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545

바람은 다른데.

바람이 달라졌다 지난밤 열한 시가 넘은 시간, 아파트 뒷 동에서 화재가 났다. 대피하라는 안내 방송이 나오고 소방차가 오고 부산했지만 불꽃은 없었다. 날이 밝고 보니 에어컨 실외기 빗살문 대여섯 개가 탄 상태다. 아마도 실외기 빗살문을 닫은 채 에어컨을 오랫동안 가동한 게 아닌가 싶다 코로나 시대 방심이 부른 화근이 곳곳에서 살벌한 결과로 드러나고 있다. 너도 나도 할 말 많고 불만 많고 불안하고 불편한 세상이 되어가는 것 같다. 무엇이 진실인지 모르고 아우성치는 사람들이 진실 게임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진실은 있을까. 백전백승은 적부터 알아야 가능하다는 데 알고 하는 건지 몰라서 용감한 건지 이도 저도 마뜩잖은 모습들 뿐이다. 바람은 가을 문턱으로 가고 있다. 마지막 곡식들은 영글어 가겠고 논도 밭도..

사람향기 2020.08.22

생각

머릿속에 있는 것. 아직 꺼내지 않은 것. 그것을 한 문장으로 표현할 수 있을 때까지 꺼내서는 안 되는 것. 한 문장이 어렵다면 아직 생각이 정리되지 않은 것이니 그곳에 그대로. 『사람 사전』은 ‘생각’을 이렇게 풀었다. 생각은 가능성이다. 머릿속을 유영할 때까지는 가능성이다. 김수영의 문장이 될 수도, 정태춘의 노랫말이 될 수도, 노무현의 연설이 될 수도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러나 생각이 조급을 만나는 순간 가능성은 부서지고, 그 파편들은 설익은 형태로 바깥으로 튀어나온다. 입을 통해 나오는 그것을 말이라 하고, 손끝을 통해 나오는 그것을 글이라 한다. 조급에게 등 떠밀려 바깥세상으로 나오는 그것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말이 된다. 누구에게도 감흥을 주지 못하는 글이 된다. 글은 그나마 기회가..

사람향기 2020.07.22

윤사월

송홧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대고 엿듣고 있다. ㅡ박목월 윤사월하면 젤 먼저 떠오르는 시다. 윤사월이 있는 해다. 옛부터 윤달에는 이야기 거리가 많았다고 한다. 윤달 태생은 팔자가 사납다거나 그 달에는 결혼을 피하거나 생일이 없는 해도 있으므로 양력으로 맞는다는 얘기도 있다. 반면 수의를 마련하면 좋다는 설도 있다. 자주 오지 않으니 장수를 기원하는 뜻이지 않았나 싶다. 사월은 생일이 들어있는 달이다. 작은아이가 어버이날에 묻는걸 무람없이 윤사월 인줄도 모르고 덜렁 한달 뒤를 알려 주었다. "야야, 낼모레가 니 생일인데 ..." 엄마만 기억하고 계셨다. 잘 지내느라 몰랐다고 날마다 생일같은 날들이니 건강만 하자며 통화를 마쳤다. 그렇게 ..

사람향기 2020.05.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