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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천득의 수필 ‘이야기’에 나오는 한 문장이다. 경험이나 화제의 빈곤, 이야기의 빈곤, 어휘력까지 부족함을 엿볼 수 있는 문장이다. 우리는 만나면 이야기를 나눈다. 내가 알고 있거나 경험한 걸 말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다듬기도 하고, 남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소통하고 공감한다.
바야흐로 스토리 시대다. 광고에도 화려한 스펙에도 이야기가 빠지면 재미없고 와닿지도 않는다. 이야기는 신화와 전설, 민담처럼 기록하지 않아도 살아남는 힘을 가지고 있고, 전파력이나 파급효과도 크다. 기업에서도 자신만의 스토리를 가진 이를 선호한다.
누구에게나 스토리는 있을 것이다. 단지 통합하고 구성해내는 능력만 다를 뿐, 스토리를 만들어 내는 원천은 무엇일까. 지식과 경험, 정서, 통찰 등 인문학적 인식이 기본 아닐까 싶다.
송년회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장소에 가면, 면은 있지만 친분은 쌓지 못한 이들과 합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럴 때 대화 주제를 찾기란 애매하다. 그런 자리에선 용기 있게 말을 꺼내는 사람이 대화를 이끄는 셈인데 모두가 공감 가능한 얘기면 그 자리는 금세 활기를 띠고 흥미로워진다. 반대로 공통 관심사가 아닌 경우에는 금방 식상하기도 한다.
며칠 전 어느 송년 모임에서였다. 1년에 한두 번 있는 자리라 참석한 이들의 근황이 궁금해도 적조했나 싶어 말을 아끼는 자리였는데 동석한 대부분은 대학생 자녀를 둔 연배였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막내였는데, 자신의 일상을 거침없이 털어놓는 바람에 분위기가 금세 화기애애해졌다. 하지만 그녀의 말은 그칠 줄 몰랐고, 초·중등 학부모나 궁금해할 얘기들로 이어졌을 때는 좌중의 집중력은 흐트러지고 말았다. 돌아오면서 나도 상대방이 궁금하지도 않은 얘기를 늘어놓은 적이 없었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매일 만나도 반가운 사람이 있고, 1년 만에 만나도 근황이 궁금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 사람에 대한 호감도는 말재간이나 유머에서 오기도 하지만, 결국 콘텐츠의 풍부함과 빈약함의 차이일 것이다. 또한 바른 말이라도 친절이나 배려가 결여됐다면 공감이 어려운 경우를 종종 본다. 늘 같은 말만 한다는 건 그것밖에 할 얘기가 없다는 것이며, 그것에만 갇혀 있다는 얘기도 된다. 내 소재가 빈약하다면 우물 밖 세상에 관심을 가져 보면 어떨까. 보는 게 달라지면 생각도 말도 달라진다.
새댁이 시집와서 김장 서른 번 하고 나면 늙는다는 얘기도 있다. 김장김치가 맛도 있고, 우리네 겨울 식생활과 결부되어 있고, 담그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이 정을 나누기엔 이만한 것도 없다. 그렇더라도 다 먹을 때까지 김치 얘기만 한다는 건 슬픈 일이다.
-이미애 시민기자 m0576@hanmail.net 영남일보 12월 31일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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