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열쇠'는 내가 한밤중에 혼자 때로는 키득거리면서, 때로는 울먹이면서 매우 빠른 속도로 번역한 별난 작품이기도 하다. 키득거릴 수밖에 없었던 것은 주인공 치점 신부와 그를 둘서싼 인물들의 독특하게 유머러스한 말씨 때문이었을 것이고, 울먹일 수밖에 없덨던 것은 치점 신부가 걷는 순교자적 삶이 참으로 감동적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키득거리면서, 울먹이면서 번역한 '천국의 열쇠'를 17년 만에 다시 키득거리면서, 울먹이면서 꼼꼼하게 읽었다. 손볼 데가 많을 것 같았는데 이외로 많지 않았다. 눈 부릅뜨고 살피고 또 살피겠다.
- 두려운 마음으로 독자들 손에 다시 붙인다
- 2005년 4월 이윤기.
-서문 '키득거리면서 울먹이면서' 중에서.
독서토론 모임에서 6월 선정도라 읽고 토론까지 마친 책이다.
이윤기 선생님의 서문처럼 '키득거리면서 감동하면서' 꼼꼼하게 완독한 책이다.
블로그에 서평 쓴지가 까마득한데 토론에서 나온 이야기들도 좋았고,
'천국의 열쇠'가 준 감흥을 여기다 기록해두고 싶어졌다.
고교시절 이 책을 읽은 친구에게 어땠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읽고나서 둘이 꼭 얘기해 보고 싶은 책'이라며 내게 말을 아꼈다.
독서토론 모임에서 4년정도 토론을 해왔지만 이 책이 강한 인상으로 남을 것 같다.
불교용어로 나누는 걸 '보시'라 한다.
다른 이에게 얼마나 도움 될지는 모르지만 아니 할 수가 없다.
책에서 반짝였던 문장들 옮겨 볼 양으로 노트북을 켰다
왼손목을 맘때로 쓸 만큼 편치는 않지만 어쩔수 없다.
옮기는데까지 옮겨볼 요량이다.
좋아서 다시 보고 싶어 접어 놓은 것들이 이렇게 많다.
이걸 다 옮기려면 내 왼쪽 팔목이 성치 않을 것 같아 고르고 골라서 줄여보려 한다.
1부
끝의시작
1
"신부님, 말이 나온 김에 말씀드리지요. 드릴 말씀은 사실 또 있습니다. 신부님 강론 말씀인데...... 신부님께서 대중에게 하시는 말씀은 교리상의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말하자면 위험할 정도로 독특하다는 것입니다. "
"그럴 리가 있나!"
"성령 강림 대축일에 대중에게 이러셨다지요? 천국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 천국은 여러분의 손바닥 안에 있다......., 천국은 어디에나 있을 수 있고 실제로 어디에나 있다........,"고요
슬리드 신부는 수첩의 페이지를 넘기면서 눈쌀을 찌푸렸다.
"또 있습니다. 사순절에는 참으로 및기지 않는 말씀을 하셨군요. 무신론자라고 해서 다 지옥에 가는 것은 아니다. 나는 지옥에 가지 않은 무신론자를 한사람 알고 있다. 지옥은 하느님의 얼굴에 침을 뱉는 자만이 가는 곳이다......, 무서운 일입니다만 신부님, 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다. 그러나 유머 감각으로 본다면 그리스도보다는 공자님이 한 수 위다.......,"
크게 6부로 나눠져 있고, 1부 도입부다
69세 된 치점 신부가 현제 시점이고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2부에서 60년 전 9살 시절로 바로 들어간다.
2부
기묘한 소명
2
그(프란시스 치점 외조부, 다니엘 글레니 할아버지)의 주장에 따르면 문제는 하느님을 섬기는 형식이 아니라 미덕과 인간애와 자비 ....., 그리고 관용이었다. 그는 중요한 것은 이런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곁들었다.
9살에 부모를 잃는 치점은 외가에서ㅍ몇 년을 살게 되고.
우여곡절 끝에 폴리 아주머니(고무부의 누이동생)의 도움을 받아서
신학교에 입학하게 된다.
그곳에서 맥냅 학장을 만나게 되고,
그가 태어나기 훤씬 전부터 맥냅 집안사람들과 치점 집안 사람들은 친했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부학장인 타란트 신부가 18살 치점에게 어느날 비아냥거리는 투로 말해준다.
4
"치점 군, 일기를 한번 써보게. 써서 출판하라는 게 아니야......, 일기를 통하여 양심의 정체를 규명해보라는 것이지. 자네는 일종의 정신적인 고집 때문에 지독한 고민을 하고 있네. 속마음을 기록해 낼 수 있다면 그 고민은 상당한 정도까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네."
"그냥 쓰라고 하면 쓰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타란트 신부님?"
"자네에게서는 영적인 반골 냄새가 나거든....,"
반골기질!
반골은 '어떤 권력이나 권위에 순응하거나 따르지 아니하고 저항하는 기골,
또는 그런 기골을 가진 사람'
이라고 사전에 표현되어 있다.
