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우리는 언젠가 만난다 /채사장

구름뜰 2018. 3. 25. 20:57

 



모든 관계는 내 안에서 별을 이룬다


삶을 가치있게 만드는 것은 부와 명예가 아니라 내 곁의 사소한 사람들. 가족과 친구와 연인과 동료들이라고 지혜로운 사람들은 말해주었지만, 이 말의 의미를 진정으로 이해할 만큼 우리가 성숙했을 때, 그들은 곁에 남아 있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한 심오한 물음들, 나는 누구이고 어디에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해답은 자기 안에서 발견되지 않는다. 뜻하지 않게 던져진 이 세계와, 우연처럼 만나 손잡은 타인들로부터 우리는 천천히 해답에 다가가게 될 것이다.


-타인는 닿을 수 없는 무엇이 아니라 나를 기다려준 존재이고, 타인으로 가득찬 세계가 사실은 아름답고 살 만한 곳이었음을.



이 책은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타인, 세계, 도구, 의미 이렇게 4가지 주제로 40개의 이야기가 실려있다.


'타인에 대한 공포를 넘어서 그들을 향해 손 내밀 준비를 마친 이들에게

이 책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란다"는 문장으로 이 책은 시작한다.





타인



'만남이란 놀라운 사건이다. 너와 나의 만남은 단순히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넘어 선다. 그것은 차라리 세계와 세계의 충돌에 가깝다. 너를 안는다는 것은 나의 둥근 원 안으로 너의 원이 침투해 들어오는 것을 감내하는 것이며, 너의 세계의 파도가 내 세계의 해안을 잠식하는 것을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별 모양의 지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별 모양의 지식이 담겨진 책을 읽으면 될까요? 한 번에 읽으면 안 될 것 같으니 어려 번 반복해서 읽어보는 거죠.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는 별이라는 지식을 얻을 수 없어요. 지식은 그런 방법으로 얻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른 책을 펴야 해요. 삼각형이 그려진 책, 사각형이 그려진 책, 원이 그려진 책, 이런 책들을 다양하게 읽었을 때. 삼각형과 사각형과 원이 내 머릿속에 들어와 비로소 별을 만드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이해하려면 그것 밖으로 걸어나가서, 그것에서 벗어난 뒤, 다른 것을 둘러보야만 한다.

-모든 지식은 언젠가 만난다. 중에서



인간은 모두 자페아다. 모든 의식적 존재는 자신의 마음 안에 갇혀 산다.

당신에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일수록 사회는 그것을 중요하게 다루지 않는다. 당신의 자유, 당신의 내면 성격, 당신의 영혼, 당신의 깨우침, 당신의 깊은 이해 그 어떤 것도 사회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에게 닿을 수 있는가. 중에서





세계라는 것이 우선 존재하고 다음으로 내가 태어나서 그 위를 밟고 돌아다니는 것이라고, 세계와 자아의 선후관계가 명확한 것이다.


-세계는 언제나 자아의 세계다. 객관적이고 독립된 세계는 나에게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나는 내가 해석한 세계에 갇혀 산다. 이러한 자아의 주관적 세계, 이 세계의 이름이 지평이다. 지평은 보통 수평선이나 지평선을 말하지만, 서양철학에서는 이러한 의미를 조금 더 확장해 자아의 세계가 갖는 범위로 사용한다. 즉, 지평은 나의 범위인 동시에 세계의 범위다. 우리는 각자의 지평에서 산다.


그래서일 거다. 폭풍 같은 시간을 함께하고 결국은 다시 혼자가 된 사람의 눈동자가 깊어진 까닭은, 이제 그의 세계는 휩쓸고 지나간 다른 세계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더 풍요로워지며, 그렇기에 더욱 아름다워진다.


헤어짐이 반드시 안타까운 것은 아지다. 그것은 실패도, 낭비도 아니다. 시간이 흘러 마음의 파도가 가라앉았을 때, 내 세계의 해안을 따라 한번 걸어보라. 그곳에는 그의 세계가 남겨놓은 시간과 이야기와 성숙과 이해가 조개껍질이 되어 모래사장을 보석처럼 빛나게 하고 있을 테니.

-사랑은 떠나고 세계는 남는다. 중에서


깊은 침묵속에서 서늘함을 오로지 견뎌내야 하는 시간, 슬픔과 안타까움은 차라리 그가 기댈 유일한 위로가 되었다.

