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식주의자
아내가 채식을 시작하기 전가지 나는 그녀가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끌리지도 않았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달발머리, 각질이 일어난 노르스름한 피부, 외꺼풀에 약간 튀어나온 광대뼈, 개성있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듯한 무채색의 옷차림..... 중략.....내가 그녀와 결혼한 것은, 그녀에게 특별한 매력이 없는 것과 같이 특별한 단점도 없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채식주의자 도입부다.
궁금해서 기사를 접하자 마자 사고 싶은 책이었는데.....
받자마자 하루만에 다 읽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술술 넘어가는데
아프다
읽는 동안 계속....
읽고나서도... .
그리고 며칠 간도 그랬다.
.
여리고 약한 것들
힘없는 것들
사랑받지 못한 것들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저려왔다.
그리고 내 유년기. 어쩌지 못했던 시간들에 대한 연민도 올라왔다.
가부장적이었던 아버지의 억압에 대한것들까지..
이 책엔 두자매가 나온다.
똑같은 아버지 밑에서
잘 견딘 것이 언니라면
정신병원 신세까지 지게되는
'채식주의자'로 남편이 일컫는 동생 혜영이다.
도입부(채식주의자)는 혜영의 남편이 화자다.
그리고 두번째(몽고반점)는 형부가 화자다
세번째 (나무 불꽃)는 언니가 화자다
이 소설의 장치가 재밌는 건 정작 주인공 그녀(동생 영혜)는 화자가 되지도 못한것이다.
그녀를 짐작하려면 그녀를 보는 삼자(남편, 형부, 언니)의 객관성을 통해서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무리 어떻게 얘기하더라도
삼자라는 전제가 깔리게 된다.
작가의 의도에 경의를 표할 수 밖에 없다.
하고 싶은 말이 주저리주저리지만 각설하고...
봄이 올 때까지 아내는 변하지 않았다. 매일 아침 풀만 먹게 되긴 했지만 나는 더이상 불평하지 않았다. 한 사람이 철두철미하게 변하면 다른 한 사람은 따라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녀는 하루하루 말라갔다. 그러잖아도 튀어나온 광대뼈가 볼썽사납게 뾰죽해졌다. 화장하지 않으면 피부가 병자처럼 핼쑥했다. 육식을 끊는다고 모두 아내처럼 살이 빠진다면 누구든 체중감량에 애를 끓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나는 알고 있었다. 아내가 여위는 건 채식 때문이 아니었다. 꿈 때문이었다. 아니. 사실상 그녀는 잠도 자지 않았다.
그녀는 늘 꿈을 꾼다
알수 없는 꿈
밑도 끝도 없는 꿈
그것이 억압인건지.......추상적인 꿈이지만
나중에....자기 안의 또 다른 자기라는 정도로 풀어주고 있다.
그 꿈을 꾸기 전날 아침 난 얼어붙은 고기를 썰고 있었지. 당신이 화를 내며 재촉했어,
제기랄, 그렇게 꾸물대고 있을 거야?
일지,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 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래서 오히려 일들이 뒤엉키지. 빨리. 더 빨리. 칼을 쥔 손이 바빠서 목덜미가 뜨거워졌어.. 갑자기 도마가 앞으로 밀렸어. 손가락을 벤 것, 식칼의 이가 나간 건 그 찰나야
검지손가락을 들어올리자 붉은 핏방울 하나가 빠르게 피어나고 있었어. 둥글게, 더 둥글게, 손가락을 입속에 넣자 마음이 편안해졌어. 손홍빛의 색깔과 함께, 이상하게도 그 들큼한 맛이 나를 진정시키는 것 같았어.
두번째로 집은 불고기를 우물거리다가 당신은 입에 든 걸 뱉어냈지. 반짝이는걸 골라 들고 고함을 질렀지.
뭐야 이건! 칼조각 아냐!
일그러진 얼굴로 날뛰는 당신을 나는 우두커니 바라보았어.
그냥 삼켰으면 어쩔 뻔했어! 죽을 뻔했잖아!
