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토 or 여행 에세이

대구수목원!

구름뜰 2023. 5. 27. 08:22



부처님 오신 날 전일에 대구수목원 엘 갔었다.

아주 오래전 25년 만에 연락이 닿아 통화하게 된  동무가  "대구수목원으로 놀러 와"라던 말이 아직도 생생한데 그녀가 하늘로 간지도 십 년이 되었다.


오전이라 그런지 유치원생이 많았고  어린이집 아이들도 제법 있었다. 하나같이 다 꽃이었다.


인사도 잘하고 손 흔들면 손 흔들어 주고 동행한 부모님도 아이들 덕분에 방긋이었다.



걸음이 늦은 아버지와 조금은 건강한 엄마 나는 그 중간을 오가야 했다. 팔십도 중반에 접어들었지만 어디든 가자면 좋아하시고 식사도 잘하신다.


친구가 수목원으로 오라던 그때는 가족에게만 집중한 때였다.  


그녀는 내가 사회초년생일 때 직장 선배 언니가 소개해 준 동갑내기였다. 둘이 잘 맞을 거라며......,
언니가 내게 맺어준 건 인연이 닿아야 만난다는 불법(佛法)이 첫째였고 두 번째가 그녀다. 그녀는 승가 주변 일들에 밝았다.


막 초발심(初發心)을 낸 내게 그녀는 마치 전학 온 친구에게 그곳의 문화랄까 생소한 것들을 안내해 주는 멘토 같았다.

스님께도 아니다 싶은 건 소신 있게 의견을 관철키는 반듯한 기운 같은 게 있었다. 법정스님을 소개해준 것도 그녀다. 일단 '무소유'를 보라고.....,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좋은 건 바로바로 흡입, 내 결핍을 채우기 시작했던 게, 궁금한 게 많았고 채워가는 포만감이 좋았다.



그녀는 그림을 그렸고 화방이 더러 있었던 동성로에서 '엽서전시회'도 열었다. 목탄지에 크레파스로 그렸고 엽서만 한 크기에 연필로만 그린 손글씨 작품도 있었다.


선그림을 주로 그렸다. 말하자면 참선하는 스님 모습 같은 걸 선 하나로 수려하게 그려냈다. 연꽃도 마찬가지다. 목탄지 결과 크레파스 결은 매끈하지 않은 공통점이 있었는데 두 재료만으로 가장 간결한 그림을 그려냈다. 80년대였으니까 그 시절 그런 그림은 어디에서도 본 적 없던 때였다.

*마타리꽃

 
'무소유'를 필두로 '서있는 사람들' '말과 침묵' 등 스님의 산문집과 80년대 신간들을 독파해 갈 무렵, 스님 책에서 그녀에 관한 글을 보게 되었다.

불일암에 계실 때였는데 "대구에서 온 미경이 그림엽서를 좌탁 위 벽에다 붙여 놓았는데 간명한 선이 좋아 수시로 눈이 간다"는 대충 그런 문장이었다.

깔끔한 성품이 문장에도 보이는 분인데 칭찬을 그것도 그녀 엽서 그림 이야기를 책에서 보는 감회란,  그리 생각하고 있었으므로 쐐기를 박는 문장이었다..



그녀는 국문학을 전공했고 한학기도 안 채우고 그만뒀다는 얘기는 소개받기 전 알고 있었고, 그런 소신도 놀라웠고 이십대 초반인데도 나는 그녀가 곧 줄가를 할 것 같았다.


출가는 안 했지만 독신으로 명상 수련에 일생을 바쳤다. 해외까지 전파에 힘쓰다 지천명 짧은 생애를 살다가 하늘로 갔다. 그녀의 맨티들이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나무 같고 꽃 같은 삶을 살다 간 맨토리라.


부모님과 왔는데 계속 그녀 생각이 났다. 그때 한번 왔으면 좋았을 걸 같은 마음이었다.

*보리


보리와 밀도 구별 못하는 내게 아버지는 수염으로 구분 지어 주셨다. 보리는 순하고 밀은 거칠달까 다시 본다면 구분할지 모르겠다.

보릿고개 시절 밀서리까지 얘기해 주셨는데 주린 배 달래주던 양식들이 관상용으로 심어진 걸 보는 감회는 어떨지.


*아마도 밀!

*해당화


전시관에 물건들을 볼 때마다 할 얘기가 많으셨다. 농기계를 대신했던 소이야기 베틀 이야기.. 등등등..


"친구도 아는 아우들도 다 죽고 통화할 친구가 없다"
한 살 위 형님이 계신데 가끔 통화만 한다고.  말도 줄고 키도 뵐 때마다 작아지는 아버지!


어떤 기분으로 이 길을 걸으시는지 나는 짐작할 수가 없다.



울창한 숲길!
그녀가 왜 대구수목원으로 오라고 했는지 알 것 같다.  좋은 시간 함께하고 싶은 이가 있다면 대구수목원으로 나들이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언제부턴가 부모님과 함께하는 나들이가 귀하게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