치점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다.
하지만 문득문득 나를 찾아오는 저 이상한 순간순간들을 어떻게 해야 좋단 말인가? 후미진 골목길을 걸어 혼자 다운으로 돌아오는 순간을. 동무들은 다 교회로 가버리고 나 혼자 남아 쥐 죽은 듯이 고요한, 어두운 방 안을 서성거리는 순간을. 어떻게 할까. 기묘한 성찰의 순간, 그 직관의 순간을..... 감상적인 무아의 경지에 빠지는 그런 순간이 내게 싫지 않으니 이를 어쩌랴.
나 자신에게 던지는 질문: 열을 올리는 사감 신부의 얼굴을 보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희망이 샘솟아야 할 텐데 구역질이 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이런 것을 쓰고 있는 나 자신이 참 싫다. 나만을 위한 기록이기는 하지만, 불길에 훨훨 타오르는 것 같던 사적인 느낌도 종이에 다 써놓고 보면 싸늘한 감정의 찌꺼기로 전략한다. 그러나 나는 하느님께 예속되어 있다는 이 어쩔수 없는 느낌을 기록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느님께 예속되어 있다는 느낌은 어둠 속에 있는 나에게 하나의 확신으로 다가온다. 인간은, 계산되고, 계획되고, 따라서 거스를 수없는 우주의 운행에 예속되어 있다는 느낌. 인간은 결코 무에서 생겨나 무로 돌아가는 존재가 아니라는 느낌이. 그런데 이상하지 않은가? 남들은 미치광이로 여기던 '다니엘 성자' 다니엘 글레니 할아버지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는 어디선가 그 따뜻한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다.
6
"나는 인생살이를 하면서 이따금씩은 농담도 할 줄 아는 젊은이가 좋습니다. 우리는 프랜시스 치점의 성격이 특이하다는 걸 부인하면 안 됩니다. 대단한 괴짜예요. 인생을 보는 그의 시각에는 깊이도 있고, 그의 가슴에는 불길도 있어요. 게다가 감수성이 예민한 청년이어서 우울증에 기우는 경향도 있어요. 하지만 이 청년은 이 모든 것을 고귀한 정신의 이면에다 감추어 두고 있어요. 아시게 되겠지만 이 청년은 투사예요. 절대로 항복하지 않을 겁니다. 뭐라고 할까요. 어린아이 같은 소박함과 논리적인 강단이 기묘하게 한데 어우러져 있다고 할까. 게다가 철저한 개체주의자랍니다."
"신학자에게 개체주의적 성향은 위험한 것입니다. 종교 개혁은 개체주의에서 생겨난 것이니까요."
타란트 신부가 퉁명스럽게 참견했다. 맥냅 신부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 종교 개혁이 우리 카톨릭 교회를 카톨릭 교회답게 만들어지요."
맥냅 주교와 타란트 부주교의 성향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치점을 잘 이해하는 주교와 그렇지 못한 모습이다.
개체주의란 '개별적 존재를 가장 으뜸이 되는 것으로 보고,
보편 또는 전체를 파생적인 것으로 보는 태도 실천 영역에서는 개인주의라고 한다.
개체주의는 나를 너 없는 고립된 개체로 개별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맥냅 주교는 치점을 이해하는 편이고
타란트 부주교는 그런 치점을 못마땅해하며 걱정하는 것이다.
치점은 어릴적 외조부와 산 몇년 동안 외조부의 영향을 많이 받은 듯 하다.
그의 개체주의는 외조부의 소산인지도 모른다.
3부
못난이 보좌 신부
1
그는(키저신부) 종교도 하나의 공식으로 환원시키는 사람이었다. 그에게 종교의 내면적 의미. 정신적 의미 같은 개념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융통성이라는 것도 그에게는 통하지 않았다. 그의 가슴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종교의 모양은, 이렇게 하라, 하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 이것뿐이었다. 성당에는 말로 치르는 의식, 물로 치르는 의식. 기름으로 치르는 의식. 소금으로 치르는 의식이 있었다. 키저 신부가 아는 한, 이대로 하지 않으면 아가리를 벌리고 있는 뜨거운 화염지옥에 떨어지지 않을 도리가 없는 것이었다. 지독한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그는, 마을의 다른 교파를 공공연하게 비난했다. 이러니 친구가 있을 까닭이 없었다.
첫 부임지에서 잘 적응하지 못하는 치점의 모습이다.
아니 적응할수가 없는 환경인거다. 반골기질의 치점에게
키저신부는 구역질 나는 사람일 수 있다.
어디나 있는 조직, 조직의 리더 모습을 신부지만 다양한 군상을 치점을 통해서 책에서 볼 수 있다.
성당이고 교회지만 별로 다르지 않은 모습도 보게된다.
이책을 읽으면서 수녀나 신부의 삶 깊숙히 들어가 보는계기가 되었다.
자신이 정한 길에서 노력하면서 매 순간을 사는 너무나 인간적인 모습들도 보게 된다.