왜 나는 그때 놀라지 않았을까. 오리려 더욱 침착해졌어, 마치 서늘한 손이 내 이마를 짚어준 것 같았어. 문득 썰물처럼,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나갔어. 식탁이, 당신이, 부엌의 모든 가구들이. 나와 내가 앉은 의자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
다음날 새벽이었어, 헛간 속의 피웅덩이. 거기 비친 얼굴을 처음 본 건.
"당신이 서두를 때면 나는 정신을 못차리지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허둥대고...."
그녀와 그녀 남편의 모습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당신이 서두를 때면...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두 사람의 관계는 동물적인 관계라고하면 이상할까.
부부사이에 이런 긴장감으로 산다면
사랑이 남아 있을 수 있을까.
혜영은 이 날 이후 남편을 넘어선다.
남편의 어떤 발광!에도 반응하지 않게된다.
말하자면 넘어서버렸기 때문에 대응하지 않고,
그러므로 그녀는 초연해진다.
무엇 때문일까.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져, 내가 뭔가의 뒤편으로 들어와 있는 것 같아. 손잡이가 없는 문 뒤에 갇힌 것 같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걸 이제야 갑자기 알게 된 걸까. 어두워, 모든 것이 캄캄하게 뭉게어져 있어.
이 문장에 공감이 간다
모든 것이 낯설게 느껴지는 시간,
뭔가의 이면을 봐 버린 것 같은 시간.
고립감.
나를 둘러싼 모든 것이 미끄러지듯 밀려나갔어.
식탁이, 당신이, 부엌의 모든 가구들이.
나와 내가 앉은 의자만 무한한 공간 속에 남은 것 같았어
그녀가 상대적이지 않게 된 순간
그녀는 낯설게 느껴지는 세상으로 와 버린 것이다.
내가 믿는 건 내 가슴뿐이야. 난 내 젖가슴이 좋아. 젖가슴은 아무것도 죽일 수 없으니까. 손도 발도 이빨과 세치 혀도, 시선마저오, 무엇이든 죽이고 해칠 수 있는 무기잖아. 하지만 가슴은 아니야, 이 둥근 가슴이 있는 한 난 괜찮아. 아직 괜찮은거야. 그런데 왜 자꾸만 가슴이 야위는 거지. 이젠 더이상 둥글지도 않아. 왜지. 왜 나는 이렇게 말라가는 거지. 무엇을 찌르려고 이렇게 날카로워지는 거지.
나는 손윗동서가 부러웠다. 미대를 나와 작가라고 행세하긴 하지만 생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 동서였다.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지만 벌지 않고 쓰기만 해서 한계가 있다. 처형이 팔을 걷어붙였으니 동서는 이제 평생 예술이나 하며 마음 편이 살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처형은 예전의 아내처럼 음식솜씨가 좋다. 딱 부러지게 차려놓은 점심상을 보니 나는 새삼스레 허기를 느꼈다. 적당히 살이 오른 처형의 몸매, 사근사근한 말씨. 커다랗게 쌍꺼풀진 눈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잃고 살아왔을지 모를 많은 것들을 아쉬워했다.
남편의 심리가 잘 묘사된 부분이다.
남편은 마음은 처형을 향하고,,,,.
형부는 처제를 향하고...
하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
평생 예술이나 하며 마음 편히 살것 같은
남편의 손윗동서다..
평생을 노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허리가 구부정하게 굽은 뒷모습으로 장인은 탕수육을 아내의 얼굴에 들이밀었다.
"먹어라, 애비 말 듣고 먹어. 다 널 위해서 하는 말이다. 그러다 병이라도 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냐."
가슴 뭉클한 부정이 느껴져.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마 그 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허공에서 조용히 떨고 있는 장인의 젓가락을 아내는 한손으로 밀어냈다.
"아버지. 저는 고기를 안 먹어요."
순간 장인의 억센 손바닥이 허공을 갈랐다. 아내가 뺨을 감싸 쥐었다.
"아버지!"
처형이 외치며 장인의 팔을 잡았다. 장인은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듯 입술을 실룩거리고 있었다. 한때 성깔이 대단했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장인이 누군가에게 손찌검하는 광경을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다.
"정서방, 영호, 둘이 이쪽으로 와라."
