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두근두근 - 권혁웅

구름뜰 2011. 11. 4. 10:29

 

내 입술이 그에게 닿을 때 나는 입술이고,

내 손이 그를 만질 때 나는 손이다

입술과 손은 내 몸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다.

그 사람을 사랑할 때 나는 얼마나 많은 우주를 품은 것인지.

여기에 소개한 몸들은 그런 설렘과 떨림과 끌림으로 진동한다.

눈과 코와 입이,, 손과 발이 몸이,

얼굴과 머리와 몸통이

그리고 피부와 심장이 전부 다 당신을 향해 두근댄다.

소망하느니, 당신도 나와 함게 두근대었으면,

우리가 그렇게 마주한 두개의 우주 였으면..

 

 

 

이 책에서 나는 나와 다른 사람을 겹쳐서 읽고 싶었다.

몸이 하는 말을 받아 적고 싶었다.

몸이 하나의 우주라는 말은 상투어가 아니다.

우주는 적어도 다른 우주를 꿈꾸어야 한다.

그 꿈을 이르는 말로 나는 '사랑'보다 적절한 말을 찾지 못했다.

내게 다른 우주를 보여준 이에게 감사드린다.

2008년 1월 권혁웅

 

 

마리오네트(끈으로 조절하는 꼭두각시 극)

 

시선(視線)은 줄이다.

내가 너를 당겼다.

너는 어색하게 내게로 왔다.

내가 시선을 거두자

네가 쓰러졌다.

풀썩 쓰러지며 온몸의 지절을 다 꺾었다.

 

 

붉은 등

 

그녀의 혀가 몸속으로 들어온다.

혀는 붉고 뜨겁다.

잠시 몸속이 환해진다.

 

 

누군가 그대를 지나쳐 갔다

 

골목길 모퉁이가 긁혀 있다.

누군가 범퍼로 모퉁이를 밀고 갔다.

쪼글쪼글한 주름들이 모여있다.

그곳이 그대가 처음으로 입술을 내민 곳이다.

누군가 그대를 열려고 했던 거다.

그대 입술을 모른 체 지나갈 수 없었던 거다.

그러나 담은 문이 아니어서,

그대는 소심했고 그래서 완강했다.

그대는 다만 허공을 품은 자루처럼 앙다불었고 결국 쪼글쪼글해졌고 마침내 닫혔다.

그 사람도 그대를 지나치며 조마조마 했을 것이다.

초보였을 것이다. 두근두근 그대 쪽으로 진입했을 것이다.

그러곤 열리지 않은 벽 앞에 몇 마디 탄식을 놓아두고 사라졌을 것이다

누군가, 그렇게, 그대를 지나쳐 갔다.

 

 

"불 끈 나라의 황급한 사라짐이여" 이성복

 

그때 내 마음은 불 끈 나라에 있었다.

눈 감고도 망막에서 붐비는 어떤 수런거림이 있었다.

환상도 잔상도 아닌, 빛의 거미줄이 있었다.

거기에 걸려 파닥이는 내가 있었다.

 

 

우물의 깊이A

 

나는 천착(穿鑿)하고 천착하였습니다.

천착은 구멍을 낸다는 뜻입니다.

그대에게서 맑은 물이 괼 때까지 그대 안에 깊이 잠겨 든다는 뜻입니다.

마침내 그 물에 자신을 비춰볼때면, 우물은 내안의 동굴이 됩니다.

 

 

우물의 깊이 B

 

내가 그대 안으로 깊이 두레박을 내리자 수면은 너울져 흔들렸습니다.

거울이 산지사방으로 깨어져 나갔습니다.

그게 파경이 아니라면 무었이겠습니까.

그대 안에 들때마다 내 사방태가 뿔불이 흩어져 달아났습니다.

 

우물의 깊이 C

 

그대가 깊어질수록 나의 하늘은 멀어졌습니다.

처음에는 놋으로 만든 대야만했다가

다음에는 양은냄비만 했다가

그 다음에는 구리동전만했다가

마침내는 사등성(四等星)처럼 희미하고 까마득해졌습니다.

천착 탓입니다.

동굴이 너무 깊어진 탓입니다..

 

우물의 깊이 D

 

"목마른 자가 우물 판다"는 말이 있지요

나는 오래 그 우물이

목구멍을 은유하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우두커니

 

우두커니란 부사는 본래, 한옥 지붕 위에 일렬종대로 선 채 하늘을 보는 짐승들을 일컫는 말이다.

그들은 일심으로 높은 곳을 사모하는데.

왜 그들의 모습에 '넋이 나간듯. 빈둥거리며'와 같은 어감을 추가 했을까.

