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향기

마그누스 / 실비 제르맹

구름뜰 2018. 6. 19. 09:19

 


 

"적절한 때에 이야기되지 않은 것은

다른 시대가 오면 순전한 허구로 간주된다."

-아하론 아펠펠드



마그누스/실비 제르맹(1954~)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함부르크에 가해진 대규모 폭격으로

어린 시절의 기억을 상실한 소년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설이다.

역사의 비극 속에서 성장해가는 소년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에게 저질러진 불의와 폭력,

그리고 용서와 화해의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독서회 6월 선정도서여서 탐독한 책이다.

문장이 수려하고 작가의 집중력이 놀라운 작품이다.

소설이 이정도라면 손에서 책을 놓을 이가 없을 것이다.

번역문 임에도 깊이 있는 문장이다.


내가 블로그를 하는 이유는 

놓치고 싶지 않은 순간들이나 다시 보고 싶은 것들을 언제 어느자리에서든

볼 수 있는 기록물의 유익함 때문이다.

마그누스' 또한 그런 이유로 옮겨 본다.



운석 한 조각에서 우리는 우주의 기원과 관련된 몇 가지 사소한 비밀을 유추해볼 수 있다. 뼈 한 조각에서 선사시대 동물의 골격과 생김새를 끌어내고, 식물의 화석을 통해서는 오늘날 사막이 되어버린 지대에 한 때 풍성한 식물군이 존재했음을 추측해보게 된다. 태곳적을 말해주는 이처럼 미미하고도 끈질긴 흔적은 수없이 남아 있다.


파피루스나 도기 한 조각을 보며 우리는 수천 년 전 사라진 어떤 문명으로 거슬러올라갈 수 있으며 한 단어의 어근에서 출발해 수많은 파생어와 의미를 알아낼 수도 있다. 우물이나 씨앗에는 어김없이 견고한 생명의 핵이 들어 있다.


그 어떤 경우에도 수수께끼를 풀려면 상상력과 직관이 필요하다.


-글을 쓴다는 것은 프롬프터박스로 내려가, 단어들 사이 혹은 주위에서 때로는 단어들 한복판에서 언어가 침묵하며 숨쉬는 소리에 귀기울이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프롤로그 중에서



단장 2


비장함과 숭고함이 가득한 이 가족의 영웅담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매혹적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결함을 지니고 있다. 겉보기에는 사소한 결함이지만 아이는 그 때문에 몹시 슬프다. 어머니가 마그누스(곰인형)를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하찮게 여기다못해 경멸하고 혐오한다고 해도 좋았다. 마그누스와 자신. 프란츠게오르크는 절대로 떼어놓을 수 없는 사이였는데 말이다. 결국 아이는 아무도 모르게 이 친구를 전설 속에 들여놓는다. P17 




'함부르크에 폭격'이 가해지던 날 5살 아이는 엄마와는 함께 있었다.

엄마에게 화마가 덮치는 걸 보며 자리를 피하게 되었고

손에 쥔 것은 마그누스 밖에 없었다.

이후 이 아이는 기억을 잃어버렸고 고아원에서 지낸다


테아는 백지 상태의 이 아이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뜻대로 키우기에 좋은 조건이기에

아이는 여섯살에 입양되었고

기억이 없었으므로 친부모인줄 알고 자란다.



그러므로 '마그누스'는 엄마 테아에겐 버리고 싶은 인형이었을 것이고

프란츠에겐 무언지 모르지만 놓으면 안되는 정체성이었던 셈이다.



단장 3



명상은 결코 게으름이 아니라 기억을 단련하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라는 사실을 프란츠게오르크는 아버지에게 설명할 말도 용기도 찾지 못한다.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표현하지 못해 무엇보다 아버지 마음에 들 수 없다는 슬픔에 그는 무기력한 눈물만 흘린다.




명상을 좋아하는 아이

아버지와 어머니 아래서 자신이 생각하고 느끼는 바를 잘 표현하지 못했던 아이는

 스스로 생각하는 환경에 익숙해진다.


 기억은 없는 것이 아니라 못할 수도 안할 수도 있다. 

명상이 좋은 건 '그런 기억을 들여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지그시 끝까지 들여다 보면 어느 순간,.

그때는 몰랐던 것이 사진처럼 남아 있다.

그것들은 대체로 내가 외면하고 있었던 것들이다.

.


이 책의 첫 문장

적절한 때에 말해지지 않은 것은 순전한 허구가 되기도 하는 것처럼.



이 목소리 때문에. 그 매력적인 저녁 시간에 듣는 목소리 때문에. 프란츠게오르크는 아버지를 사랑하며 무한히 존경한다. 아버지는 좀처럼 다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았고 그것이 아이에게는 상처였지만, 그래도 상관없다. 아버지의 노래는 고통을 달래기에 충분하며, 적어도 이 고통을 행복한 멜랑콜리로 바꾸어 놓는다. 아버지는 냉담하지만 그의 노래는 피난처요 기쁨이다. 아버지의 가슴속에는 밤의 태양이 깃들어 있다. P23



아버지는 의사였고 바빴다.

'어느 저녁' 프란츠는 아버지의 노래를 듣게 되고

그 노래가 가진 아름다움에 취한다.

고통마저 행복으로 바꿀수 있을 것 같은 노래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았지만 그 노래의 힘으로 

모든 것이 용서되는 경험을 한다.



단장 4



3월 어느날 밤 둥켈탈은 가족을 이끌고 도둑처럼 남몰래 집을 빠져나온다. 한 손으로 어머니를 붙잡고 선 프란츠게오르크는 밤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을 쫓기 위해 다른 한 손으로 자신의 곰인형을 꽉 껴안는다.


그들은 모든 것을 잃었다. 이름조차. '둥켈탈을 켈러'라는 이름으로 바꿨다. 부모는 이제 '오토'와 '아우구스타 켈러'가 되고, 아이는 그저 '프란츠 켈러'라고만 불린다. 곰인형 마그누스만 정체성을 그대로 보존한다. 아이는 이런 부조리한 변화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한다. 굳은 빵덩어리나 담배꽁초 같은 하찮는 것들마저 물물교환의 대상이 되는 이 혼돈의 상황에서는 이름마저도 교환 가치를 가질 수 있는 거라고 하지만 그것을 무엇과 바꿨는지 그래서 무슨 이득을 얻었는지 이해하지 못한다. 부모도 자세히 설명해 주지 않는다.  


