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원주 박경리 문학관을 다녀와서

구름뜰 2013. 10. 12. 10:56

 

 

 

 일제 강점기 (1926~ 2008)에 태어나 현대문학사의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토지'의 작가

토지의 산실인 박경리 선생님의 옛집에 다녀왔다.

 

 '토지'는 갑오 동학농민부터 갑오개혁 등 1897년 한가위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년 8월 15일까지의 한국 근대사를 시간적 배경으로하고 있다.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인 한국 농촌을 비롯,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치는 광활한 국내 외적인 공간을 배경한 작품이다.

 

 

 

 

 옛집과 문학공원 문학관(문학의 집)이 한 곳에 모여 있었다. 서울에 사시다가 손자들도 봐 줄겸 80년에 원주로 이사하셨다. 러니까 영주씨의 시댁(김지하씨의 본가)이 원주였다.

 

 토지의 공간적 배경 하동 평사리에도 토지 문학관과 최참판댁이 잘 보존되어 있다. '토지'는 텔레비젼에서 세번이나 제작 방송되었고 세번째 작품 촬영시 세트장이 지금의 최참판댁이다. 문학이라는 가상 공간이 실재 공간을 만들어낸 격이다.  '토지'를 구상하실적에 하동가는 길에 평사리 악양들을 차안에서 한번 본것이 다였다. 서울에서 지도로 다시 보셨다고, 모든 작품은 독서에서 온 것이라고 한다.

 

 

 

 

 1955년 김동리 추천 등단작 '계산'이다. 처음에는 시를 쓰셨는데 김동리 선생님이 "쟈네는 시보다는 소설이 낫겠어" 라는 권고를 했다고. 카아.. 그러지 않았다면 '토지'같은 대하소설이 나올수 없었을 수도 있겠다. 멘토, 스승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   

 

 

 

 

 문학의 집에 있는 생전 쓰시던 사전이다.

 

  

 

 

 꿈 1/ 박경리

 

글을 쓸 때는 살아 있다

바느질 할 때 살아 있다

풀을 뽑고 씨앗 뿌릴 때

사아 있는 것을 느낀다

 

 

육필로  '토지'에 원고지가 10만 장 정도 쓰였다고 한다. 파지가 7만 여장 났고 3만 5천 여장이 퇴고를 거쳤다고 한다.

 

 

 

 

 

"호미와 문학과 내가 삼발이로 내 삶을 지탱해 주고 있다."

호미는 펜이었고 땅은 원고지였다고.

 

 

 

 

 결혼 4년만에 6,25때 남편이 잃게 되는데, 작은 아이 돌 때 찍은 사진이라고 한다.  이 아이도 여덟살 무렵에 교통사고로 선생님 곁을 먼저 떠났다.  딸 영주씨와 친정엄마시다. 행복했던 순간이 짧았으므로 모진 세월이 문학으로 태어났을 거라는 해설가의 평도 일리가 있는것 같다. 마냥 행복하기만 했더라면 원고료로 생활을 해야 할 지경이 되지 않았다면 그렇게 글쓰기에 천착했을까 .

 

 공지영도 돈이 필요할 때 가장 글이 잘 쓰였다고 했던가. 현실이 절박할수록 문학은 묘한 힘을 발휘하는 것일까. 천상병은 스스로 가난을 택했다. 서울대 상대를 나온이가 스스로 시를 쓰기 위해서..

 

 

알수 없는 인생살이!

 

 

 

 이곳은 1980년 부터 98년까지 18년동안 사시면서 토지 4부와 5부(21권)를 완성한 곳이다.

 89년 택지 개발로 인하여 사라질 뻔하였으나 각지 문화계 인사들의 건의에 따라 옛집이 지켜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은 원주시에서 관리를 하고 있다.

 

 

 

 

 

 

 

입구에 이 돌은 직접 주워다 깔았다고 한다.

 

 

 

 

 

 

 

집필실 입구 좌측에 조붓한 공간이 있다.

이곳에서 차를 마시거나 오는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을 듯 하다.