나는 머뭇거리며 아내에게 다가갔다. 뺨에서 피가 비칠 만큼 아내는 세게 맞았다. 그녀는 그제야 평정이 깨진 듯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 두 사람이 영혜의 팔을 잡아라."
"예?"
"한번만 먹기 시작하면 다시 먹을 거다. 세상천지에, 요즘 고기 안 먹고 사는 사람이 어디 있어!"
불만스러운 얼굴로 처남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누나 웬만하면 먹어. 예, 하고 먹는 시늉만 하면 간단하잖아 아버지 앞에서 이렇게 까지 해야 겠어."
장인이 고함쳤다.
"무슨 얘길 하고 있어, 어서 팔 잡아라 정서방도."
"아버지 왜 이러세요."
처형이 장인의 오른팔을 잡앗다. 장인은 이제 젓가락을 내 던지고 손으로 탕수육을 들고 아내에게 다가갔다. 아내가 엉거주춤 뒷걸음치는 것을 처남이 붙잡아 바로 세웠다.
"누나, 그냥 좋게 먹어, 누나가 받아서 먹어."
처형이 애원했다.
"아버지, 제말 그만 하세요."
처형이 장인을 잡은 팔힘보다 처남이 아내를 잡은 팔힘이 셌으므로, 장인은 처형을 뿌리치고 탕수육을 아내의 입에 갖다댔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아내는 신음소리를 냈다. 뭔가 말하기 위해 입을 벌리면 그것이 들어올까봐 말조차 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아버지!"
처남은 소리쳐 만류했으나. 얼결에 아내를 잡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으음...음!"
고통스럽게 몸부림치는 아내의 입술에 장인은 탕수육을 짓이겼다. 억센 손가락으로 두 입술을 열었으니, 악물린 이빨을 어쩌지 못햇다.
마침내 다시 화가 머리끝까지 치민 장인이 한번 더 아내의 뺨을 때렸다.
"아버지!"
처형이 달려들어 장인의 허리를 안았으나, 아내의 입이 벌어진 순간 장인은 탕수육을 쑤셔넣었다. 처남이 그 서슬에 팔의 힘을 빼자. 으르렁거리며 아내가 탕수육을 뱉어냈다. 짐승 같은 비명이 그녀의 입에서 터졌다.
"...... 비켜!"
아내는 몸을 웅크려 현관 쪽으로 달아나는가 싶더니, 뒤돌아서서 교자상에 놓여 있던 과도를 집어 들었다.
"여 영혜야"
장모의 끊어질 듯한 음성이 살벌한 정적 위에 떨리는 금을 그었다. 아이들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이를 악문 채.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의 눈을 하나씩 응시하다가 아내는 칼을 치켜들었다.
"말려....."
"피해!"
아내의 손목에서 분수처럼 피가 솟구쳤다. 흰 접시 위로 붉은 피가 비처럼 쏟아졌다. 무릅을 접고 주저않은 아내에게서 칼을 뺏은 것은, 그때까지 줄곧 방관하고 앉아 있던 동서였다.
- 채식주의자 중에서...
여기까지가 채식주의자에 나오는 얘기다.
중간, 중간 영혜의 꿈이야기를 통해서
그녀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걸 엿볼 수 있다.
생일이라고 가족이 처형집에 모였다.
언니가 준비한 음식을 쳐다만 보는 영혜에게
친정아버지가 억지로 밀어넣는 지경까지 간다.
섬뜩한 공포감, 폭력성, 너를 위한다는 미명하에
사랑이라는 미명하에 가하는 가족의 폭력성
출가한 딸에게도.....
어느 누구도 그녀의 입장을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
그녀의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엄마, 남동생 가족 모습에서 잘 드러난다.
두 사위가 있었지만 남동생과 남편마저도
장인의 폭력성에 방관자 였을뿐....
아니 동조하는 부분도 보인다.
이런 아버지 밑에서 영혜가 받은 상처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 무기력 뿐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결혼을 했을 것이고,
남편 또한 아버지와 다르지 않음을 보게 되고.... .
그녀가 할 수있는 일은 동물적인 것들을 거부하고 싶은 상태..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저항이라고 해봐야 자학정도 였을 것이다.
자신의 입으로 들어가는 말고는 저항할 것이 없는 ..
그녀은 말라가고 있다.
