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 풀이 눕는다 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 풀은 눕고 드디어 울었다 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 다시 누웠다 풀이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눕는다 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 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 날이 흐리고 풀이 눕는다 발목까지 발밑까지 눕는다 바람보다 늦게 누워도 바람보다 먼저 일어나고 바.. 시와 수필 2011.06.28
청시(靑枾) 별 많은 밤 하누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이 떨어진다 개가 짖는다. - 백석 바람이 불어서, 푸른 감은 떨어지고, 개는 짖는다. 누구를 짖는 것일까. 떨어지는 감을, 그 이전의 바람을, 아니면 별을, 별아래 선 화자를, 어찌 이리 담백한 풍경하나 그려놓는 지.... 시와 수필 2011.06.24
겁난다 토막 난 낙지다리가 접시에 속필로 쓴다 숨가쁜 호소(呼訴) 같다 장어가 진창에다 온몸으로 휘갈겨 쓴다 성난 구호(口號) 같다 뒤쫓는 전갈에게도 도마뱀꼬리가 얼른 흘려 쓴다 다급한 쪽지글 같다 지렁이도 배밀이로 한자 한자씩 써 나간다 비장한 유서(遺書) 같다 민달팽이도 목숨 걸고 조심조심 새.. 시와 수필 2011.06.22
6월 하루종일당신 생각으로6월의 나뭇잎에 바람이 불고하루 해가 갑니다불쑥불쑥 솟아나는그대 보고 싶은 마음을주저앉힐 수가 없습니다창가에 턱을 괴고오래오래 어딘가를 보고있곤 합니다느닷없이 그런 나를 발견하고는그것이당신 생각이었음을 압니다하루종일당신 생각으로6월의 나뭇잎이바람에 .. 시와 수필 2011.06.19
수의 비밀 나는 당신의 옷을 다 지어 놓았습니다. 심의도 짓고 도포도 짓고 자리옷도 지었습니다. 짓지 아니한 것은 작은 주머니에 수놓는 것뿐입니다. 그 주머니에 나의 손때가 많이 묻었습니다. 짓다가 놓아두고 짓다가 놓아두고 한 까닭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나의 바느질솜씨가 없는줄로 알지마는, 그러한 .. 시와 수필 2011.06.18
저무는 바다를 머리맡에 걸어 두고 살아 간다는 것은저물어 간다는 것이다슬프게도사랑은자주 흔들린다어떤 인연은 노래가 되고 어떤 인연은 상처가 된다하루에 한 번씩 바다는저물고노래도 상처도무채색으로 흐리게 지워진다나는 시린 무릎 감싸 안으며나지막히그대 이름을 부른다살아 간다는 것은오늘도내가 혼자임을 아는 것이.. 시와 수필 2011.06.16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지요 누구든지 3의 제곱이 얼마인지 가르쳐 줄 수 있고 가방이란 글자를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또 두발 자전거 타는 법을 가르쳐 줄 수도 있지요 허나 아무도 가르쳐 줄 수 없어요 어떤 것들을 좋아해야 하는지를 기관사 아저씨는 기차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가르쳐 줄 수 있고 지도를 보면 스.. 시와 수필 2011.06.13
가는 길 그립다 말을 할까 하니 그리워 그냥 갈까 그래도 다시 더 한 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는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김소월 <개벽>(1923.10) - 마음 속에 움직이는 감정은 논리적인 생각과 달라서 자기.. 시와 수필 2011.06.13
[스크랩] 폭설 오탁번 시인 폭삭 간밤에 비닐하우스가 내려 앉았다 설마 했던 이장이 허둥지둥 마이크를 잡았다 오늘 눈이 "X나게 내려 부려땅께 마을 회관으로 나오쇼잉" 탁주로 삼겹살로 마음을 달래던 주민들은 번뜩 다음날 이장의 마이크 소리에 다시 귀가 열렸다 시방 "어제 온 눈은 X도 아닝께 싸게싸게 나오쇼잉" 인.. 시와 수필 2011.06.12
생명은 생명은자기 자신만으로는 완성될 수 없도록만들어져 있는 듯하다.꽃도암술과 수술이 갖추어져 있는 것만으로는불충분하며곤충이나 바람이 찾이와 암술과 수술을 중매한다.생명은 그 안에 결핍을 지니고 있으며그것을 다른 존재로부터 채워 받는다.세계는 아마도다른 존재들과의 연결그러나 서로가.. 시와 수필 2011.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