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선을 최소화 하다 보니 티브이 시청 시간이 늘었다. 채널을 돌리다 보면 요리 프로그램 전성시대 같다. 어제 저녁 무렵 본 두릅요리, 남편도 귀가 하자마자 봤느냐고 물었다. 오늘 퇴근을 앞두고 먹고 싶다는 전화가 왔다.
장을 보고 재료를 손질하고 밥하고 식사 설겆이까지 이래저래 네시간 정도 걸렸다. 한끼에 드는 시간과 정성에 비해 먹고나면 남는게 설겆이 거리 뿐이지만 사진을 찍어 두면 남는 재미도 있다. 퇴직하면 요리를 해보고 싶다는 말은 애교로 봐도 좋겠다
먹을게 푸짐해도 함께할 이가 귀하다. 코로나가 가져다준 평화!라고 해야 하나 발을 끊은 게 부모 자식을 넘어 이웃과도 소원해졌다. 청주에 사는 큰애는 대구 경북 쪽 본가를 둔 이들에게는 격리되고 싶지 않으면 가지말라는 당부가 기본이라고한다. 우리가 가려해도 노탱큐다.
소수정예로 모이는 패턴에 익숙해져 가고 있다. 세월이 흘러도 이 패턴으로 잘 지낼줄 안다면 코로나 덕분이겠다.
소주 한 병을 반주로 즐긴 시간 신사임당 한 장이 답례로 왔다. 낮에 모임에서 돈이 떨어지면 사랑도 떨어진다고 돈이 사랑보다 우위라고 갑론을박이 오갔다. 솔직한 세상사다. 부끄러움이 솔직함의 부록정도는 되었었는데 이제는 다른 과목이 되어버렸다.
윤리적으로 거리낄 게 없다면 솔직함에 부끄러움이 동반될 일도 많진 않겠다. 문학작품들이 대부분 그 경계에서 노니는거 아닐까 그런 생각도 든다.
각설하고, 문지방을 넘지 않고도 가능한 콘텐츠가 많다. 참 편리한 세월 간소한 일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