그녀의 선택은 굶어 죽고 싶은 것이다.
채식주의자가 아니라 인간의 잔학상이 싫은 것이다.
그것을 먹으니 자신도 똑 같이 그리되는 것 같으니 거부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그녀를 채식주의자로 지칭한다.
이것또한 이 사회가 가하는 폭력성이라고 할 수 있다.
몽고반점
처제의 외꺼풀 눈, 아내 같은 비음이 섞이지 않은, 다소 투박하나 정직한 목소리. 수수한 옷차림과 중성적으로 튀어나온 광대뼈까지 모두 그의 마음에 들었다. 아내와 비교한다면 훨씬 못생겼다고도 할 수 있는 처제의 모습에서, 가지를 치지 않은 야생의 나무 같은 힘이 느껴졌다. 그렇다고 그때부터 처제에게 다른 마음을 품은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저 마음에 드는구나. 자매이고 닮은 부분이 많은데도 미묘하게 느낌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스쳐가듯 했을 뿐이었다.
아내가 어느날 아들을 목욕시키고 팬티 입히는 모습을 보면서,
"아직도 몽고반점이 제법 크게 남아 있군, 대체 언제나 없어지는 거지?"
라고 물었을 때. 아내는 이렇게 대답한다.
"글쎄..... 나도 정확한 기억은 없는데. 영혜는 뭐, 스무살 까지도 남아 있었는걸"
하고 말하게 된다.
"스무살?"
"응.....그냥, 엄지손가락만하게, 파랗게, 그때까지 있었느니 아마 지금도 있을 거야."
아내의 대답이 뒤따르지 않았다면, 여인의 엉덩이 가운데에서 푸른꽃이 열리는 장면은 바로 그 순간 그를 충격했다. 처제의 엉덩이에 몽고반점이 남아 있다는 사실과, 벌거벗은 남녀가 온몸을 꽃으로 칠하고 교합하는 장면은 불가해하 만큼 정확하고 뚜렷한 인과관계로 묶여 그의 뇌리에 각인되었다.
그림과 사진을 하는 화자(형부)는 어느날
공연포스터(벌거 벗은 남녀가 등을 보인채 목덜미에서부터 엉덩이까지 붉고 푸른 꽃과 줄기 무성한 잎사귀가 그려진 것)를 보게 되고, 그 이미지에 1년전부터 사로잡혀 있었고,
그것이 아내를 통해서 아내로부터 처제 엉덩이 몽고반점 얘기를 들으면서
구체적으로 작업을 해보고 싶은 욕망에 사로잡힌다.
그녀가 살아으면 하고 그는 바랐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그는 의문했다. 그녀가 자신의 목숨을 내던져버리려 했던 순간은 인생의 코너 같은 거였을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도울 수 없었다. 모든 사람이 - 강제로 고기를 먹이는 부모, 그것을 방관한 남편이나 형제자매까지- 철저한 타인, 혹은 적이었을 것이다. 지금 그녀가 다시 깨어난다 한들 그 상황이 변해 있을 리는 없다. 이 번의 시도는 충동적이었지만 그녀는 다시 시도할 수 있다. 그때는 좀더 주도면밀하게 모든 것을 진행해 이렇게 방해받는 일 따위는 없을 수도 있다.
2년 전에 자살을 시도한 처제
지금은 이혼하고 혼자 살고 있는 처제다.
그제야 그는 그녀의 표정이 마치 수도승처럼 담담하다는 것을 알았다. 지나치게 담담해. 대체 얼마나 지독한 것들이 삭혀지거나 앙금으로 가라앉고 난 뒤의 표면인가. 하는 두려움마저 느끼게 하는 시선이었다. 단지 옷을 벗고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한폭의 춘화를 보듯 그녀를 보았던 자신을 그는 자책했다. 그러나 그 잠깐의 영상이 언제든 다시 불꽃을 품고 타들어갈 수 있는 화인으로 그의 눈에 찍혀버렸다는 것을 그는 부인할 수 없었다.
친구의 화실을 빌려서 식물이 되고 싶어하는
처제의 몸에 그림을 그린다.
