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은 왜 짠가 지난 여름이었습니다. 가세가 기울어 갈 곳이 없어진 어머니를 고향 이모님 댁에 모셔다드릴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는 차 시간도 있고 하니까 요기를 하고 가자시며 고깃국을 먹으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한평생 중이염을 앓아 고기만 드시면 귀에서 고름이 나오곤 했습니다. 그.. 시와 수필 2013.05.27
빈곳 암벽 틈에 나무가 자라고 있다 풀꽃도 피어 있다 틈이 생명줄이다 틈이 생명을 낳고 생명을 기른다 틈이 생긴 구석 사람들은 그것을 보이지 않으려 안간힘을 쓴다 하지만 그것은 누군가에게 팔을 벌리는 것 언제든 안을 준비가 돼 있다고 자기 가슴 한쪽을 비워놓는 것 틈은 아름다운 허.. 시와 수필 2013.05.23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나는 가끔 후회한다 그때 그 일이 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 물건이 노다지 였을지도 모르는데 더 열심히 파고들고 더 열심히 말을 걸고 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 더 열심히 사랑할 걸..... 반벙어리처럼 귀머거리처럼 보내지는 않았는가 우두커니처럼..... 더 열심.. 시와 수필 2013.05.17
전화 새순이 나오기 시작하는 상수리 나무입니다. 거실에서 내려다 보면 한 눈에 드는데 저와는 상관없이 내맘대로 '내 나무'라고 찜해두고 마음주고 눈길 주는 나무입니다. 한데 요즘 요녀석 곁에 있는 아카시아가 제철입니다. 아카시아도 친구 해야 겠습니다. 내가 지금 저렇게 아름다운 모.. 시와 수필 2013.05.16
우주의 어느 일요일 하늘에서 그렇게 많은 별빛이 달려오는데 왜 이렇게 밝은 캄캄한가 애드거 앨런 포는 이런 말도 했다 그것은 아직 별빛이 도착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우주의 어느 일요일 한 시인이 아직 쓰지 못한 말을 품고 있다 그렇게 많은 사랑의 말을 품고 있는데 그것은 왜 도달하지 못하거나 버.. 시와 수필 2013.05.10
장미 한 다발 꽃집 주인이 포장을 했을 때 장미는 폭소를 터뜨렸다. 집에 돌아와 화병에 꽂았더니 폭소는 더 커졌다. 나는 계속해서 물을 주었다. 장미의 이름을 부르며. 장미는 몸을 뒤틀며 웃어댔다. 장미 가시가 번쩍 거리며 내게 날아와 박혔다. 나는 가시들을 훔쳤다. 나는 가시들로 빛났다. 화병.. 시와 수필 2013.05.09
알바트로스 뱃사람들은 아무 때나 그저 장난으로 커다란 바닷새 알바트로스를 붙잡는다네. 험한 심연 위로 미끄러지는 배를 따라 태무심하게 날고 있는 이 길동무들은 그자들이 갑판 위로 끌어내리자마자 이 창공의 왕자들은, 어색하고 창피하여 가엽게도 그 크고 흰 날개를 노라도 끄는 양 옆구리.. 시와 수필 2013.05.06
걸림돌 잘 아는 스님께 행자 하나를 들이라 했더니 지옥 하나를 더 두는 거라며 마다하신다 석가도 자신의 자식이 수행에 장애가 된다며 아들 이름을 아예 '장애'라고 짓지 않았던가 우리 어머니는 또 어떻게 말씀하셨나 인생이 안 풀려 술 취한 아버지와 싸울 대마다 "자식이 원수여! 원수여!" .. 시와 수필 2013.05.04
양파 양파는 뭔가 다르다 양파에겐 '속'이란 게 존재하지 않는다. 양파다움에 가장 충실한, 다른 그 무엇도 아닌 완전한 양파 그 자체이다. 껍질에서부터 뿌리 구석구석까지 속속들이 순수하게 양파스럽다 그러므로 양파는 아무런 두려움 없이 스스로의 내면을 용감하게 드러내 보일 수 있다. .. 시와 수필 2013.05.01
시인과 소설가 어느 날 거나하게 취한 김동리가 서정주를 찾아가서 시를 한 편 썼다고 했다 시인은 뱁새눈을 뜨고 쳐다봤다 -어디 한번 보세나 김동리는 적어오진 않았다면서 한번 읊어 보겠다고 했다 시인은 턱을 괴고 눈을 감았다 - 꽃이 피면 벙어리도 우는 것을.... 다 읊기도 전에 시인은 무릎을 탁 .. 시와 수필 2013.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