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나는 오리 할아버지 - 김선굉

구름뜰 2011. 11. 13. 11:21

 

 

 

 '오리 할아버지' 김선굉 시인은 구미 인동고등학교 교장 선생님 이시다.

'함시사' (함께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수업 중이던 어느날, 

'우리 주변에 있는 시인들부터 만나보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마침 회원 중 친분 있는 이가 있어서  당첨, 우리가 만나러 가는 1호 시인이 되신 분이다.. 

 

 지난 2~3주간 '함시사'에선  선생님 시 위주로 공부를 했다.

만나기 위한 준비과정인 셈인데, 놀랍게도 이틀 후에 만나러 가는데도 

벌써 만난듯 한, 잘 아는 사람인 듯 한 마음이 되어 있다.

글의 힘이란 얼마나 놀라운지.

 

선생님 시는 지난주에도 몇 편 올렸지만 책 속(나는 오리 할아버지)의 것 더 올려 봅니다.

무어라고 말 할 수 없지만  선생님만의 색이 보여서 그 색 흉내라도 내고 싶은

부분 많습니다. 저처럼,, 즐감하시길..

 

 

겨울 달이 하현 쪽으로 이울어가고 있다.

찬 하늘에 높이 뜬 그 팔자가

얼마나 춥고 기막히겠는가.

손 뻗어 달의 얼굴을 만진다

이런, 열이 있다.

끌어당겨 품에 안았다.

내 몸이 하늘인 양 이 녀석이

밤새도록 몸을 도는 것이었다.

밤새도록 몸이 환했다.

하루 낮을 더 품고 있다가

다시 하늘에 올려놓았다.

캄캄해질수록 더욱 환하게 잠기는.

내 몸을 흐르는 강물.

月印天江 황홀한 물길이

내 몸을 휘감아 돌고 있다.

-달을 품다

 

 

 

 

내 몸에 강물이 흐르고

황홀한 물길이

내 몸을 휘감아 돌고 있다.

 

 내 수면이 잠잠할수록 달도 웅숭깊게 잠기고,

  물결이야 출렁일 수 있지만 달이야 끄떡이나 할까...

 내가 물인 동안 너는 내게로 잠기고 스며 들리라..

 

이 시를 읽으면서 '달을 좋아하시나' 했는데

아니다 다를까 한 참 뒷페이지에 달에 대한 시,

'달은 물을 좋아한다'는 시가 있었다.

 

 

 

 

달은 물을 좋아한다.

물을 보면 서슴없이 몸 던진다.

끝내 던지고야 만다.

거세게 몰아치는 물결을 향해

막무가내 몸을 던진다.

몸을 던져 부서지고야 만다.

부서지면서 격렬히 뒤엉킨다.

월인천강

월인 만강

산산이 부서졌다가 다시

중심을 향해 둥글게 모인다.

이제 보니 내 가슴은

달이 와서 잠긴 깊이 만큼

깊고 아득한 물이다.

달이 내 몸을 돈다.

내 마음의 해변을 비추며,

돌아다니기도 하고,

나를 이끌어 내가 모르는

심연 들여다보게 한다.

-달은 물을 좋아한다.

 

 

 

 

참 오랫만에 의성 탑리 오층석탑을 찾아가서

그간 잘 있었는가, 말을 걸었는데.

찬 하늘 속에 뻣뻣이 서서 대답이 없다.

왜 이러나, 하고 손을 잡으려는데,

몸을 외로 들고는 등을 보이는 것이었다.

어허, 하면서, 등 뒤로 다가가 안으려니.

짐짓 뿌리치며 한 발짝 내다 앉는다.

얼핏 보아 멀쩡한 것 같기도 하고,

어찌 보면 까칠한 게 좀 여윈 것 같기도 해서,

감실 깊숙이 체온계  들이 밀었다.

이마를 짚어보고 맥박을 재려는데.

잴 테면 재라는 듯

싶드렁히 겨드랑이 치켜올렸다 내리고,

손목 불쑥 내미는 모양이

너무 오랫만에 찾아온 것이 서운한가 보다.