그제야 그는 처음 그녀가 시트 위에 엎드렸을 때 그를 충격한 것이 무엇이었는지 깨달았다. 모든 욕망이 배제된 육체, 그것이 젊은 여자의 아름다운 육체라는 모순, 그 모순에서 배어 나오는 기이한 덧없음. 단지 덧없음이 아닌, 힘이 있는 덧없음. 넒은 창으로 모래알처럼 부서져내리는 햇빛과, 눈에 보이진 않으나 역시 모래알처럼 끊임없이 부서져내리고 있는 육체의 아름다움.... 몇마디로 형용할 수 없는그 감정들이 동시에 밀려와, 지난 일년간 집요하게 그를 괴롭혔던 성욕조차 누그려뜨렸던 것이다.
- 몽고반점 중에서
그녀는 놀라울 만큼 호기심이 없었고, 그 덕분에 어느 상황에서도 평정을 지킬 수 있는 것 같았다. 새로운 공간에 대한 탐색도 없었으며, 당연한 법한 감정의 표현도 없었다. 그저 자신에게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 같았다. 아니. 어쩌면 그녀의 내면에서는 아주 끔찍한 것,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사건들이 벌어지고 있어, 단지 그것과 일상을 병행한다는 것만으로 힘에 부친 것인지도 몰랐다.
그래서 일상에서는 호기심을 갖거나, 탐색하거나 일일히 반응할 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은 건지도 몰랐다. 그런 짐작을 하게 되는 것은, 이따금 그녀의 눈이 단지 수동적이거나 백치스러운 담담함이 아니라 어떤 격렬함을, 동시에 그것을 자제하는 힘을 머금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던, 이제 동서라고 부를 필요도 없게 된 그녀의 옛 남편의 얼굴을 떠올렸다. 감각적이고 일상적인 가치 외에 어떤 것도 믿지 않는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이 그녀의 몸을 탐했을 거란 상상만으로 그는 일종의 수치를 느꼈다. 둔감한 그는 그녀의 몽고반점을 알기나 했을까.
일상적 가치 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은 듯 건조한 얼굴,
상투적이지 않은 어떤 말도 뱉어본 적 없을 속된 입술,
영혜 남편의 모습을 통해서 영혜의 결혼생활을 짐작해 볼 수 있다.
하지만 이 화자(형부)는 또 어땠는가?,,,,
어린아이가 아니면 가질 수 없는, 그러나 동시에 모든 것이 비워진 눈이었다. 아니, 어쩌면 어린아이도 되기 이전의, 아무것도 눈동자에 담아본 적 없는 것 같은 시선이었다.
중략
삶의 처음이자 마지막 순간인 듯, 활활 타오르는 꽃 같은 그녀의 육체, 밤 사이 그가 찍은 어떤 장면보다 강렬한 이미지로 번쩍이는 육체만을 응시하고 있었다.
- 몽고반점 중에서
처제 몸에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화가 친구를 빌어서 자신의 몸에도 그림을 그려서
처제를 교접을 시행한다.
그 과정을 테이프에 녹음해두는 행위
그 행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나무 불꽃
여기서부터는 언니 이야기다. 영혜는 정신 병원에 가 있고
언니 부부도 이혼을 했다..
언니, 내가 물구나무서 있는데. 내 몸에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 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응, 사타구니에서 꽃이 피어나려고 해서 다리를 벌렸는데, 활짝 벌렸는데....
결혼 전에 그는 말한 적이 있었다.
당신의 선량함, 안정감, 침착함, 살아간다는 게 조금도 부자연스럽지 않아 보이는 태도.... 그런 게 감동을 줘. 그 말은 다소 어려웠기 때문에 그럴듯하게 들렸지만, 오히려 그가 사랑 따위에 빠지지 않았음을 드러내는 고백은 아니었을까.
아마도 그가 정말 사랑한 것은 그가 찍은 이미지들이거나, 그가 찍을 이미지들뿐이었을 것이다.
영혜의 엉덩이에 남아 있는 작고 파릇한 몽고반점이 남편에게 어떤 영감이라는 것을 주었는지 그녀는 알고 싶지 않다. 그 가을 아침 영혜에게 줄 나물을 싸들고 자취방을 찾았을 때 그녀가 본 광경은 상식과 이해의 용량을 뛰어넘는 것이었다. 그는 그 전날 밤 자신과 영혜의 나신에 울긋불긋한 꽃을 가득 그리고는 몸을 섞는 장면들을 테이프에 담았던 것이다.
