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의미를 부여한 주관적인 세계에 살고 있지. 객관적인 세계에 사는 것이 아니라네
-자네가 변한다면 세계는 단순하게 바뀔 걸세. 문제는 어떠한가가 아니라, 자네가 어떠한가 하는 점이라네
-시작하며 중에서
"인간은 오늘이라도 당장 행복해질 수 있다"고 주장하며 살아가는 철학자
세계는 번뇌와 혼돈과 모순으로 가득차 있다고 생각하는 청년
청년은 철학자을 찾아가 그 진의를 따져 묻는 것으로 이 책은 진행된다.
소크라테스는 한 줄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제자 플라톤은 '대화편'을 남겼고
그 속에서 소크라테스는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육성을 듣는 느낌을 가질수 있다.
이 책도 마찬가지다.
철학자는 곧 아들러이면서 저자이기도 하다.
청년은 독자이기도 하겠고, 무언가 심리학적 접근으로
인간이해에 가깝게 다가서고 싶은 이라면 누구라도 반색하며 읽을 수 있는 책이다.
아들러를 공부한 철학자가 아들러의 사상을 종목종목 청년에게 알려준다.
저자인 기시미는 "나는 아들러에게 있어서 플라톤이 되고 싶다'고 했다.
아들러가 죽은 지 반세기 그렇지만 여전히 참신한 그의 사상을
문답을 통해서 보는 형식은 흥미롭고 읽기에 편하다.
심리학에 관심없이 산 사람들이라도 쉽게 읽힐 것이다.
또 하나 개인적인 견해는 프로이드와 융보다 훤씬 긍정적이며 이해랄까 공감이 쉽게 간다.
.프로이드가 '원인론'으로 '어쩔수 없는 상황'에 매여 있었다면
아들러는 '어쩔수 없는 건 없다.' 모두 내가 선책한 것일뿐
기꺼이 '지금' 당장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게하는 힘이 있다.
매우 논리적이고 공감이 쉽다.
일본에서 줄곳 베스트반열에 올랐고 우리나라에 들어와서도
계속 세간의 관심을 받고있는 책이다.
권해주고 싶고 알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스스로 읽고 얻어가는 사람이 주인이다.
두번 세번 정독하고 보니 더 잘 보인다.
정리해서 올려두고 보고자 하는 마음과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읽어보라고 꼭 보라고 권하고 책이다.
첫 번 째 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 뿐이야"
-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과거의 '원인'이 아니라 현재의 '목적'을 본다네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중에서
불안해서 밖으로 나오지 못하는 은둔형 친구가 있다면
밖으로 나가지 않겠다는 목적을 위해 불안한 감정을 지어내는 것
즉 원인은 '불안'이 아니라 '밖으로 나갈 수 없다는 목적'이 먼저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불안'과 '공포' 같은 감정을 '지어낸다는 것,
이것이 아들러 심리학의 '목적론'이다.
.
아들러의 심리학은 트라우마를 명백히 부정하네
어떠한 경험도 그 자체는 성공의 원인도 실패의 원인도 아니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 받은 충격 즉 트라우마 때문에 고통받는 것이 아니라 경험안에서 목적에 맞는 수단을 찾아낸다네. 즉 경험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경험에 부여한 의미에 따라 자신을 결정하는 것이라네.
-트라우마란 존재하지 않는다 중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경험한 일이 무언가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것
과거 경험에 어떤 의미 부여를 하는가에 따라서 자신의 삶이 결정된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는 누구나 목적에 따라서 살고 있고 목적에 따라 행동한다.
이것이 목적론이다.
