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술 우리가 헤어진 지 오랜 후에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잊지 않겠지요. 오랜 세월 귀먹고 눈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알아보겠지요. 입술은 그리워하기에 벌어져 있습니다. 그리움이 끝날 때까지 닫히지 않습니다. 내 그리움이 크면 당신의 입술이 열리고 당신의 그리움이 크면 내 입술이 열.. 시와 수필 2011.05.11
우화(羽化)의 강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 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처음 열린 물길은 짧고 어색해서 서로 물을 보내고 자주 섞여야겠지만 한세상 유장한 정성의 물길이 흔할 .. 시와 수필 2011.05.11
비오는 날 구름이 구름을 만나면 큰소리를 내듯이 아, 하고 나도 모르게 소리치면서 그렇게 만나고 싶다, 당신을. 구름이 구름을 갑자기 만날 때 환한 불을 일시에 켜듯이 나도 당신을 만나서 잃어버린 내 길을 찾고 싶다 비가 부르는 노래의 높고 낮음을 나는 같이 따라 부를 수가 없지만 비는 비끼리 만나야 서.. 시와 수필 2011.05.10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모른다 -모과나무- 시의 첫 구절에 무엇이 들었는지 우리는 모른다. 무심코 지나가는 말이거나 심심풀이로 해본 말, 우리가 말하기 전에 말은 제 빛깔과 소리를 지니고 있었다. 시의 둘째 구절은 무염수태(無染受胎), 교미도 없이 첫구절에서 나왔지만 빛깔과 소리는 전혀 다른 것. 시의 셋째 구절은 근친상간,.. 시와 수필 2011.05.07
동백 동백은 땅바닥만 내려다보고 있다. 봄 여름 가을 꿈쩍 않다가 제 몸을 밀어 떨어뜨린다 툭, 기어이 목숨하나 진다. 끊임없이 떨구는 슬픔 붉은 눈물 떨구는 어머니 , 동백 연신 빗자루로 쓸어보지만 떨어진 동백은 이미 육중한 시체같다. 한 가득 어머니를 퍼다 버리는 아침 붉은 아침 붉은 죽음 그때는.. 시와 수필 2011.05.04
사랑법 떠나고 싶은 자 떠나게 하고 잠들고 싶은 자 잠들게 하고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할 것 또는 꽃에 대하여 또는 하늘에 대하여 또는 무덤에 대하여 서둘지 말 것 침묵할 것 그대 살 속의 오래전에 굳은 날개와 흐르지 않는 강물과 누워 있는 누워 있는 구름, 결코 잠깨지 않는 별을 쉽게 꿈꾸지 말고 .. 시와 수필 2011.05.03
나라는 모순에 대하여 1 결국 외계를 향해 쏘아올린 우리의 정보를 해독할 수 있는 존재는 우리밖에 없을 것이다 꽃돔도 아니고, 놀래기도 아니고, 지렁이도 아니고, 달팽이도 아닌 2 우리는 우리를 인류라고 부른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뭐란 말인가?) 3 이슬람으로 개종하려다가, 하루 다섯번의 기도가 너무 귀찮아 그만 .. 시와 수필 2011.04.27
임 1 임의 말씀 절반은 맑으신 웃음 그 웃음의 절반은 하느님 거 같으셨다 임을 모르고 내가 살았더면 아무 하늘도 안 보였으리 2 그리움이란 내 한몸 물감이 찍히는 병 그 한번 번갯불이 스쳐간 후로 커다란 가슴에 나는 죽도록 머리 기대고 싶다 3 임을 안 첫 계절은 노래에서 오고 그래 줄곧 시만 쓰더니.. 시와 수필 2011.04.20
신록 어이할거나 아 나는 사랑을 가졌어라. 남 몰래 혼자서 사랑을 가졌어라! 천지엔 이미 꽃잎이 지고 새로운 녹음이 다시 돋아나 또 한번 날 에워싸는데 못 견디게 서러운 몸짓을 하며 붉은 꽃잎은 떨어져 내려 펄펄펄 펄펄펄 떨어져 내려 신라 가시내의 숨결과 같은 신라 가시내의 머리털 같은 풀밭에 바.. 시와 수필 2011.04.19
바다 보아라 자식들에게 바치느라 생의 받침도 놓쳐버린 어머니 밤늦도록 편지 한 장 쓰신다. '바다 보아라' 받아 보다가 바라보다가 바닥 없는 바다이신 받침 없는 바다이신 어머니 고개를 숙이고 밤늦도록 편지 한 장 보내신다. '바다 보아라' 정말 바다가 보고 싶다. -천양희 방금 올해 아흔넷 드신 어머니와 통.. 시와 수필 2011.0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