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목돈'에 대한 기대감..

구름뜰 2013. 2. 4. 10:05

목돈/ 장석남

 

책을 내기로 하고 300만 원을 받았다.
살찐 마누라 몰래 주머니에 넣고 다닌다.
어머니의 임대 아파트 보증금으로 넣어 월세를 줄여드릴 것인가
그렇게 할것인가
이 목돈을 깨서 애인과 거나히 술을 우선 먹을 것인가
잠자리를 가질 것인가
돈은 주머니 속에서 바싹바싹 말라간다
이틀이 가고 일주일이 가고 돈봉투 끝이너덜 거리고
호기롭게 취한 날도 집으로 돌아오며 뒷주머니의 단추를 확인하고
다음날 아침에도 잘 있나, 그럴성싶지 않은 성기처럼 더듬어 만져보고
잊어버릴까 어디 책갈피 같은 데에 넣어두지도 않고,
대통령 경선이며 씨가 말라가는 팔레스타인 민족을 텔레비젼 화면으로
바라보면서도 주머니에 손을 넣어 꼭 쥐고 있는
내 정신의 어여쁜 빤쓰같은 이 300만 원을,

나의 좁은 문장으로는 근사히 비유하기도 힘든
이 목돈을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평소의 내 경제관으론 목돈이라면 당연히 땅에 투기해야 하지만
거기엔 턱도 없는일,허물어 술을 먹기에도 이미 혈기가 모자라
황홀히 황홀히 그저 방황하는,
주머니 속에서,가슴 속에서
방문객 앞에 엉겹결에 말아쥔 애인의 빤쓰같은
이 목돈은 날마다 땀에 절어간다

 

 

 

  

 목돈에 대해서 가장 민감한 때가 1월 같다. 구미는 공단이라 1월이면 성과급이 삼성은 얼마 LG는 얼마 이런 얘기가 나온다. 지난 주 지인집에 놀러 갔다가 우연히 은행에서 선물이 들어 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 인의 남편이 연말까지 S그룹의 임원이었던 터라 퇴직금을 받았으리라는 생각은 했지만 은행에서 올 정도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는 지경이었고, 살며시 물었더니  "좀 돼요!" 란다. 그 잘나가는 회사는 도대체 얼마를 줄까. 내친 김에 "10억 쯤 돼냐고?" 물었더니 그냥 웃기만 한다. 5억은 넘고 10억은 안되는 정도? 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지인의 남편은 한 열흘쯤인가 쉬면서 두 세 군데 사장직 스카웃 제의를 받았고, 자회사인가 계열사 인가 출근을 하고 있다. 워낙 회사밖에 모르고 성실히 일하는 타입이란다. 임원되고나서는 재 임용 시즌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아왔다고, 그 만큼 등골을 빼는 자리라고 했다. 일할 때는 오줌누고 털 여가도 없단다고,.ㅎㅎ 동기들은 전화국이나 우체국장 공기업이나 공무원 등 조금 편한 쪽이고 안정된 자리에 있다보니, 최근에는 모임에 가면 퇴직 걱정 없는 우리가 공부를 조금 못한 덕분에 말년에 이렇게 편하다고, 공부 못한 것이 고마운 일이라는 얘기까지 나왔노라고....

 

 월급쟁이들은 명절 보너스가 나오는 이번주 쯤이 일할 맛 나는 때 아닐까 싶다. 남편의 명절 보너스는 '효도휴가비'라는 명목으로 나오는데 큰아이도 똑 같이 첫 <효도휴가비>수령을 앞두고 있다. 어제 남편은 " 아들아, 효도휴가비는 부모님께 써도록 해라. 너도 알다시피 아빠도 그렇게 써왔으니까?"  아들 왈, "아빠 어찌 벼룩이 간을 넘보시는 지요?" 라는 응수가 왔다. 그러거나 말거나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후 " 무슨 선물 해 드릴까요?"  라며 전화가 왔다. 고민한 시간이 보였다. 필요 없단다 지난 번 준 커플덕다운점퍼도 즐겨 입지 않게 되더라, 그러니 현금으로 주면 엄마 아빠가 취향에 맞는 것으로 사겠다. 그러고선 내게 보내는 눈길이 '나 참 잘했지?'라는 표정이다. 우리는 짜지 않고도 성공한 작전을 이뤄낸 기분이 잠시 되었었다. ㅋㅋ 

 

 오늘  아침 밥상에서 나는 "그 동안 당신이 한 일 중에 가장 멋졌던 부분이 뭔지 알아?" 라고 물었다. 뭘까 하는 표정이다. " 생각해보니. 나를 은행보다 믿고 맡겨준 거 같아. 부족한게 없으니까 더 안정된 살림이 가능했고, 그것이 가정경제에 가장 유효한 일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앞으로도 그 부분만은 변함없기를 바래"  그리고 출근하는 뒷 꼭지에다 " 당신이 멋장이 라는 것 잊지마" 라고 했다. "알았어" 라는 답이 현관 신발을 신으면서 건너 왔다. 

 

 여우짓 하지 않아도 이뻐해 줄 때는 몰랐는데 이젠 여우짓이라도 해야 현상유지 한다는 위기감이 드는 걸까. ㅋㅋ  그래도 이런 여우짓은 긍정적이지 않을까 싶다. 이번 주 두 부자의 '효도휴가비' 행방이 어떻게 될지 목돈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분 좋은 아침이다. 나는 굳이 속물적이고 싶진 않고 속물적인 것도 싫어하지만, 가끔 속물적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때가 있다. 그렇지만 차마 내색은 못하고 속으로만 바라는 편이다. 근데 이젠 나이가 먹긴 먹었나 보다 능구렁이가 되어 가는 건지.. 

 

 올려다 보기만 하면 월급 봉투도 천차만별이다. 비교는 상대적 박탈감만 더해 준다. 남편도 아이도 저 잘되고 제가 원하는 일 하면 고마운 것이다. 큰 아이를 생각하면 지난 몇 달 동안 나를 빙그시 미소 짓도록 해 준 효도에 비하면, 효도휴가비는 정말 보너스다. 무엇으로도 환산할 수 없는, 저 때문에 고민하는 시간 없도록 해 준걸 생각하면 고맙다, 그렇지만 아들아, 그건 그거고 너가 어른이 되어 가는 과정에서 힘들더라도 느낄건 다 느끼고 경험했으면 하는 바람이란다.  그래서 너에게도 엄마는 속물적 근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을 지도 몰라.. ㅋㅋ

 

 너무 속물적 얘기지요. 먹고 사는 문제 중요하고 기본이니까요. 지인 모습도 내겐 굉장히 핫 했습니다. 워낙 근면 성실이 몸에 배어있고, 겸손하고 털털, 미장원도 오천원 싸다면 기꺼이 달려가는 이라서 더욱요. 너무 물었나 싶기도 하지만 하옇튼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없는 사례라 올려 봅니다. 아침에 '목돈'이란 시 보다가 말이 많았습니다. 이 번주는 특별히 능력있는 자에게 총애 받는 한주되기를.....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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