우리와 다르지 않은, 다를것도 없는
단지 그렇게 살기로 마음 먹고 그 공간에서 살 뿐인.....
신부나 수녀가 존경스러운 것은 그 삶이 자신을 위한 일이기 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도움 되는 삶을 살기로 택한 것 때문이다.
그렇다고 다 존경스럽진 않다.
타인을 위한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삶을 사는 사람들도 많다.
리더가 그런 모습일 때 주변에 미치는 영악향을 생각하면
정작 일반인보다도 못한 모습도 있다.
이런 부분에서 치점은 끊임없이 묻고 저항한다.
그리고 자신을 다독이는 삶을 살아간다.
2
몸가짐이 고상하고 태도가 깔끔한데다 스스로 신사임을 자처하는 피츠제럴드 주임 신부는 키저 신부와는 극과 극을 이루는 사람이었다. 피츠제럴드 신부 자신은 공명 정대하게 처신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그 역시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안셀름 밀리 신부의 말이라면 무조건 신임하고 따르는 반면 슬루카스 신부의 말은 의식적으로 무시했다.
그는 자기가 존경을 받을지언정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존경은 받을지언정 사랑을 받지 못한다'는
이문장이 주는 울림은 크다.
존경을 넘어 사랑까지 한다는 건
인간적으로 그를 온전히 내 롤모델로 만들고 싶다는 정도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3
"저는 저 자신에게 기분이 상했습니다. 잘 하려고 늘 노력은 하고 있습니다만 ...... 참으로 이상합니다. 어릴 때는, 성직에 계시는 분들은 모두 완벽한 인간들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런데 이제 와서 보니까 우리 성직자들 역시 참으로 인간적이더라, 이건가? 그래. 자네의 그 반골 정신이 내 마음에 드는 것은 적잖이 불경스러운 일임에 분명하네만, 지극히 단조로운 일상에 시달리는 나 같은 성직자에게는 좋은 해독제가 되는 거야 어쩔 수 없지. 프랜시스, 자네는 길 잃은 고양이야. 남들이 지루한 강론을 견디다 못해 머리를 떨어뜨리고 졸고 있을 때 살그머니 복도로 들어오는, 길 잃은 고양이 말이야, 말해 놓고 보니 나쁜 비유는 아니군, 왜냐고? 우리의 규칙에 순종하는 자들과 보조가 잘 맞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자네는 교회 안에 있는, 교회 사람이니까. 자네에게 아첨하는 것은 아니네만, 나는 우리 주교구 내에서 자네를 이해하는 유일한 성직자일 것이야. 자네는 운이 좋아, 마침 내가 자네 주교구의 주교니까."
"그것은 저도 알고 있습니다. 주교님."
"내가 보는 한 자네는 실패한 성직자가 아니라 대단한 성공을 거두고 있는 성직자야. 그러니까 조금 더 기를 펴고 다녀도 좋을 것이야. 그래서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자네 기를 좀 돋우어 주려고 해, 자네는 철저한 데가 있는 반면에 다정다감한 사람이야. 사고와 의혹이 어떻게 다른지도 아는 사람이고, 자네는, 신자들이 받아 들고 다니기 좋도록 모든 것을 조그만 꾸러미로 포장해 주는 이른바 교회 잡화상은 아니야. 자네의 장점은 이것이야......, 신앙에서 나온 확신도 아닌 교회의 교리에다 등을 대고 교만이나 떠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야."
침묵이 흘렀다. 프랜스시는 노인 앞에서 자기 마음이 녹아내리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래서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있었다.
중략,
"나는 자네에게, 나를 위하여 일 하나를 해 달라고 부탁할 참이야, 이런 부탁을 안 할 참이었다면, 나는 자네를 하늘이 내게 내린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거야."
침묵이 오래 흘렀다. 주교의 표정이 굳어졌다. 정으로 다듬은 얼굴 같았다.
"부탁하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야....., 자네에게는 참으로 엄청난 변화를 요구하는 일이니까....., 지나치다 싶으면....., 반드시 내게 그렇다고 말해주어야 하네. 그러나 나는 이게 자네에게 잘 어울리는 생활이라고 생각해......,"
또 긴 침묵이 흘렀다.
"우리 외방전교회는 마침내 중국에다 교구를 하나 만들고 교구 신부를 한 사람 파송하기로 결정을 보았네. 수속이 모두 끝나고, 자네 쪽의 마음이 정해진다면 우리 주교구 최초의 선교사로 거기에 갈 생각이 있나? 물론 엄청난 모험은 각오해야 할 것이야."
프랜시스는 놀라도 이만저만 놀란 것이 아니어서 한동안 아무 말도 못하고 멍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사방의 벽이 다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다. 하도 뜻밖의 주문이고 하도 놀라운 제안이어서 그는 숨도 제대로 못 쉴 지경이었다. 정든 집을 버리고, 친구들을 버리고 미지의 땅으로 간다....., 프랜시스는 그런 경우를 생각할 수 없었다. 그러나 그는 천천히 자신의 온 존재에 차 오르는 이상한 힘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주저하면서 대답했다.