-떠나 보내야만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중에서





세계 


'가슴이 무너진 날, 그 사람에게로 가자, 그의 손을 잡고 이 밤을 보내는 거다. 바로 그 순간, 세계는 나를 중심으로 회전하고 일상의 하찮음은 주변부로 사라진다. 사랑하는 이를 품에 안는다는 것은 그래서 그렇게도 놀라운 일이다.'


세상에는 끊임없이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고 어쩔 수 없이 자기만의 시간을 고스란히 지내야만 한다. 오랜 시간 세상을 살아가며 얻게 된 소중한 경험과 이해는 오래 산 존재들과 함께 침묵 속으로 사라지고, 세상은 이 세상이 처음인 싱싱한 존재들이 장악한다. 그래서 아름다운게 아니겠는가.세상이 이렇게 치열하고 다채롭고 활력 넘치는 이유가."


당신이 보아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어딘가의 목표점이 아니라 지금 딛고 서 있는 그 들판이다. 발아래 풀꽃들과 주위의 나비들과 시원해진 바람과 낯선 풍경들. 이제 여행자의 눈으로 그것들을 볼 시간이다.

-열심히 살아도 괜찮은가. 중에서


우리가 세계에 던져졌다고 할 때. 그 세계는 지구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우리는 나 자신에게 던져졌다. 당신은 당신에게, 나는 나에게 그래서 그것은 신비한 일이다. 왜 나는 당신이 아니라 나에게 던져졌고, 당신은 내가 아니라 당신에게 던져졌는가? 거기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떤 뜻과 이유가 있는 것일까?

그것은 의문에서 시작해서 의문으로 남을 것이고, 질문으로 시작해서 체념으로 끝날 것이다.


-나의 생각, 나의 사유, 나의 논리, 나의 합리성, 나의 믿음, 그 모든 것이 진정으로 내가 노력으로 얻은 것이고 순수하게 나의 것인지. 아니면 내가 던져진 나에게 속하는 속성 때문인지 우리는 판단할 수 없다.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한계. 한국인으로 태어났다는 한계, 특정 종교를 믿는 문화권에 속해 있고 과학이 진리의 왕좌를 차지한 시대에 살고 있고,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까지가 던져져 얻은 나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왜 나는 나에게 집착하는가. 중에서





자아의 내면세계에서 시간은 우리의 상식처럼 하나의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겉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사람은 자기만의 시간 방식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이는 현재에 살지만 다른 이른 과거에 살고, 또 다른 이는 미래에 산다.


부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의 소멸에 집중하기 때문에 주어진 현실에 충실하지 못하고 종교나 사후세게, 형이상학적인 무언가에 집착한다. 이들은 허황된 것들을 좇다가 정작 중요한 현실을 망가뜨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 어떤 타당한 이유를 대고 반대편의 입장을 비판한다고 해서 실제로 그러한지가 결정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이 타인의 삶이고, 타인의 내면에서 평가될 일이다.


'부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과 '존재를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같을 수는 없음을. 부재에 대한 사유는 현재의 나를 무기력하게 잠식하는 동시에. 나로 하여금 무엇인가를 갈구하게 하는 유일한 동력이 된다.

-부재를 사는 사람 존재를 사는 사람. 중에서






도구


이야기는 나와 세계를 관계 맺게 하는 도구다. 우리는 날것 그대로의 세계를 볼 수 없다. 어떤 안경이 되었든 반드시 집어 들어야 하고, 그 안경의 색깔이 만들어내는 명도와 채도 안에서만 세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세계의 거대함은 이야기를 통해 나에게 의존하고, 나는 이야기를 통해 세계의 거대함을 포용한다.


'이야기'는 통증의 다른 이름이다. 그것은 완화된 방식으로 우리가 세계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하고, 비로소 작은 개인을 거대한 세계와 관계 맺을 수 있게 한다. 책을 많이 읽고,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낯선 영화를 보고, 여러 음악을 듣고, 세계에 대한 깊은 호기심을 가진 사람일수록 예민한 감수성으로 보편적 윤리와 은폐된 고통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이유가 이것이다. 그것에 세계의 둘레와 경계까지 나의 감각을 확장하고, 결국 세계의 고통을 내가 감지하게 된다.