"누구 하나 악을 원하는 자는 없다"
소크라테스의 역설로 잘 알려진 명제지
*역설이란 모순을 일으키기는 하지만 그 속에 중요한 진리가 함축되어 있는 진술이다. 소크라테스는 모순되거나 해결 불가능한 역설 등을 통해 '상대방이 논리의 모순이 있음을 자각시키는 논의'를 즐겨했다. 즉 상대방을 '해결의 방도를 찾을 수 없는 난관의 상태'에 빠트린 다음 논리의 모순을 자각하게 했다. 그리스어로는 아포리아(aporia)라고 한다. 다만 소크라테스 본인이 '소크라테스의 역설'이란 말은 사용한 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후에 제자들이 붙인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그리스 어로 선을 뜻하는 '아가톤(agathon)'이란 단어에는 도덕적 의미 외에도 '득이 된다' 라는 의미도 있네. 반면 '악(惡)'을 뜻하는 '카콘(kakon)'이란 단어에는 '득이 되지 않는다' 라는 의미가 있고, 이 세계에는 부정이나 범죄 등 각종 악행이 만연해 있지 하지만 순수한 의미에사 '악' 즉 '득이 되지 않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한명도 없다네.
-나의 불행은 스스로 선택한 것 중에서
스스로 선택해서 불행하다는 것.
선 - '무언가 득이 된다고 생각'했기에
'내가 불행해요'하는 사람에게는 '불행'이 '선(득이되는 선택)이라는 것.
즉 사람이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는 역설이다.
새로운 생활양식을 선택하지 못하는 것은
미래를 예측 할 수 없기에 불안하고 그래서 더 힘들고 불행해질까봐
지금의 편안함에 안주하는 것이며
'생활양식'을 바꾸려면 '용기'가 있어야 하고
변화에서 오는 불안도 극복해야 하고 그럴 때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아들러의 심리학은 용기의 심리학일세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저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지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인간은 끊임없이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중에서
예를 들어서 '만약 나도 그렇게만 된다면 그럴수 있어'라고 누군가가 말한다면
즉 '만약 ~~였더라면'이라는 가능성 속에서 이야기 하는 사람은
변하지 않을 핑계 '만약'을 제대로 잡은 거나 마찬가지라는 거다.
자신의 지금을 그렇지 않기 때문으로 합리화 시키는 것일 뿐.
지금 그렇지 못한 건 본인이 선택한거다.
아들러의 목적론은
"지금까지 인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지 앞으로의 인생에는 아무런 영향도 없다"는 것이다.
인생을 결정하는 것은 '지금 여기'를 사는 본인에게 달려있다는 것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는 엉뚱한 곳을 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지금 여기'에서 '저기'를 꿈꾸기도 하고
'저기'에서 '여기'를 꿈꾸기도 하는 것이 우리 삶의 이면이기도 하지만
결국 지금 여기만이 실존이라는 얘기아닐까.
두 번 째 밤
아무리 어려워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마주하는 것을 회피하고 뒤로 미뤄서는 안 돼.
가장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이 상황, '이 대로'에 멈춰 서 있는 것이라네"
자네에게 자신의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네'가 '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고 결심했기 때문이야. 자신을 좋아하지 않겠다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장점을 보지 않고 단점에만 주목하는 걸세. 먼저 그 점을 이해해야 하네.
사람관계도 마찬가지 아닐까
어느 순간부터 '단점'이 더 잘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이미 미워하기로 작정한거나 마찬가지 아닐까
.
그런데 우린 대체로 단점을 탓할 뿐이다.
자신이 미워하기로한 결정 한 것을 감추며 합리화시키는 거다.
우리는 그때 그때 의식이든 무의식에든 자신의 이해관게에 치밀한거다.
인간관계에서 상처받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불가능해. 인간관계에 발을 들여놓으면 크든 작든 상처를 받게 되어 있고, 자네 역시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게 된지. 아들러는 말했네. "고민을 없애려면 우주 공간에서 그저 홀로 살아가는 수박에 없다."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개인에 국한되는 고민, 이를테면 내면의 고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 어떤 종류의 고민이든 거기에는 반드시 타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지.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 고민'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열등감은 객관적인 사실이 아니라 주관적인 해석'이라는 건가요?
-열등감은 주관적인 감정이다 중에서
여기에는 키 얘기가 나온다 저자는 작은 키로 열등감을 가졌는데
그건 타인의 키' 때문이며 타인이 없다면 그런 열등감도 없었을 거라는 것.
반대로 작은키가 큰키가 주는 위압감보다 편안함을 준다는 측면으로 받아들이면
장점으로 만들수도 있는 것이다.
