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국어 교과서 작품읽기 중1 수필

구름뜰 2012. 5. 18. 10:33

 

 

 

전부 무료

 

 어느 날 저녁 내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우리의 어린 아들이 부엌으로 와서 엄마에게 자기가 쓴 글을 내밀었다. 아내는 앞치마에 손을 닦은 다음에 그것을 읽었다. 거기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잔디 깎은 값                                                                                          5000원

이번 주에 내 방 청소한 겂                                                                       1000원

가게에 엄마 심부름 다녀온 값                                                                   500원

엄마가 시장 간 사이 동생 봐 준 값                                                             300원

쓰레기 내다 버린 값                                                                                1000원

숙제를 잘 한 값                                                                                       5000원

마당을 청소하고 빗자루질을 한 값                                                            2000원

전부 합쳐서                                                                                           14800원

 

 아내는 기대에 차서 바라보는 아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는 아내의 머릿속에 어떤 생각들이 스쳐 지나가는지 알 수 있었다. 이윽고 아내는 연필을 가져와 아들이 쓴 종이 뒷면에 이렇게 적었다.

 

너를 내 뱃속에 열 달 동안 데리고 다닌 값                                                      무료

네가 아플 때 밤을 새워 가며 간호하고 널 위해 기도 한 값                                무료

너 때문에 지금까지 여러 해 동안 힘들어 하고 눈물 흘린 값                       전부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사랑은                                                          무료

너 때문에 불안으로 지샌 수 많은 밤들과

너에 대해 끊임없이 염려해야 했던 시간들도                                            모두무료

장난감, 음식값, 옷 그리고 심지어 네 코를 풀어 준 것까지도                     전부 무료

이 모든 것 말고도 너에 대한 내 진정한 사랑은                                                무료

 

 

 아들은 엄마가 쓴 글을 읽고 나더니 갑자기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엄마에게 말했다.

 "엄마, 사랑해요!"

그러더니 아들은 연필을 들어 큰 글씨로 이렇게 썼다.

 

 전부 다 지불되었음! 

 -잭 캔필드 외 역음,, 류시화 옮김

 

 

부덕이 

 

 내가 어려서 보통학교에 다닐 적에,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라는 개 한 마리를 기르고 있었습니다. 개라고 해도, 이즈음 신식 가정에서 흔히 기르는 셰퍼드, 불도그 같은 양견도 아니었고, 매사냥꾼이나 총 사냥꾼이 길들인 사냥개 걑은 휼륭한 개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시골지에서늘 볼 수 있는 아무렇게나 마구 생긴 개로도적이나 지키고, 남은 밥찌꺼기나 치우고 아이들 시중까지 들어주는 그런 개였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 개를 퍽 좋아했습니다. 내가 까치 둥지를 내리러 커다란 황철나무 있는 데로 가면, 부덕이는 내가 나무 위에 올라가는 동안을, 나무 밑에서 가죽신을 지키며 끓어앉아 있다가 까치를 나무에서 떨구어도 물어 메치는 일 없이 어디로 뛰지 못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개구리를 잡으러 갈 때에도 쫒아가고 덤불창을 놓으려 겨울 아침 눈이 서너 자씩 쌓인 데를 갈 때에도 곧잘 앞장을 서서 따라다녔습니다. 저녁을 먹고 어디로 심부름을 갔다가 밤이 되어도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알았는지 내가 있는 집을 찾아서 대문 밖에 꿇어않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른들 중에 누가 나를 데려다 주러 나오다가도 부덕이가 꼬리를 설레설레 흔들며 내 발부리에 엉켜도는 것을 보면,

 "부덕이가 있으니 동무가 될 게다. 그럼 잘 가거라."

하고 안심하여 나를 돌려보내  주었습니다.

 

 부덕이는 이렇게 항상 나와 같이 다녔습니다. 부덕이가 나와 떨어져 있는 때는 내가 학교에 가 있는

동안 뿐이었습니다. 아침에 책보를 들고 나서면 뿌르르 앞서거니 뒤서거니 따라 나오다가도, 학교 가는 골목 어귀까지만 오면 내가 가는 걸 빤히 바라보다가 이윽고 다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집을 너무 떠나 다니면 집안 어른들께 꾸중을 들었으므로, 내가 학교에 간 동안은 대개 집 안에서 자기가 맡은 일 - 말하자면 낯선 사람을 지키거나 찌꺼기를 치우거나 곡식 멍석을 지키고 앉았거나 방앗간에서 새를 쫒거나 하며 날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는 비가 오다 갠 날, 참외 막에 가려고 흙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려다 하마터면 흙탕물에 휩쓸릴 뻔한 것을 부덕이 덕분에 살아난 적도 있었습니다.