천년 넘게 금성산 자락에 서서

세속의 풍상을 읽고 고개 끄떡일 나이에

별것도 아닌 일로 뭘 그리 삐치냐며,

두어 번 옆구리 쿡, 쥐어 박았다.

37도 훌쩍 넘어서는 붉은 눈금을 읽는데.

어찌 그리 전화도 한 통 없냐며,

뭐 이상한 걸 들고 재고 짚어봐야 알겠냐며,

문제는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며,

해긋는 짓이 천상 시인이 아니라,

무슨 얼치기, 돌팔이 의사 못지 않다며,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간다며,

막무가내 바지춤 잡고 주저앉히는 것이었다.

-탑리 일박

 

 

 

'막무가내로 바지춤 잡는 이 탑을 어쩔까'

오늘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못 간다며..

 

무한 대상에다  풀어 놓은 심상이 마음을 울린다.

나보다 강한 대상이면, 차라리 나하고는 게임도 안되는 대상(자연물이나 절대자 같은)에

풀어놓는 게 낫다.  처연함이다.

그래놓고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고 나보다 약할 때도 있다고,

 눙치는 것 까지 작가의 상상력이 재밋다.

 

'탑리 일박'에 나오는 의성군  '탑리  국도변에는 ' 오층 석탑'이 있다,

  그래서 지명이 탑리라는 걸 누구나 알아보게도 되는 퍽이나 인상적인 탑이긴 하다.

 시댁이 그쪽이어서 이십년 넘게 다닌 길이건만, 그것이 신라때 것이라는 건 몰랐다.

 그 탑 옆으로 들판을 지나서 금성산이 있는데 분지에서 우뚝 솟아오른 산으로,

탑리나 의성 사람들은 아직도 신성시하며,

산에 얽힌 전설이 아직도 인구에 회자되고 구전되는 산이기도 하다.

 

요즘은 추석에 산소갈 때면 한 번가는게 다지만,

나는 그  탑에 의미 있는 눈길을 준적이 없다.

길 가에 있는 데다  차들이 쌩~ 하고 지나가는 현장이라

나도 쌩~하고 지나갈 줄만 알았지

그 탑 앞에서 하늘을 배경삼아 올려다 본 적도 없다.

사진같은 것도 ..

 

 '탑이 더 외로운 것이다' 라는 시도 있다..

오리 할아버지 (2009년) 보다 훤씬 이전에  나온 시로. 

연장선상에서 보면 훨씬 더 재밌는 시다.

 

 


탑리 오층석탑은 천년 세월을 제 몸 속에 가둔 채 한 자리에 우뚝 서 있다. 그러나 탑리 사람들이 다 잠든 깊은 밤이면, 고단한 몸을 눕혀 별을 보기도 하고, 때로는 웅크리고 앉아 혼자서 뭐라뭐라 신라적 말로 지껄이기도 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깊은 속울음 울기도 하는 것이다. 달이 뜨는 밤이면 산운리 들판을 한 바퀴 획, 돌고 오기도 하고, 어슬렁 금성산 기슭을 다녀오기도 한다. 그러다 탑리에 장이라도 서는 날이면, 환한 대낮에도 아무 눈에 안 띄게 별의별 것 다 널어놓은 장터를 지나, 길 건너 대리에 있는 동산약국 유리문 앞으로 슬슬 다가가서는, 제 외로움에 약 한 첩 못 쓰는, 마흔이 넘도록 이두(吏讀)도 못 알아듣는 멍청한 바보 약사를 뻔히 쳐다보고는, 터구 같은 놈, 하면서 혀를 끌끌 차며 돌아오기도 한다. 그러나 탑이 더 외로운 것이다. 못 견디게 외로운 밤이면, 멀리 가음 못까지 한달음에 성큼 달려가, 못물에 제 모습을 오래 비춰보기도 하고, 어흐, 어흐흐, 온몸으로 울면서 물 속으로 제 몸을 들이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다 시가 안 되는 깊은 밤, 초당에 벌렁 누워 쓸데없는 생각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바보 약사가 심심한데 탑한테나 한 번 가볼까, 하고 마음이라도 먹을라치면, 탑은 금방 알아채고는 급히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이다. 울음 뚝, 그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 자리에 터억 서 있는 것이다

- 탑이 더 외로운 것이다. 김호진에게

 

 

 

이 시는 김호진을 위로하기 위한 시 같다.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를 위해  이런 시 한편 써 본다면,

받은 이는 어떤 기분이 될까.