"네....., 가겠습니다."
'녹슨 맥'은 몸을 기울이고 손을 내밀어 프랜시스의 손을 잡았다. 그는 눈물에 젖은, 그러나 결의에 찬 눈으로 프랜시스를 쏘아보면서 말했다.
"가겠다고 할 줄 알았다. 내가 사람을 잘못 보았을 리 없지....., 하지만 한 가지 경고해 두겠다. 거기에 가면 연어 낚시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테니까 명심하도록."
1920년 대 이야기다.
우리나라에 처음 선교사가 발을 들인지가 언제인지 모르지만
문학 작품을 통해서 선교사의 활동을 조금아는 정도다.
아직도 소록도나 고아원 또는 교회 성당 등에서 나이들어
이 땅을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덕분에 서양 선교사들의 사역활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도 가지게 되었다.
그시절 가까이에서 접한 사람들이 교화되지 않을수 없었으리라는 생각
유교사상으로 똘똘 뭉쳤던 그 시절에
그들이나 우리 조상님들에게 처음에 어떻게 와닿았을지.....
4부
중국에서
하느님께서는 허영심이 많은 저에게, 오만한 저에게 이런 벌을 내리셨습니다...., 좋습니다. 일하겠습니다. 하느님을 위해서 싸우겠습니다.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절대로......, 절대로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외양간 안으로 들어와 지친 몸을 쉬고 있는데 모기와 날벌레 나는 소리가 어둠을 갈랐다. 프랜시스는 어둠 속에서 빙그레 웃었다. 문득 자기 자신은 잘난 사람이 아니라 참으로 바보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테레사 성녀는 인생을 호텔에서의 하룻밤에 견주었다지만, 외방전교회가 프랜시스 지첨 신부를 보낸 곳은 호텔이 아니었다.
중국에 도착했을 때 그곳에는 신도가 한명도 없었다.
이전에 다년간 선교사들은 밥주고 빵줘서 교인으로 입적,
명부만 늘여 놓고 떠난것이었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주어서 사역활동 한 거였다.
본당에서는 신자수가 늘었다고 좋아했지만 정작 치점이 갔을 때 신자는 한명도 없었다.
그는 외양간에서 잠을 자야 했고, 그 밤의 풍경이 잘 드러난 부분이다.
"왜 신부님들은 우리 중국으로 오신다지요? 귀국에는 이제 신부님들이 회개시킬 사악한 인간이 없어진 것인가요? 우리 중국에는 사악한 인간이 없는데. 이상한 일이 아닌가요? 우리에게는 우리의 종교가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당신네들보다 훤씬 오래전부터 신들이 있었습니다. 지난번에 여기에 계셨던 신부님은 조를 불러서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듭디다. 맨살 가릴 옷감을 주고 배만 채워주면 무슨 노래라도 부를 사람들에게 입을 것을 주고 먹을 것을 주어서 기독교인으로 만듭니다. 신부님께서도 이러실 건가요?"
"나도 그럴 거라고 생각하시는 모양이지요?"
이상한 정적이 두 사람 사이를 흘렀다. 시선을 맞추고 있다가 파오 씨의 종제가 먼저 눈길을 내리깔고는 나지막한 소리로 말했다.
"용서하십시오....., 내가 신부님을 오해했습니다. 신부님은 좋은 분이신 것 같습니다."
중국 본토에서 엄청 잘살고 있는 갑부 파오씨가 있다.
그의 살림을 맡아 보고 있는 종제가 치점에게 한 말속에는
그동안 선교 활동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당신도 뻔할 것이라고 섣불리 예단하는 모습과
그리고 사과하는 모습이 잘 드러나 있다
6
믿음이 굳은 사람이 지옥에 가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불교도들, 회교도들, 도교의 신봉자들...., 심지어는 선교사들을 잡아먹는 식인종들까지도....., 나름의 종교를 신실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참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는 것은 그분의 침묵입니다. 한 마디 말도 입 밖에 내지 않는 분의 무서운 인내와 투지가 나를 견딜 수 없게 합니다. 역질이 창궐하던 지난날의 그분 모습은 이미 오라버니에게 전한 바와 같습니다.
마리아 원장 수녀가 오라버니에게 쓰는 편지다.
치점은 일기를
마리아는 오라버니에게 편지를
그들은 자신의 삶을 글로 쓰면서 더욱 정화되어 가는 삶을 산다.
치점의 일기는 어려운 일에 봉착했을 때
그를 난관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 힘이 되는 역할도 한다.
치점을 이해 못하던 신부가
우연히 치점의 일기를 보고 용서를 넘어 이해하는 장면도 나온다.
그분은 더러운 환자들과 갑자기 숨을 거둔 사람들 사이를, 그분의 고향 스코틀랜드 거리를 걷는 것처럼 아무 스스럼없이 걸어 다녔습니다. 용기만 가지고는 되는 일이 아닙니다. 무언중에 실천하는, 무서운 힘이 없다면 그런 일은 불가능할 것입니다.