 

어처구니

 

어처구니는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사람이나 물건을 가리키는 말이다.

어처구니가 없다는 말은 일이 너무 엄청나거나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다는 뜻이다.

그대에게, 어처구니 있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다.

 

 

 

섹스와 포옹의 차이점

 

"나는 섹스보다 이렇게 안고 있는 게 좋다.

이게 영원처럼 느껴진다." (김영하)

흡혈귀가 되어버린 남자가 여자에게 속삭인다.

섹스가 동작태라면, 포옹은 지속태다.

동작에는 처음과 끝이 있으나,

지속은 그냥 지속일 뿐이다. 지속은 늘 순수 지속이다.

사랑하는 이를 안고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당신은 불멸의 엠블럼을 갖게 되는 것이다.

 

 

 

포옹

 

그녀를 안을 때,

내 마른  몸을 채우는 어떤 풍요가 있어요.

갈빗대 사이로 흘러드는 어떤 물살이죠.

내가 정말 갈빗대 하나를 그녀에게 주었나 봅니다.

그래서 이렇게 그녀가 나를 대신 채워주는 건가 봅니다.

 

 

 

사랑이라는 발음

 

사랑(amor)은 젖꼭지(amma), 유방(mamma), 유두(mamilla)에서 유래 된 단어다.

......아모르(amour)는 말을 하는 입이라기 보다는 ,

배가 고파 입술을 앞으로 내밀어 본능적으로 젖을 빠는 입 모양에 가까운 단어다.

(파스칼 키냐르)

아이가 엄마의 가슴을 찾는 것, 거기에 사랑의 원형이 있다.

사랑이란 바로 그 입술의 모양이다.

불어로 '아모르'라고 발음할 때

우리 입술이 젖꼭지를 향해 삐죽이 내민다면,

한국어로 '사랑'이라고 발음할 때

우리 입술은 젖무덤 전체를 받아들일 듯이 함빡 벌어진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안치환)

 

얼마나 더 아름다운가? 딱 두 배다.

꽃은 한 송이지만,

사람은 젖꽃판을 둘이나 가졌다.

 

 

 

그리우면 닮아간다

 

남자도 중년이 되면 가슴이 나온다.

여성 홀몬이 분비되면서 여성화되는 것이다

그리우면, 그렇게 닳아가는 것이다

 

 

 

 

벌레같은

 

학질모기나 왕바퀴 같은 곤충은 서로 반대쪽을 향한채 교미를 한다.

서로를 보지 않아야 견디는 삶도 있는 거다.

자식들만 아니면, 벌써 날아가벼렸을 거라는 얘기다.

 

 

 

 

몸과 꼬리는 어느 것이 더 무거운가?A

 

인정하자 여자만 보면 흔들리는 꼬리,

다만 꼬리가 몸을 흔들지만 못하게 하면 된다.

 

 

 

나무들의 기억

 

가을이 나무들의 발정기라는 생각,

벌겋게 달아올른 다음, 확 벗어버린다.

 

 

사마귀

 

사마귀 암컷이 교미 중에 수컷을 잡아먹는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암컷이 수컷의 머리를 잡아뜯으면,

수컷은 자율신경만으로 더욱 빠르고 세차게 절정에 오른다.

억누르는 의식을 잃으니 억눌린 성욕이 분출하는 것이다.

우리 몸 여기저기에 난, 그 작고 납작하고 동그란 군살도 상대방의 손길을 기다리는

일종의 스위치다.

 

할증

 

그리움에도 할증이 붙는다

밤이 깊을수록 더욱더 생각난다고..

 

 

 

안심

 

사랑하는 이들의 마음 안쪽에 있는 것,

그것이 안심(安心)이다.

 

등심

 

사랑하는 이는 "그가 나와 닮았기 때문에"동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모습에서 나를 보기 때문에 동감하는 것이다.

네가 가장 아프다고?

그래 맞다.

내가 가장 아프다!

 

비트박스

 

아, 그이가 내게 걸어왔어요

'두근두근'이 발소리를 나타내는 의성어란 걸 그때 처음으로 알았어요.

 

 

 

'두근두근'

심장이  평소보다 더 떨릴때 나는 소리 인 줄 알았는데.

 그대 '발소리'였군요.

 

사랑하는 사람의 심박동 소리를 들어본적 있나요

 잘 들리지 않은다구요.ㅋㅋ

 내 가슴에 손을 얹어 보세요.

여전히 떨리지 않나요.

그렇다면 당신은

의미 없는 날들을 보내고 계신건지도 모릅니다.

깨우십시요. 당신안에 잠든 두근이를..

 

 두근두근이는 

 가을 하늘에도 낙엽에도  바람에도 있습니다.

 내 생각속에도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