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 7

지우개

잘못 써내려 온 문장이 있듯이 잘못 살아온 세월도 있다 바닷가에 앉아서 수평을 보고 있으면 땅에서 잘못 살아온 사람들이 바다를 찾아오는 이유를 알겠다 굳은 것이라고 다 불변의 것이 아니고 출렁인다고 해서 다 부질없는 것이 아니었구나 굳은 땅에서 패이고 갈라진 것들이 슬픔으로 허물어진 상처들이 바다에 이르면 철썩철썩 제 몸을 때리며 부서지는 파도에 실려 매듭이란 매듭은 다 풀어지고 멀리 수평선 끝에서 평안해지고 마는구나 잘못 쓴 문장이 있듯이 다시 출발하고 싶은 세월도 있다 ㅡ송순태 *8월 마지막 아침 지우개를 써본지도 까마득하다 시간도 마음도 물처럼 흐른다 바람에 묻어오는 숲 향내와 새소리가 여름은 아니라고 지저귀는 듯하다

시와 수필 2023.08.31

붉은 맛

동무랑 산책길에 가까운 절까지 가게 되었고 인적 없는 도량에 취해 대웅전 옆에서 한참을 앉아 있었다. 안 가본 길로 가보자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 비 온 뒤라 길은 젖어있었다. 차 한 대가 지나가더니 저만치서 문이 열리고 손짓을 했다. 방금 지나온 곳이 지인부부의 공장이었던 것이다 고추라도 따가라며 텃밭을 안내했다. 붉게 한창 물오른 고추밭, 이랑에도 고랑에도 잡초는 없고 씀바귀 한포기 넓적하게 고춧대자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가을이면 아마도 김치를 담그지 않을까. 잘 익은 홍고추가 되기까지, 가물었던 봄부터 손이 얼마나 갔을지 정을 한 움큼 받은 기분이다. 열무 한 단을 사고 햇배와 마늘 생강 양파를 듬뿍 갈아서 자박자박 열무김치도 담그고 부추김치도 담갔다 여행에서 돌아와 근 한 달 만에 내 손으로 만드..

사람향기 2023.08.14

태국골프여행3 파노라마 cc

여름을 여기서 지내기 시작한 게 오래전이라는 선경험자들의 얘기를 실감할 만큼 태국 기온은 좋았다. 이른 아침후 6시 정도 티업하면 11시 전에 18홀이 끝내고, 27홀이 기본이므로 9홀을 마저 돌고 점심을 해도된다. 아니면 식사 후 숙소에서 쉬다가 오후 3시 전에 남은 9홀을 돌면 된다. 오전 라운딩은 크게 더운 줄 모르고 놀 수 있다. 흐린 날이 많았고 우기라지만 비가 귀했다. 파노라마 1번 홀 티박스 주변에는 언제나 짓궂게 장난치는 이 녀석들이 있다. 세 마리인데 유독 죽이 잘 맞는 건 요 두 녀석이다. 아침마다 보는 재미가 있다. 태국의 야생개는 사람 따로 개 따로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당부가 있기도 하고 가까이 있더라도 서로 관심을 두지 않으니 자유롭다. 순하고 소 닭 보듯 할 뿐이다. 개들은 ..

태국골프여행2 하이랜드cc

보난자에서 가까운 하이랜드 골프클럽은 애초에 12일간 머물 계획이었다. 하지만 필드나 그린 상태가 아니어서 라운딩마저 시큰둥해질 정도였다 음식은 한식이고 다이어트! 하기에 좋은 식단이었다 노캐디 36홀이 기본이다. 하미랜드에서 라운딩 중 먹은 슬러쉬 농도의 망고주스가 먹을만했다. 보난자에서 힌이랜드 가는 길에 들른 마트에서 두리안을 맛보기로 했다. 비위 약한 내겐 불가항력이었다. 전라도의 홍어처럼. 인근 힐 호텔에서 묵었고 셔틀로 오갔다. 12일 일정을 일주일만 하고 5일 당겨 행선지 파노라마 cc 일정을 늘였다 그린은 누르지 않아서 쿠션이 좋을 정도였다. 우기인데도 가물어서 땅은 건조했고 겨울공처럼 굴렀다. 집중력 안 생기는 환경이었다 여하튼, 준비 덜된 채 손님을 맞는 듯했다. 저렴한 만큼 만족도 떨..

태국 골프여행1 보난자 cc

초복 지나고 지난 7월 15일, 25일간의 태국 골프 여행길에 올랐다. 동반한 두 부부가 경험 있어서 초행길이었지만 한결 편했다. 보난자에선 4일간의 라운딩이 있었다. 소회라면 필드도 좋지만 음식이 좋다 미식가라면 정말 강추다. 클럽하우스와 지척에 있는 숙소다. 일찌감치 예약한 덕분이다. 시설은 낡았지만 동선이 좋다. 외부 호텔에 묵으면 때마다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클럽하우스와 9번 홀 그린 사이 뜬금없이 서부영화에나 나왔던 카우보이 동상이 있다. '보난자'가 '노다지'라는 뜻이라 금광을 찾아다니던 그 시절 모습을 상징적으로 세워놓은 거라고. 필드도 그린도 잘 정돈되어 있고 공략하는 재미도 있다. 27홀 기본이고 2인 1 캐디다. 장타라면 여성도 화이트 티에서 쳐보는 것도 강추다. 클럽하우스에는 식사 때..

원시

멀리 있는 것은 아름답다 무지개나 별이나 벼랑에 피는 꽃이나 멀리 있는 것은 손에 닿을 수 없는 까닭에 아름답다 사랑하는 사람아, 이별을 서러워하지 마라 내 나이에 이별이란 헤어지는 일이 아니라 단지 멀어지는 일일 뿐이다 네가 보낸 마지막 편지를 읽기 위해선 이제 돋보기가 필요한 나이, 늙는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 보낸다는 것이다 머얼리서 바라볼 줄을 안다는 것이다 ㅡ오세영

시와 수필 2023.08.11

일상 도착

25일간의 여정! 밤하늘길 비행이 인천공항 리무진에 오르자 사르륵 녹는다 여행지에서 느낀 수많은 날것들 누구든 자신의 루틴이 있고 함께 한다는 건 그 루틴을 이해해 가는 과정 같다 그리고 건강의 소중함을 실감했다 각자의 자리에서 일상을 밀고 나가는 분들 운전기사님을 믿고 기장님을 믿으며 그들의 도움으로 일상 도착이다 인천공항 대합실 화장실 무선 충전서비스까지 소소하지 않은 것들 지극히 한국적인 것들에 감사다 일상이 감사다

사람향기 2023.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