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화, 첫사랑 1 그대가 아찔한 절벽 끝에서 바람의 얼굴로 서성인다면 그대를 부르지 않겠습니다 옷깃 부둥키며 수선스럽지 않겠습니다 그대에게 무슨 연유가 있겠거니 내 사랑의 몫으로 그대의 뒷모습을 마지막 순간까지 지켜보겠습니다 손 내밀지 않고 그대를 다 가지겠습니다 2 아주 조금.. 시와 수필 2012.02.10
숲 나무들은 굳세게 껴안았는데도 사이가 떴다 뿌리가 바위를 움켜 조이듯 가지들이 허공에 불꽃을 튕기기 때문이다 허공이 가지들의 氣合보다 더 단단하기 때문이다 껴안는다는 것은 이런 것이다 무른 것으로 강한 것을 전심전력 파고든다는 뜻이다 그렇지 않다면 나무들의 손아.. 시와 수필 2012.02.07
있다 나는 알고 있다 뭔가 알고 있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나는 있다 여기에 있다. 잠자고 있어도 나는 있다 멍하니 있어도 나는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더라도 나는 있다 어디엔가 나무는 서 있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고기는 헤엄치기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이는 놀기.. 시와 수필 2012.01.27
드디어 썩어 가는 목욕탕 거울을 보니 허리가 없어졌다 똥배를 밀어 넣으려고 애쓰다 그만 둔다 계단을 조금만 올라도 똥으로 가득찬 창자가 심장을 눌러 숨이 턱 막힌다 사람은 보통 1~3kg의 똥을 뱃속에 넣고 다닌다 변비할 경우는 10kg까지도 간다 하느님도 너무하시다 만물의 영장인 사람 뱃속에 .. 시와 수필 2012.01.19
시창작연습 1 우리집 방바닥은 너무 높거나 너무 낮다 너무 높을때는 아내가 엄마 대신 나를 몹시 때릴 것 같고 너무 낮을때는 봄 대신 가을이 쳐들어와 내 기쁨 패대기칠 것 같다 나는 우리집 방바닥이 계단처럼 여러 칸이었으면 좋겠다 첫 번째 계단에는 결혼하기 전 알던 여자를 눕히고 그 .. 시와 수필 2012.01.18
백년해로 너의 집 앞에 이르니 장관이다 국자 모양의 큰곰자리가 하늘 끝에 거꾸로 처박혀 너의 입에 뜨뜻한 국물을 붓고 있다. 잘도 받아먹는 큰 입의, 천진한 너는 참 장관이다. 집으로 돌아오는 저녁, 나는 날마다 신기하다. 나의 집 앞에도 같은 별이, 같은 달이 떠 있다는 것에 대하여 .. 시와 수필 2012.01.14
앞날 당신이 내 곁에 계시면 나는 늘 불안합니다. 나로 인해 당신 앞날이 어두워지는 까닭입니다 내 곁에서 당신이 멀어져가면 나의 앞날은 어두워집니다 나는 당신을 잡을 수도 없습니다 언제나 당신이 떠나갈까 안절부절입니다. 한껏 내가 힘들어하면 당신은 또 이렇게 말하지요. ".. 시와 수필 2012.01.12
개나리 - 피는 꽃 앞에서 4 매화꽃 졌다 하신 편지를 받자옵고 개나리 한창 이란 답장을 보내었소 둘이다 봄이란 말은 차마 쓰기 어려워서 - 이은상 <노산 시조집/ 1926> 시와 수필 2012.01.11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흐르는 지금 이 시간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꽃이라고 별이라고 그대라고 명명해도 좋을까요.그대가 흘러갑니다. 꽃이 흘러갑니다. 흘러흘러 별이 떠내려갑니다. 모두가 그대의 향기 질질 흘리며 흘러갑니다. 그대는 날 어디론가 막다른 곳까지 몰고가는 듯합니다. 난 그대 안에서.. 시와 수필 2012.01.02
대숲에 서면 사는 일이 꿈을 찢기고 지우는 길이었다면 서슴없이 겨울 대숲으로 오라 시퍼런 댓잎 사이로 불어오는 짱짱한 칼바람이 꽛꽛하게 언 몸뚱이를 후려치거든 그 자리에서 무릎 꿇고 잃어버린 것들을 찾아라 연하고 부드럽게 올라오는 희망으로 제 속의 더러운 욕망을 모두 비워야 .. 시와 수필 2011.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