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1
의학, 법률, 경제, 기술 따위는 삶의 도구가 되지만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은 삶의 목적인 거야.- 죽은 시인의 사회 중에서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글 그림 김수현
이 에세이는 '한책하나구미운동' 후보도서로 선정된 5권 중 에세이 분야에 뽑힌 책이다
다섯권을 정독하고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하고 토론하는 과정을 거쳐서
최종적으로 한권을 선정하는 절차가 남아 있다,
제대로 읽어야 하는 과제가 있어서 좀 더 집중해서 읽었다.
어른이 된 작가가 어슬픈 어른이 된 자신을 돌아본 글
부모와 성장기 자녀가 함께 보기에 무난할 것 같다.
스스로 어슬픈 어른이 될수밖에 없었다고느끼는 여러 이야기가 진솔하게 풀어져 있다.
인문학적 주제들을 쉽게 풀어놓았다.
쉽게 읽히고 남녀노소 무난히 부담없이 읽기에 좋은 책이다.
좋은 문장들 올려본다.
'
내게 친절하지 않은 사람에게
친절하지 않을 것
-사람의 자존감에 치명상을 끼치는 건,
부당한 대우 자체보다 부당한 대우에 굴복한 자기 자신인 거다.
그러니 우리에게 친절하지 않은 이에게, 우리를 존중하지 않는 이에게, 친절하려 애쓰지 말자.
상황을 바꿀 수 없을지라도 적어도 그들에게 비굴해지지는 말자.
저열한 인간들로부터 스스로의 존엄함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에겐 최소한의 저항이 필요하다.
갑질이란,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갖추지 않은 천박한 갑과, 최소한의 인격적 대우조차 요구하지 않는 무력한 을의 합작품이다.
나를 평가할 자격을 주지 않을 것
내 경우를 말하자면 아무리 능력 있다 해도 숫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사람은 삶의 기쁨이 너무 단출한 것 같아서 전혀 섹시하지 않다. 한마디로 내 취향이 아니다. 그러니까 그 사람에겐 내가 자격미달이겠지만 그 사람도 내겐 자격미달인 거다.
주눅 들 만큼 겸손하지 말 것
우리는 자신을 특별하게 생각하고, 자신의 감정을 존중하도록 교육 받기보다는 타인의 생각과 감정에 더욱 주의를 기울이도록 교육 받았다. 영어에는 대응할 단어조차 없는 '눈치'가 한국인은 유난히 발달한 것도, 서양인이 보기엔 자기비하에 가까운 겸손도 이러한 문화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오랜 수련의 결과 사람들과 잘 어울리기 위하여, 주제파악 못하고 꼴값 떤다는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하여, 고도의 눈치와 겸손을 발휘하며 끊임없이 자신의 자격 앞에서 머뭇거린다. 물론 겸손도, 타인의 감정을 배려하는 것도 미덕이다. 그러나 그 가치는 타인의 눈치를 보며 주눅 드는 것이 아닌 타인에 대한 존중에 있을 뿐이고. 타인의 감정을 염려하느라 정작 자신의 감정은 돌보지 못한다면 그 무엇도 미덕이 될 수없다.
-당신이 가장 존중해야 하는 사람은 언제나 당신 자신이다.
나의 삶을 존중할 권리를 말할 것
차별과 멸시에 대한 공포로 얻은 성취에는 '오만'이 뒤따른다. 다른 내면의 힘 없이 오만만 증식되는 건 안전장치 없이 고층빌딩 위에 서있는 것과 비슷하다. 상시적인 고소공포증, 즉 추락에 대한 공포감만 커질 뿐이다. 게다가 오만이 클수록 추락의 충격도 클 수밖에 없다.
열심히 사는 것도, 열심히 배우는 것도 마음껏 하시라. 하지만 누구의 삶도 모욕할 수 없다.
우리는 각자의 삶을 존중하며 살아갈 권리가 있다.
part 2
내가 아닌 모습으로 사랑받느니 차라리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으로 미움받겠다.
단단한 자존감을 가질 것
심리학자 나다니엘 브랜든은 건강한 자존감을 위한 두 기둥을 자아 효능감과 자기 존중감이라 이야기했다. 자아 효능감이란 자신을 돌보며 현실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다는 자기 신뢰이자 자신감이고 자기 존중감은 스스로를 존중하며 사랑받을 가치가 있다고 여기는 마음이다.
자존감의 본질은 자신에 대한 신뢰이자 행복을 누릴 만한 사람이라 여기는 자기 존중감이다.
-자신의 신념과 반대되는 삶을 살면서 자신을 존중하기도 어렵다. 자존감은 스스로를 믿고 존중할 내면 세계를 세우고 그 신념을 바탕으로 삶을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을 지는 삶의 일련의 과정에서 얻어지는 내면의 힘이다.
-자존감이 높은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기다려 주었다.
당연했던 것에 질문할 것
나의 어린 시절에도 미덕이 있었는데 바로 근면 성실이었다. 비가 오나 바람이 부나, 몸이 아프거나 다쳐도 빠짐없이 학교에 가면 개근상장을 줬고, 칠판 위에는 '근면 성실'이라는 급훈이 쓰인 액자가 걸려있었다. 왜 그랬을까? 근면 성실을 최고의 미덕으로 배운 건 우리 사회가 제조업 기반의 사회였던 것에 있다.
나 외엔 무엇도 되지 않을 것
의사가 된 그는 왜 행복하지 않을까.?
그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안정, 주변 사람들의 인정을 좇으며, 자신의 내면은 바라보지 못했고, 그것은 그의 내면을 공허하게 만들었다.
우리에게 절실한 건, 우리를 증명할 명함이 아니라
누구에게도 증명할 필요 없는 나 자신이 되는 것이다.
세상의 정답에 굴복하지 않을 것
좋은 학생에는 여러 정의가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