- 어른들의 숱한 말과 행동이 아이에게는 수수께끼 같지만, 그렇게 놀라움과 의심과 의문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자신의 고독 속에서 무르익도록 내버려둔다. P29



독일의 패전으로 아버지 둥켈탈은 도망자 신세가 된다.

이름도 바꿔 숨어지내는 상황이다

아이에게는 아무런 설명도 없었지만 바빴던 아버지와 함께 지내는 것만으로

이전 보다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




단장 5


아이는 어머니가 의도한 엄청난 기만 속에서 부유하며, 주위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현실과 동떨어진 순진무구한 삶을 산다. 그 야만적인 현실을 직접 목격하고 겪으면서도 마침내 재회한 부모와 함께 살게 되었다는 사실에 가난과 굶주림마저 하찮게 여겨질 정도다, p36


"세상에 친구 하나 있더라도 이 순간 그를 경계하라. 그의 눈과 입은 다정할지 몰라도. 이 거짓된 평화 한복판에서는 전쟁을 꿈꾸나니."-아이헨도로프 P37




단장 6


프란츠는 아홉 살이지만 서둘러 어른의 대열에 낄 생각이 전혀 없는 듯하다.


- 어른들의 모호한 세계를 더 깊이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 어른들이 열중하거나 만족을 얻는 일들로 미루어, 천박하고 비참하기까지 한 무언가를 추측해본다. 게다가 어른들은 별로 믿을 만한 사람들 같지도 않다. 수년간 조용히 전념해오던 일을 갑자기 놓아버리고 이름까지 갈아치우더니 종내 세상 끝까지 도망쳐버리니 말이다.


- 파괴 행위가 단순히 도시만이 아니라 특정한 민족 전체를 상대로 이루어진다는 것. 이것은 어린 프란츠의 이해력을 넘어서는 일이다.


유대인 학살을 얘기하고 있다.



-어머니는 아들이 이 끔찍한 장면들에 맞설 수 있게 돕거나 무어라 설명해주기는 커녕 언급을 일절거부한다. 아들에게 큰 정신적 충격을 가하며 사고를 마비시키고 산산조각내는 장면들을 앞에 두고 악착같이 사실을 부정하려고만 한다. 심지어 이런 정보들을 거짓으로 치부하고 사진들을 속임수라 비난한다. 그리고 원한과 확신에 찬 목소리로 단정짓는다. 정복자들이 퍼뜨린 이 모든 중상모략 때문에 아버지가 도망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고.



어머니의 독설은 분명 허위와 불성실의 악취를 풍기지만 아이는 여전히 어머니의 지배를 받는다. 그녀가 단정하는 것이 진실일 수밖에 없다.



종전 뒤에 열린 재판 과정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그의 동료인 율리우스 슐라크나 호르스트 비첼의 이름과 함께 수도 없이 언급됐다. 아버지는 전범의 낙인이 찍혔는데 이 말은 이해를 넘어서는 엄청난 것이어서 프란츠는 그 정확한 의미를 도저히 파악할 수 없다.


- 아이는 아버지에게 쏟아지는 비방을 문제 삼으며 고통받기보다 자신의 과거에 깃든 공백 쪽으로 관심을 돌려 유년기를 집어삼킨 기이한 블랙홀을 조심스레 살핀다.



마음속 깊이 잠들어 있는 신비에 얼마나 몰두했는지, 아이는 그 덕분에 활기를 찾는다. 그것이 살갖 및에서 덧없는 느낌을 퍼뜨리며 몸속에서 전율하는 것이 느껴질 때도 있다. 고통인지 쾌감인지 단언할 수 없는 느낌이다. P44


자의식이 발달되기 전 

아이는 교육으로 만들어지는 예를 소설은 보여주고 있다.





약주


클레멘스 둥켈탈 (1904년 4월 13일생)나치 친위대의 최고 중대 지휘관. 수용소에 수용된 사람들 중에서 약자와 병자를 가려 가스실로 보내는 임무를 맡으며 수많은 수감자들의 가슴에 직접 페놀 주사를 놓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역할에 가담. 결석재판에서 종신형을 선고 받았지만 나치 비밀기관 오데사의 도움으로 도피에 성공. P46



아버지가 전범이라는 걸 알지만

아이는 부모가 함께 있게 된것만으로도 좋다는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내와 아이를 두고 혼자 피신한다..


그렇게 3년간 아이와 아내를 내버려두더니 자살 소식만을 전해 왔다.


.



단장 7


그녀는 남편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여러 나라를 거친 삼 년간의 도주 끝에 간신히 멕시코에 이르러 정착하려 했지만 거기서도 자신이 위험에 처한 채 감시와 추적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력이 다해 모든 희망을 잃고 자살을 택한 것 같았다. 그가 신분을 숨기기 위해 죽기 전 마지막으로 사용한 가명은 '펠리페 고메스 에레라'였다. P47


아이는 자연과 대지와 하늘에서 위안을 찾는다. 야외의 대기를 들이마시며 그곳에 자신의 감각들을 펼쳐놓는다. 그리고 이 사물을 하나하나 오래도록 명상한다. 프란츠에게 몽상은 가시 세계와 소리와 냄새를 천천히 음미하는 그런 작업이다. P48


"얘가 프란츠게오르크야."


"이분이 로타르 외삼촌이야."


"함께 런던으로 떠나거라. 네 짐은 벌써 싸두었다. 떠나기만 하면 돼."


"네 지저분한 마그누스도 가져가라. 살짝 손봐서 네 가방 안에 넣어두었다."


어린 시절 말의 힘을 빌려 아이를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한 그녀가 이제 그 아이를 먼 곳으로 내쫓고 있다. 냉정한 몇 마디 말로. P53



테아는 남편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다가

희망이 절망으로 바뀌었고 병에 들어 죽음을 앞두게 된다.

