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편지 1 나 항상 그대를 생각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 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속에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 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2 진실로 진실로 내가 그대를 사랑하는 까닭은 내 나의 사랑을 한없이 .. 시와 수필 2012.11.14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달이 떴다고 전화를 주시다니요 이 밤이 너무 신나고 근사해요 내 마음에도 생전 처음 보는 환환 달이 떠오르고 산 아래 작은 마을이 그려집니다 간절한 이 그리움들을, 사무치는 이 연정들을 달빛에 실어 당신께 보냅니다 세상에, 강변에 달빛이 곱다고 전화를 다 주시다니요 흐.. 시와 수필 2012.11.11
울음이 타는 가을강 마음도 한자리 못 앉아 있는 마음일 때 친구의 서러운 사랑 이야기를 가을 햇볕으로나 동무삼아 따라가면 어느새 등성이에 이르러 눈물나고나 제삿날 큰집에 모이는 불빛도 불빛이지만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 강을 보것네 저것 봐, 저것 봐 네보담도 내보담도 그 기쁜 첫사랑 산골 물.. 시와 수필 2012.11.09
그러니 애인아 바람이 출렁이는 밀밭 보면 알 수 있어 한 방향으로 불고 있다고 생각되는 바람이 실은 얼마나 여러 갈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배가 떠날 때 어떤 이는 수평선을 바라보고 어떤 이는 물을 바라보지 그러니 애인아 울지 말아라 봄처럼 가을 꽃도 첫 마음으로 피는 것이니 한 발짝 한 발짝 .. 시와 수필 2012.11.07
11월 11월/ 배한봉 늑골 뼈와 뼈 사이에서 나뭇잎 지는 소리가 들린다 햇빛이 유리창을 잘라 거실 바닥에 내려놓은 정오 파닥거리는 심장 아래서 누군가 휘바람 불며 낙엽을 밟고 간다 늑골 뼈로 이루어진 가로수 사이 길 그 사람 뒷모습이 침묵 속에서 태어난 둥근 통증 같다 누군가 주먹을 내.. 시와 수필 2012.11.06
동원(東園)에서 국화를 보며 어린 날 예전에 가버리고 꽃 시절 다하였다 적막한 마음 달랠 길 없어, 다시 이 황양한 뜰에 왔다. 홀로 뜰 가운데 오래 서 있자니, 햇살은 없고 바람 차다 가을 남새는 죄다 잡초에 덮이고 그 좋던 초목도 시들고 꺼였다 잎 다 진 울타리 사이에 몇 떨기 국화만이 새로 피었다 잔 들어 술을.. 시와 수필 2012.11.03
기러기의 뱃속에서 낟알과 지렁이가 섞이고 있을 때 강가에 물고기 잡으러 가던 고양이를 친 트럭은 놀라서 엉덩이를 약간 씰룩거렸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북으로 질주한다 숲으로 가던 토끼는 차바퀴가 몸 위를 지나갈 때마다 작아지고 작아져서 공기가 되어 가고 있다 흰 구름이 토끼 모양을 만들었다 집승들의 장례식이 이렇게 바뀌었구.. 시와 수필 2012.10.29
사랑은 나의 약점 당신은 내게 어느 동성애 운동가의 시를 읽어 준다. 강렬하고 아름답고 신비로운 시를. 내 언어가 결코 가 닿지 못한 슬픔의 세계가 밤하늘의 성좌처럼 선명하게 펼쳐진 시를. 나는 고통스럽다. 반은 질투심에, 반은 감화되어. 그러나 나는 다만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다. 참으로 오랜만에 .. 시와 수필 2012.10.27
의자/이정록 병원에 갈 채비를 하며 어머니께서 한 소식 던지신다 허리가 아프니까 세상이 다 의자로 보여야 꽃도 열매도 그게 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여 주말엔 아버지 산소 좀 다녀와라 그래도 큰애 네가 아버지한테는 좋은 의자 아녔냐 이따가 침 맞고 와서는 참외밭에 지푸라기라도 깔고 호박.. 시와 수필 2012.10.24
시인본색(本色) 시인본색(本色)/정희성 누가 듣기 좋은 말을 한답시고 저런 학 같은 시인하고 살면 사는 게 다 시가 아니겠냐고 이 말 듣고 속이 불편해진 마누라가 그 자리에서 내색은 못하고 집에 돌아와 혼자 구시렁거리는데 학 좋아하네 지가 살아봤냐고 학은 무슨 학 닭이다 닭 중에도 오골계(烏骨.. 시와 수필 2012.1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