그분의 친구인 의사가 세상을 떠났을 때만 해도 그렇습니다. 그분은 감염되는 것이 두렵지 않았던지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의사를 껴안더군요. 의사는 마지막 기침과 함께 핏덩어리를 그분의 뺨에다 토해내었지만 그분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그분의 표정......, 연민과 애정이 가득한 그분의 표정은 내 가슴을 에는 것 같았습니다. 내가 그 광경을 보고 울지 않았던 것은 아마 내 자존심이 남달리 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울지는 않았습니다만, 화가 나더군요. 나 자신에게 화가 났던 것입니다. 언젠가 오라버니에게 쓴 편지에 그분을 하찮은 인간이라고 표현했던 일이 생각났기 때문입니다.
에른스트 오라버니, 고집 센 누이로부터 이런 말을 들을 줄은 모르셨겟지요?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것입니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을 경멸할 수 없습니다. 나는 절대로 그분에게 굴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민망하리만큼 겸손한 그분의 태도를 촞지는 않겠습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친구에게 물었더니
마리아 원장수녀와 치점의 사랑에 대해서 얘기했다.
스무살 때 읽어서 그랬는지 그게 강한 인상으로 남았다고 했다.
하지만 우리 독서회나 나나 아무도 그런 접근은 해보질 못했다.
놓친 부분일수도 있지만. .....,
두사람 다 자신의 사역활동에 나름의 개체주의로 살아간 사람 아닐까 싶다
다만 마리아가 처음에는 그렇게 경멸하듯 했던 치점을 가까기에서 지켜보면서
존경하고 무릎꿇는걸 보면서
존경을 넘어서 사랑까지 가능한게 아니었을까 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노력도 노력 나름이겠지. 왜 전교회장을 고용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가? 다른 본당에서는 다 하는 걸 자네는 왜 하지 않아? 한 달에 사십 테일만 써서, 유능한 사람으로 셋만 썼어 봐, 결과는 지금과 훨씬 달라졌을 테지. 일천 명을 신자로 만드는데 일천오맥 달러도 안 든다는 계산이 나오지 않나?
처짐 신부는 대꾸하지 않았다. 그는 화를 내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모욕을 당해도 싸다는 생각을 하는데도 모욕을 참기는 쉽지 않았다.
친구 안셀름 밀리(치점의 친구) 신부가 중국에 시찰와 하는 얘기다.
시류에 잘 편승하고, 쉽고 빠른 길 이익되는 길을 잘 찾아 갈줄아는 친구
그는 승승가도를 간다.
사람보다 교회가 먼저인 사람,
하느님보다 교회가 먼저인 것 같은 사람,
그의 사상이 너무나 잘 보이는 대목이다.
"........, 지금까지 제가 신부님께 한 행동을 뼈아프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처음 뵈었을 때부터 제가 했던 행동을 저는 정말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저는 신부님께 죄를 너무 많이 지었습니다. 제 마음속에는 오만이라는 마귀가 들어앉아 있습니다. 이 마귀는 어릴 때부터 제 속에 들어앉아 있었습니다. ...... 저는 최근에 와서 신부님을 뵙고 이 말씀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그러나 제 오만이, 제 심술궂은 마음이 저를 오늘까지 붙잡아 두었습니다. 지난 열흘 동안..... 저는 신부님을 위해 마음속으로 많이 울었습니다. 신부님의 신발끈도 끄를 자격이 없는 천하고 속된 사제(안셀름 밀리를 지칭한다)로 부터 신부님께서 온갖 수모와 경멸을 다 받고도 견디셨습니다. 신부님. 저는 저 자신이 싫습니다.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저를 용서해 주십시요......"
원장 수녀는 그 자리에 무릎을 꿇고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하늘은 빛을 잃은 시각이었다. 산봉우리 뒤로 푸르스름한 잔광이 보일 뿐이었다. 이 잔광마저 사라지면서 곧 어둠이 원장 수녀를 깜싸기 시작했다. 원장 수녀의 두 눈에서는 눈물이 흘러 내렸다.
"그럼 우리 선교관을 떠나지 않겠군요."
"떠나지 않겠습니다. 떠나지 않겠습니다. 용서해주신다면 이곳에 있겠습니다. 저는 신부님 같으신 분을 뵌 적이 없습니다. 저는 신부님 같은 고결한 영혼의 소유자, 아름다운 영혼의 소유자는 뵌 적이 없습니다."
"그만하세요. 나는 하찮은 인간, 천박한 인간입이다. 원장께서 아시다피시..... 나는 아무것도 아닌 인간이랍니다."
"신부님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원장 수녀의 흐느낌은 통곡으로 변했다.
