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칠순이었던 엄마의 유일한 사회활동은 경로당 총무 역이다. 며칠 전 상안검과 하안검 수술을 받기위해 성형외과에 동행했다. 위 눈꺼풀은 처지면 시력저하의 원인도 된다고 한다. 눈 밑 주름과 지방제거까지 함께 하는 수술이었다.
나도 후에 겪어야 할 일 같아서 세심하게 봐두었는데 엄마의 다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100만 원이 넘는 수술비를 조금이라도 깍아 볼 요량으로 주춤하는 엄마에게 의사 선생님은 거울을 보여주면서 앞 눈매가 땅김 현상 때문에 수술 전 보다 매섭게 보일 수 있다며 살짝 시연해주었고 앞트임을 하면 30만 원 추가라는 친절한 안내까지 덧 붙였다.
‘엄마가 어떤 선택을 하실까’ 내심 엄마의 반응이 궁금했는데 발끈하셨다. “예뻐지자고 하는데 그래선 안 되지요!” 그러고선 대뜸 달콤한 유혹도 불사할 것 같은 어조로 이왕 수술하는 김에 선생님 기술을 당신에게 살짝 봉사해 주시면 어떻겠냐고 했다. 그런 일은 마치 구렁이가 담 넘어 가다 돌멩이 하나 건드려 주는 것처럼 선생님에겐 쉬운 일 일거라는 존경과 신뢰까지 담긴 말투였다. 그리고 수술 잘되면 뒤이어 올 친구가 많다는 사족까지 달았다.
안 깍을 테니 공짜로 해 달라는, 전혀 논리적이지도 않은 그 상황에 나는 얼굴이 화끈거리면서도 엄마의 의견에 후렴구라도 한마디 보태야 할 것 같았는데 차마 말은 나오지 않았다. 엄마의 간청에 위엄을 제법 갖추고 있어 보이던 선생님은 머쓱해졌고 거절하기에는 이미 우리에게 보인 미소가 너무도 부드러웠다.
무모 하리 만치 대범한 그 제안에 변죽도 못 울린 그 일을 내게 맡겼다면 어떻게 했을까. 흥정은커녕 “잘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엄마는 수술은 기본으로 잘 돼야 한다고 쐐기를 박았다. 또한 30만 원의 값어치를 무색케 한 수술에 혹여 박대라도 있을까 자신은 하고 싶지도 않은 것을 딸이 데려왔다며, 시집을 잘 가서 ‘사’자 사위까지 두었노라고 허풍까지 쳤다.
좋은 일은 자식 공으로 돌리는 어머니, 그 명분은 자식이 채워야 할 빈자리의 다름 아닐까. 엄마의 그런 자식사랑법 앞에선 언제나 면목이 없다.
외모가 달라지면 없던 자신감도 생긴다는 성형의 효과, 하지만 성형외과에서 본 엄마는 이미 성형을 한 모습이었다. 딸은 엄마를 닮는 다는데 나는 이래저래 아직 멀었다. 잔병 없으셔서 모처럼 함께한 나들이가 성형외과였으니 복이다. 아직도 천상여자인 엄마의 예뻐질 모습이 기대된다.
이미애 <수필가>
포스코신문 2012년 2월 23일
'my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이가 주는 것들 (0) | 2013.04.05 |
---|---|
추석이야기 (0) | 2013.04.05 |
매일춘추 - 아버지와 감나무 (0) | 2009.10.29 |
매일춘추 - 공통분모 (0) | 2009.10.22 |
매일춘추 - 부메랑 (0) | 2009.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