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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러움을 안다는 것

유학생 윤동주가 남몰래 시집 출간을 준비합니다. 깊은 죄책과 자괴가 시로 흐릅니다. "나는 말없이 이 탑을 쌓고 있다, 명예와 허영의 천공(天空)에다… 무너질 줄 모르고, 한 층 두 층 높이 쌓는다" '부끄러움의 시인', 윤동주를 일컫는 말입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그런 윤동주에게 시인 정지용이 말합니다. 부끄러움을 아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라고. "부끄러운 걸 모르는 놈들이 더 부끄러운 거지" 마크 트웨인은 '인간만이 얼굴이 붉어지는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수치심과 죄의식은 사람을 사람답게 해주는, 마음의 기둥입니다. 부끄러움이란, 자존을 지키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감정이고요. 시인이 사람은 왜 사슴처럼 우아한 뿔이 없을까 생각합니다. "있지, 더러는 엉..

좋은 기사 2023.02.07

요가원 식구들

케이크를 들고 온 그녀는 촛불만 끄고 갔다 학생들이 마련해 준 것 같은데 요가원 식구들이 더 신났다 어디로 향하든 선의의 보폭에는 근원처럼 샘솟는 기쁨이 있다 내가 내 안에서 좋아하는 마음을 꽃피우고 그 열매를 나누는 일 누구든 이해관계에서 자유롭기란 쉽지 않은데 마음이 먼저 마중 나갈 때가 있다 몸도 맘도 살찌는 일 맛있는 걸 함께 나누는 일이기도 한데 내가 다니는 요가원에는 나처럼 젯밥에 관심 있는 이가 많아 근육처럼 늘어가는 식구들이 있다

사람향기 2023.02.02

우화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거리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 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수야 없겠지 넘치지도 마르지도 않는 수려한 강물이 흔할 수야 없겠지. 긴 말 전하지 않아도 미리 물살로 알아듣고 몇 해쯤 만나지 못해도 밤잠이 어렵지 않은 강 아무려면 큰 강이 아무 의미도 없이 흐르고 있으랴 세상에서 사람을 만나 오래 좋아하는 것이 죽고 사는 일처럼 쉽고 가벼울 수 있으랴.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

시와 수필 2023.0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