 

 

 

 

 

 

독야청청/박경리

 

독야청청

미명 앞세우고 피신해온 곳

원주 단구동

 

독야청청

수식의 가소로움이여

거미줄같이 휘감겨 오는 창날들

 

창문 열고 겨울바람 마시는데

오장육부

목구멍에서 쏟아질 것 같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산골짝 골짝

쉬어 갈 나무 한 그루 없고

 

천지간 둘러모아도

기댈 곳 없어

모래밭 같은 거짓 속에

발 묻고 내가 서 있구나

-박경리 시집 자유 중에서

 

 토지가 69년 집필을 시작했고 서울에서 3부까지가 완성되었고 이방에서 4부 5부를 완성(94년 8월 15일 새벽 2시)했다고 한다. 총 26년이 걸리는 작업이었다. 쓰다가 주무시고 쓰다가 주무시고 이곳엔 아무도 들지 못하게 했다고.

 

 생전 인터뷰 영상에서 "쓰는 과정이 힘들어서 두번 다시 읽고 싶지 않아서 읽어 본적이 없다. 58년 세월 스스로 끊고 살았다." 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문학/ 박경리

 

나는 겁장이다

성문을 결코 열지 않는다.

 

나는 소심한 이기주의자다

때린 사람은 발 옹그려 자고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는

속담을 믿어왔다.

 

무기없는 자 살아남기 작전

무력함의 위안이다

수천번 수만번

나를 부셔버리려 했으나

아직 그 짓을 못하고 있다.

 

그러나 알고 보면 문학은 삶의 방패

생명의

모조품이라도 만들지 않고는

숨을 쉴 수가 없다.

 

- 중략,,

 

 

 

성생님 집필실에 벽 도배지의 일부분이다. 

 

 

 

 

 

 

아침/박경리

 

고추밭에 물주고
배추밭에 물주고
떨어진 살구 몇 알
치마폭에 주워 담아
부엌으로 들어간다

닭모이 주고 물 갈아주고
개밥 주고 물 부어주고
고양이들 밥 말아주고
연못에 까놓은 붕어새끼
한참 들여다본다

아차!
호박넝쿨 오이넝쿨
시들었던데
급히 호스 들고 달려간다

내 떠난 연못가에
목욕하는 작은 새 한 마리
커피 한 잔 마시고
벽에 기대어 조간 보는데
조싹조싹 잠이 온다
아아 내 조반은 누가 하지?
해는 중천에 떴고
달콤한 잠이 온다

 

 

 

가운데 선생님의 동상이 있다

 

  

 

 

견딜 수 없는 것 / 박경리

 

단구동에 이사온 후

쐐기를 쏘여

팔이 퉁퉁 부은 적이 있었고

돌 틈의 땡삐,

팔작팔작 나를 뛰게 한 적도 있었고

향나무 속의 말벌 때매

얼굴 반쪽 엉망이 된 적도 있었고

 

뿐이랴

아카시아 두릅 찔레도

각기 독기(毒氣) 뿜으며

나를 찔러댔다

 

뿐이랴

베어놓은 대추나무

끌고가다가

종아리 부딪쳐 피투성이 되던 날

오냐,

너가 나에게 앙갚음을 하는구나

아픔을 그렇게 달래었지만

 

차마 견딜 수 없는 것은

사람의 눈이더군

나보다 못산다 하여

나보다 잘산다 하여

나보다 잘났다 하여

나보다 못났다 하여

 

검이 되고 화살이 되는

그 쾌락의 눈동자

견딜 수가 없었다

 

생전 살구나무를 전지하다가 말벌집을 건드려서 물렸다고 한다. 하지만 그 벌들 미움 없었다고. 

견딜 수 없는 것은 정작 사람이었음을 ...

 

  

 

 

옛날의 그 집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심고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다
정붙이고 살았다
달빛이 스며드는 차가운 밤에는
이 세상의 끝의 끝으로 온 것 같이
무섭기도 했지만
책상 하나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
그 세월, 옛날의 그 집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짐승들이 으르렁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에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 가고
아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 것을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옛집 뒤란쪽으로 문학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공원 맞은편 선생님의 집 터 뒷쪽으로 사진의 왼쪽 건물이 '박경리 문학의 집'이다.  "생명은 존재가치가 동일"하다는 말씀 "생존이상의 진실은 없다"는 말씀도 남는다.  가장 기억에 남는 말씀은,

 

" 이데올로기나 권력, 돈 명예에 집착하면 창조력이 상실된다.  능력이 저절로 저당잡히는 것이다. 자유속에서 만이 창조가 나오지만 그 자유가 가시밭길이긴 하다. 하지만,  끄나풀이 나를 자유롭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글쓰는 이는 명심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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