남편이 찍은 장면들을 전부 봐버린 언니..
그녀는 그 광경을 끝까지 지켜보며 몸을 떨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끌려나가는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그녀는 힘을 다해 그를 쏘아보려 했다. 그러나 그의 눈에 담긴 것은 욕정도 광기도 아니었다. 그렇다고 후회나 원망도 아니었다. 바로 그 순간 그녀가 느낀 것과 똑같은 공포, 그것뿐이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살아갔다. 등뒤에 끈질긴 추문을 매단 채 가게를 꾸려나갔다. 시간은 가혹할 만큼 공정한 물결이어서, 인내로만 단단히 뭉쳐진 그녀의 삶도 함께 떠밀고 하류로 나아갔다.
어린시절부터, 그녀는 자수성가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갖는 강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자신이 삶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스스로 감당할 줄 알았으며, 성실은 천성과도 같았다. 딸로서, 언니나 누나로서, 아내와 엄마로서, 가게를 꾸리는 생활인으로서, 하다못해 지하철에서 스치는 행인으로서까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그 성실의 관성으로 그녀는 시간과 함께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난 삼월 영혜가 갑자기 사라지지 않았다면. 비내리는 밤의 숲에서 발견되지 않았다면. 그날 이후 모든 증세가 급격히 악화되지 않았다면.
정신분열증이면서 식사를 거부하는 특수한 경우예요.. 증증의 정신분열증은 아니라는 확신이 있는데,
그때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의사에게 표했던 재발에 대한 우려는 단지 표면적인 이유이며, 영혜를 가까이 둔다는 사실 자체가 불가능하게 느껴졌다는 것을. 그애가 상기시키는 모든 것을 견딜 수 없었다는 것을. 사실은, 그애를 은밀히 미워했다는 것을. 이 진창의 삶을 그녀에게 남겨두고 혼자서 경계 저편으로 건너간 동생의 정신을, 그 무책임을 용서할 수 없었다는 것을.
다행히 영혜 역시 입원을 원했다. 병원이 편해요 라고 분명하게 의사에게 말하는 평상복 차림의 동생은 차분해 보였다. 눈빛이 또렷했고 입매도 야무졌다.
언니.... 세상의 나무들은 모두 형제 같아.
난 몰랐거든. 나무들이 똑바로 서 있다고만 생각했는데..... 이제야 알게 됐어. 모두 두 팔로 땅을 받치고 있는 거더라고. 봐, 저거 봐, 놀랍지 않아?
어떻게 내가 알게 됐는지 알아? 꿈에 말이야. 내가 물구나무서 있었는데.... 내 몸에서 잎사귀가 자라고 내 손에서 뿌리가 돋아서..... 땅속으로 파고들었어. 끝없이 끝없이.....
아버지의 손찌검은 유독 영혜를 향한 것이었다. 영호야 맞은 만큼 동네 아이들을 패주고 다니는 녀석이었으니 괴로움이 덜 했을 것이고. 그녀 자신은 지친 어머니 대신 술국을 끓여주는 맏딸이었느니 아버지도 알게모르게 그녀에게만은 조심스러워했다. 온순하나 고지식해 아버지의 비위를 맞추지 못하던 영혜는 어떤 저항도 하지 않았고, 다만 그 모든 것을 뼛속까지 받아들엿을 것이다. 이제 그녀는 안다. 그때 맏딸로서 실천했던 자신의 성실함은 조숙함이 아니라 비겁함이었다는 것을. 다만 생존의 한 방식이었을 뿐임을...
막을 수 없었을까. 영혜의 뼛속에 아무도 짐작 못할 것들이 스며드는 것을. 해질녘이면 대문간에 혼자 나가 서 있던 영혜의 어린 뒷모습을.
지금 그녀가 남모르게 겪고 있는 고통과 불면을 영혜는 오래전에, 보통의 사람들보다 바른 속력으로 통과해, 거기서 더 앞으로 나아간 걸까. 그러던 어느 찰나 일상으로 이어지는 가느다란 끈을 놓아버린 걸까. 잠을 이루지 못한 지난 석달동안 그녀는 이따금 혼란 속에서 생각했었다.
