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5월에 나온 이규리 시인의 산문집이다. 뵐 때마다 강조하셨던 시학이기에 익숙하지만 경구처럼 새록새록한 문장들이다. '불편의 시학'을 통해 내가 시에 가지게 된 가치관은 내 삶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고정관념에 관한 자각, 삶의 인식의 전환, 불편, 불안, 불리에 대한 인식 등 여기 불편의 시학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손안에 두고 수시로 보기 위해 블로그에 올려본다. 즐감하시길.....,
'불편'을 이야기할 때면 자꾸 머뭇거리는 마음이 되곤 한다. 불편, 불안, 부족, 이런 단어들은 되도록 기피해야 한다는 오랜 이익주의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이 글은 그 단어들이 내포한 기운을 간과할 수 없고 숨은 뜻을 드러내고 싶은 마음으로 쓰게 되었다. 통상 누구나 불편보다는 편안을, 부족보다는 만족을 꿈꾸며 산다. 그건 우리의 사고가 긍정적이라서가 아니라 획일적이기 때문인데 이 글은 고정관념을 바꿔보고 익숙한 것을 달리 보자는 인식에의 제안이다. 또 다른 저항이라 해두자.
불편의 시학은 불편을 정의하는 시학이 아니라 불편의 선의적 의미를 발견하는 시학이다. 지금까지 우리는 불편을 피하려 애써왔고 불편을 없애는 일에 노력해 왔다. 오랜만에 만나서 하는 인사말도 "요즘 편안하십니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편안한가. 시대를 막론하고 인간은 병들어 있고 우리 삶은 곤고하다. 그건 충족된 여러 요건에도 불구하고 인간 자체가 끝없는 욕망의 덩어리이며 삶 자체가 부조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 안에서 편안하다면 그건 도덕적이지도 윤리적이지도 않은 일이니까.
그렇다면 불편의 덕목은 무엇일까? * '천강성이란 별은 길방을 비추기 위해 자신은 흉방에 위치한다"라고 한다 여기서 흉방의 자리, 자신이 불편의 자리에 선다는 이야기는 타인을 편한 자리에 둔다는 뜻이 되겠다. 시의 자리가 흉방의 자리임에 틀림없다. 시인뿐 아니라 누구든 대상에 군림할 수 없고 멋대로 대상을 왜곡할 수도 없다. 내가 더 낮고 누추한 불편의 자리에서 있는 그대로 보고 듣고 말하려 할 때 삶의 비의를 엿볼 수 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대상은 늘 주인이고 손님이며 우선이라는 것이다. 그러할 때 세계는 자신의 내부를 열어주고 우리는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본질에 조금씩 다가서는 경험을 하게 된다.
가톨릭 교회에서 성인을 추대할 때는 '악마의 변호인'을 세운다. 그는 성인 후보의 반대편에서 철저하게 흠집을 잡고 허점을 찾아내는 역할을 한다. 때로는 '반대를 위한 반대'도 서슴지 않는다. 법률 가들 또한 논리를 세우는 과정에서 스스로 자기주장을 반박하는 '악마의 변호인' 되어 보곤 한다. 반대 편 입장이 되어 내가 맞닥뜨리고 싶지 않은 사실, 귀에 거슬리는 논리를 펼치다 보면 내 논증의 빈 곳들이 속속 드러나는 까닭이다.***
불편의 불편을 감수하면서 준엄한 자기 검열을 필요로 하는 경우는 나와 타인에게 부당한 잘못이 없어야 하며 그로 인해 원칙에 균열이 생기는 일을 용납하지 않아야 한다. 어렵더라도 불편을 통하여 획득하는 것이 진실이며 선일 때, 불편은 합당한 면모를 보여준다. 이것이 아름다움을 지키는 방식일 것이다. 완벽은 불가능하나 완벽으로 가는 자세는 가능하다. 노력이 필요한 이유는 그것이 믿음을 실천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불편이 동행하기 때문이다.
시의 자리도 불편의 자리이며 불편을 껴안는 자리이다. 그 관점은 편안함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 주며 그렇게 쓴 시는 우리에게 묵직한 힘을 준다. 아니라면 우리가 왜 그토록 시에 매달려 있겠는가. 또한 그 힘 역시 노력 없이 나오지 않는다. 다가가려는 노력, 이해하려는 노력, 사랑하려는 노력, 꽃이 올 때 휘몰아치는 바람과 추위를 견디는 생살들의 시간이 그것이다. 본질에 대한 탐구는 삶의 근원을 사고하는 일이므로 고통을 수반한다. 불편을 이해하는 일은 고통을 수용하는 일이며 그로써 이후에 삶을 끌어올리는 일이다.
그렇더라도 시가 우리에게 견딤과 수고만을 강요하는 건 아니다. 낯선 사물들과의 마주침으로 생소한 기쁨을 주며 모르던 사실의 발견을 통해 놀라운 감각을 선물하기도 한다. 편안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경험, 편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세게 '불편의 시학'은 나와 너, 우리에게 삶을 면밀한 방식으로 접근하게 한다. 불편해서 의자를 더 잘 알게 되었고 불편의 편에 있었으므로 당신을 잘 보게 되었다면 시는 이미 해답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어제보다 달라진 시간을 만나게 되며 그것이 불편으로 획득하는 보상인 셈이다. 그렇게 얻은 인식이 겨우 궁극으로 가는 초입이라 해도.
중략......
이성복 선생께서 강의 중 강조한 말씀이 있다. "시의 칼끝을 자신에게로 향하게 하는 것"이라는 말씀, 매우 강렬했다. 다치고 상처받는 쪽은 상대가 아니라 시인 자신이어야 한다는 것. 중략.....
* 원불교 정산증사법 제2부 법어 "청강성이란 별은 자리는 흉방에 있으나 그 가리키는 곳은 길방이라 한 것이 곧 부족한 자리에 있어야 장차 잘 될 수 있는 것을 말한 것이니라 "
불편의 시학 p39 ~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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