"원장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 보시기에는 나나 원장이나 다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 함께 일할 수 있다면..... 서로 도와 가면서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내게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있는 힘을 다해 신부님을 돕겠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한 가지 일만은 이루고 말겠습니다. 제 오라버니께 편지를 쓰겠습니다. 오라버니는 교회를 재건할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선교관을 복구할 수 있게 해주실 것입니다. 오라버니에게는 재산이 많으니까 기꺼이 도와주실 것입니다. 신부님. 도와주십시요. 이 오만한 마음을 다스릴 수 있도록 저를 도와주십시요"
이어서 두 사람 사이에 오랜 침묵이 흘렀다. 원장은 그칠 생각을 않고 흐느꼈다. 처짐 신부는 뜨거운 것이 가슴을 채우는 귀한 느낌을 경험했다. 신부는 원장 수녀의 팔을 잡고 일으켜 새우려고 했다. 그러나 원장 수녀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되자 치점 신부는 자기도 그 옆에 굻어앉았다. 기도하는 마음까지 버린 텅 빈 마음으로 평화로운 어둠, 순수한 어둠을 응시했다. 어둠 저쪽, 선교관 뜰의 나무 그늘에서는 아득한 옛날부터 그렇게 끓어앉아 있던 가난하고 평범한 한 사람이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로 두 사람을 응시하고 있었다.
삶에서 이런 대상을 가까이에서 만나는 건 복이다.
독서 토론을 하면서
한 친구는 우리 주변에도 이런 사람이 있을 터인데
'자신이 관심을 가지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했다며
이제부터 주변에 관심을 가지고 싶다고 했다.
7
"천국으로 가는 문은 여러 개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문으로 들어간다면 새로 오시는 선교사는 다른 문으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나름의 방법으로 선생을 베풀고 믿음을 전하는 그들의 권리를 부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도 와서 선생을 베풀고 믿음을 전하고 싶어 한다면, 마땅히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회원은 천국의 열쇠는 지금 우리 손에 있다고 했다.
천국은 공간적이 개념이 아니며
지금 이곳에서 내가 천국으로 살고 있느냐
지옥으로 살고 있느냐에 따라서
열쇠를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그녀는 카톨릭 신자인데
이번 토론에서 얼마나 진지하게 얘기를 하든지
나도 그녀의 또 다른 모습에 매료되었다.
'치점 신부님, 이 쪽지를 가지고 가는 자는 악질 카돌릭 신자입니다만, 저희 선교관에 두면 더 지독한 악질 메더디스트가 될 것 같아 돌려보냅니다. 나란히 하느님을 섬기는 친구 윌버 피스크
추신: 입원 치료를 원하는 환자가 있으면 보내 주십시요. 카톨릭을 욕하는 법을 가르치지 않고 병만 고쳐서 돌려 보내 드리겠습니다.
"친절과 관용....., 아, 이 두가지만 있으면 세상이 이렇게 멋져 보이는 것을 .....그는 이런 생각을 했다."
"처점 신부, 요즘 나는 우리 메더디스트 파의 위대한 신학자인 애들러 커밍스 박사라는 분의 설교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 분은, '오늘날 우리가 가장 먼저 타기해야 할 죄악은 바로 음험하고 악마적인 사제들의 음모로 발전하는 로마 카톨릭이다' 이런 말을 합디다. 치점 신부 나는 당신을 사귀는 영광을 누린 이래로 커밍스 목사가 실언을 했다고 생각하게 된 바, 오늘 이 사실을 당신에게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치점 신부는 피츠코 목사의 이 일격에 웃고 돌아서서 선교관에 도착하는 대로 신학 서적을 펴고 연구를 거듭, 열흘 뒤 피스크 목사를 만나자 정중하게 반격을 했다.
"피스크 목사, 요즘 나는 쿠에스타 추기경의 교리서을 읽고 있습니다. 이 교리서를 보면 이런 구절이 분명하게 박혀 있습니다. '프로텐스탄티즘은 하느님을 모독하고 인간을 타락시키고, 사호를 위태롭게 하는 부도덕한 교파다'...... 피스크 목사, 나는 당신을 사귀는 영광을 누리기 이전부터 쿠에스타 추기경이 개소리를 한 것으로 생각했던 바, 오늘 이사실을 당신에게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그 즈음 개신교 선교관이 들어선다.
개신교 목사와 천주고 신부, 세간의 눈으로 보면
별로 친하지 않는 굳이 친해질 필요가 없는 것 같은 노선이지만
치점으 선교관보다 늦게 교회 선교관이 들어섰고
피츠코는 목사이자 의사이다.
의료와 관련하여 충분히 도와주겠다는 얘기며
두사람이 주고 받은 촌철살인의 얘기는 독자에게 읽는 재미를 넘어
한바탕 웃게 하는 묘미를 선사한다.
말하자면 성당쪽에서 교회를 욕하거나
교회에서 성당을 욕할수 있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이들은 서로 자기쪽에서 잘못 설교한 것을 꺼집어 내어
당신을 알게 된 바, 우리쪽 높으신 분의 설교가 얼마나 개소리 였는지를 알게된다
이 사실을 당신께 알려드린다는 얘기다.