산다는 것은 이상한 일이라고, 그 웃음의 끝에 그녀는 생각한다. 어떤 일이 지나간 뒤에라도, 그토록 끔찍한 일들을 겪은 뒤에도 사람은 먹고 마시고, 용변을 보고, 몸을 씻고 살아간다. 때로는 소리내어 웃기까지 한다. 아마 그도 지금 그렇게 살아가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 때, 잊혀졌던 연민이 마치 졸음처럼 쓸쓸히 불러일으켜지기도 한다.
기껏 해칠 수 있는 건 네 몸이지. 네 뜻대로 할 수 있는 유일한 게 그거지. 그런데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지.
그녀는 덩굴처럼 알몸으로 얽혀 있던 두 사람의 모습을 떠올린다. 그것은 분명히 충격적인 영상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시간이 흐를수록 성적인 것으로 기억되지 않았다. 꽃과 잎사귀, 푸른 줄기 들로 뒤덮인 그들의 몸은 더 이상 사람이 아닌 듯 낯설었다. 그들의 몸짓은 흡사 사람에서 벗어나오려는 몸부림처럼 보였다. 그는 무슨 마음으로 그런 테이프를 만들고 싶어했을까? 그 기묘하고 황량한 영상에 자신이 전부를 걸고, 전부를 잃었을까?
그와 영혜가 그렇게 경계를 뚫고 달려나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모래산처럼 허물어뜨리지 않았다면, 무너졌을 사람은 바로 그녀였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다시 무너졌다면 돌아오지 못했으리라는 것을. 그렇다면 오늘 영혜가 토한 피는 그녀의 가슴에서 터져나왔어야 할 피일까.
언니가 동생을 이해하게 되는 부분이다.
이 책의 주제이기도 할 것 같다.
아버지의 폭력, 가정과 사회의 폭력,
영혜가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란
스스로 인간이기를 거부하면서
음식을 거부하는 것으로 귀결된다.
자신을 식물상태로 몰아가는 상황....
.....어쩌면 꿈인지 몰라.
그녀는 고개를 수그린다. 무언가에 사로잡힌 사람처럼, 영혜의 귀바퀴에 입을 바싹대고 한마디씩 말을 잇는다.
꿈속에선 꿈이 전부인 것 같잖아. 하지만 깨고 나면 그게 전부가 아니란 걸 알지.....그러니까, 언젠가 우리가 깨어나면 , 그때는.......
보고 싶은 책이 많아서 이것 쬐끔 저것 쬐끔 보면서 며칠을 보냈다
채식주의자가 주는 메세지는 울림이 크다.
영혜의 아버지에게 화가 났다.
그 아버지는 그 아버지로 부터 그런 폭력을 당했을까.
왜 그는 출가한 딸에게까지 비인간적이었을까
언젠가 내 친정아버지에게 물은 적이 있었다.
칠순이 넘어서였는데
어릴적 야단을 많이 맞았고,
그래서 야단 치는 것에만 익숙한 아버지였던 것 같다고 했다
.
내가 기억하는 우리 할아버지는 동네에서 '호랑이 할아버지' 였다.
리어카에 풀을 한 가득 싣고 지나갈때
아이들이 길에서 놀다가 빨리 비키지 않으면 고함을 치시던
모습이 어렵풋 남아 있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저끔에서 나타나시면
"호랑이 할아버지다" 라고 아이들이 알아서 길을 비켜주었다.
40년도 넘은 이미지다.
그런 할아버지 밑에서 자라서 그런지 아버지는 자신의 일은 알아서 하는 자기 검열의 선구자셨는데유드리라고는 없어서 어떤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엄마도 우리 형제도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 세상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또는 엄마라는 이름도 가능하겠지만 가하는 폭령성을 돌아보게 되었다.
.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영혜아버지와 수많은 영혜.
문학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가져야할 자세는무엇일까
아무도 말하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이 문학의 영원한 숙제라는 생각이 든다.
한강이라는 젊고 유능한 작가에게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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