 

이 시에서도 맘껏 노는 상상력이 부럽다.

약사와 탑의 사랑도 보이고, 탑의 외로움도 보이고,

심상이야 어찌 되었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천년 세월 한결같은 그러고 섰는그 모습이 처연하다.

 

 살다보면 때론 탑처럼 요지부동이고 싶을 때 얼마나 많은가.

그래놓고선 어느순간은 또 얼마나 자주 무너지는지.

'가만 있는 것'이 가장 힘든 시간도 있다.

 

사람들이 다 잠든 밤이면 고단한 몸을 눕혀 별을 보기도 하고,

신라적 말을 지껄이기도 하고, 깊은 속울음을 울어보기도 하고,

달뜨면 산운리 들판을 한 바퀴 돌고 오기도 하고 금성산 기슭을 다녀 오기도 하고

장날이면 장터를 지나 제 외로움에는 약 한 첩 못쓰는 마흔 넘도록 이두도 못 알아듣는

멍청한 바보 약사를  뻔히 쳐다보고는...그러나 탑이 더 외로운 것이다

 

시가 안 되는 깊은 밤,

초당에 벌렁 누워 쓸데없는 생각에 잠 못 이루며 뒤척이던 바보 약사가

심심한데 탑한테나 한 번 가볼까, 하고 마음이라도 먹을라치면,

탑은 금방 알아채고는 급히 길을 되짚어 가는 것이다.

울음 뚝, 그치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제 자리에 터억 서 있는 것이다.

 

 

 

내가 물이 되어 스미고 싶은,

몸 속에 고여 찰랑이고 싶은,

세상에 그런 사람이 있어서,

나는 그리로 흘러갈 것이고,

그의 몸 속을 돌 것이고,

때로는 몸 밖으로 솟아올라,

가볍게 가볍게 높이 떠돌며,

세상을 한 바튀 돌다가,

세상을 두 바퀴 돌다가,

혹으 세 바퀴 돌다가,

이윽고 물이 되어 스미로 싶은

바로 그 사람을 찾아내어,

다시 물이 되어

그의 몸 속으로 들어가서,

고요히 찰랑거리거나

괜히 흘러가거나 하닥,

이 밖에 무슨 일이 또 있겠는가,

무슨 일이 더 소중하겟는가.

설령 다른 길이 있어도,

이 길이면 됐다. 하면서,

그의 몸이 되기도 하다가.

- 나의 사랑은 이렇다

 

 

 

'나의 사랑은 이렇다'

잔잔한 여운이 이는 시다.

물같은 사랑!이다.

 

노자는 '무위'의 삶을 '물'에 비유해서 설명했다.

우리가 물에다 손을 넣으면 물은 물러난다고 생각하지만

물의 입장에서 보면 들어오는 손의 모든 국면을 하나도 빠짐없이 싸 안는다.

우리가 어떤 것을 움켜쥘려고 하면 이렇게 물처럼

전체국면을 한꺼번에 동시에 파지할 수는 없는것이다.

그렇게 보면 물은 가장 강력한 파지력을 갖는 것이다.

 

 높은 곳을 향해 분투어린 노력을 하는 대상들 앞에서도  물은아래로만 흐른다.

그러면서 모든 시내와 강들을 받아들여 커다란 하나가 된다.

그리고 스스로 깊어 질 줄 한다. 그리하여 '다 받아들이는' '바다'가 된다.

 

노자 8장에 착한것은 마치 물과 같으며,

물은 만물을 좋이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처하니,

 그런 까닭으로 도에 가깝다고 했다.

 

지난 주 이 시를 읽고 '나의 사랑은 이렇다"로 10분 글쓰기를 했었다.

"내가 그 쪽을 향해 눈만 껌뻑여도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내 마음을 읽어 줄 줄 아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라고 쓴

내 문장때문에 회원 중 처자님 속 보인다며 박장대소 했고,

'껌뻑' 때문에 또 다른 회원에게선 칭찬!! 받았다.ㅋㅋㅋ

부끄러웠다.

