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는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시와 수필 2017.07.25
해탈시 /서산대사 근심걱정 없는 사람 누구인고 출세하기 싫은 사람 누구며 시기질투 없는 사람 누구든가 흉허물 없는 사람 어디 있겠소 가난하다 서러워 말고 장애를 가졌다 기죽지 말며 못 배웠다 주눅들지 말며 세상살이 다 거기서 거기외다. 내 것도 아닌 것을 삶도 내 것이라고 하지 마시오 잠시 머물.. 시와 수필 2017.07.25
수레국화 오늘 이곳엔 한 사람만 빼고 다 왔습니다 마당엔 옛 주인이 피운 꽃들 한창이네요 파란 수레국화를 보셨나요 그는 이제 올 수 없는 사람인지 파란 색, 문득 빈자리의 빛깔 같습니다 기억은 참 자주 밟히곤 합니다 멀리 있는 음식을 집을 때 누군가 접시를 가까이 옮겨주었는데 잠깐, 없는 .. 시와 수필 2017.07.22
아름다운 등불 아름답고 매력있는 여자와 마주하면 괜히 마음이 설레고 내가 돌아봐지고 수염이라도 좀 깍고 나올 걸 옷 좀 더 잘 골라 입을 걸 더 싱싱하게 날 가꾸어야 하는데 저 눈빛과 미소가 혹시 내게 아 쑥스러워 내 여자도 아닌데 밝힘은 웬 밝힘 아하 그렇구나 아름다운 사람은 이렇게 그 자체.. 시와 수필 2017.07.21
꽃씨로 찍는 쉼표 꽃씨로 찍는 쉼표 ― 이은규(1978∼ ) 먼 이야기 어느 왕에게 세 명의 아들이 있었지 왕은 그들에게 꽃씨를 나눠주며 가장 잘 간직한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준다 했지 간직이라는 말에 방점을 첫째 아들은 바람 한 줄기 없는 금고 속에 꼭꼭 숨겨두었고 둘째 아들은 꽃씨를 팔아 더 귀한 .. 시와 수필 2017.07.21
창을 함께 닫다 달이 참 좋다, 그렇게 말하고 싶어서 창을 닫다가 엉거주춤 딸아이를 불렀다 이런 건 왜 꼭 누구한데 말하고 싶어지는 걸까? 아이가 알아차렸는지 엉거주춤 허리를 늘여 고개를 내밀었다 -장철문 느티나무 아래서 여름이 되자 매미들이 머슴처럼 울었다 느티나무 그늘 속에서였다 내 딸.. 시와 수필 2017.07.14
큰아이에게 ―엄마, 엄니, 어머니로부터 상추쌈, 씻다가 너를 생각한다 된장국, 끓이다가 너를 생각한다 콩나물, 무치다가 너를 생각한다 땡볕, 살 따갑고 매미소리, 귀 따갑고 땅훈기, 숨막히고 ……… 아이야, 서울의 큰아이야 엄마다 엄니다 어머니다 그리움, 상추쌈 냄새로 일렁인다 그리움, 된장국 냄새로 삽짝문 나선다 그.. 시와 수필 2017.06.23
문학회 여동생’에 막걸리 얻어먹고… 기형도가 건넨 詩 3편 1982년 지은 미발표 시 햇빛 “밥값 대신 수표 하나 써 줄게”… 방위병 복무시절 문학회 활동 중 써 기형도 시인이 1982년 한 여성에게 써서 건넨 미공개 연시(戀詩) 세 편 중 한 편. 박인옥 시인 제공 “(밥값 대신) 수표 하나 써 줄게.” 1982년의 어느 날 방위병으로 군복무를 하며 경기 안.. 시와 수필 2017.06.20
쉬는 날 일요일날엔 늘상 그렇지만 열시쯤 느지막이 일어난다 그러노라면 한지붕세가족은 대개 끝나가기가 쉽고 열전! 달리는 일요일을 보면서 늦은 아침을 먹고 나면 행운의 스튜디오나 일요큰잔치를 볼 때쯤이면 심드렁해진다. 그래도 찹고 게으름을 피우며 팔꿈치를 빼고 비스듬히 누워서는.. 시와 수필 2017.06.11
어느 날의 열차표는 역방향이다 ktx 타고 간다 역방향에 앉아 차창 밖을 보며 간다 모든 다가오는 것이 지나간 것이다 지나간 것만 보고 간다 보이는 게 한 물 간 것 뿐인데 새로운 것을 목표하며 간다 악조건이다 같은 시간 같은 목적지를 향해 전속력으로 달리는 좌석이 생이라면 나의 생 출발부터 누군가에게 밀렸음이.. 시와 수필 2017.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