자신의 뜻대로 '주관적인 해석'의 선택이 가능하다는 점,
즉 단점과 장점은 동전의 양면이다. 내 주관에 달린 문제고
어떤 상황도 그 사실 즉 팩트보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마음의 문제라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열등감 자체는그다지 나쁜 게 아닐세. 열등감은 노력과 성장을 자극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니까. 가령 학력에 열등감을 느껴 '나는 학력이 낮다, 그러니 남보다 배는 노력하자'라고 결심한다면 도리어 바람직하지 않나. 하지만 열등 콤플렉스는 자신의 열등감을 변명거리로 삼기 시작한 상태를 가리킨다네. 즉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지 "A라서 B를 할 수 없다"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이미 열등감의 범주를 벗어난 걸세. 그건 열등 콤플렉스지.
이런 경우에 학력이 낮으면 취직자리도 출세 기회도 적은 경우도 있으므로
예로 든 사례가 엄연한 사실이라는 청년의 질문이 이어지지만
철학자는 '무늬만 인과법칙' 이라는 용어로 설명해준다
원래는 어떤 인과관계도 없는 것을
마치 중대한 인과관계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게 설명하고 납득한다고..
또 한 예를 들어준다.
"내가 결혼하지 못한 이유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이혼한탓이야" 라는 사람이 있다면
이 경우도 프로이드의 원인론적 관점에서 보면 이혼은 큰 트라우마고
그 사람의 결혼관과 밀접한 인과관계에 놓여 있기는 하지만,
아들러는 목적론적 입장에서 그것을 '무늬만 인과법칙'이라고 했다.
즉 경계하라는 것이다.
문제는 그런 현실을 어떻게 직시하느냐 하는 걸세.
가령 자네가 '나는 학력이 낮아서 성공할 수 없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성공할 수 없는 것' 이 아니라 '성공하고 싶지 않은것' 으로 봐야겠지. 간단히 말해 한 발 앞으로 내미는 것이 무서운 거지.
현실적인 노력을 하고 싶지 않다. 지금 누리고 있는 즐거움, 예를 들면 놀거나 취미를 즐기는 시간을 희생해서까지 변하고 싶지 않다. 즉 생활양식을 바꿀 용기가 없는 거라네. 다소 불만스럽고 부자유스럽지만 지금 이대로가 더 편한 거지.
-변명으로서의 열등 콤플렉스 중에서
"A라서 B를 할 수 없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A만 아니면 나는 유능하고 가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셈이지.
"이것만 아니면 나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래. 열등감에 관해 아들러는 열등감을 오랫동안 참아낼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라고 지적했네. "누구나 열등감을 갖고는 있지만 언제까지나 그 상태를 참고 견딜 수는 없다" 그만큼 압박감이 큰 것이라고 했지.
반대로 콤플렉스가 다른 특수한 심리상태로 발전하기도 한다고
'권위 부여' 라고 하는데
예를 들면 자신이 권력자 -학급 반장에서부터 저명인사까지 광법위하지-와
각별한 사이라는 것을 어필하여 자신이 특수한 존재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이다.
경력을 속이거나, 옷이나 장신구 등 브랜드 제품을 과시하는 것도
일종의 '권위 부여'이자 일부분 '우월 콤플렉스' 라고 할 수 있다
나와 권위를 연결하여 '거짓 우월성'을 가지는 것이다.
정말 자신 있는 사람은 자랑하지 않아. 열등감이 심하니까 자랑하는 걸세.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일부러 과시하려고 하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주위에 누구 한사람 '이런 나'를 인정해주지 않을까 봐 겁이 나거든. 이는 완벽한 우월 콤플렉스라네.
불행자랑도 있네 열등감 자체를 첨예화시켜서 특이한 우월감에 빠지는 패턴이라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이 겪은 불행을 마치 뽐내듯 말하는 사람, 타인이 위로하거나 변화를 권하면 "너는 내 심정이 어떤지 몰라"하면서 도움의 손길을 뿌리치는 사람을 가리킨다네
이러 사람들은 불행한 것을 '특별'하다고 여기고 불행함을 내세워 남보다 위에 서려 하지. 가령 내 키가 작은 것. 이에 대해 마음씨 고운 누군가가 "신경 쓸 필요 없어" "인간의 가치는 그런 걸로 정해지지 않이"라고 위로했다고 치세. 하지만 여기서 "네가 키 작은 사람의 고민에 대해서 뭘 알아!"받아 친다면 이제 누구도 아무 말도 꺼내지 않을 걸세. 주변 사람들은 마치 상처 난 부위를 어루만지듯 나를 조심스럽게- 아니 신중하게- 대하겠지.
