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홰치는 산 -문인수

구름뜰 2012. 5. 14. 09:44

 

 

 

홰 치는 산

 

방올음산은 북벽으로 서 있다.

그 등덜미 시퍼렇게 얼어 터졌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내 묵묵히 버티고 선

아버지, 엄동의 산협에 들어 갔다.

쩌렁쩌렁 참나무 장작 찍어 낸 아버지,

흰내 그 긴 물머리 몰고 온 것일까

첫 새벽 홰치는 소리 들었다.

집 뒤 동구 둑길 위에 아버지 우뚝 서 있고

여명 속에서 그렇게 방올음산 꼭대기 솟아올라

아, 붉새 아래로 천천히 어둠 가라앉을 때

그러니까, 이제 막 커다랗게 날개 접어 내리며

수탉, 마당으로 내려서고

봄, 연두들녘 물안개 벗으며 눕다.

 

 

 

 

간통

 이녁의 허리가 갈수록 부실했다.

 소문의 꼬리는 길었다. 검은 윤기가 흘렀다.

 그 여자는 삼단 같은 머리채를 곱게 빗어 쪽지고 동백기름을 바르고 다녔다. 언제나 발끝 쪽으로 눈 내리깔고 다녔다. 어느 날 이녁은 또 샐 녘에사 들어왔다.입은 채로 떨어지더니 코를 골았다. 소리 죽여 일어나 밖으로 나가 봤다. 댓돌 위엔 검정 고무신이 아무렇게나 엎어졌고,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흥건히 쏟아져 있었다. 내친김에 허둥지둥 그 여자의 집으로 달려갔다. 방올음산 꼭대기에 걸린 달도 허둥지둥 따라왔다. 해묵은 싸릿대 삽짝을 지긋이 밀었다. 두어 번 낮게 요령 소리가 났다. 뛰는 가슴 쓸어 내리며 마당으로 들어섰다. 댓돌 위엔 반 듯 누운 옥색 고무신, 고무신 속을 들여다봤다. 아니나 다를까 달빛에, 달빛가루 같은 흰내의 모래가 오지게도 들었구나. 내 서방을 다 마셨구나. 남의 농사 망칠 년이! 방문 벌컥 열고 년의 머리끄댕이를 잡아챘다. 동네방네 몰고 다녔다.  소문의 꼬리가 잡혔다. 한 줌 달빛이었다.

 


 

 

 

앉아보소

 

 -거, 앉아보소

 늙은 여자가 강물 물 가까이 털썩 주저앉으며 말했다. 쉰 목소리로 말했다. 다 망가진 채 엉거주춤 돌아온, 쿨럭거리는 사내더러 한 번 말했다. 꺼질듯 낮게 말했다. 키가 껑충한, 그래서 그런 건지 낮짝 안보이는, 아직도 허공에 매달려 떠돌고 있는 건지 낮짝 없는, 낮짝없는 사내더러 여자가 말했다.

 

 여자는 오랜 세월, 장터거리에서 혼자 국밥집을 해왔다.

 저녁노을 그 아래 시뻘겋게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그러나 쿨럭쿨럭 뒤엉키는 물,

 

 지금은 다만 긴 강.

 

 

 

붉은 적삼

 

소가 죽었습니다.

바깥 마당이, 서른 마지기의 들녘이 텅 비어 버렸습니다

죽은 소를 미루나무숲으로 옮겼습니다.

각(脚)을 떴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묵묵, 묵묵히 담아갔습니다.

나뭇가지에  적삼 벗어 걸어둔 것

펄럭펄럭 늑골 드러내면서

집에 들어가는 아버지한테선지

아, 소울음 소리가

엄청 시뻘건 비린내가 진동했습니다.

저녁노을이었습니다.