-모든 관계는 통증이다. 중에서





자신의 삶을 객관적인 사실과 정보과 데이터로만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내가 처했던 어려움의 이유, 수많은 만남과 헤어짐. 그속에서 운명처럼 마주하게 된 사람과 반복되는 계절과, 고독하게 늙어간다는 것의 의미. 이것들은 다만 의학, 생리학, 사회학, 경제학, 심리학의 보편적 해석으로 설명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내 인생의 소중한 기억들은 나 스스로에 의해 선별되어 마음의 앨범 속에 배열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심연의 진실과 뒤섞여 하나의 이야기로 서술된다. 그리고 이야기는 결국 우리를 깨닫게 한다. 나는 누구이고, 왜 이곳에 왔으며,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를, 우리는 이야기를 통해 나와 세계의 의미를 비로소 이해하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는 도구다. -세계와 나를 맺어주는 도구.중에서


진리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전체 집합 U가 있다. 이것은 다양한 세계를 포함하는 집합이다. 전체집합 안에는 수많은 세계관과 이야기가 뒤섞여 있다. 어느 때에 이곳에 하나의 단일한 부분집합 A가 탄생한다. 집합 A는 스스로를 진리로서 규졍한다. 문제는 진리의 개념 자체가 보편성을 내포한다는 것이다. 즉 A는 스스로 진리임을 외치는 동시에 이렇게 믿는다. 모든 것이 A여야 한다. 다시 말해서 U=A다 되어야만 하는 것이다. 그런데 현실적 문제가 발생한다. U에는 집합 A에 포함되지 않는 이질적인 세계관 집합 B,C.D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A에게 이들의 존재는 인정될 수 없다. A에게  B,C,D의 차이는 중요하지 않다. 그들은 다만 A의 여집합. 즉 'A'가 아닌 것들로 규정된다.


이제 A에게는 역할과 의무가 발생한다. A가 진리이고 보편이며 전체이기 위해 A가 아닌 것들에 대한 제거가 필연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본격적인 폭력이 가해진다. 폭력은 다양한 양상으로 드러난다. 회유, 유인. 강제. 억압.


이 와중에 A의 감정 상태는 흥미롭다. 분노와 연민, 우월감과 초조함, 이것을 스스로 진리 집단이 된 존재가 진리를 전파하는 과정에서 느끼기에 적합한 감정 상태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 만연한 미시적 폭력의 실체다. 학문과 종교에서, 정치와 사회에서 그리고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하나의 진리 집단이 일어서고 그것이 타자에게 어떤 영향을 행사해 왔는지를 당신과 함께 돌이켜보고자 함이다.


우리는 세계를 점검해봐야 한다. 나의 세계 안에는 무엇이 있고, 밖에는 무엇이 있는지. 혹시 나는 고집스레 단일한 진리관을 움켜쥐고 빈곤하게도 이것만으로 평생을 살아가려고 작정했던 것은 아닌지를. 또한 외부의 내가 모르는 많은 것을 단순히 비진리라고 규정해버림으로써 그것을 안 봐도 괜찮은 것들이라고 스스로 위안했던 것은 아닌지를 당신이 진정으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이라면 점검해봐야 한다.


당신과 나 그리고 우리의 세계가 흑과 백으로 칠해진 것이 아니라. 다채로운 색깔로 빛나게 되기를 기대한다.

-진리에 대하여. 중에서



인문학의 본질은 질문하고 사유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인문학은 우리 모두의 것입니다.


자본주의는 우리에게 강요한다. 네 전문 분야가 아닌 곳에서는 입다물고 소비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하가. 나는 이것이 아쉽다. 왜냐하면 우리는 결국 놀지 못하고 관계 맺지 못하고 생각할 줄 모르는, 다만 소비해야 하는 존재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빼앗아 가는 것들. 중에서


책과 시 이것은 상반된 방향으로 나아가지만 타인의 내면에 정교하게 다가갈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신비하고도 독특한 도구이자 매개물이다.


