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끄럽게 신나게 모든 사람은 꽃이다 감히 피어 본 꽃들이다 불까 말까 한 바람에도 당장 떨어지고 있다 살아생전 절대 안정 절대로 절대 안정이다 오늘 나는 절대 안정 중인 꽃이 다섯 송이 나란히 길에 앉아(할머니 들이다) 열심히 감을 먹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리고 식당 아저씨가 배달 가는 길에서 오.. 시와 수필 2012.08.13
발톱 깍는 사람의 자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는 둥글다네 나는 그 발톱 깎는 사람의 자세를 좋아한다네 사람이 사람을 앉히고 발톱을 깎아준다면 정이 안 들 수가 없지 옳지 옳아 어느 나라에선 발톱을 내밀면 결혼을 허락하는 거라더군 그 사람이 죽으면 주머니 속에 발톱을 넣어 간직한다더군 평생 누구에게.. 시와 수필 2012.08.09
내 몸속에 잠든 이 누구신가 그대가 밀어 올린 꽃줄기 끝에서 그대가 피는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떨리는지 그대가 피어 그대 몸속으로 꿀벌 한 마리 날아 든 것인데 왜 내가 이다지도 아득한지 왜 내 몸이 이리도 뜨거운지 그대가 꽃피는 것이 처음부터 내 일이었다는 듯이. -김선우 # "은교 빌리러 왔어요." "커피 .. 시와 수필 2012.08.03
달밤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밤거리를 방황할 필요가 없고 착잡한 머리에 책을 집어들 필요가 없고 마지막으로 몽상을 거듭하기도 피곤해진 밤에는 시골에 사는 나는... 닭 밝은 밤을 언제부터인지 잠을 빨리 자는 습관이 생겼다 이제 꿈을 다시 꿈 필요가 없게 되었나 보.. 시와 수필 2012.07.26
포도나무 아버지 얘야 올해는 가뭄 때문에 포도넝쿨이 엉망이구나 아버지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자아 받아라 어서, 이제는 이 포도넝쿨을 너에게 넘겨주어야 할 때가 온 것 같구나 아버지 굵은 당신의 팔뚝에서 핏줄 한 가닥을 뽑아 나에게 내미신다 한사코 내밀고 계신다 두 손을 내 밀어.. 시와 수필 2012.07.23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우리집에 와서 다 죽었다 / 유홍준 벤자민과 소철과 관음죽 송사리와 금붕어와 올챙이와 개미와 방아깨비와 잠자리 장미와 안개꽃과 튤립과 국화 우리 집에 와서 다 죽었다 죽음에 대한 관찰일기를 쓰며 죽음을 신기해 하는 아이는 꼬박꼬박 키가 자랐고 죽음의 처참함을 바라보며 커피.. 시와 수필 2012.07.19
사람을 쬐다 사람이란 그렇다 사람은 사람을 쬐어야지만 산다 독거가 어려운 것은 바로 이 때문, 사람이 사람을 쬘 수 없기 때문 그래서 오랫동안 사람을 쬐지 않으면 그 사람의 손등에 검버섯이 핀다 얼굴에 저승꽃이 핀다 인기척 없는 독거노인의 집. 군데군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피었다 시멘트 .. 시와 수필 2012.07.18
국화에게 미안하다 어쩌다 침을 뱉다가 국화꽃에게 그만 미안하고 미안해서 닦아주고 한참을 쓰다듬다가 그만 그동안 죄 없이 내 침을 뒤집어 쓴 개똥, 말똥 소똥에게 미안해서 그만 국화꽃에게서 닦아낸 침을 내 가슴에도 묻혀 보았더니 그만 국화 향기가 국화 향기가 그만 -안상학 62년 경북 안동 출생, 중.. 시와 수필 2012.07.14
타이어의 못을 뽑고 사랑했었노라고 그땐 또 어쩔 수 없었노라고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사는지도 모를 너를 찾아 고백하고도 싶었다 그것은 너나 나의 가슴에서 못을 뽑아버리고자 하는 일 그러나 타이어에 박힌 못을 함부로 잡아 뽑아버리고서 알았다 빼는 그 순간 피식피식 바람이 새어나가 차는 주저않.. 시와 수필 2012.07.12
새벽부터 내리는 비 비야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라 억수같이 내려 아침 일찍 집을 나서는 누이의 발길을 돌려놓아라 새벽에 꿈결에 깨어 어 비가 오네 하고 미소 지으며 달콤한 잠 속에 빠지게 해라 비야 노동판을 전전하는 김 씨를 공치게 해라 무더운 여름 맨몸으로 햇빛과 맞서는 김 씨를 그 핑계로 하루 .. 시와 수필 2012.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