 

 

 

 

그들만의 집


차를 몰고 가다 보면 경치 좋은 곳마다 분통같이 이쁘게 지은 러브호텔들이 말대꾸처럼 꼬박꼬박 나타납니다. 켕기거나 땡깁니다. 그래, 사랑일수도 있겠지요. 사랑, 종이컵 같은 집. "저런 러브호텔들의 역할을 우리네 산천의 보리밭이 감당한 시대가 있었지"라고 어느 해 나는 동승한 친구들에게 너스레를 떤 적 있었는데요, 이삭 팰 무렵 시퍼렇게 일렁이던 달빛 비린 보리밭, 그 보리밭에서 연애해 맺어졌다는 어떤 부부 이야기, 오십 여 년 전 우리 고향 마을에 살았던 한 노인 부부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그들 부부는 슬하에 자식도 없고 사는 형편 또한 찢어지게 가난해서요, 그랬지만 부부 금슬만은 근동에까지 자자하게 좋았다는데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가 불쑥 할아버지 쪽에서 입에 담지 못할 변화가 생겼다고 합니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할머니에 대한 할아버지의 호칭 문제였는데요, 나무하러 가거나 들에 나가거나 장에 갔다가 돌아왔을 때 할머니가 보이지 않으면 온 동네를 찾아 헤매며 누구든 붙들고 그 망칙한 호칭을 예사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우리 집사람 안사람도 아니고, 마누라 할멈 할망탕구도 아니고, 밥쟁이도 아니고, 하 이 무슨 대 결단, 결론인지요 "내 좆집, 좆집 못봤는가?"였다고 합니다. 그러니 물론 온 동네 사람들이 킥킥거리거나 수군댈 밖에요. 그런데 더욱 해괴한 것은 이 호칭에 대한 할머니의 반응이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의 이러 저러한 입방아에 그냥 무덤덤히 "그러면 어떠냐, 놔 두람" 이 한 마디로 잘라 대답하고 그저 빙그레 웃기만 했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역시 남의 손가락질 따위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그 몹쓸 여성비하의 호칭을 계속 사용한거지요. 그런 세월 십여 년, 그러나 그 무엇이든 참 간절한 세월은 본래 모난 데를 둥글게, 부드럽게 깎는 법. 좆집, 이 험한 말도 손때 묻은 호미자루처럼 한평생 드나든 문지방처럼 아니, 잘 닳은 절구공이처럼 동네 사람들 마음에도 이윽고 절친해졌을 겁니다. 그러다가 어느 해 할머니 죽고, 달포도 못 넘겨 할아버지도 죽고, 동네 사람들 고인의 간곡한 유언에 따라 할머니한테 합장해 드렸다고 합니다. 그리하여 이제 서로에게 온전히 엎어져 지붕이 된 봉분, 그 무덤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전심전력, 전신을 기울여 함축한 몸, 그 영육의 완벽한 결속인 데가 바로 그들 부부만의 집이었겠지요. 그 불학무식한, 지독한 외설이 지은 집, 할아버지 할머니의 오래 된 집 한 채가 저 풋풋한 보리밭 먼 이랑 저녁 노을 끝에 묻혀 깊고 붉어 따뜻합니다.

 

 

 

 

 심우도 ( 尋牛圖 )
 