책이 쓰이는 일반적인 과정을 상상해본다. 여기 한 명의 저자가 있다. 그는 오랜 시간 자기 내면으로의 침잠과 고독속에서 감정과 이념의 거대한 덩어리를 키워낸다. 충분한 시간이 흘러 이 덩어리가 안정되고 아름다워지면 마음의 동요를 일으킨다. 그러나 그는 곧 좌절한다. 타인에게 연결된 통로라는 것이 너무도 작고 하찮음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언어의 불완전성, 언의 태생적 한계, 어쩌면 이러한 부족함이 자유나 즐거움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책과 시를 읽는 이유, 그것이 나를 자유롭게 하고 즐겁게 하는 이유는 저자의 생각이 오롯이 나에게 주입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것에 개입하고 재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할 수 있어서인지도 모른다. -언어의 두가지 방향. 중에서





시를 쓴다는 것


글을 써본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 것이다. 글이란 것이 블랙홀처럼 나의 모든 시간을 빨아들이지 않던가. 나는 하루에 대여섯 개의 시를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그렇게 긴 하루를 보냈다.


책을읽는 다는 것


책은 불안을 잠재운다. 당신도 느꼈을 것이다. 세상 사는 일에 치이고 머릿속이 복잡하고 신경이 예민해져 있을 때, 책 읽을 겨를이 없다며 핑계 댈 것이 아니라 도서관에 가서 몇권이 책을 골라보자. 그리고 안 읽히는 책은 쉽게 지나쳐 보내고, 힘들이지 않고도 읽히는 책을 힘들이지 않고 읽어보자. 그 짧은 시간 동안 마음의 불안은 점차 가라앉고 머릿속의 안개는 조금씩 걷히게 될 것이다. 이유는 문명하다. 당신의 내면을 가득 채우고 있던 체험들의 엉킨 실타래가 풀리며 언어로 정리되기 때문에.


그래서 행운이다. 당신이 충분히 나이 들었다는 것은. 서른을 넘기고, 마흠을 넘기고, 노동을 하고, 사람들을 만나고, 사회의 부조리와 대면하고, 사랑하는 사람을 돌보고, 이별하고 삶의 누추함과 고통을 이해하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당신이 이제야 비로소 인류가 오랜 시간에 걸쳐 남겨온 보석 같은 고전들을 읽을 준비가 끝났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너무 어릴 때 책을 읽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아니라 당신이 책을 펼쳐야 한다.

-세계에서 들려오는 타인의 말과 자기 안에서 들려오는 내면의 말을 조율함으로써, 이를 등불 삼아 당신 앞에 놓인 길로 안심하고 들어서게 될 것이다.

-책을 읽는다는 것 , 언어에 대하여 3 중에서





타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은 고독하다. 이들은 고독 속에서 자기 안으로 침잠해가며 두려움을 느낀다. 그것은 그들의 내면의 소리를 듣기 때문이다. 깊은 사유와 기도와 명상과 침묵 안으로 끝없이 내려가는 자들. 아무것도 있을 리 없는 그곳에서 그는 도대체 무엇과 관계 맺으며, 누구의 얼굴을 대면하고 있는 것일까.


그것은 결국 죽음일 수밖에 없다. 부재, 불가능, 존재하지 않음, 무, 왜냐하면 그는 세계의 끝까지 걸어간 것이기 때문이다. 


죽음 가까이에 도달한 먼 미래의 나의 목소리에, 최후의 순간을 눈앞에 두고 있는 나의 목소리에. 그때의 나는 지금의 나에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지금 젊음에 휘둘리고 있는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주어진 인생 전체를 충분히 경험하고 마지막에 이르러 비로소 지혜로워진 입으로, 지금 젊음에 휘둘리고 있는 나에게 무엇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가?

- 내면의 말 '언어에 대하여'. 5 중에서



그곳에 가서 이쪽을 돌아보면 어떤 아쉬움이 남을까

죽음 가까이에서 어떤 마음일지

 지금 미리 돌아본다면 좋겠다는 얘기를 하고 있다.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나에 의해성된 이야기는 나의 세계의 진실성을 방영할 뿐이다. 그것은 타자의 세계를 재단는 기준이 될 수 엇고, 세계 전체를 기술하는 보편적 진리가 될 수 없다."


의미




"여행자, 그래서 이것이 모든 나라는 존재의 숙명이다. 여기에 이유나 목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확실한 것은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이 지루하고도 긴 무한이라는 시간 동안 이 우주에서 저 우주로 눈뜨고 휘둘리며 여행할 것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세계를 여행하다 이곳에서 이렇게 만나게 된 것일까?"