오빠인 로타르에게 아홉살 프란츠를 맡긴다.


오빠 와는 다른 삶의 궤도로 접어들었지만

죽음을 앞두고 맏길 곳은 핏줄 밖에 없었다.


한때는 양지였으나 망한 독일에서 도망자 내지는 은둔자 신세가  된 여동생

오빠는 양지쪽 사람들이 득실거릴 때 음지를 택한 사람이었다.


 목사였던 오빠는 교회 재건을 위해 운동하다가 역부족임을 알고

조국을 떠나기로 마음 먹고 런던으로 이민 간 터였다.


그렇게 다시는 만날 수 없고 찾지도 않을 것 같던 누이가

죽음을 앞두고 신뢰한 건 오빠였고

프란츠는 처음 만나는 외삼촌 로타르를 따라 영국으로 간다.





단장 8


난파한 나치 독일에서 살아남은 이 어린 침입자(여기서 프란츠는 또 한 번 아담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 앞에서 하넬로레 외숙모는 어떤 감정도 드러내지 않는다. 그곳 독일에서는 마침내 하느님이 찬양을 받고 둥켈탈 부부는 파멸하고 만 터였다.



- 그녀는 부모와 나라와 이름을 모두 잃은 이 아이에게 동정과 불신이 뒤섞인 묘한 감정을 느낀다.


 

- 아담은 하넬로레에게 침묵으로 화답하며 감정을 조금도 드러내지 않는다. 또 최근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서도 전혀 언급하지 않는다. 각자가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무수한 질문과 묻어둔 말들로 무거워진 마음으로.


여기서 프란츠는 또 한번 이름이 바꾸는 경험을 한다

외삼촌이 권해준 이름 보다 스스로 선택한 이름 '아담'.

아담의 성장기는 이렇게 파란만장 해진다.

그렇지만 아이는 차분하고 내적으로 자신에게 시선을 두는 삶을 살아가게 된다.


외삼촌과 외숙모는 자신의 엄마 아버지와의 상처로

이곳 런던까지 이민온 가족이었으므로

그 두사람에게 조카인 아담이 반가울 리 없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삼촌 외숙모는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다 해주는 셈이다.



그러나 아담은 세월이 흐르면서 점차 슈말커가의 내막을 알아간다. 더 나아가 어머니가 그토록 찬양하고 아버지가 비천할 만큼 헌신적으로 섬긴 독일제국의 숨겨진 얼굴을 발견한다. 진실을 차츰 일깨워준 사람은 로타르다. 아이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 무지에 잠겨 있었는지. 그릇된 순진무구함에 안주해 있었는지 로타르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 진실을 직면하는 것이 두려워 유년의 달콤한 무지 속에

언제까지나 피신해있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리하여 현실이 아이의 목덜미를 움켜잡는다. 조국땅을 휩쓴 잔인성으로 인해 깊이 상처 입은 이민 가정에서. 이방의 도시에서. 아이의 가족 중 몇몇도 가담했던 잔인성이다. 히털러의 인질로 붙잡혀 있던 독일을 떠나기로 로타르와 하넬로레가 차츰 결심을 굳히게 된 이유에 대해서도 마침내 이해하게 된다. P58



아담의 엄마였던 테아는 외삼촌인 로타르보다 한살 반 어린 여동생이었다.

테아가 아버지가 재직하던 외과대학의 학생인 '클레멘스 둥켈탈'을

만나기 전까지만 해도 사이좋은 오누이였었다.


테아가 둥켈탈과 결혼을 하고 둥켈탈이 히틀러가 이끄는

독일 국가사회주의 노동당원이 되면서부터 이집안의 비극은 시작된다.

테아에겐 쌍둥이 남동생이 둘 있었고 그들마저도 둥켈탈에 의해 히틀러를 숭배하게 된다.







1925년 베를린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하며 '디트리히 본회퍼'를 알게 된 로타르는 1934년 1월 나치 반대 진영해 가담해 고백교회를 지지한다. P58



장남인 로타르는 비아리아계 처녀(하넬로레)를 약혼녀로 소개하면서

가족간의 불화의 골은 더 깊어지게 된다.

로타르를 제외한 이 집안의 모든 가족들은

둥켈탈로 인해 정복자 독일제국 히틀러의 편에 서게 된다.


.

저마다 제 갈 길로 갔다. 클레멘스와 테아는 정복자 독일제국의 우렁찬 노랫소리에 맞춰 환한 대낮을 걸었고, 로타르와 하넬로레는 용기만으로 버티기에는 턱없이 수가 부족한 지하 전사들의 저항 조직에 가담해 비밀 활동을 했다. 영광에 찬 약속에 취하거나 야만적인 정권에 얌전히 순종하는 편을 택한 군중은 타락한 현 체제를 대대적으로 지지했다. P60



1938년 몸, 결국 로타르는 이주를 결심한다.


.


클레멘스가 프란츠와 게오프크(로타르의 막내 쌍둥이 동생)에게 해로운 영향력을 마음껏 행사하도록 방치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통감했지만 빌헬름 슈말커 내외는 이미 오래전에 환상에서 깨어나 있었다.  처음에는 체제의 도래를 다소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았지만 얼마 안 가 끔찍한 거짓과 광기와 야만성을 목격하며 당황했다. 그래서 두 막내아들에게 어떻게든 경각심을 심어주려 애썼지만 소용이 없었다. 쌍둥이 아들들은 히틀러를 신으로 여겼고 클레멘스를 본보기로 삼으며 전쟁을 소명으로 아는 광신자가 되어 있었다.

 


전쟁 혹은 범죄에 대한 그들이 도취는 성직의 반열에 올라 있었다.

프란츠와 게오르크는 젊은 십자군의 믿음으로 나치 무장 친위대에 입대했다.

 


로타르는 나치 정권이 무너지자마자 독일에 있는 부모 곁으로 돌아가 조국과 무엇보다 루터교의 재건에 일조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나 부모는 연합군의 승리를 불러온 폭격으로 사망하고 많은 친구들도 사라져버린 뒤였다. 디트리히 본회퍼 역시 이년여의 수감 생활 끝에 마지막으로 이송된 폴레센부르크 수용소에서 1945년 4월 9일 교수형에 처해졌다. p63



의사였던 테아의 아버지(슈말커)는 의대생이었던 둥켈텔을 처음에는 좋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이 집안의 몰락은 둥켈달의 나치활동으로 부터 시작된다.