그러면 나는 다른 사람보다 우위에 있고 '특별'해지는 거지. 병에 걸렸을 때. 다쳤을 때. 실연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었을 때에도 적지 않은 사람이 이런 태도를 취하며 '특별한 존재'가 되려고 한다네.
자신의 열등감을 드러내놓고 마치 무기처럼 휘두르는 거군요.
그렇지 . 불행을 무기로 상대방을 지배하려고 해. 자신이 얼마나 불행하고, 얼마나 괴로운지 알림으로써 주변 사람들- 이를테면 가족이나 친구-을 걱정시키고. 그들의 말과 행동을 속박하고 지배하려 들지. 첫날 말했던 집에 틀어박혀서 지내는 사람들은 곧잘 불행을 무기로 하는 우월감에 빠지네. 아들러가 "오늘날 연약함은 매우 강한 권력을 지닌다"라고 지적했을 정도야.
-자랑하는 사람은 열등감을 느끼는 사람이다. 중에서
상처 입은 사람이 자기 마음을 온전히 알아주는 대상을 찾기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하지만 불행을 '특별'하기 위한 무기로 삼는 한
그 사람은 '영원히 불행을 필요로 할 수 밖에 없다'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열등 콤플렉스'와 '우월 콤플렉스'는 심리학적으로 중요한 키워드라고..
건전한 열등감이란 타인과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상적인 나'와 비교해서 생기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같지 않지만 대등' 하네.
우리는 세로축이 존재하지 않는 평평한 공간을 걷고 있네. 우리가 걷는 것은 누군가와 경쟁하기 위해서가 아니야. 지금의 나보다 앞서 나가려는 것이야말로 가치가 있다네.
-인생은 타인과의 경쟁이 아니다 중에서
세로축과 가로축 얘기가 계속 나온다
세로는 상하관계의 인간관계를 말한다
결코 나이를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수평축은 '같지 않지만 대등한 관계'를 말한다
주변에 수평관계를 가진 사람이 몇만 있어도 우리 삶이 풍요로워 지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가치관의 문제이기도 하다 수평관계는.....
인간 관계의 중심에 '경쟁' 이 있으면 인간은 영영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행에서 벗어날 수가 없어. 경쟁의 끝에는 승자와 패자만 남으니까.
경쟁심은 우월감을 가지려는 그림자를 가지고 있다.
경쟁이나 승패를 의식하면 필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열등감이야 늘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고 이 사람에 게는 이겼어, 저 사람에게는 졌어. 라는 생각을 하기 때문이네. 열등 콤플렉스나 우월 콤플렉스는 그 연장선상에 있지.
"네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너뿐이란다."
행복해 보이는 사람을 진심으로 축하해 줄 수가 없다.는 말은 인간관계를 경쟁으로 바라보고 타인의 행복을 나의 패배로 여기기 때문에 축복하지 못한 걸세. 하지만 일단 경쟁의 도식에서 해방되면 누군가에게 이길 필요가 없네. '질지도 모른다'는 공포에서도 해방되지.
-내 얼굴을 주의 깊게 보는 사람은 나뿐이다 중에서
화를 잘 내는 사람은 참을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분노 이외에 유용한 커뮤니케이션 도구가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걸세 그래서 자신도 모르게 분노를 매개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는 거지.
아무리 자신이 옳다고 여겨도 그것을 이유로 상대를 비난하지는 말게. 이것이 많은 사람이 빠지는 인간관계의 함정이지.
인간관계에서 '나는 옳다'고 확신하는 순간 권력투쟁에 발을 들이게 되네.
