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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잘못 써내려 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평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ㅡ송순태 *8월 마지막 아침 지우개를 써본지도 까마득하다 시간도 마음도 물처럼 흐른다 바람에 묻어오는 숲 향내와 새소리가 여름은 아니라고 지저귀는 듯하다

시와 수필 2023.08.31

붉은 맛

동무랑 산책길에 가까운 절까지 가게 되었고 인적 없는 도량에 취해 대웅전 옆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안 가본 길로 가보자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 온 뒤라 길은 젖어있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더니 저만치서 문이 열리고 손짓을 했다. 방금 지나온 곳이 지인부부의 공장이었던 것이다 고추라도 따가라며 텃밭을 안내했다. 붉게 한창 물오른 고추밭, 이랑에도 고랑에도 잡초는 없고 씀바귀 한포기 넓적하게 고춧대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면 아마도 김치를 담그지 않을까. 잘 익은 홍고추가 되기까지, 가물었던 봄부터 손이 얼마나 갔을지 정을 한 움큼 받은 기분이다. 열무 한 단을 사고 햇배와 마늘 생강 양파를 듬뿍 갈아서 자박자박 열무김치도 담그고 부추김치도 담갔다 여행에서 돌아와 근 한 달 만에 내 손으로 만드..

사람향기 2023.08.14

태국골프여행3 파노라마 cc

여름을 여기서 지내기 시작한 게 오래전이라는 선경험자들의 얘기를 실감할 만큼 태국 기온은 좋았다. 이른 아침후 6시 정도 티업하면 11시 전에 18홀이 끝내고, 27홀이 기본이므로 9홀을 마저 돌고 점심을 해도된다. 아니면 식사 후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 3시 전에 남은 9홀을 돌면 된다. 오전 라운딩은 크게 더운 줄 모르고 놀 수 있다. 흐린 날이 많았고 우기라지만 비가 귀했다. 파노라마 1번 홀 티박스 주변에는 언제나 짓궂게 장난치는 이 녀석들이 있다. 세 마리인데 유독 죽이 잘 맞는 건 요 두 녀석이다. 아침마다 보는 재미가 있다. 태국의 야생개는 사람 따로 개 따로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당부가 있기도 하고 가까이 있더라도 서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 자유롭다. 순하고 소 닭 보듯 할 뿐이다. 개들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