응수도 같아서 읽고 보는 재미가 가히 촌철살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9
신부님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지는 것 같아요. 주어라, 주어라, 또 주어라! 핏줄이 보일 때까지 껍질까지 벗어 주라고 하시지 않을까 몰라. 작년 겨울에 어떻게 되었는지 아세요? 눈 오는 날에는 시내에서 외투를 벗어 가난한 사람에게 주시고 말았어요. 우리 수녀들이 외국제 모직 천으로 정성스럽게 지어 선물로 드린 외투를요. 싫은 소리가 입 밖으로 나오는 걸 꾹 참고 있었더니 원장 수녀님이 신부님의 잘못을 지적하시데요. 신부님은 마음 바닥까지 꿰뚫는 듯한 눈으로 원장 수녀님을 바라보시더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어요.
'왜 주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우리가 기독교인답게 살지 못한다면 기독교를 백날 가르치면 뭘해요? 그리스도께서 그 자리에 계셨다면 분명히 외투를 벗어 주셨겠지요? 그런데 나는 왜 벗어 주면 안된다는 것입니까?'
원장 수녀님이 그 외투를 수녀들이 선사한 것이 아니냐고 하시니까, 신부님께서는 몸을 떠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면 수녀님들은 좋은 기독교인인데 나만 아니군요.' 믿어지셔요? 저 같이 뭐든지 아껴야 한다고만 배운 사람이라면 믿지 못할 거예요. 할 수 없죠. 앉으셔요. 우리라도 우리 몫의 수프를 먹어야죠. 가만히 있다가 먹성 좋은 아이들에게 다 빼앗기면 허기져서 쓰러지고 말테니까요."
6부
시작의 끝
1
'어리석음과 완고함과 잔악함과 맞서서 용감하게 싸울 것을 약속드립니다.
앤드루. 추신 :관용은 가장 귀한 미덕입니다. 겸손은 그 다음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이 땅의 흙이 되지만 우리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지고한 삶의 모습으로 천상의 광명 가운데 살게 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류의 한 분뿐이신 아버지이십니다."
슬리드 신부는 처짐 신부를 바라보면서 다정하게 말을 걸었다.
"좋은 말씀이군요, 신부님. 성 바울의 말씀이었지요?"
"아니요, 공자님 말씀이오."
노신부가 안됐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으면서 대답했다
무안을 당한 슬리드 신부는 아무 말 없이 그곳에서 발길을 돌렸다.
그날 밤에 슬리드 신부는 노신부와 마음에도 없던 토론을 벌였다. 노인은 교묘한 논리로 슬리드 신부가 추궁하는 논점에서 슬쩍 벗어나고는 했다. 결국 슬리드 신부가 언성을 높여 딸지고 대들었다.
"신부님 하느님에 대한 신부님의 생각은 좀 이상하군요."
"우리가 어떻게 감히 하느님에 대해 이런 생각이 옳다 저런 생각이 옳다고 할 수 있겠어요? 우리가 쓰는 '하느님'이라는 말은 사람이 만든....., 창조자에 대한 경칭입니다. 이런 경칭을 쓰는 사람, 이렇게 섬기는 마음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을 봅니다. 그러니까 너무 걱정마세요."
웃으면서 응수하는 노신부의 말에 슬리드 신부는 얼굴이 달아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신부님께서는 거룩한 교회를 아주 가볍게 여기시는 것 같은데요."
"그 반대랍니다. ....., 한평생을 나는 교회의 품안에서 살았습니다. 나는 그 품을 포근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교회는 우리를......, 우리 순례자 무리를 어둠 속에서 인도하시는 자애로우신 어머니입니다. 그러나 그런 어머니는 한 분만 계시는 것이 아닌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순례자들 중에는 순례의 여정을 다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도 있는지도 모릅니다."
중략
" 오, 주님 저 노인에게서 배울 수 있게 하소서. 아, 사랑하는 주님, 남들을 지겹게 하는 인간이 되지 않게 하소서......,"
슬리드 신부의 마지막 독백이
놀라운 반전이다.
슬리드 신부도 그렇고 도입부 치점에게 일기를 쓰라고 한 타란드 신부도 그렇고
마리아 수녀도
이들은 처음엔 아니지만 결국엔 치점을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들이다.
사람을 알아볼줄 알고, 좋은 영향을 받고
닮고 싶어하고
닮아가는 삶을 살줄 아는 사람이라도 되어야 하리라
우리는 ......
작가와 작품해설- 이윤기
한 마을엣 태어나고 자란 프랜시스 치점과 알셀름 밀리라는, 성격이 서로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가 대칭 구조로 다루어진 이 소설은 주인공 프랜시스 치점 신부의 회고담으로 시작한다.
치점과 달리 안셀름은 같은 신학교를 나왔지만 출세가도를 달린다. 눈치도 빠르고 신심있고 외모도 뛰어나고 언변도 빼어난데다 사교 수완이 좋아서 천부적 조건을 발휘하여 젊은시절에 주임신부역을 맡고 정치와도 야합을 서습치 않는 실력자! 신부다 즉, 하느님과 교회를 사랑하면서도 정작 인간은 사랑하지 않는 안셀름 밀리는, 사도의 책임보다는 사도의 권세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더 심하게 말하자면 천국의 열쇠와는 인연이 없는 사람인 듯하다.
