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같은 사랑 돌이켜보니, 사랑에는 기다리는 일이 9할을 넘었다. 어쩌다 한번 마주 칠 그 순간을 위해 피를 말리는 기다림 같은 것. 그 기다림 속에서 아~ 아~ 내 사랑은, 내 젊음은 덧없이 저물었다. 하기야 기다리는 그 사람이 오기만 한다면야 어떠한 고난도 감내할 일이지만 오지 않을 줄 뻔.. 시와 수필 2011.11.18
오래된 농담 회화나무 그늘 몇평 받으려고 언덕길 오르다 늙은 아내가 깊은 숨 몰아쉬며 업어달라 조른다 합환수 가지 끝을 보다 신혼으 첫밤을 기억해낸 늙은 남편이 마지못해 업는다 나무그늘보다 명평이나 뚱뚱해져선 나, 생각보다 무겁지 머리는 돌이지 얼굴은 철판이지 간은 부었지 그.. 시와 수필 2011.11.12
우두커니 나무 일주문 두리기둥처럼 거침없이 위로 솟구친 향나무 한 그루, 이 종문 시인이 그대는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가 물으니. 내가 왜 여기 우두커니 서 있는지 그대가 궁금해 하라고 여기 우두커니 서 있다고 대답한 바로 그 나무다. 괜히 자옥산 기슭 옥산서원 들에 우두커니 서서 이.. 시와 수필 2011.11.10
내것이 아닌 것들을 위하여 봄 햇살 받으며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을 본다. 여태 저 강물 내 것이어서 어여쁘다 했는데. 오늘 저 강물이 내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저 물이 거느린 것들 가운데 단 하나도, 저 물 휩싸안고 흐르는 시간 중 단 한 순간도, 내 것이 아니어서 더 어여쁘고 귀했던 것이다. 봄 강물 한 .. 시와 수필 2011.11.09
깊이에 대하여 자판기 커피 뽑는 것도 시비꺼리가 될 수 있는지, 종이컵 속 커피 위에 뜬 거품을 걷어내면, "왜 거품을 걷어내느냐?"고 묻는 이가 있다. 나는 "커피의 깊이를 보기 위하여"라고 대답한다. 마음에 없는 말 일 수 있다. 인스턴트 커피에 무슨 근사한 깊이가 있느냐고 물으면, 대단치 .. 시와 수필 2011.11.07
붉은 마침표 그래, 잘 견디고 있다. 여기 동쪽 바닷가 해송들, 너 있는 서 쪽으로 이쪽으로 목 휘어 있을거라, 소름 돋아 있을거라, 믿는다. 그쪽 노을빛 우듬지와 이쪽 소나무의 햇살 쪽지를 길게 이으면 하늘이 된다. 그 하늘 길로, 내 마음 뜨거운 덩어리가 타고 넘는다. 송진으로 봉한 댓돌 .. 시와 수필 2011.10.27
참 빨랐지 그 양반 신랑이라고 거드는 게 아녀, 그 양반 빠른 거야 근동 사람들이 다 알았지. 면내에서 오토바이도 그중 먼저 샀고, 달리기를 잘해서 군수한테 송아지도 탔으니까, 죽는 거까지 남보다 앞선 게 섭섭하지만, 어쩔 거여, 박복한 팔자 탓이지. 읍내 양지다방에서 맞선 보던 날 나는 사카린도 안 넣었는데 그 .. 시와 수필 2011.10.26
엄니의 남자 엄니와 밤늦게 뽕짝을 듣는다 얼마나 감돌았는지 끊일 듯 에일 듯 신파연명조다 마른 젖 보채듯 엄니 일으켜 블루스라는 걸 춘다 허리께에 닿는 삼베 뭉치 머리칼, 선산에 짜다 만 수의라도 있는가 엄니의 궁등이와 산도가 선산 쪽으로 쏠린다 이태 전만 해도 젖가슴이 착 붙어서 이게 모자(母子)다 싶.. 시와 수필 2011.1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