다.

책머리 글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내 앞에 낙타 한 마리가 도착해 있다.

그렁그렁한 눈망울을 ,

길고 긴 속눈썹으로 쓸어내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을 나의 낙타에게.

나는 '낙타야'하고 불러야만 하나,

이 녀석을 호명할 알맞은 말 한마디가 없어서 ,

나 또한 녀석을 그저 바라보고만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