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금오산의 겨울 풍경

구름뜰 2013. 1. 14. 09:18

 

 

 

 

 

 

 

겨울산

 

지금 바라보는 먼산에 눈이 쌓여 있다는 것

지금 바라보는 먼산에 가지 못하리라는 것

굳이 못 갈 것도 없지만 끝내 못 가리라는 것

나 없이 눈은 녹고 나 없이 봄은 오리라는 것

슬퍼할 수 없는 것, 슬퍼할 수조차 없는 것

 

- 이성복 겨울산 중에서

 

 

 

 

 

 폭포/김수영

 

폭포는 곧은 절벽을 무서운 기색도 없이 떨어진다

 

규정할 수 없는 물결이

무엇을 향하여 떨어진다는 의미도 없이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고

고매한 정신처럼 쉴 사이 없이 떨어진다.

 

금잔화(金盞花)도 인가도 보이지 않는 밤이 되면

폭포는 곧은 소리를 내며 떨어진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이다

곧은 소리는 곧은

소리를 부른다

 

번개와 같이 떨어지는 물방울은

취할 순간조차 마음에 주지 않고

나타(懶惰)와 안정(安定)을 뒤집어 놓은 듯이

높이도 폭도 없이 떨어진다.

 

 

 

 

 

 

폭포는 폭포다

 

수직으로 하강하는 물도

 멈출때가 있었구나

계절과 주야를 가리지 않던 그 무엇도

이 쯤엔 쉬어 가는 걸까

제 뜻이었던 아니었던

그럴 수 밖에 없어서 그러했던 것들

 

곧은 소리는 폭포의 몸일까. 정신일까

 소리가 소리를 부르고

 마음은 마음을 부른다

 

 절벽같던 절개도 멈칫하는 겨울

가면 안되는 길과

가고 싶은 길이 같은 곳일 수 있듯

멈추고 싶어라

무서운 기색없이

 얼었던 날들과 녹는 날들도 있으리라 

 

폭포라고

떨어지기만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금

폭포는 황홀한 찰나에 머무는 중

 

 

 

 

 

겨울산 /길상호

 

아름다운 사람을 기억한다 

나무들과 함께 휘파람을 불던 바람과

그 끝자락에서 날리던 눈꽃들

사람들 발자국만 남기고 저녁이 오면 

가슴 한 구석 빈 메아리 쿵쿵 울리고

그리움 눈사태로 무너져 내렸다

세월로 깊어지는 골짜기처럼 

골을 파며 조용히 울음 울었다

산짐승처럼 깨끗한 두 눈을 감고 

얼음 속 물소리 엿듣곤 하던 

입김으로 그 얼었던 마음 풀어 주었던

겨울에는 아름다운 사람을 기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