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 박경리 비자루병에 걸린 대추나무 수십 그루가 어느 날 일시에 죽어자빠진 그 집 십오 년을 살았다. 빈 창고같이 휑뎅그렁한 큰 집에 밤이 오면 소쩍새와 쑥쑥새와 울었고 연못의 맹꽁이는 목이 터져라 소리 지르던 이른 봄 그 집에서 나는 혼자 살았다. 다행이 뜰은 넓어서 배추 심고 고추 심고 상추 심고 파 .. 책향기 2009.06.05
상실의 시대 - 무라카미 하루키 장편소설 -- 무엇이 아름답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하는 건 내겐 아주 번거롭고 까다로운 명제여서, 그만 다른 기준에 매달려 버리게 되는가 봐. 예를 들자면 공정이라든가 정직이라든가 보편적이라든가 그런 거 말야. 만일 내가 네 마음속에 어떤 상처를 남겨 놓았다면, 그것은 너만의 상처가 아니.. 책향기 2009.05.28
존재는 눈물을 흘린다 - 공지영 소설 모든 존재는 저마다 슬픈거야. 그 부피만큼의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비로소 이 세상을 다시 보는 거라구. 너만 슬픈 게 아니라...... 아무도 상대방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을 멈추게 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 마주보며 그것을 닦아내줄 수는 있어. 우리 생에서 필요한 것은 다만 그 눈물을 서.. 책향기 2009.05.20
내 생애 단 한번 - 장영희 수필 몸의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가 온전하지 못한 동그라미가 있었습니다 동그라미는 매우 슬펐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동그라미는 잃어버린 조각을 찾기 위해 길을 떠났습니다. 여행을 하며 동그라미는 노래를 불렀습니다. "나는 나의 잃어버린 조각을 찾고 잇습니다 내 잃어버린 조각 어디 있나요 하아-디.. 책향기 2009.05.16
아름다운 그늘- 신경숙 어렸을 때 나는 사랑하는 것은 서로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로의 아주 깊은 속에 있는 아주 내밀한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서로에게 옮겨주듯 말해주는 것, 비밀을 나눠 갖는 것이라고. 다른 사람은 못 알아듣는 이야기를 그는 알아듣는 것이 사랑이라고..... 그러나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 책향기 2009.05.15
김전선 그녀의 전기-점선뎐 그는 아주 가끔, 1년에 한 세 번쯤 운전하면서 잠깐 노래를 흥얼거린다. 어떤 노래의 한 소절쯤을 부를 때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숨죽이고 그의 노래를 흡수하듯이 듣는다. 조수석에 앉아 앞만 보고 말없이 있는다. 무진장 행복한데도 한 번도 그걸 표현하지 않았다. 멍석 깔면 안 할까봐, 그보다도 한 .. 책향기 2009.05.13
모순 - 양귀자 사랑이란 말이야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 겠다고 조심 또 조심을 해도 그렇게 되지 않는 것처럼. 영원 무궁토록 사랑하겠다고 아무리 굳은 결심을 해도 내 마음대로 되지가 않는 것이야. 양귀자 - 그리움이 친해지면 사랑이 되는 것일까. 사랑은 다시 그리움이 되고, 그래서 사랑은 아픔이 되는 지도 모.. 책향기 2009.05.08
지하철에서 울다 - 김점선 그렇게 붐비는 시간은 아니었다. 그래도 지하철 전동차 안에는 사람들이 꽤 많았다. 나는 배낭을 벗어서 선반에 올려놨다. 나와 함께 한 무리의 늙은 남자들이 같은 문으로 전동차에 올랐다. 그들은 노약자석으로 갔다. 이미 노약자석은 자리가 없었다. 그래도 그들은 그리고 가서 버티고 섰다. 한 젊.. 책향기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