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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온 아침!

거창에 첫눈이 왔나 보다 하늘에서 온 건지 구름에서 온 건지 여하튼 온 거다 어젯밤 눈이 올 때 보내온 사진과 이 아침풍경이 예술이다. 이불홑청은 그대로이고 아침은 이렇게 풍요롭다. 풀 먹인 홑청인지 그대로 둔 마음도 여유겠다. 이런 날 먼 데서 사람이 온다면 문득 정현종의 '방문객'이란 시가 생각난다 사람이 온다는 건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부서지기 쉬운 그래서 부서지기도 했을 마음이 오는 것이다 - 그 갈피를 아마 바람은 더듬어볼 수 있을 마음. 내 마음이 그런 바람을 흉내 낸다면 필경 환대가 될 것이다. 눈이 올 때도 되었고 고향 마을 어제와 다른 풍경이리라. 어릴 적 긴긴 겨울밤, 동무집에 모여 놀다보..

사람향기 2023.11.18

사랑으로 ㅡ With Choir 합창단

어떤 주제든 토론할 때 죽이 잘 맞는 친구가 있다. 그녀가 속한 합창단 창단식이 구미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지난 토요일 저녁 6시에 있었다. 단원이 30대부터 80대까지 폭이 넓다는 단장의 소개가 있었고 첫 곡은 '사랑으로'였다. 내가 아는 이는 친구뿐이어서 그랬는지 내도록 친구만 보였다. 그 먼 데서도 입을 크게 벌리는 모습까지 어쩜 이럴 수 있나 싶게 한 사람만 보였다 아는 것과 모르는 건 어마 어마한 차이다. 안다고 반드시 좋은 것만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제대로 보려면 알고 볼일이다. 감동으로 왔던 첫곡이 앙코르를 받고 지휘자의 제안으로 객석도 함께 불렀다. 소년 합창단 공연도 있었다. 초등학생 특유의 굵기도 크기도 자유로운 성장기 모습 그 자체로 좋았다. 얼마나 크게 자랄지 알 수 없는 나무..

사람향기 2023.11.13

해거리

그해 가을이 다숩게 익어가도 우리 집 감나무는 허전했다 이웃집엔 발갛게 익은 감들이 가지가 휘어질 듯 탐스러운데 학교에 다녀온 허기진 나는 밭일하는 어머님을 찾아가 징징거렸다 왜 우리 감나무만 감이 안 열란 당가 응 해거리하는 중이란다 감나무도 산목숨이어서 작년에 뿌리가 너무 힘을 많이 써부러서 올해는 꽃도 열매도 피우지 않고 시방 뿌리 힘을 키우는 중이란다 해걸이 할 땐 위를 쳐다보지 말고 발아래를 쳐다봐야 하는 법이란다 그해 가을이 다 가도록 나는 위를 쳐다보며 더는 징징 대지 않았다 땅속의 뿌리가 들으라고 나무 밑에 엎드려서 나무야 심 내라 나무야 심 내라 땅심이 들어라 땅심이 들어라 배고픈 만큼 소리치곤 했다 어머님은 가을걷이를 마치신 후 감나무 주위를 파고 퇴비를 묻어주며 성호를 그으셨다 꽃과 ..

시와 수필 2023.1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