나는 옳다. 즉 상대는 틀렸다. 그렇게 생각한 지점에서 논쟁의 초점은 '주장의 타당성'에서 '인간관계의 문제'로옮겨가네. 즉 '나는 옳다'는 확신이 '이 사람은 틀렸다'는 생각으로 이어지고 궁극적으로는 '그러니까 나는 이겨야 한다"며 승패를 다투게 된다네. 이것은 완벽한 권력투쟁일세.
늘 이런 식으로 말려들어 소모전을 벌이므로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다.
한 사람이 분노로 대화를 할 줄 밖에 모르는 상황에 놓였다면
그 사람을 그냥 두는 편이 나은 것이다.
그렇다면 싸움에 말려들거나 크게 다툴일은 없다.
맞대응하여 싸우게 되고 소모전 벌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누가 내게 무슨 얘기를 하면 이사람이 왜 이런 얘기를 할까
무슨 '목적'이나 의도로 하는지 먼저 생각해 보자는 거다.
순수한 마음인지 평소 못마땅했던 시비인지..
그 말의 이면을 볼 줄 모르면
시시비비하면서 싸움이 나고 상대의 의도에 넘어가는 것이다.
보이는 것 말하는 것 너머의 그림자를 볼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못하고 휘둘리면 늘 어리석은 생각, 행동, 판단으로
스스로 고달프게 살아가게 된다.
대체로 분노란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분노에 대응하는 자세는 함께 분노하지 않는 것이다.
애초에 주장의 타당성은 승패와 관계가 없어. 자네가 옳다고 믿는다면 다른 사람의 의견이 어떻든 간에 이야기는 거기서 마무리되어야 하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권력투쟁에 돌입해서 다른 사람을 굴복시키려고 하지. 그러니까 '나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을 곧 '패배를 인정하는 것으로 여기게 되는 거라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패배가 아니다 중에서
아들러의 심리학은 타인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이 아니라 자신을 바꾸기 위한 심리학 일세. 타인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상황이 변하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닐세. 자네가 첫발을 내딛기를 기다리고 있지.
인간은 '이 사람과 있으면 자유롭고 행동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사랑을 실감할 수 있네. 열등감을 느끼지도 않고, 우월함을 과시할 필요도 없는, 평온한, 지극히 자연스러운 상태라고 할 수 있지 진정한 사랑이란 그런 걸세.
함께 사이좋게 살고 싶다면 서로를 대등한 인격체로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네.
-붉은 실과 단단한 쇠사슬 중에서
세 번 째 밤
"행복해질려면 미움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순간에 달라질 걸세."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타인에게 인정받기를 원하는 마음을 부정한다네.
즉 타인에게 인정받을 필요가 없다는 말인세. 도리어 인정받기를 바라서는 안 되네.
-인정의 욕구를 부정하라.
이것이 누구의 과제인가'라는 관점에서 자신의 과제와 타인의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타인의 과제에는 함부로 침범하지 않는다. 그것뿐일세.
모든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는 것-혹은 자신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 해 들어오는 것-에 의해 발생한다네. 과제를 분리할 수 있게 되면 인간관계가 급격히 달라질 걸세.
누구의 과제인지 구분하는 방법은 간단하네. '그 선택이 가져온 결과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생각하게. 만약 아이가 '공부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을 했을 때 그 결정이 가져올 결과-이를테면 수업을 따라가지 못하거나 지망하는 학교에 불합격하는 등-를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사람은 부모가 아니야 아이란 말잊. 즉 공부는 아이의 과제일세
자신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자신밖에 없다네.
-과제를 분리하라 중에서
어리석지 말자
어리석은 사람은 스스로 힘들뿐아니라 주변도 힘들게 한다.
이 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이 '과제 분리'개념이다.
우리가 얼마나 어리석은지 이 단원을 자세히 보면 답이 나온다
우린 '혼돈'하기도 하고 '상황파악' 못해서 즉 과제분리를 못해서
부모자식 친구 형제간에도 지나친 오지랖으로
많은 상처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내 마음이 어떤 관계에서 불편하다면 분명히 내게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우물속에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거의 대부분 우리는 상대에게서 문제를 먼저 찾으려고 한다.