장남 로타르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나치 정권에 충성하는 지경에 이르게 되고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단장 9


슈말커 부부는 후견인으로서 그에게 어떻게든 최상의 교육을 제공하려고 애쓴다. 아담도 그것을 분명히 느낀다. 하지만 그는 외삼촌 집에서 곁가지에 불과한 존재이자 이민자 가정에 사는 이중의 망명자다. 그는 이 집의 아들이 아니며, 결코 아들이 될 수  없을 터였다. 그렇게 여전히 그는 비겁자인 동시에 사형집행인이었던 남자와 어리석고 허영심 많은 공모자인 여자에게서 태어난 자식이다.

혐오스러운 부모를 뇌리에서 떨쳐낼 수 없는 그는 자신에 대한 격렬한 반감에 사로잡힌다.


-그의 내면을 질식시키는 원한은 사춘기를 막 벗어난 그에게 거칠고 무뚝뚝한 성격을 부여한다.

P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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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장 10


여섯 살 이후 삶의 매 순간이 견딜 수 없을 만큼 생생하고 온전하게 공존한다. 그러므로 부모를 머릿속에서 떨쳐내고 그들과 거리를 유지한다는 것은 그에게 불가능한 일이다.



그 이전의 백지 상태에서 여섯살 입양 이후의 기억만 있는 아담!

그의 부모는 최악의 악인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혼돈의 시기

그는 죽은 부모를 찾아가 묻고 싶다. 나를 왜 이렇게 만들었느냐고

응징하고 싶은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

떨쳐내고 싶지만 떨쳐낼 수 없는 ....

.


그는 젊음을 속박당한다. 악이 그의 마음을 포로로 붙잡아두고, 죽은 두 약탈자의 인질로 남게 한다. 이미 죽은 그들이 그렇게 영원히 벌받지 않은 채로 머무르며 그에게 끊임없이 해를 가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모욕당한 아들은 부모에게. 특히 아버지에게 대가를 치르라고 하고 싶다.


- 3학년을 마친 뒤 그는 멕시코로 5주 예정의 여행을 떠난다.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메이 클리너스톤즈'를

 교통사고 상황에서 우연히 구해주게 된다.

메이는 유부녀 였고 테런스는 그의 남편이다

.


글리너스톤즈 부부는 그보다 연상이고 생명을 구해준 인연으로 두 부부를 만나게 된다.



- 아담은 테런스가 매우 섬세한 관찰력의 소유자임을 간파하고, 방만하고 유머러스한 외관 뒤에서 실은 상대방의 말을 몹시 조심스럽게 경청하고 있음을 알아챈다. 그런가 하면 메이에게서는 냉혹함과 열정, 조바심과 열의, 자만심과 냉소가 뒤섞인 복합적인 성격을 발견한다. P85



저녁 식사가 끝나갈 무렵 메이는 핸드백을 뒤지더니 종이봉투에 든 책 한 권을 권낸다.

후안 롤포의 '페드로 파라모'라는 책이다.


이 책과의 만남으로 아담의 정체성 찾기가 시작된다.

책이 매개가 되는 이 상황또한 매우 설득력이 있다.


 


그 책은 아담의 내면에서 졸고 있던 주의력을 덮쳐 오며 눈을 뜨게 한다. 그는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 떠나는 후안 프레시아도라는 인물의 행적을 단숨에 읽어나간다. 주인공의 아버지 페드로 파라모는 코말라라는 마을을 다스린, 야심과 권력욕에 사로잡힌 하찮은 독재자로 그려진다. 코말라는 시간과 삶 밖으로 밀려나 잊힌, 죽음의 태양 아래 하얗게 달궈진 마을에 불과하다."


 그곳은 땅의 잉걸불이요 지옥의 아가리 그 자체라는 것을." 실제로 코말라는 온통 죽음뿐이다. 후안 롤포의 이 이야기는 그림자들이 비통하게 떠도는 자신들의 목소리를 뒤섞어놓은 죽음의 기이한 다성악이다. P87



시골 마을의 추악한 독재자인 야만적이고 거만한 페드로 파라모는 코말라에 투영된 클레멘스 둥켈탈의 그림자다. 그 어디에도 없지만 사방에 존재하는 마을 코말라.  끈질기게 그의 머릿곡을 맴돌며 괴롭히는. 어디 있는지 모를 마을 코말라. 반향과 부르짖음과 하소연이 배어나오는 남골당 마을.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꿈의 교차라에 자리한 신기루 마을.P89



후안 롤프 '페드로 파라모'

이 책을 찾아보니 정말 유명한 책이다.

아마도 실비 제르맹이  '이 책을 모티브로 '마그누스'를 쓰지 않았나!' 라는

상상을 해 볼수 있는 책이다.




아담은 이 책을 지치도록 읽고 또 읽는다.

아들 후안 프레시아도의 행로를 따라 걷기도 한다.


- 후안 프레시아도는 기억의 잔해 속에서 망각의 미로 속에서 그의 분신이자 안내자다. 그리고 시골 마을의 추악한 독재자인 야만적이고 거만한 페드로 파라모는 코말라에 투영된  클레맨스 둥켈탈의 그림자다. 그 어디에도 없지만 사방에 존재하는 마을 코말라. 끈질기게 그의 머릿속을 맴돌며 괴롭히는, 어디 있는지 모를 코말라. 반항과 부르짖음과 하소연이 배어나오는 남골당 마을. 산 자와 죽은 자, 현실과 꿈의 교차로에 자리한 신기루 마을. p88



당시 독일 풍경을 충분히 짐작해 볼 수 있는 문장이다.

남은자들에게 남겨진

어쩔수 없는. ....... . . .

그럼에도 살아야 하는

죽은자와 산자의 교차로에 자리한...

어떤 상황 상태..