그러나 어린 시절 부모를, 소년 시절에는 사랑하는 사람까지 잃은 뒤 교회 일에 몸을 바치기로 결심하는 프랜시스 치점은 외모가 보잘것없고, 어눌하고, 반항적이고, 완고하고, 수줍음을 몹시 타는 성격이다. 그러나 겉보기에만 그러할 뿐 사실 그는 감수성이 예민하고, 완고하리만치 정직하고, 불의에는 목숨을 내어놓고 저항할 만큼 용감하고 회의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솔직한 사람이다.
기독교에 몸 바친 성직자이면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문이 하나 뿐만은 아니라고 믿는 그는 '그대가 하느님을 믿지 않아도, 네 행위를 보아 하느님께서 너를 믿을 것이다,'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 자체가 참회의 길이다,' '주님 이번만은 주님의 뜻대로 마시고 제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이런 말을 서슴치 않는다. 요컨데 교회보다는 인간을, 천국보다는 이승에서의 참다운 삶을 더 귀하게 섬기는 프랜시스 치점은 작가 크로닌이 파악하는 한 사도의 권세보다는 사도의 책임에 더 관심을 기울이는, 더 심하게 말하자면 천국의 열쇠를 이미 손 안에 넣은 사람인 듯하다.
그러나 옮긴이가 보기에 반드시 한 번쯤 짚고 넘어가야 할 또 하나의 인간형이 있다. 프랜시스 치점 신부의 친구인 의사 윌리 탈록으로 대표되는 인간형이 바로 그것이다.
윌리 탈록은 아버지를 그대로 빼박은 듯한, 정의로운 무신론자이다. 그는 바르게 살아야 한다.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등의 종교적 가르침을 좇아야 한다는 생각에 쫓기지 않으면서도 자신은 온 삶을 던져 이웃을 사랑하면서 바르게 살다가 의롭게 죽어간다. 서로에게 엄격한 신구교 싸움터인 스코틀랜드에서 성장, 의사가 되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다, 후일 친구인 프랜시스 치점 신부가 선교사 일하는 중국의 벽지 파이탄에서 페스트와 싸우다 목숨을 잃으면서도, 그는 전통적인 사상이나 그 시대 그 땅 사람들이 공유하던 신학에 굴복하지 않고 자기 존재를 던져 이를 검증하는 삶을 온몸으로 살아 낸다. 다시 말하면, 보편적인 진리가 선험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은 많은 사람들의 믿음을 맹신으로 보고, 이의 해체 작업을 온몸으로 시도하는것이다.
사적인 견해이지만, 옮긴이는 사도의 권세와 책임을 다하는 사람만이 천국에 이른다는 주장에는 승복하지 않는다. 만일에 작가 크로닌이 이 책에서 안셀름 밀리는 천국의 열쇠를 얻지 못할 것이라고 암시했다면 옮긴이는 기꺼이 동의하겠지만, 프랜시스 치점만이 천국의 열쇠를 얻을 것이라고 암시했다면 옮긴이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프랜시스 치점에게 천국의 열쇠가 약속된다면 마땅히 윌리 탈록도 그런 약속이 베풀어져야 하리라고 믿기 때문이다. 전적으로 의지하지는 않았다고 하더라도 '만사를 형통하게 하는 기도'를 무기로 싸운 치점 신부의 싸움보다도 맨손으로 싸운 탈록 의사의 싸움이더 치열하지 않았겠는가? 자선만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다는 주장은 우리를 쓸쓸하게 한다.
만일에 탈록이 믿음이 없었다는 이유로 천국의 문전에서 거절당했다면 치점 신부는 어떻게 할까? 그런 천국을 거부하는 치점 신부를 보고싶다.
번역가인 이윤기 선생님의 마지막 문장이 이 책의 주제가 아닐까.
'천국의 열쇠'는 종교 밖에 있다는 것으로 읽힌다.
저자 크로닌은 의사이면서 소설가이다.
600 페이지가 넘은 방대한 분량에 경의를 표하고 싶다.
신앙인이든 비신앙인이든 상관없이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돌아보게 한다.
문장 곳곳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가 재미를 더하고
무엇보다 치점이 폭이 얼마나 넓은지
상대에 따라 어린아이가 되기도 하고
군인이 되기도 하고, 노회한 노인장의 모습까지
불모지 중국에서 보낸 그의 삶은 실천으로 똘똘 뭉친 삶이었다
성자는 가장 누추한곳
세상이 외면했거나 관심 없는 곳에서
그들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세상의 관심이란 필요없다는 듯이..
7월 책은 김연수다
이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다정하고 위트있는 통찰 정확한 문장
읽고 쓰고 말하는 사이에 일어나는 삶의 기적'
책이 있어 좋다.
★ 팔목은 여전히 아프지만 옮겨놓고 보니 많다..
그래도 줄이고 싶은 부분이 없으니...
이젠 시간날 때 마다 폰으로 음미할 일만 남았다
읽어보라고 강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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