'타인은 자네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다 '라고 설령 내 자식이라도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키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란 말일세
가까운 가족이야말로 더 의식저으로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네.
믿는다는 행위 또한 과제의 분리일세. 알겠나? 상대방을 믿는 것. 이것은 자네의 과제일세. 하지만 자네의 기대와 신뢰를 받은 상대가 어떻게 행동하느냐 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과제인 걸세. 그 선을 긋지 않은 채 자신의 희망만 밀어붙이면 그건 스토커나 다름없지. 그것이야 말로 하지 말아야 할 '개입'이라네 비록 상대방이 내 희망대로 움직여주지 않는다 하더라도 계속 믿을 수 있을까 사랑할 수 있을까. 아들러가 말하는 사랑의 과제는 그런 질문까지 포함되어 있다네.
인간관계의 성숙을 얘기하고 있다.
부모자식간이든
연인사이든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과 타인의 과제를 떠안는 것은 자신의 인생을 무겁게 짓누른다네. 만약 인생에 고민과 괴로움이 있다면 - 그 고민은 인간관계에 있으니- 먼저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내 과제가 아니다"라고 경계선을 정하게. 그리고 타인의 과제는 버리게. 그것이 인생의 짐을 덜고 인생을 단순하게 만드는 첫걸음일세.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중에서
과제의 분리는 인간관계의 최종 목표가 아니야 오히려 입구라고 할 수 있지.
-고르디우스의 매듭을 끊어라 중에서
과제를 분리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인 것이 아니다. 타인의 과제에 개입하는 것이야말로 자기중심적인 발상이지.
-인정욕구는 부자연을 강조한다 중에서
자유란 타인에게 미움을 받는 것일세
자네가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 것. 그것은 자네가 자유롭게 살고 있다는 증거이자 스스로의 방침에 따라 살고 있다는 증표일세.
남이 나에 대해 어떤 평가를 내리든 마음에 두지 않고 남이 나를 싫어해도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받지 못한다는 대가를 치루지 않는 한 자신의 뜻대로 살 수 없어.
자네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자네의 과제가 아니야. 역으로 "나를 좋아해야 한다". "이렇게 애를 썼는데 좋아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라고 생각하는 것도 상대의 과제에 개입하는 보상적 발상이라네.
'모두에게 사랑받는 인생'과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는 인생'이 있고 이 중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고 치세. 나라면 주저하지 않고 후자를 택할 걸세. 남에게 어떻게 보이느냐보다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으니까.
-인간관계의 카드는 내가 쥐고 있다 중에서
결론은 행복해지려면 이책의 제호인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야 한다는 거다.
인간관계의 카드는 언제나 '내'가 쥐고 있다는 것이다.
네 번 째 밤
"자네도 나도 세계의 중심은 아니야
내 발로 인간관계의 과제에 다가가지 않으면 안 되네.
내가 이 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지."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중에서
자기 자신밖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본인이 세계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지. 이런 사람들에게 타인이란 '나를 위해 뭔가를 해줄 사람'에 불과해. 모든 사람이 나를 위해 행동하는 존재이며 내 기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네.
지구의로 세계를 보면 어떻게 될까? 지구의라면 프랑스를 중심으로 볼 수도 있고, 중국을 중심으로 볼 수도 있다네. 브라질을 중심으로 보는 것도 가능하지. 모든 장소가 중심이면서 또 중심이 아니지. 보는 사람의 위치와 각도에 따라 헤아릴 수 없는 무수한 중심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다네.
'내가 이사람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를 생각해야하지 그것이 공동체에 공헌하는 길일세
그래 소속감이란 태어나면서부터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획득하는 것일세
-나는 세계의 중심이 아니다 중에서
인간관계의 입구에는 과제의 분리가 있고
목적지에는 '공동체 감각'이 있다.
공동체 감각이란 '타인을 친구로 간주하고 그곳을 자신이 있을 곳'이라 느끼는 것이다.
만약 자네가 이의를 제기해서 무너질 정도의 관계라면 그런 관계는 없느니만 못하네. 이쪽에서 끊어버리면 그만이지. 관계가 깨질까 봐 전전긍긍하며 사는 것은 타인을 위해 사는 부자유스러운 삶이야.