단장 11


그는 코말라를 향해, 아무데도 존재하지 않은 곳을 향애, 스스로를 향해 걸어간다. 광인의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나아간다. 그는 아버지 유령의 목을, 또 그 아버지를 사랑한 멍청한 아이였던 자신의 목을 비틀러 온 본노의 순례자다. p91



자신을 찾아나선 이 순례길에서 아담은 드디어 다섯살적 기억을 떠 올린다.





주민들 틈바구니에서 아섯 살 소년이 있다. 아이는 사람들이 꽉 들어찬 지하실에서 몸을 움츠린 곰인형을 끌어 안고 있다. 


- 아이의 시선이 부서진다. 아이는 그곳에서 타오르는 불을 마주하고, 산 채로 죽음을 맞는다. 기억을, 언어를, 자신의 이름을 잃는다. 정신이 마비되고 심장이 소금 덩어리로 응결된다. 하늘이 폭발하고 잿더미가 된 도시가 노호하는 동안 아이는 자신의 소금 심장이 헝겊으로 된 곰인형의 몸속에서 희미하게 띄는 소리를 듣는다. 잊는다.p101


드디어 제 눈으로 보았던 것

하지만 잊어버렸던 것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사진처럼 남아 있음을 아담은  자신 안에서 찾아낸다.


 파편화된 기억이 되살아 났다




고모라의 이후, 황야의 문턱에서, 지옥의 계단에서.


한 여자가 고아원을 찾아와 아이들을 하나씩 살펴본다.


기억을 모조리 상실했다는 이 어린 소년에게 그녀는 마음이 끌린다.

정신은 지우개로 지워져 새로운 내용을 담을 준비가 되어 있는 백지 같다. 여자는 거기 쓰인 글들을 말끔히 지워내고 자기 마음에 드는 글자로 채워나갈 것이다. 그녀는 대체할 텍스트를 갖고 있다. 죽음에 대해 앙갚음을 할 텍스트를. P104



여기서 여자에게 죽음은 막내 동생 쌍둥이의 죽음을 얘기한다

막내동생들에겐 엄마 역할을 하던 맏이 테아에게

자신으로 인해 나치에 가답하여 죽게된 두 동생은 엄청난 상실감이었을 것이고

그녀는 대체할 텍스트로 아이를 입양하는 것이다.


.


지금 그가 당장 아는 것이라고는 자신이 둥켈탈 부부의 아들이 아니라는 사실뿐이다. 한 번도 그들의 아들인 적이 업었으며, 앞으로도 영영 그러리라는 것이다. 어떤 해방과도 같은 깨달음이었다. 마치 가짜 이름과 가짜 혈통을 벗어던지고 환속한 수도승이 된 느낌이다. 대신 어느 곰인형의 이름만이 그가 누구인지 말해주는 전부가 된다. 과거에 그랬듯이 더 나은 이름을 찾지못해 그가 다시 자기 것으로 삼은 이름. 마그누스. 일리아스 마그누스 이 몽상적인 이름을 가지고 그는 마침내 성년의 문으로 들어가리로 결심한다. P112



메이 - 열한 살 연하인 이 청년과 그녀는 미친듯이 사랑에 빠진다.

그녀가 두려운 것은 나이 차이보다 그에게서 느끼는 매력과 그를 향한 지칠 줄 모르는 자신의 욕구와 집착이다.



-그녀는 일체의 구속에서 벗어나 강한 여자가 되기를 늘 꿈꾸어 왔던 그녀인데 말이다. 열여덟 살에 테런스와 결혼한 날부터 그녀에게는 수많은 애인이 있었지만 그 정도로 그녀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는 없었다. P115



테런스는 형식적으로만 메이의 남편이다.



테런스는 아주 순결하고 편리한 남편이라고. 메이는 웃으며 그에게 설명해준다. 테런스는 남자를 더 좋아하고 남자에게만 사랑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그들의 결혼은 처음부터 서로가 만족스러운 일종의 계약이었다. 상대방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근거로 해가 갈수록 암묵의 깊은 동조로 견고해지는 몹시 융통성 있는 계약이다. 테런스와 메이는 비슷한 사람들이다. 테런스에게 이 결혼은 그의 사회적 신분이 요구하는 체면을 지킬 수 있게 해 주었고, 메이에게는 가족의 굴레에서 보란듯이 벗어나 어린 시절부터 꿈꾸어온 자유를 누리게 해주었다. 



두 사람은 각자에게 닥치는 일시적인 연애에 대해 서로 침묵하지만, 새로 사귄 애인이 다소라도 비중을 차지하게 되면 곧 상대방에게 소개한다. 그리고 이 문제의 애인이 상대방의 마음에 호감을 불러일으키면 관계는 더욱 돈독해진다. 그렇지 않을 경우 애인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고 때가 되면 저절로 정리된다. 부부의 친밀감을 조금도 손상시키지 않은 채.



이 년 전부터 테런스는 스콧이라는 남자를 사귀어왔다. 테런스가 홀딱 반해 있는 이 남자를 메이도 무척 높이 평가한다. P117



클레멘스는 자신의 아들인 게 틀림없는 사생아를 막 얻은 터라 더더욱 입양을 원치 않았다. 클레멘스의 외도를 테아가 얼마만큼 눈치채고 있었는지는 로타르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자신이 꿈꾸는 장밋빛 세상에 방해가 되거나 상처를 줄 만한 것은 모두 부정해버리는데 언제나 대단한 열정을 쏟았으므로, 이 경우에도 기꺼이 장님이 되었을 것이다. P119




둥켈탈은 혼외자를 얻은 상태였고

테아는 불임이었다.



로타르에게 적개심을 품었음에도 그에 대한 신뢰감은 고스란히 남아 있다가 죽음이 임박한 상황에서 다시 머리를 들었다. P120


"땅이 말해줬어요. 땅과, 벌레들고, 태양이....."

"그냥 알아요, 그게 전부예요."P121



로타르가 아담에게 어떻게 입양된 걸 알았느냐고 묻는 부분이다.

로타르 입장에선 말해 줄수도 안해줄수도 없는 그 일을

스스로 알아온 아담에게 반문하는 부분이다.



