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산사는 어떤 모습일까,
절 식구들 외에는 찾는 이도 없지 않을까!
추위를 많이 타서 겨울을 즐길 만큼의 깜냥은 못 되고,
그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행이 좋아서 직지사 나들이를 했다.
당신이 나를 스칠 때/ 이성선
구름 열었다 닫았다 하는
산길을 걸으며
내 앞에 가시는 당신을 보았습니다.
들의 꽃 피고
나비가 날아가는 사이에서
당신 옷깃의 향기를 맡았습니다.
당신의 목소리는 거기 계셨습니다.
산안개가 나무를 밟고
계곡을 밟고 나를 밟아
가이없는 그 발길로 내 갓므을 스칠 때
당신의 시는 이끼처럼
내 눈동자를 닦았습니다.
오래된 기와지붕에 닿은 하늘 빛처럼
우물속에 깃들인 깊은 소리처럼
저녁 들을 밟고 내려오는
산그림자의 무량한 못빛
당신 앞에 나의 시간은 신비였습니다.
돌담 샘물에 떨어진
배꽃의 얼굴을 보셨습니까?
새벽 산에서
옷을 벗는 새벽빛을 보셨습니까?
당신은
나의 길을
이렇게 오십니다.
겨울사랑/ 문정희
눈송이 처럼 너에게 가고 싶다
머뭇거리지 말고
서성대지 말고
숨기지 말고
그냥 네 아햔 생애 속에 뛰어 들어
따스한 겨울이 되고 싶다
천년 백설이 되고 싶다.
눈위에 쓰는 겨울 시/류시화
누구는 종이위에 시를 쓰고
누구는 사람 가슴에 시를 쓰고
누구는 자취없는 허공에 대고
시를 쓴다지만
나는 십이월의 눈위에
시를 쓴다.
흔적도 없이 사라질
나의 시
겨울/조병화
침묵이다
침묵으로 침묵으로 이어지는 세월,
세월 위로 바람이 분다
바람은 지나가면서
적막한 노래를 부른다
듣는 사람도 없는 세월 위에
노래만 남아 쌓인다
남아 쌓인 노래 위에 눈이 내린다
내린 눈은, 기쁨과 슬픔,
인간이 살다 간 자리를
하얗게 덮는다
덮은 눈 속에서
겨울은 기쁨과 슬픔을 가려내어
인간이 남긴 기쁨과 슬픔으로
봄을 준비한다
묵묵히
금기/이성복
아직 저는 자유롭지 못합니다.
제 마음 속에는 많은 금기가 있습니다.
얼마든지 될 일도 우선 안 된다고 합니다.
혹시 당신은 저의 금기가 아니신지요.
당신은 저에게 금기를 주시고
홀로 자유로우신가요.
휘어진 느티나무가
저의 집 지붕위에 드리우듯이
저로 부터 당신은 떠나지 않습니다.
'출입금지'라는 팻말이 붙은 마당 낮은 승방,
스님의 처소 같았는데. 스님 한 분이 문을 열고 나오시는 모습을 뵐 수 있었다.
동생은 요 솟을 대문 문지방을 살며서 넘고 들어가서 사진을 한 컷 찍었는데
나는 그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카메라도 줌 해서 살며시 찍었다.
이런 소심함 때문에 가끔 동생보다 못한 언니가 될 때가 많다.
태성은 아닐테고 환경인지 안고쳐진다
팔자려니 하고 이대로 사는게 상책인지도 모른다. ㅎㅎ
겨울 나무/ 이재무
이파리 무성할 때는
서로가 잘 뵈지 않더니
하늘조차 스스로 가려
발밑 어둡더니
서리 내려 잎 지고
바람 매 맞으며
숭숭 구멍 뚫린 한 세월
줄기와 가지로만 견뎌보자니
보이는구나, 저만큼 멀어진 친구
이만큼 가까워진 이웃
외로워서 더욱 단단한 겨울 나무
휴가 나온 막내 배웅차 가게된 김천구미역사! 덕분에 직지사까지
나는 좋아라며 아들내미 보내고 신났던 날,
친구는 며칠 전 입대한 아들내미 옷가지랑 소지품 우편물이 왔노라며 우울해 했다.
놀자는 친구들의 청에도 "오늘 만은 집에 있고 싶어" 라고..
나는 보내서 신나고,
친구는 보낸 것이 아프고
내게도 그런 시간이 없진 않았는데.
매정한 어미가 된건지. 내성이 생긴건지.
이 세상 가장 큰 해결사는 시간 아닐까.
신에겐 미안하지만 시간이 신보다 위대한것 같다.
시간도 신이 만든 것인가..
김천은 구미의 지척이고 마음만 내면 금방인 거리다.
언제나 마음이 문제지만,
하늘도 더 푸르고 대지는 더 순백이었던 날,
막내 보내는 마음이 홀가분해도 되는지 모르지만
겨울산사 풍경에 취한 즐거운 추억을 만든 날로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아들아 미안하다. 아니 고맙다 네 덕분에 김천 나들이가 가능한 날이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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