꿈과 현실 두 가지 세계는 동일한 것일지 모른다. 꿈속에서 마음 썼던 감정들이 꿈에서 깨어남과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것처럼, 현실에서 집착하던 감정들은 죽음과 함께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사라지고 말 것이다. 꿈이 아무런 기반도 없는 환영인 것처럼 현실도 실제로는 아무런 기반도 갖지 않는다. 

-꿈이 삶을 가르친다 - 꿈에 대하여 중에서..


우리는 타자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방법을 알지 못하는 까닭에 그가 가진 외적 조건만으로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습관을 갖는다.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자는 그의 내면도 훌륭할 것이라 믿고, 험한 일을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보잘것 없을 것이라 믿으며, 나에게 고개 숙이는 자는 그의 내면도 나약할 것이라 믿고, 내가 고개 숙여야 하는 자는 그의 내면도 강인할 것이라 믿는다. 그가 입은 옷, 그의 학벌, 직업, 지위, 경제력, 그 외에 우리가 타자에게서 볼 수 있는 것은 없다. 물론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우리의 눈은 대상의 물리적 표면에만 머물고, 각자가 가진 내면세게는 언제나 자기 자신에게만 열리기 때문이다. 우리가 외부에 집착하는 것은 우리가 나므고 못난 존재이기 때문이 아니라 생물학적인 인간으로 태어났다는 태생적인 한계 때문이다.

-팔라우의 해파리로 산다는 것. 중에서


"주체와 객체의 문제.그것이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주체로서의 나와 객체로서의 세계의 문제. 즉, 의식의 장에서 드러나는 나와 세계의 관계.

-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에서



우리는 세계의 선후 관계를 상정하고 마음을 놓는다. 세계는 개별적 객체들보다 앞서 있다. 이것이 상식이다. 하지만 실제로 그러한가? 정말 나보다 세계가 앞서 있는가? 나 이전에도 세계가 있고, 나 이후에도 세계가 지속되는 것인가? 그렇다고 확답하기에는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다. 그것은 내가 결코 나의 존재 이전, 나의 존재 이후를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와 독립해서 홀로 존재하는 세계는 나에게 경험되지 않는다. 세계는 자아와 독립된 실체가 아니다. 세계는 언제나 자아라는 그릇에 담긴다.

-세계의 존재는 보는 존재로서의 '자아'의 문제와 얽혀 있기 때문이다. 존재의 문제는 인식의 문제와 분리되지 않는다.

분명히 직시해야 한다. 상식적인 사람들이 믿는 것과는 달리 자아의 세게는 물리적 대상에 한정되지 않는다. 나의 세계는 물리적 대상을 한참이나 뛰어넘는다.


당신과 내가 인생 가운데서 우주가 원하는 아름다운 대답을 찾아낼 수 있기를. 그리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길고도 긴 시간 이후, 영원이라 불러도 그릇됨이 없는 시간을 더 보낸후에, 하나의 의식 안에서 만나 얼굴을 대면하고 서로가 찾은 지식과 지혜를 즐겁게 나눌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우리는 왜 존재하는가. 결론을 향하여 4 중에서



본질적인 물음을 끌고가는 저자의 인식이 매우 이성적이다.

주체와 객체라는 말도 공감이 간다.

 

철학적 주제가 많고, 사유나 질문에 대한 생각이 좋다.

 '한책하나구미운동' 후보 도서인데

구미시민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하고 읽기 쉽다면 좋겠는데 쉬운 책은 아닌것 같다.


한 도시의 시민들이 1년간 같이 읽고 주제를공감하고

이야기 하기에 좋은책인지.


모든 시민이 이런책을 읽고 질문하고 답해보는 시간

독서를 통해서 사유의 폭을 넓힐 수 있다면

정말 좋은 주제가 다뤄진 책이기도 하다.


잘 읽었다. 좋은 문장보다

반짝 반짝 빛나는 사유와 지식 인식. 무엇보다 작가의 세계관이 마음에 든다.

특히 '진리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부분의 쳅터가 좋았다.

이글을 마지막까지 읽어온 분이라면 위로 돌아가서

'진리는 어떻게 폭력이 되는가'  부분을 한번 더 정독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2018,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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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책 하나구미운동의 후보도서는 5권이다. 낼모레면 이 중 한권이 선정된다.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 가 무난할 것 같은데 책 선정은 구미시 독서 진흥위원회의 회의를 거쳐서 결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