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가 없다 외 4편 / 천양희 순서가 없다 늙음도 하나의 가치라고 실패도 하나의 성과라도 어느 시인은 기막힌 말을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렸다고 마음을 잡아야 한다고 어느 선배는 의젓하게 말하지만 마음은 먹어도 먹어도 배고픈 것 마음은 잡아도 잡아도 놓치고 마는 것 너무 고파서 너무 놓쳐서 사랑.. 시와 수필 2018.02.07
엄마 아내가 집에 있다 아파트 문 열기 전 걸음이 빨라진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있는 집에 올 때처럼 ―나기철 (1953∼ ) 어린아이들이 집에 들어오는 장면은 언제나 같다. 문을 열면서 집에 있는 가장 좋은 사람의 이름을 부르며 들어온다. 대개는 ‘엄마’라고 부르고, 상황에 따라서는 ‘할머니.. 시와 수필 2018.01.26
백설부 눈이 나린다 눈이 날린다 눈이 쌓인다 눈 속에 태고가 있다 눈 속에 오막살이가 있다 눈 속에 내 어린 시절이 있다 눈을 맞으며 길을 걷고 싶다 눈을 맞으며 날이 저물고 싶다 눈을 털며 주막에 들고 싶다 눈같이 흰 마음을 생각한다 눈같이 찬 님을 생각한다 눈같이 슨 청춘을 생각한다 .. 시와 수필 2018.01.13
므외시, 치유의 씨앗 * 우두령 고개 때로는 누군가가 건네는 한마디의 말이 치유의 씨앗일 수 있다. 그 씨앗이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싹을 틔워 결국에는 상처를 치유하는지 보여주는 스토리가 있다. 주인이 손님을 맞고 있다. 주인은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고 손님은 40대 중반의 중년 남자다. 손님은 전혀 기.. 시와 수필 2018.01.03
중용 23장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에 배어 나오고 겉에 배어 나오면 겉으로 드러나고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지고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키고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하게 되고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 시와 수필 2018.01.02
아비 연탄장수 울 아비 국화빵 한 무더기 가슴에 품고 행여 식을까봐 월산동 까치고개 숨차게 넘었나니 어린 자식 생각나 걷고 뛰고 넘었나니 오늘은 내가 삼십 년 전 울 아비 되어 햄버거 하나 달랑 들고도 마음부터 급하구나 허이 그 녀석 잠이 안 들었는지. -―오봉옥(1961∼ ) 우리 시대의 사.. 시와 수필 2017.12.15
꽃 나는 긴장을 기르나 보다. 아무도 가지 않는 어느 숲속 꽃들과도 같은 긴장. 상처는 저마다 완전하여, 눈에 띄지도 않는 조그만 꽃 울타리에 싸여 아파한다. 아픔은 저 꽃 같고, 이 꽃 같고. 저 꽃 같고, 이 꽃 같은 한 송이 꽃이다 -로버트 크릴리(1926~2005) 비 밤새 이 소리 다시 되돌아와서 .. 시와 수필 2017.12.06
석류는 폭발한다 모름지기 그가 살아 있는 시인이라면 최소한 혼자 있을 때 만이라도 게을러야 한다 게으르고 게으르고 또 게을러서 마침내 게을러터져야 한다 익지 않은 석류는 터지지 않는다 석류는 익을 때까지 오로지 중심을 향하는 힘으로 부풀어오른다 앞으로 가는 뒷걸음질, 중심을 향하여 원주 .. 시와 수필 2017.12.06
사막 * 화순 운주사 사막에 모래보다 더 많은 것이 있다. 모래와 모래 사이다. ​ 사막에는 모래보다 모래와 모래 사이가 더 많다. ​ 모래와 모래 사이에 사이가 더 많아서 모래는 사막에 사는 것이다. ​ 오래된 일이다.​ - 이문재 시와 수필 2017.11.13
한 가지 기술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많은 것들이 언젠가는 상실될 의도로 채워진 듯하니 그것들을 잃는다고 재앙은 아니다 날마다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 문 열쇠를 잃은 당혹감, 무의미하게 허비한 시간들을 받아들일 것 상실의 기술을 익히기는 어렵지 않다 그리고 더 많이 .. 시와 수필 2017.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