마그누스는 스무살이며, 스스로에게 이방인이다. 과도한 기억으로 넘쳐나는 익명의 청년이지만 이 기억에는 '근원'이라는 중요한 부분이 결여되어 있다. P122





단장 14


메이 글리너스톤즈는 새로운 창작물을 찾기 위해서라면 수천 킬로밑의 주행도 마다하지 않는다. 마그누스가 그런 그녀와 자주 동행한다. 미술상인 테런스 역시 여행이 잦다.


스콧을 포함해 그들은 4인 가족을 이룬다. 서로 뒤섞이지 않고 만나며 짐이 되지 않고 서로를 지탱해주는 이 관계에서는 사랑이 욕망과 우정의 다채로운 양상으로 굴절된다.P125


1961년 두 사건이 연달아 일어난다. 우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이히만 중령에 대한 재판이 그 하나이며, 두번째는 베를린을 둘로 가르는 장벽이 세워진 사건이다.



이 나치 전범 재판에 관한 한 보도 기사가 물의를 일으킨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주간지 '뉴요커'에 발표한 기사다. 이 기사는 오만무도하다는 평을 듣게 되는데, 특히 그 분석 과정과 판단에 비난이 쏟아진다.



마그누스는 이기사를 읽고 '악의 평범성' 이라는 개념에 동조한다. 그가 보기에는 이 개념이 결코 경솔하게 내뱉은 생각이 아닐뿐더러 오히려 너무 흉하고 수치스러워 보고 싶지 않은 상처에 직접 손가락을 갖다댄 듯하다. 한나 아렌트의 글을 읽으며 그는 다른 이들의 음성이 배경음으로 들려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가 가까이 알고 지냈던, 재난과 죽음을 몰고 온 사람들. 농담을 즐기던 율리우스 슐라크의 쩌렁쩌렁한 웃음소리. 시에 정통했던 호르스토 비첼의 완벽한 시 낭송. 클레멘스 둥켈탈의 낮은 바리톤 목소리. 이들 목소리는 분명 양심의 가책이라곤 없는 무뚝뚝하고 단조로운 어투로 아이히만을 대신해 대답했을 것이다. 자신들의 죄가 없다고 만일 그들이 체포되어 재판을 받았다면 법정의 고소 조항마다 그렇게 대답했을 것이다.



그날 그의 기쁨을 망쳐버린건 귀찮게 따라붙은 수다스러운 여자가 아니라 클라우스라는 이름의 볼이 통통한 남자아이였다. 밤의 주인은 자기 아들에게는 한 번도 드러내 보이지 않았던 관심과 애정을 그 아이에 쏟아부었다. P130



클라우스는 혼외자이다.

마그누스가 일곱살 무렵 베를린에서 아버지와 함께한  동물원 나들이 기억이다.

'밤의 주인'이라고 지칭하는 아버지 둥켈탈과 둘이 있게 되었다는 기쁨보다

 그 아이와 여자를 만난 안 좋은 기억의 회상이다.



메이는 다섯 살에 이미 어머니 노라의 돌이킬 수 없는 원한을 사기도 했다. 당시 그녀의 부모는 몇 년째 마음이 맞지 않은 상태였고, 아버지 라조스는 그녀의 가족과 잘 알고 지내던 주디스 에번스라는 여자와 관계를 맺고 있었다.


-아버지는 쉬고 있는 게 아니라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증오의 대상을 마침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게 된 노라는 상대방의 소망을 염탐하다가 몇마디 말로 그 기대를 산산조각내버렸다.


- "이리 오세요." 메이가 주디스 에번스의 손을 잡고 말했다.  메이는 어머니가 미처 손을 쓰기도 전데 주디스와 함께 거실을 빠져나와 문을 잠근 뒤 층계를 올랐다. 그리고 아버지 방에 그가 사랑하는 여자를 들여보냈다.


메이의 자유분방함을 볼 수 있는 풍경이다.

병든 아버지를 만나러온 아버지의 애인에게

엄마를 거역하면서 만나게 해주는 장면이다.



"I have a dfeam." 꿈은 현실로 들어오기 위해 있는 것이다. 여차하면 현실 안으로 난폭하게 들이닥칠 수도 있다. 꿈은 현실이 비루함과 추함과 어리석음의 진창에 빠져들 때. 이 현실에 빛과 에너지와 참신한 무언가를 불어넣기 위해 존재한다. 사랑의 공포에 사로잡힌 여자의 심장박동 소리가 메이 안에 지칠줄 모르는 활기와 대담성은 물론 속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촉발한 것이다. P135






단장 15



역사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가족사 역시 반복된다.

메이는 이십오 년 전 자신의 나이였던 아버지의 생명을 한 달 만에 앗아간 병에 걸린다.

죽음이 며칠이 아닌 몇 시간 앞으로 다가와 있음을 깨달은 메이는 마그누스에게 방에서 나가달라고. 그리고 테런스를 불러달라고 부탁한다.



그녀는 테런스에게 문을 닫고 침대로 와 자기 곁에 누우라고 말한다. 바로 그의 품안에서, 그녀는 죽기를 원한다. 그녀가 한번도 벌거벗긴 적이 없는 몸. 한 번도 껴안거나 어루만진 적이 없는 그 몸에 기대어. 그녀이 욕망이 다가설 수 없었던 남자, 남편인 동시에 오라비요. 정신적인 동지였던 남자의 그 부드럽고 고요한 몸만이 그녀가 순순히 항복하고 공포나 분노 없이 미지의 죽음으로 건너가도록 도울 수 있다. - 그녀는 자신의 죽음을 존중하고 싶다.



- 더 이상 할 말이 없거나 할 말이 너무 많은 것이지만, 이 순간 그 둘은 마찬가지다. 시간 밖에서, 욕망 밖에서, 헐벗은 사랑으로 그렇게 서로 몸을 바싹 붙이고 있으니 편하다. 두 사람의 암묵적인 동조가 그렇게까지 치밀하고 광범위하며 환하게 빛을 발했던 적이 없다. 그들은 절대적인 신뢰로 서로에게 자신을 내맡긴 채 자아를 망각하는 경이감에 젖는다. 서로를 향해, 세상 속에서, 그렇게까지 뚜렷이 존재해 있음을 느낀적이 없다. 이제는 세상 한복판이 아닌 그 문턱에서.