-더 큰 공동체의 목소리를 들어라 중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을 평가하지 않는 것이네 평가란 수직관계에서 비롯된 말일세 만약 수평관계를 맺고 있다면 감사나 존경, 기쁨의 인사 같은 더 순수한 말이 나오겠지.
자네가 칭찬받기를 원하는 것은 수직관계에 익숙해졌기 때문일세
아들러 심리학에서는 온갖 '수직관계'를 반대하고 모든 인간관계를 '수평관계'로 만들자고 주장하네
-칭찬도 하지 말고 야단도 치지 말라 중에서
칭찬은 위에서 아래에 하는 것 즉 '수직관계'에서 일어나며
엄마가 아이에게 하는 것이라도 '상하관계'를 만들려는 것이라는 것
칭찬의 목적은 '자기보다 능력이 뒤떨어지는 상대를 조종하기 위한 것'이라는 거다
.
인간은 '같지는 않지만 대등'한 관계' 여야 하고 이것이 수평관계라는거다.
칭찬에 반응하는 자신을 조심하라는 것.
칭찬받기 위해서 상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은
그에게 조종당한다는 것이다.
공동체, 즉 남에게 영향을 미침으로써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것, 타인으로부터 '좋다'는 평가를 받을 필요 없이 자신의 주관에 따라 '나는 다른 사람에게 공헌하고 있다'고 느끼는 것 그러면 비로소 우리는 자신의 가치를 실감하게 된다네. 지금까지 논의했던 '공동체 감각'이나 '용기 부여'에 관한 말도 전부 이와 연결되네.
-스스로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려면 중에서
타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수평관계를 맺고 용기 부여의 과정을 거치는 것
이런 일련의 일들이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실감나게 해주고
돌고 돌아 인생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준다는 것.
공동체 감각에 대해 아들러에게 비슷한 문제 제기를 한 사람이 있었지. 그때 아들러의 대답은 이러했네.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없습니다. 내 조언은 이래요. 당신부터 시작 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하든 안 하든 상관하지 말고"
나의 조언도 전적으로 그러하네.
-여기에 존재하는 것만으로 가치가 있다 중에서
다른 사람과 한 명이라도 수평관계를 맺을 것. 거기서부터 시작하는 걸세.
만약 자네가 한사람이라도 수직관계를 맺고 있다면, 자네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모든 인간관계를 '수직'으로 파악하고 있는걸세.
"A는 나보다 위지만 B는 나보다 아래다","A의 의견에는 따르지만 B의 말은 들을 필요가 없다.","C와의 약속은 없던 것으로 해도 괜찮다"라는 식이지.
-인간은 '나'를 구분할 수 없다.
다 섯 번 째 밤
과제분리와 마찬가지로 '변할 수 있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하는 것, 우리는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에 대해서는 바꿀수가 없어.
-자기 긍정이 아닌 자기 수용을 하라 중에서
인간관계가 원만하지 못한 것은 말을 더듬어서도 적면공포증에 걸려서도 아니네. 실제로는 자기수용과 타자신뢰. 타자 공헌을 하지 못해서 생기는 문제지. 아무래도 좋을 아주 작은 일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세계 전체를 평가하려고 한다. 이 얼마나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잘못된 생활양식인가.
-일이 전부라는 인생의 거짓말 중에서
아무래도 좋을 아주 작은 일부분에만 초점을 맞추고 세계 전체를 평가하려고 한다.
이 얼마나 인생의 조화가 결여된 잘못된 생활양식인가
.
번역문이지만 기막힌 문장이다.
침소봉대도 생각나고 자기 합리화
내지는 인간의 이기심 등 편리 위주로 살아가는..
한걸음 더 나아간다면 인간 거기서 거기라는것까지.
그렇지만 조금더 다른 인식으로 살아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까지...
인간에게 있어 최대의 불행은 자신을 좋아하지 않는 거라네. 이런 현실에 대해 아들러는 간단하게 대답했지. '나는 공동체에 유익하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통해서만 자신이 가치 있음을 실감한다고.
공동체에 유익하다고 느낄때
행복감이 오는 것을 오래전에 경험했다.
