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원수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내게는 원수(怨讐)가 없어 개와 닭이 큰 원수로다. 나에게는 다른 원수가 없다. 다만 개와 닭이 원수일 뿐이다. 벽사창(碧紗窓) 깊은 밤에 품에 들어 자는 님을 깊은 밤 오랜만에 찾아온 임이 내 품에 깊이 잠들어 있는데 짜른 목 늘이어 홰홰 쳐 울어 일어 가게 하고 짧은 목을 길게 뽑아 가지고 꼬꼬댁 .. 시와 수필 2011.06.04
검은 말씀 18 잘 알았던 무엇과 무엇이 친했던 그것과 그것이 늘 내 것이었던 이것이 부르면 오리라 했던 저것이 이제는 안개 속에서 흐릿해져 어떤 것이 어떤 것인지 (그런 건지) 마음은 미안한지 바깥은 쓸쓸해졌네 (어제를) 그것이었던, 무엇을 그거였던, 왜를 움직일 수 없었던, 아무거나를 꼭이었던, 되는 대로.. 시와 수필 2011.05.25
낡은 방앗간의 풍경 낡은 방앗간 갈라진 벽 사이를 힘겹게 지나 온 햇살 하나 물소리 잃어버린 물레방아 위로 지친 몸을 뉘였다 겨울 한 낮 포근하다 덜컹 바람 하나 스쳐간다 애꿎다 저 바람 - 김선근 시와 수필 2011.05.24
시- 파블로 네루다 그래 그 무렵이었다 … 시가 날 찾아왔다. 난 모른다.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겨울에선지 강에선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도 모른다. 아니다. 목소리는 아니었다. 말도, 침묵도 아니었다. 하지만 어느 거리에선가 날 부르고 있었다. 밤의 가지들로부터 느닷없이 타인들 틈에서 격렬한 불길 속에서 혹은 내.. 시와 수필 2011.05.21
멀리 있어도 사랑이다 먼 곳에 두고 왔어도 사랑이다. 눈 앞에 당장 보이지 않아도 사랑이다. 어느 길 내내, 제 혼자서 부르며 왔던 그 노래가, 온전히 한 사람의 귓전에 가 닿기를 바랐다면, 무척은 쓸쓸했을지도 모를 외로운 열망같은 기원이 또한 사랑이다. 고개를 돌려, 눈길이 머물렀던 그 지점이 사랑이다. 빈 바닷가 곁.. 시와 수필 2011.05.20
상처에 대하여 오래 전에 입은 누이의 화상은 아무래도 꽃을 닮아간다 젊은 날 내내 속 썩어쌓더니 누이의 눈매에선 꽃향기가 난다 요즈음 보니 모든 상처는 꽃을 꽃의 빛깔을 닮았다 하다못해 상처라면 아이들의 여드름마저도 초여름 고마리꽃을 닮았다 오래 피가 멎지 않던 상처일수록 꽃향기가 난다 오래 된 누.. 시와 수필 2011.05.18
그 여자 그여자1 세상에 하고 싶은 말 다 하고도 하긴 다이기야 할까만은 세상에 하고 싶은 말 웬만큼 다 하고도 예쁜 여자가 있다는 사실은 별로 믿고 싶지가 않다. 요즘 세상에 뭘 그리 전설같은 여자가 다 있을라구 갖출 것 다 갖추었다고 소문 난 여자는 처음부터 마음에 들 리도 없다. 그래 어디만큼 갖췄.. 시와 수필 2011.05.17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사랑하는 이의 무관심에 다친 마음 펴지지 않을 때 섭섭함 버리고 이 말을 생각해보라.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두번이나 세번, 아니 그 이상으로 몇번쯤 더 그렇게 마음속으로 중얼거려 보라. 실제로 누구나 혼자이지 않은 사람은 없다. 지금 사랑에 빠져 있거나 설령 심지 굳은 누군가와 .. 시와 수필 2011.05.14
무제(無題) 서로 만나기도 어렵거니와 이별 또한 쉽지 않고 동풍도 힘이 없으니 모든 꽃들도 시들어 버렸네. 봄누에는 죽을 때에 이르러서야 실을 다하고 초는 재가 되어서야 비로소 눈물이 마른다오. 새벽에 거울을 대하고는 머리칼이 희어짐을 염려하고 밤에 시를 읊고서 달빛이 차가움을 느낀다오. 님 계신 봉.. 시와 수필 2011.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