-

메이를 잃었다는 생각보다 그녀와 함께하며 갖게 된 새로운 정체성을 잃었다는 사실이 더욱 뼈져리게 와 닿는다. 그렇다. 고모라 작전이 감행되던 그 시간처럼 그는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망각으로 비워진 원점이 아니라 기억들로 빽빽이 채워진 원점이다.P144



메이가 살아생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일. 그러니까 테런스를 그가 빠져 있던 연인에게서 돌려세우는 일이 그녀의 죽음과 함게 자연스레 닥쳤다. 유골을 뿌리는 의식이 있고 얼마 뒤 스콧은 테런스와 갈라선다. 연인을 향한 모든 욕구가 갑자가 사라지는가 싶더니 성 불능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 마치 메이가 그의 몸안에서 죽어가며 그의 살갖에 자신의 죽음을 한 조각 내려놓는 것 같았다. - P147


메이가 죽고 마그누스(아담)는 다시 영국으로 돌아온다.



지구 정반대 편에서 보낸 지난 십 년 동안 -그가 새로운 것들과 자유에 취해 마음껏 떠돌아 다녔던 그 시기 동안 - 긴 동면에 들었다가 시간이 되자 깨어나 은밀한 공격을 개시한 것 같았다.



번역가는 이제 역사가가 된다.



-너무 쉽사리 악과 한패가 되는 인간의 광기라는 미로 속에서 탐정은 길을 잃는다. 악과 선, 악과 의무를 혼동하는 인간의 어리석음이라는 심연 앞에서 휘청거린다. 그들은 온순한 열의를 바쳐.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디 더없이 수치스러운 일들을 완수한 것이다. P149



마그누스는 메이가 죽은 뒤 샌프란시스코에서 지내던 방식대로 런던에서 산다. -P165


마그누스는 놀라움과 분노 사이에서 흔들린다. 일언반구도 없이 실행에 옮긴 결과물만 상대에게 불쑥 내놓는 이 편집증적인 행동은 그의 신경을 긁어놓을 만했다.



-그녀를 안고 싶기는 커녕 오히려 따귀를 갈기고 싶을 정도다.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목소리가 적의와 원한으로 가득한 말들을 잔인하고도 태연스럽게 늘어놓고 있다. 더는 그의 것이라 할 수 없는 말들. 그와 상관없는 말들. 그를 공포에 빠트리는 말들이다.


"....너의 모든 것이 역겨워 못 견디겠어. 네가 사라져버렸으면 좋게어. 하긴 그걸로도 부족하지. 너라는 사람을 아예 몰랐어야 했어. 그랬어야 했어."

P179


사춘기 적 첫사랑

첫키스의 대상이었던 페기를 만난다.

페기의 남편은 페기가 퍼 부은 독설에 대한 응답인양 페기 앞에서 자살한다.

'돌멩이가 둔탁하고 불쾌한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이 문장은 절벽에서 바다로 뛰어든 남편의 자살을 의미한다


.


-그녀는 구르는 하나의 돌멩이다. 또다른 돌멩이는 둔탁하고 불쾌한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왜, 어떻게, 그녀가 생각을 하겠는가? 그녀는 인간성을 저버린 참이다.P183







대독의 장점


그의 사고가 저자의 사고와 보조를 함께하며 나아가고 있음을 의미한다. 사고는 하나의 단어나 생각이나 욕구와 마주칠 때마다 혹은 어떤 의미가 계시될 때마다 발길을 멈췄다.  때로는 정신이 아찔해지는 통찰의 순간이 찾아들기도 한다. 남을 심판하지 말라는 요청에 화답하는 다음과 같은 본회퍼의 문장을 대할 때처럼. "내가 무언가를 심판하는 순간 나의 최대 관심사가 악의 절멸이라면, 나는 이 악이 실제로 나를 위협하는 곳, 즉 내 안에서 악을 찾으려 할 것이다."P192



삼촌(로타르)은 시력을 잃고도 독서를 멈추지 않는다.

그는 늙어 실명에 실어까지 생기지만 대독을 통해서라도 독서를 한다..

대독의 장점이 잘 정리된 문장이다..

 



사탄의 진리가 하나 있다. 이 진리의 본질은 진리의 외관 들러쓰고 실재하는 모든 것을 부인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느님이 창조하고 사랑한 세상과 현실에 대한 증오를 먹고산다. 누군가 전쟁 때문에 거짓말을 할 겅우, 그를 거짓말쟁이라 부를 수는 있겠지만 그가 한 거짓말은 본질과는 정반대로 정당화되며 도덕적으로도 용인된다. P195



저마다 자신이 짊어진 시간의 무게를 조심스레 감당한다. 그들은 그 무엇도 부인하거나 삭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방에게 전부 털어놓고 싶다는 소망은 헛된 것임을 안다. 아무리 가까운 사이라 해도 상대방 없이, 상대방과 관계없이 경험한 것을 공유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그것이 사랑이든 증오든 간에, 그들이 공유하는 것은 현재이며, 각자의 과거 역시 이 현재의 눈부신 그늘 속에서 조용히 모습을 드러낼 따름이다. P208



실어의 상태에서 그는 내면의 정적이 지닌 쓴맛을 맛보았다. 이 정적 속에서 언어는 매듭이 풀리고 매 단어에 새로운 무게가 실리면서 울림이 더욱 풍부해졌다. 그리고 침묵이 활기를 띄었다. 그런가 하면 실명을 통해 그는 사물을 보는 또다른 방식을 발견해.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면을 보게 되었다. 장님인 그의 얼굴과 움직이지 않는 손 위로 한 줄기 빛이 퍼졌다. 무엇보다 미소가 환히 빛났다. P210



더없이 가혹한 결핍조차도 (....) 중요한 건, 내개 닥치는 모든 일이 내 안에서 믿음을 찾아낸다는 사실입니다. 디트리히 본회퍼 옥중서한 P215





마그누스와 죽은 줄 알았던 그의 아버지와 재회장면


독일가곡 애호가인 이 칠십대 노인이, 놀라울 만큼 닮은 구석이 있긴 하지만, 과거에 나치 친위대 최고 중대 지휘관이었던 클레멘스 둥켈탈일 리 업다. 도망자 둥켈탈은 삼십 년도 더 전에 항구도시 베라크루스에서 비겁한 인간으로 죽음을 맞았으므로, 그렇게 생각하자 마그누스는 안심이 됐으며 의심을 떨쳐버리고 마침내 긴장감에서 벗어난다. P226



어느날 우연히 들른 카페에서 익숙한 아버지 둥켈탈의 목소리를 듣게 된다.

