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양간 마구간 가슴간 햇살이 언 땅을 들어 올리는 봄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도 입춘이었다. 어머니와 단둘이 누운 봄밤! 대화가 국수 토막처럼 뚝뚝 끊긴다. 고드름 부서지는 소리도 없다. 개는 일찍 잠들었나, 적막하다. 봄밤의 적막은 눅눅하다. 먹먹한 어둠을 올려다본다. 사각 천장이 거대한 도토리묵 .. 시와 수필 2013.01.21
낯선 곳 떠나라 낯선 곳으로 아메리카가 아니라 인도네시아가 아니라 그대 하루하루의 반복으로부터 단 한번도 용서할 수 없는 습관으로부터 그대 떠나라 아기가 만들어낸 말의 새로움으로 할머니를 알루빠라고 하는 새로움으로 그리하여 할머니조차 새로움이 되는 곳 그 낯선 곳으로 떠나라 .. 시와 수필 2013.01.16
"응"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文字)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오직 심장으로 나란히 당도한 신의 방 너와 내가 만든 아름다운 완성 해와 달 지평선에 함께 떠 있는.. 시와 수필 2013.01.11
용산에서 / 오규원 용산에서 /오규원 시에는 무슨 근사한 얘기가 있다고 믿는 낡은 사람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시에는 아무것도 없다 조금도 근사하지 않은 우리의 생밖에 믿고 싶어 못 버리는 사람들의 무슨 근사한 이야기의 환상밖에는, 우리의 어리석음이 우리의 의지와 이상 속에 자라며 흔들리듯 그.. 시와 수필 2013.01.09
한계령을 위한 연가 한겨울 못 잊을 사람하고 한계령쯤을 넘다가 뜻밖의 폭설을 만나고 싶다 뉴스는 다투어 수 십년 만의 풍요를 알리고 자동차들은 뒤뚱거리며 제 구멍들을 찾아가느라 법석이지만 한계령의 한계에 못 이긴 척 기꺼이 묶였으면 .. 오오, 눈부신 고립 사방이 온통 흰 것뿐인 동화의 나라에 발.. 시와 수필 2013.01.07
오늘의 할 일 가만히 앉아 숨쉬기 모든 구멍에서 나오는 구리고 비린 나를 들이마시기 제 못난 곳을 악착같이 감추어오다 감춘 사실마저 낱낱이 들키기 생긴 대로만 앉아 있어도 저절로 웃기는 놈, 비열한 놈, 한심한 놈이 되기 머리통에 피가 몰리는 기억을 꺼내 터진 뇌혈관 다시 터뜨리기 단단한 벽.. 시와 수필 2013.01.02
파문 오래 전 사람의 소식이 궁금하다면 어느 집 좁은 처마 아래서 비를 그어 보라. 파문 부재와 부재 사아에서 당신 발목 아래 피어나는 작은 동그라미를 바라보라 당신이 걸어온 동그란 행복 안에서 당신은 늘 오른쪽이나 아니면 왼쪽이 젖었을 것인데 그 사람은 당신과 늘 반대편 세상이 젖.. 시와 수필 2012.12.27
리필 나는 나의 생을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두루마리 휴지처럼 풀어쓰고 버린다 우주는 그걸 다시 리필해서 보내는데 그래서 해마다 봄은 새봄이고] 늘 새것같은 사랑을 하고 죽음마저 아직 첫물이니 나는 나의 생을 부지런히 풀어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상국 리필된 아침입니다. 아름다운.. 시와 수필 2012.12.26
그래도 사랑하라 사람들은 불합리하고 비논리적이고 자기 중심적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선한 일을 하면 이기적인 동기에서 하는거라고 비난 받을 것이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당신이 성실하면 거짓된 친구들과 참된 적을 만날 것이다 그래도 사랑하라. 당신이 정직하고 솔직하면 상처받을 것.. 시와 수필 2012.12.23
무슨 말인가 더 드릴 말이 있어요 오늘 아침부터 눈이 내려 당신이 더 보고 싶은 날입니다 내리는 눈을 보고 있으면 당신이 그리워지고 보고 싶은 마음은 자꾸 눈처럼 불어납니다 바람 한 점 없는 눈송이들은 빈 나뭇가지에 가만히 얹히고 돌멩이 위에 살며시 가 앉고 땅에도 가만가만 가서 내립니다 나도 그렇게 당신에.. 시와 수필 2012.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