 

 평상시에는 퍽이나 얕은 개울이라, 나는 안심하고 건너던 터인데, 발을 헛짚고 물살이 센 데서 내가 그만 엎어져 버렸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물살이 거세고 물이 예상외로 부쩍 불은 데 겁이 났던 나는, 이렇게 되고 보니 정신을 차릴 수 없어, 엎치락뒤치락 허우적거리면서 급류에 휩쓸려 가고 있었습니다. 뒤에 오던 부덕이는 곧 나를 앞질러서 아래쪽으로 가더니 내가 디딜 수 있도록 제 몸을 던졌습니다. 그래도 내가 미처 일어나지 못하니, 부덕이는 내 옷을 물고 얕은 데로 끌어내려 들었습니다. 겨우 나는 큰 돌을 하나 붙들고 얕은 데로 나와서 땅으로 돌아왔는데. 머리가 띵하고 몸을 가눌 수 없어 한참 동안 길 위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고 있는 동안 부덕이는 내 옆에 쭈그리고 앉아서 내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집에 돌아와서, 나는 물에 빠졌다가 부덕이 덕에 살았단 말은 아예 할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장마가 져서 물이 불었으니 나가지 말라던 걸 나갔던 터라 어른들께 꾸중을 들을 것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 집에서는 부덕이가 나를 몹시 따르는 줄만 알았지, 내 생명의 은인이라는 건 알 턱이 없었습니다.

 

 내가 나이를 먹는 만큼 부덕이도 늙어 갔습니다. 그리하여 부덕이는 다섯 살이 넘게 되었습니다. 언젠가 학교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부덕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오는데.

"개는 아예 나이 먹도록 기를 건 아니야, 저 부덕이도 인제 흉한 짓 할 나이로군."

하는 동네 어른의 말을 듣고, 나는 대단히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우리 집 일 꾼이 어느 개가 팠는지 통수간(물이 통하여 흐르는 곳)앞에 구덩이를 팠다고 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나는 그래서 어머니랑 아버지랑 듣는 데서,

"아까 뒷집 장손네 개가, 입으로 흙을 파고 있었거든."

하고 헛소리를 하여 부덕이를 변명했습니다.

"원 그런 망할 놈의 개가 어디 있담."

 어머니는 개가 구덩이를 파는 건 누가 죽어서 그 속에 묻히라는 것이나 같다고, 몸쓸 놈의 개라고 욕하였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에, 내가 학교에 가서 한 시간을 공부하고 마당에 나와 땅따먹기를 하며 노는데 뜻밖에 부덕이가 찾아왔습니다.

 부덕이가 학교로 나를 찾아온 적은 여태까지 없는 일어었으므로 나는 이상히 생각했으나 미처 다른 걸 생각지 못하고,

 "뭐 하러 와, 가. 어서 집에 가서 일을 봐."

하고 쫒아 보냈습니다. 손을 쫒고 발로 밀고 하니 서너 발자국씩 물러가기는 했으나 가기 싫은 걸음처럼 몇 걸음 가서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며 길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이 울려서 나는 교실로 들어와 버렸습니다.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여느 때 같으면 마중 나오던 부덕이가 중문 턱을 넘도록 아무 소식도 없었습니다. 나는 부덕이가 늘상 들어가 자는 마루 밑을 거꾸로 서서 보았습니다.

러나 부덕이의 그림자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뒤뜰 안을 보아도, 통수간 뒤를 보아도, 방앗간을 보아도, 곳간 뒤를 찾아도, 그리고 마지막에는,

  "부덕아!"

 하고 불러 보아도 아무 기척이 없었습니다. 나는 그제야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습니다. 나는 낱가리를 얽고 있는 일꾼 영감에게 물어봤습니다. 그랬더니 영감은 태연하게 제 일만 하면서.

 "기둥 아래 흙을 석 자 나 팠다구 개 잡는 사람에게 줘 버렸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나는 억해서 아무 말도 못했습니다. 아까 부덕이는 기둥 아래 흙을 파서 어른들에게 욕을 먹거나 매를 맞고 나를 보러 학에 온 것이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부덕이는 나더러 변명해 달라고 찾아왔던 것일까요. 아니 왜 부덕이는 두 번 세 번씩 땅을 파고 기둥 아래 흙을 파고 하였을까요. 나는 부덕이의 행동도 알 수 없었고, 그것을 흉한 일이라고 몰아대는 어른들의 일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마른 호박 넝쿨 밑으로 가서, 부덕이를 생각하며 하루 종일 눈물을 흘렸습니다.

 

**김남천 

1917년 생으로 평남 성천에서 태어났으며 본명은 김효식이다. 평양교보를 졸업하고, 일본 호세이 대학에서 공부, 일제 강점기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에 가담하여 소설가와 문학평론가로 활동했고, 1947년 월북했다. 대표 소설 '대하' '맥' 등이 있다.

 

 

 

 

2010년 부터 중학교 국어 교과서가 1종에서 23종으로 늘어났다고 한다.

 전문가들이 뽑은 흥미롭고 다양한 작품, 교과서에 실린 작품들 중에서 또 엄선하여

창비에서 낸 책이고, 장르별로 시 소설, 수필로 나눠서 나왔으므로 골라 읽을 수 있다.

2010년 4월에 나온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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