평생을 증오해 왔던 인물

죽은 줄 알았던 그 아비가 살아있는 이 놀라운 상황이다

문장이 압권이다

추리소설 같은 걸 좋아하는 독자들이 느끼는 문장의 묘미가 느껴지는 문장이다.

숨가쁘게 넘어간다.



한 남자가 발터 되를리히 뒤에 와 서는 모습이 눈에 띈다. 말끔히 면도한 얼굴에 갈색 스포츠머리인, 마흔 살가량 되어 보이는 남자다. 남자가 노인의 어깨에 한 손을 올려놓았는데. 그 몸짓에서 그가 노인에게 얼마나 큰 자부심과 애정을 느끼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갖는 그런 감정이랄까. 실제로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에서 그들이 부자간임이 드러나낟. 클라우스라는 이름의 이 남자와 발터 되를리히가 꼭 닮았다고는 할 수 업지만 클라우스가 클레멘스 둥켈탈의 그 나이 때 모습과 닮았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클레멘스 둥켈탈은 옅은 색의 가는 모발이었던 데 반해 이 남자는 숱 많은 갈색 머리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일치한다.



- 그처럼 정성스러운 은페의 노력도 절반의 성공에 불과하다. 노래할 적의 목소리 억양과 말할 때의 독일식 발음을 고칠 생각은 하지 못한 것이다. 또한 자기 아들이 옛날의 자기 모습을 그대로 빼닮았다는 사실에도 신경쓰지 못했다. 결국 그는 자신의 가장 큰 자랑거리들에게 배신당한 것이다. 그가 지닌 유혹자의 목소리와, 그가 그토록 사랑하는 사생아 메를린 동물원의 클라우츠케에게.



그는 방금 전에 일어난 일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너무 놀라 말문이 막힌다. 유령을 보아서가 인다, 쾌활한 낙천가의 모습으로 잘 살아가고 있는 비열한 인간을 보아서다. 무진장한 파렴치함과 탐욕으로 무장하고 시간 속에서 요리조리 몸을 피해 나아가는 순전한 살덩이. 인간 공동체에 보란듯이 속해 있는 극악무도한 자. 마그누스는 어찌해야 할지 아직 알 수 없다. 모호한 협박의 내용을 어떤 어법으로 전달할지 궁리하며 종이쪽지에 휘갈겼던 말들을 그저 되씹을 따름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내내 폐기의손을 쥐고 있다. 낮과 아름다움의 편에 자리한 인간성과 계속 몸을 대고 있기 위해서



P220~230 몇번을 읽어도 박진감 넘치는 문장이다.

P231 '약주'  문장 압권이다.


노래 실력이 여전하시네요. 클레멘스 둥켈탈 선생님. 죽은 지 삼십 년도 더 된 사람치고는 말입니다. 선생님께는 대체용 목소리가 여럿 있는 게 사실이지요 오토 켈러, 헬무트 슈발벤코프. 펠리페 고메스이 목소리 같은, 그 밖에 또다른 목소리도 있을지 모르겠군요. 다하우, 작센하우젠. 그로스로젠. 베르겐벤젠의 수 많은 당신 '환자들'에게서 훔쳐낸 목소리를 제외하더라도 말입니다.



마그누스가 살아있는 둥켈탈에게 보낸 편지

이 편지를 받은 둥켈탈은 아들과 함께 마그누스를 죽이려하지만

결국 마그누스 대신에 페기가 죽음을 당한다.




페기  메클레인과 클라우스 되들리히는 같은 날 이 도시의 서로 다른 두 묘지에 묻힌다. 마그누스도 되를리히 노인도 병원에 입원중이라 장례식에 참석하지 못한다. 전자는 허리와 대최골에 골절상을 입었고, 후자는 척추가 망가졌다. P236



사랑이 서서히 망가져가는 것을 경험한 있나요? 라고 페기는 편지에서 물었다.

수많은 환희의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갑작스레 닥친 죽음과 이별의 슬픔, 그것도 두 차례에 걸친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두번째는 제 스스로 무덤을 팠다.

그런 경험을 한 적이 한 번도 없기를. 앞으로도 그렇기를 바라라고 그는 덧붙였다.

하지만 그는 사랑이 염증을 일으켜 혐오감에 이르도록 방치하는 것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 말았다. 그 생기발랄한 사랑을 죽음의 손에 넘겨준 것이다. 난데없는 광란으로 번쩍이게 된 냉철한 증오의 이름으로 분노에 사로잡혀 실책을 범함으로써 그건 사랑보다 더 강한 증오였다.

"내가 미쳐가기 시작하는 구나!

그런데 얘야, 넌 어떠냐? 추우냐?

난 춥구나!.... P239


이제와서 심판자의 역할을 자처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마그누스는 지나치게 성급하고 오만하게, 탐정이자 징벌자의 역을 떠맡음으로써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자신이 저지른 잘못과 비정상적인 행동의 증인일 따름이다. 스스로를 가차없이 고발하는 검찰측 증인다.P242


이후 마그누스는 프랑스 모르방 지방으로 들어가서 노후를 맞게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인간이 획득하게 되는 정신이 있다. 그런가 하면 인간 속으로 잽싸게. 눈 깜짝할 사이에 파고들어 내면을 가득 채우는 정신도 있다." 이 정신은 시간을 초월하는 것이어서 시간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라츨라브이 랍비 나흐만  P286






아름답고 수려한 문장이 읽는 내도록 압도한다.

인간의 잔인성과 역사적 사건이 얽히고 섥혀

장편의 묘미를 보여주는 책이다.

몇번을 다시 읽어도 부족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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