 

 

  단 한 사람을 위하여 그 사람의 배경이 되고 싶을 때, 그 사람의 모습과 표정과 눈빛을 가장 눈부시게 하는 풍경이 되어 그 사람 뒤에 서고 싶을 때, 그 사람이 내 생의 배경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때, 그 사람만이 나를 위한 가장 완벽한 풍경이라는 생각이 들 때, 두사람의 생각이 겹쳐질 때. 겹쳐져서 더 깊고 그윽한 풍경이 될 때, 그 풍경위로 사계가 지나가듯이 생의 표정이 변해 갈 때. 그렇게 봄을 맞이하고 여름을 건너 가을을 거쳐 겨울 골짜기로 함께 걸어들어갈 때, 그 뒷모습이 맑고 향기로울 때. 향기조차 남기지 않고 흔적이 없을 때, 그런 사랑에 대하여 마음이 움직여 나갈 때.

-사랑에 대하여

 

 

 

 

 시인은 언제든지 물 곁으로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물 곁으로 가서 가만히 손을 넣어 물의 체온을 재는 사람이다. 시인은 언제든지 나무 곁으로 다가설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다. 가령 들메나무 곁으로 가서, 들메야, 하면서 가장 깊이 끌어안을 줄 알는 사람이다. 물의 속살을 만지면서, 나무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신열이 높은지 낮은지 재고, 그 말을 알아듣는 사람이다. 물이 가만히 밀려올 때. 가슴을 열어 물을 맞이하는 사람이다. 나무가 몸을 기울여 올 때. 가령 들메나무가 제 몸을 기대올 때, 그 몸을 하나도 안 무겁게 척, 받아서 오래 서 있는 사람이다. 시인은 길을 걸으며, 달으 이미를 짚고, 길의 맥박을 재는 사람이다. 달이, 어, 저기 달하나 길 위에 떠간다고, 손가락을 가리키게 하는 사람이다. 별이 하늘에서 내려다보며, 참 많은 생각이 별처럼 돋아나는 그런 사람이 저기 있다고 수근대게 하는 사람이다. 시인은 나이가 들면, 서리를 모아 턱 밑에 붙이고, 눈을 모아 머리에 얹은 사람이다. 누가 저더러 시인이라고 하면, 시인은 무슨 얼어죽을, 하며, 꾸부정하게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이다. 몸이 붓이 되어 먼 길 걸어가는 사람이다.

-시인

 

 

 

'시인'이란 제목처럼,

시인의 모습 섬세하게 그려 내셨다.

 

"들메야" 하고 깊이 끌어 안을 줄 아는 사람!

나무가 몸을 기울여 올 때.

가령 들메나무가 제 몸을 기대올 때.

그 몸을 하나도 안 무겁게 척,

받아서 오래 서 있는 사람이다.

이 시 낭송을 듣는 동안 손수건 필요했던 시였다.

 

시인은 나이가 들면, 서리를 모아 턱 밑에 붙이고,

눈을 모아 머리에 얹은 사람이다.

누가 저더러 시인이라고 하면, 시인은 무슨 얼어죽을, 하며,

꾸부정하게 엎드려 시를 쓰는 사람이다.

몸이 붓이 되어 먼 길 걸어가는 사람이다.

 

 

 

오리 할아버지에게 사인을 받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책이다.

서점에 없어 출판사로 주문했더니 이틀만에 왔다.

회원 중 선생님 시집 없는 이가 나를 포함 여섯명, 하여 내가 깜짝 선물할 요량으로 주문한 책이다.

이 책을 받을 분들은 모를 터이니 나는 혼자서 신났다.

 

시는 시인이 독자에게 주는 선물 아닐까.

그 대상이 한 사람일수도 있고, 미지의 많은 독자를 고려한 것일 수도 있을 것이다.

타자를 위한 그 지난한 과정, 그것이 결국은 시인을 아름답도록 만든셈이다.

 나 처럼 시쓰기도 잘 안되는 사람은 

 책선물이라도 하는 편이 그나마 아름답게 사는 일이지 않을까.

 

어쨌꺼나 지금은 시 한편 쓴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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