그리고 그 삶이 풍요로워 진다는 느낌을 가지게 되었고 이후로 삶은 많이 달라졌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여기서 이런 문장을 보는 건 또 얼마나 반가운지.
인정욕구에 연연하는 사람은 아직도 공동체 감각을 갖지 못하고, 자기수용 타자신뢰, 타자공헌을 하지 못한 거라네.
'인정욕구에 연연하는 사람' 그럼에도 '공동체 감각은 갖지 못한 사람'
딱 우물안 개구리 형이다
불행한 사람이다. 아니 불쌍한 사람이다.
자기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반응에 따라 사는 사람이다.
하긴 이것도 객관적으로 보일뿐 주관적인 삶을 사는 당사자는 모른다.
얼마나 중요한 얘긴지....
공동체 감각만 있으면 인정욕구가 사라진다는 말씀입니까?
타인이 인정같은 건 필요하지 않다네.
철학자의 주장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내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낄 때에만 자신의 가치를 실감할 수있다. 단 그때의 공헌은 눈에 보이는 형태가 아니어도 상관없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즉 '공헌감'만 있으면 그걸로 충분하다. 그리고 철학자는 이렇게 결론지었다. 즉 행복이란 '공헌감'이라고 분명 그 말은 일리가 있다.
-인간은 지금, 이순간부터 행복해질 수 있다 중에서
특별히 잘하는 것도, 특별히 못되게 구는 것도 목적은 같아. 남들로부터 주목받고 '평범한' 상태에서 탈피해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 그것이 목적이네.
-특별한 존재가 되고 싶은 사람 앞에 놓인 두 갈래 길 중에서
인생의 의미는 내가 나 자신에게 주는 것이다. 타인에게 공헌한다는 길잡이 별만을 놓치지 않느다면 헤맬 일도 없고 뭘 해도 상관없어. 나를 싫어하는 사람에게 미움을 받으며 자유롭게 살면 되네.
그리고 찰나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추고, 진지하게 사는 걸세. 과거도 보지 말고. 미래도 보지 말고, 완결된 찰나를 춤추듯 사는 거야. 누구와 경쟁할 필요도 없고 목적지도 필요 없네. 춤추다 보면 어딘가에 도착하게 될 테니까.
인생이란 그런 걸세.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아무리 돌이켜 봐도 왜 내가 '지금 여기'에 있는 건지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그리스철학을 공부할 생각이었는데. 어느새 아들러 심리학을 병행하여 배우고, 이렇게 자네라는 소중한 벗과 대화를 나누고 있네. 찰나를 춤춰 온 결과라고밖에 말할 수 없지. 자네한테 인생의 의미는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춤췄을 때에만 명확해질 걸세.
아들러가 했던 말을 들려주겠네.
"누군가가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이 협력하지 않더라도 그것은 당신과는 관계없습니다. 내 조언은 이래요. 당신부터 시작하세요. 다른 사람이 협력적인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말고."
'내'가 바뀌면 '세계'가 바뀐다.
세계란 다른 누군가가 바꿔주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나'의 힘으로만 바뀔 수 있다.
-무의미한 인생에 의미를 부여하라 중에서
이것으로 철학자와 청년이 나눈 다섯번의 밤 이야기는 끝이다.
청년은 만족해하며 떠난다.
다시 정리해 보면 주제별로 이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첫번째 트라우마를 부정하라
두번째 모든 고민은 인간관계에서 비롯된다
세번째 타인의 과제를 버리라
네번째 세계의 중심은 어디에 있는가
다섯번째 '지금 여기'를 진지하게 살아간다
나이든다고 인간을 더 잘 이해하는 건 아니다
우물안 개구리는 우물을 인식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얼까
내 확신이 우물일수도 있음을 인식하며 늘 깨어 있는 일 아닐까.
어려운 주제도 잘 읽힌다.
약간의 인식이 선행되어 있다면......,
잘 읽히지 않는 분이 있다면 반복해서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멋지다 아들러 ...
이런 먼저간 이가 내겐 수평관계로 존재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책속엔 멋진 남자가 많다...ㅎㅎ
아들에게 친구에게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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