 황소 한 마리가 외양간을 꽉 채우고 엎드려 있는 것만큼 마음 든든한 광경도 없을 겁니다.
 그 날 밤 따라 검둥이란 놈이 유난히도 짖어댔습니다. 한 십년 먹인 수캐였는데 매우 영리해서 사람의 말을 잘 알아들었지요. 한가지, 이 검둥이란 놈에겐 기이한 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놈의 잠자리였는데요, 마루 밑에 마련해준 제 잠자리는 거들 떠도 아니 보고 늘 외양간에 가서 잤습니다. 엎딘 소의 옆구리께에 턱하니 기대어 짚북더기에 코를 박고 잤는데요 그 날은 동네 암캐라도 쫓다 온 것인지 밤 이슥한 시간에 그토록 떠나갈 듯 짖어댄 것입니다. 아버지가 야, 이놈 검둥아 그만 짖어라, 누운 채 몇 번 나무랐지만 막무가내였습니다. 아버지의 음성을 듣자 개는 오히려 더 극악스레 짖어댔습니다. 개 짖는 낌새가 이거 심상찮다 싶었는지 아버지는 대충 걸쳐 입고 방문 벌컥 열고 뛰쳐나갔습니다. 소가 없어진 것입니다.
 텅 빈 외양간 앞에 텅 빈 아버지가 망연히 서 있었습니다. 계속 아버지를 뒤흔들기라도 하듯 마구 짖어대던 검둥이란 놈이 땅에다가 코를 대며 삽짝 밖으로 냅다 달려나갔습니다. 금세 아버지 앞으로 되달려오면서 미친 듯 짖어대는 거였지요. 그러기를 수차례, 이윽고 아버지가, 알았다, 가자, 하면서 자전거를 꺼내 탔습니다. 검둥이란 놈이 기다렸다는 듯이 휭하니 앞서 달려나갔습니다.
 소를 찾았습니다. 아버지의 이야기는 이러하였습니다. 검둥이란 놈은 동구 밖을 벗어나자 그때부터 짖지도 않고 가끔 땅에다 코를 대거나 아버지를 기다리거나 하면서 내쳐 적당히 달리기만 했다고 합니다. 달이 기울고 어느 마을 첫닭이 울 무렵이었을까요, 우리 사는 곳에서 오십리나 떨어진 왜관 인도교에 이르러 마침내 도둑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고함소리에, 다시 개 짖는 소리에, 혼비백산한 도둑은 그만 소의 고삐를 놓고 걸음아 날 살려라 줄행랑을 쳤고요. 물론 검둥이란 놈이 한 입에 집어삼킬 듯 도둑의 꽁무니를 향해 돌진했지요. 그러나 그때 우리의 소가, 크고 환하게 몸을 돌렸기 때문이었을까요? 아서라 됐다, 일평생 불같았던 아버지, 캄캄했던 아버지, 들끓었던 아버지가
일순 검둥이란 놈을 말렸다고 합니다.
 동녘 일출을 후광으로 아버지와 소, 검둥이란 놈이 한데 어우러져 돌아오던 그 아침의, 붉새의 들녘을 기억합니다.

 

** 문인수 1945년 경북 상주 출생,

우리 아버지보다는 쬐끔 젊으시고 징하게 잘 쓰는 시인이시다. 머지않아서  뵐 것 같은 예감!에 미리 공부중인 시인이다. 1985년 '심상'으로 등단, 시집은 많다. '늪에 늪이 젖듯이' '세상 모든 길은 집으로 간다' '뿔' '동강의 높은 새' '쉬' '배꼽'등이 있다. 최근에 올 초였던가  '적막소리'가 나왔다.

 

 



 

* 이른 봄 제일 먼저 연초록으로 인사하던 아파트 건터편 풍경! 보리밭인 줄은 알았지만 어제 문인수 시집속 보리밭 얘기가 눈길을 끌어서 였던지 해거름 저수지 산책길에 보리밭에도 다녀왔다. 

  어느 책에선지 보리밭에 든 어미 아비 덕분이라는 자신의 출생담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네 어른들에겐 보리밭이 추억의 장소! 가 아닐까.  가까이서 보니 초록 바늘을 꽂아 놓은 듯 하고, 만져 보니 생각만큼 까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날 선 무엇 같았다 거슬렀다간 남아날 것이 없을 것 같은,,  부족한 내 상상력으로는 이곳에 숨어 들어 사랑을 나누었을 처녀 총각들은 곤욕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먼저들고,  1미터 남짓한 숲이어서 숨어 들어 달님 말고는 알 도리가 없도록 할려면 누울 밖에는 방법이 없었을 듯,,, 하여 보리밭에 들면,,,  보리밭가에서 보리밭이라는 노랫말 말고는 추억이 없는 내가 별 상상을 다 해 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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