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은 간다 - 안도현 늙은 도둑놈처럼 시커멓게 생긴 보리밭가에서 떠나지 않고 서 있는 살구나무에 꽃잎들이 늘어나고 있었다 자고 나면 살구나무 가지마다 다닥다닥 누가 꽃잎을 갖다 붙이는 것 같았다 그렇게 쓸데없는 일을 하는 그가 누구인지 꽃잎을 자꾸자꾸 이어붙여 어쩌겠다는 것인지 나는 매일 살구나무 가까.. 시와 수필 2010.05.12
저 꽃이 필 때는 난 알고 있었지 아름다운 사람들은 아름다운 추억을 가졌고 푸른 사람들은 푸른 꿈을 지니고 난 알고 있었지 꿈을 향해 걷는 사람들은 깊은 마음으로 매서운 계절을 이겨낸 꽃같은 기억들을 지니고 그래 저 꽃이 필 때는 세찬 비바람 견디어내고 하늘 보며 별빛을 보며 그날을 기다렸겠지 언젠가 그 .. 시와 수필 2010.05.08
예술가 - 한용운 나는 서투른 화가(畵家)여요 잠 아니 오는 잠자리에 누워서 손가락을 가슴에 대이고, 당신의 코와 입과 두 볼에 새암 파지는 것까지 그렸습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적은 웃음이 떠도는 당신의 눈자위는, 그리다가 백 번이나 지웠습니다. 나는 파겁 못한 성악가(聲樂家)여요 이웃사람도 돌아가고 버러지 .. 시와 수필 2010.04.22
봄의 금기 사항 - 신달자 봄에는 사랑을 고백하지 마라 그저 마음 깊은 그 사람과 나란히 봄들을 바라보아라 멀리는 산벚꽃들 은근히 꿈꾸듯 졸음에서 깨어나고 들녘마다 풀꽃들 소근소근 속삭이며 피어나며 하늘 땅 햇살 바람이 서로서로 손잡고 도는 봄들에 두 발 내리면 어느새 사랑은 고백하지 않아도 꽃 향에 녹아 사랑.. 시와 수필 2010.04.12
첫사랑 - 민영기 볕을 보고싶으냐 참아라 열다 보면 구겨지느니 아픈 기억도 세월 속에 묻어 두면 꽃이 된다는데, 내게 너만 한 꽃 또 있을라고 너보다 더 붉은 꽃 또 있을라고 시와 수필 2010.04.11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 윤수천 깊은 사랑은 깊은 강물처럼 소리를 내지 않는다.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다만 침묵으로 성숙할 뿐 그리하여 향기를 지닐 뿐 누가 사랑을 섣불리 말하는가 함부로 들먹이고 내세우는가 아니다. 사랑은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말하지 않음으로써 감추어지고 깊이 묻힌다. 사람과 사람 사이 비로소 그윽해.. 시와 수필 2010.04.08
임께서 부르시면 가을날 노랗게 물들인 은행잎이 바람이 흔들려 휘날리듯이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 . . . . , 호수에 안개 끼어 자욱한 밤에 말없이 재 넘는 초승달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르시면 . . . . . . , 포곤히 풀린, 봄 하늘 아래 굽이굽이 하늘가에 흐르는 물처럼 그렇게 가오리다 임께서 부.. 시와 수필 2010.03.31
봄과 같은 사람 - 이해인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생각해 본다.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게다 자신의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 해야 할 .. 시와 수필 2010.03.30
비는 온다마는- 무명씨 비는 온다마는 님은 어이 못 오는고 물은 간다마는 나는 어이 못 가는고 오거나 가거나 하면 이대도록 그리랴. **누군가를 간절히 그리워하는 것, 그것이 설사 아픔이라도 그리워하고 싶다. 문명의 발달이 사람의 삶을 편하게 해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삶을 의미 있게 만들고, 또 행복하게 해 주진 .. 시와 수필 2010.03.23
지심도- 공석진 살냄새가 좋아 꽃향내에 흐느러진 나비처럼 가슴에 얼굴을 묻고 곤한 잠에 빠졌다 못 볼 것 보인 양 석류 같은 뺨 더욱 붉히니 술에 취한 바다가 손사레 친다 밤사이 파도에 달항아리 떠밀려왔다 눈부신 백야 선혈 토해내는 소리가 들렸다 시와 수필 2010.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