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포도주 나는 포도주 햇볕과 바람과 비와 인간 속에서 저절로 익은 포도주 나를 마셔라 부드럽고 달콤새콤한 맛은 모두 고뇌의 흔적이 낳은 은총 눈물에든 웃음에든 맘껏 섞어 마셔라 태풍과 폭우와 욕망과 배덕의 식은 재 속에서도 살아남아 익은 포도주 와서 나를 마셔라 돼지에게는 돼지의 맛 소에게는 소.. 시와 수필 2011.02.08
벽 벽과 문 이 세상에 옛 벽은 없지요. 열리면 문이고 닫히면 벽이되는 오늘이 있을 뿐이지요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사실이 사실은 문제지요 닫아걸고 살기는 열어놓고 살기보다 한결 더 강력한 벽이기 때문이지요 벽만이 벽이 아니라 때론 결벽도 벽이 되고 절벽도 또한 벽이지요 절망이 철벽 같을 때 새.. 시와 수필 2011.02.07
남해 금산 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 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이성복 **한여자 돌속에 묻혀있어서 그 여자 .. 시와 수필 2011.02.04
부산에 눈이 내리면 부산에 눈이 내리면 북극곰이 운다 북극곰이 제일 먼저 동물원 쇠창살을 흔들며 으엉으엉 눈이 내린다고 운다 향수병 같은 거야 잊은 지 오래지만 제 똥을 짓뭉개고 앉아 우울한 덩치로 늙어가는 짐승의 슬픔을 과연 누가 알겠는가 눈이 내리면 그도 내심 몸속의 피가 뜨거워지는 것이다 콧김이 송골.. 시와 수필 2011.02.01
소 소의 커다란 눈은 무언가 말하고 있는 듯한데 나에겐 알아들을 수 있는 귀가 없다 소가 가진 말은 다 눈에 들어 있는 것 같다. 말은 눈물처럼 떨어질 듯 그렁그렁 달려 있는데 몸 밖으로 나오는 길은 어디에도 없다 마음이 한 웅큼씩 뽑혀나오도록 울어보지만 말은 눈 속에서 꿈쩍도 하지 않은다. 수천.. 시와 수필 2011.01.30
화단(花壇) 찰찰하신 노주인이 조석을 물을 준다. 거름을 준다. 손아(孫兒)들을 데리고 일삼아 공을 들이건마는 이러한 간호만으로는 병들어가는 화단을 어찌하지 못하였다. 그 벌벌하고 탐스럽던 수국과 옥잠화의 넓은 잎사귀가 모두 누릇누릇하게 뜨기 시작하고 불에 데인 것처럼 부풀면서 말라들었다. "빗물.. 시와 수필 2011.01.28
아름다운 관계 배롱나무 가지에 새 한 마리 날아와 앉는다 새가 날아와 앉을 때 가지는 둥치를 꼭 잡기 위해 잠깐 흔들린다 흔들린다는 건 반갑다는 나무의 몸짓이다 온종일 서서 새를 기다리는 나무 떼 지어 날아올 새를 위해 날마다 잔가지를 늘려가는 나무 사람들이 모르는 그들의 관계가 아름답다 그 관계가 좋.. 시와 수필 2011.01.27
원효암에 살며 2 깨어 있는 것은 아름다워라 종꽃 피는 날 아침은 종꽃 같은 이름이 되고 싶네 내 아침 산책길의끝에는 무덤이 있지. 개울가에 다녀온 마음은 개울물 같은 파란 빛 오늘은 누구라도 만나고 싶네 --이윤규 종꽃 같은 이름, 종꽃 같은 이름, 무슨 이름이 종꽃 같은 이름인가. 즐거운 의문 몇 날을 맴돈다. '.. 시와 수필 2011.01.25
멋있는 사람들 사람의 평균 수명이 크게 늘었다고는 하나, 80세를 넘기기는 지금도 역시 쉬운 일은 아니다. 짧게 제한된 이 시간 속에서 뜻있고 보람찬 삶을 이룩하고자 사람들은 저마다 설계와 실천에 여념이 없다. 어떻게 사는것이 가장 멋있게 사는 것일까? 멋있는 길이 오직 한 줄기로만 뻗어 있는 것으로는 생각.. 시와 수필 2011.01.24
자작나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산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 너머는 평안도 땅도 뵈인다는 이 산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백석 시와 수필 2011.0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