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수필

눈의 사원

구름뜰 2016. 11. 4. 08:23

 

아버지가 나를 오래 쳐다본 적이 있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나는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왜 당신의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쳐다보실까 생각한 적이 있지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사람은 죽을 때 두 눈을 감지

사랑을 할 때도 두 눈을 감지

독수리는 죽은 자의 두 눈을

가장 먼저 빼먹지 


오래 쳐다본다는 것은 처음으로 보는 것

나는 발밑에 내려와 있는

햇볕을 내려다보고 있었고

그 사이 당신은 나의 무엇을 처음으로 보았나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한 사람의 눈빛은 쉽게 변하지 않지

그리고 오래 쳐다본 것들은 모두 고스란히

두 눈에 담아서 간다네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고영민



 

 어제 도서관 토론 수업중 온 톡!

-친구야 잘지내제? 좋은 글 발표 날인데 니 생각이 나네 ㅋ


수 개월에 한 번씩 오는 고향친구의 톡이다.

시가 필요할 때 오는 전화다. 직장에서 돌아가며 좋은 글 발표를 해야 하는 데 당번인 것이다. 모처럼 하는 톡이니 얼마나 미안해아는 싶은 것이 문자에서도 보인다. 


또 다른 고향친구는 글쓰기가 필요할 때 전화를 했었다. 초고도 없이 산악회 가입을 해서 신입이라 카페에 올릴 기행문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자신이 다녀온 산을 내가 다녀온 것처럼 써준적이 있다. 물론 약간의 인터뷰는 있었다.

한 번은 도서관에서 공부중이었는데 급하게 전화가 왔다 지금 산인데 그 산으로 '삼행시'를 써야 한다는 것이라며 졸랐다. 급하게 졸라서 사전 찾아가며 삼행시를 보낸적이 있었다. 이후 나는 그 친구가 기행문은 대상으로 압력밥솥을 받고, 삼행시도 잠바인가를 받았다는 소식을 한참 후에 듣고 김빠졌다. 순수한 동기로 해 준일이 악용되었다는 느낌, 이후 그런 일은 하지 않았다.


글은 순수한 마음에서 봐 주어야 한다, 말하자면 문인들은 주위 동인의 평이 궁금하다 쓸때마다. 프로 작가들도 아내나 남편 등 초고를 먼저 읽고 평해주는 이가 필요하다. 글은 혼자 하는 작업이지만 퇴고를 앞두고 인쇄전에  한번 더 점검 받고 싶은 것이 글쓰는 이의 마음이다. 


어제는 어떤 주제를 하면 좋을까 물었더니 '부모나 계절'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위 시 '눈의 사원'은  '아버지에 관한 시'이고 어제 친구에게 보낸 시다.


사진은 '금오산 금오산성' 모습이다. 나는 저 산성의 측면사진을 매년 찍어오고 있는데 , 올 해는 유달리 담쟁이가 빨리 떨어진 것 같다. 단풍은 아직 일주일이나 열흘쯤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가을이다. 고향친구들 안부가 궁금해도 선뜻 만나자고 하기엔 거리도 멀고 시간도 멀고 자주 만나지 않고 떨어져 지낸 시간도 너무 멀어서 쉬이 심지가 당겨지지 않는다. 그래도 글 부탁하는 이들이 고향친구인걸 보면 아무래도 그 시절이 가장 뿌리를 깊게 내린 민낯의 추억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2016, 11, 4




 

* 금오산 호텔 흔들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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