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영화 은교

구름뜰 2012. 4. 28. 21:23

 

 

 

 

 

 

아, 나는 은교를 사랑했다.

 

사실이다. 은교는 이제 겨우 열일곱 살 어린 처녀이고 나는 예순아홉 살의 늙은 시인이다.

아니. 새해가 왔으니 이제 일흔이다. 우리 사이엔 오십이 년이라는 시간의 간격이 있다.

당신들은 이런 이유로 나의 사랑을 사랑이 아니라 변태적인 애욕이라고 말할는지 모른다.

부정하진 않겠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사랑의 발화와 그 성장, 소멸은 생물학적 나이와 관계가 없다.

'사랑에는 나이가 없다'라고 설파한 것은 명저 <팡세>를 남긴 파스칼이고,

사랑을 가리켜 '분별력 없는 광기'라고 한 것은 세익스피어다.

그렇지 않은가. 그것은 본래 미친 감정이다.

당신들의 그것도 알고 보면 미친, 변태적인 운명을 타고났다고 말하고 싶지만, 뭐 상관없다.

당신들의 사랑은 당신들의 것일 뿐이니까.

---박범신 소설 '은교 중에서

 시인이 마지막 남긴 노트 - 프롤로그 중에서

 

 

 

 

 

 

*연애가 주는 최대의 행복은 사랑하는 여자의 손을 처음 쥐는 것이다.

스탕달이 연애론에서 한 말이다. 

"여성에게 있어 연애는 영혼으로부터 감각으로 옮겨가는 지 모르지만,

남자에게 연애는 감각으로부터 영혼으로 옮겨간다." 

그 순간(은교가 자신의 손을 잡은 순간) 내가 관념적으로 연애를 상상할 때와

너무다 다른 결론이었다.

나는 은교를 만나기 전까지 참된 연애란 남녀불문하고 영혼으로 시작된다고 믿었다.

감각은 하나의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그러나 나는 은교를 통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얼마나 실체 없는 관념이었는지 명백히 알게 되었다.

 

 

또한 세상 사람들의 보수적 수준보다 늙은 내 육체가 사실은 얼마나 예민하고 건강하게

제 촉수들을 온전히 유지하고 있는지도. 늙은 육체는 외피에 불과했다.

은교와 만나는 나의 감각들은 몸서리쳐질 만큼 살아 있었다.

'뽀뽀도 그냥 하는 세상'을 알고는 있었으나 도저히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나와 상관 없는 다른 세계였다.

 

나는 그 무렵, 분명히 연애를 하고 있었고, 내게 연애란,

세계를 줄이고 줄여서 단 한사람, 은교에게 집어넣은 뒤,

다시 그것을 우주에 이르기까지, 신에게 이르기까지 확장시키는 경이로운 과정이었다.

그런 게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다면

나의 사랑은 보통명사가 아니라 세상에 한명 밖에 존재하지 않은, 고유명사였다.

- 박범신 - 은교 중에서

 

 

 

 

 

 

'은교'를 봤다.

책을 워낙 인상 깊게 봤던 터라 궁금했었다..

  읽으면서 상상했던 이미지들이 섬세하게 연출되었다.

영화는 괸객에게 고민할 시간도, 깊이 생각할 시간도 주지 않고

스크린의 연속으로 관객을 끌어갈 뿐이다.

하니, 보고 나면 장면으로 남을 뿐,

뭉뚱거려진 의미 덩어리로 남을 뿐

갈피 갈피 책속에서 먼큼 섬세하게 읽어내는 관객은 더물다고 봐야할 것이다.

 

얼마나 몰입해서 보느냐에 따라 더 얻기도 하겠지만,

 깊이있게 이해하려면 한 번 더 봐도 좋은 영화이긴 하지만,

책을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은 감성으로 남는다.

농밀한 감성으로 깊게 남는다.

 

노시인 이적요(박해일)와 은교 (김고은) 둘 다 좋았다.

서지우 역의 배우까지 책속 인물들이 나온듯 했다.

 

은교 영화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궁금했고

이번주 개봉한 터라 아니 갈 수 없었는데.

같이 가긴 했지만 남편은 평점이 높은 '어벤져스'를 보자고 하고

나는 당근 '은교' 를 봐야겠고, 

우리는 나란히 표를 끊어서 각자 보고 싶은 영화를 봤다. ^^

 

나도 그런 생각을 했지만 이 영화는 여성

관객이 훤씬 많다고 한다.

남성은 나이든 관객이 많다고.

영화를 봤던 보지 않았던 책을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책속 인상적인 문장이 많긴 하지만,

그 중 소설 끝나고 마지막 페이지로 갇다 놓은

'작가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말'에서

"지난 십여 년간 나를 사로잡고 있었던 낱말은 갈망이었다.

 --그리고 '은교'에 이르러, 비로소 실존의 현실로 돌아와 존재의 내밀한 욕망과 그 근원을 감히 탐험하고 기록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밤에만' 쓴 소설이니, 독자들도 '밤에만'읽기를 바라고 있다."

- 2010년 이른 봄 한밤에.. 북한산 자락에 엎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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