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향기 545

겹벚꽃

겹겹이 결 찬 겹벚꽃이 한창이다 꿈이 꿈으로 피어나고 있다 알아서 결을 접어야 했던 꽃봉오리는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게도 되는데 쳇바퀴는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었다 꿈을 베어 버리거나 짓누르면 억압도 싹이 되어 자라는데 겨울 보리밭도 아닌데 밟아 주어야 한다는 이도 있고 모르고 밟는 이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란 걸 입장 바꿔 못하는 인격도 있다 두레박을 넣어 보지 않아도 우물의 깊이는 알 수 있듯이 말이 서툴러도 마음은 전해지는데 해마다 결 따라 꽃들은 눈부시고 햇살은 꽃 속에서도 눈부시다 기지개 켜듯 켜는 봄 맘껏 꿈꾸라고 응원해 본다 겹벚꽃 그늘 아래서......

사람향기 2022.04.17

산책길

길을 나서면 눈가는 곳마다 사월이다 흔치않은 하얀 민들레도 들어오고 산에라도 가야 볼 수 있는 할미꽃이 화분에서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빛을 발한다 야생인데 이사오느라 손을 탔을 테고 보살핌도 받으리라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도 나도 손을 댄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알아만 주는 것이 더 특별한 일이 되겠는데 봄 무엇이든 다 피는 때다

사람향기 2022.04.13

금오산 아침풍경

때 맞춰 오는 비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온 이처럼 반갑다 삼월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걷다 보면 새싹들의 오종종한 도열과 나뭇가지에 꽃송이가 느는 걸 보느라 수시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겯는 동안 몸이 수월해지고 의식도 몸 따라 걸림 없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여행길처럼 잠시 날개를 편 것 같은 시간이 된다 이렇게 꾸준하게 걸어본 기억이 성인이 되고는 없다. 차가 대신해 준 이동 덕분에 두 다리는 오래도록 퇴화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 중. 고 12년 등하교 길은 다 멀었다 30~40분 정도는 걸어서 등교하는 환경이었다 지각이나 결석 같은 걸 한 적이 없으니 내 다리는 건강하고 성실했다 덕분에 성장판 자극도 되었는지 키가 형제들보다 큰 걸 보면 여축없었던 등굣길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어른이 되고 걷는 걸 ..

사람향기 2022.04.07

할미꽃 추억

할미꽃색 한복 치마가 고왔던 친구는 스물세 살에 서울로 시집을 갔다 저를 낮추고 제 속 같은 건 없는 양 태생이 숙일 줄 밖에 모르는 족속인가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꽃 내 눈이 어려서 더 고왔는지도 모르지만 결혼한다고 한복감을 사러 갔던 날 서문시장 그 많은 포목점에서 친구를 찾듯 할미꽃색 옷감만 찾고 있는 내가 보였다 봄은 언제나 돌아오는 데 서울 간 친구는 지천명이 지나도록 소식도 없네

사람향기 2022.04.03

봄의 꽃들에게

기억은 있는데 기억에 없는 이도 있다 시간을 소환해 주는 게 추억이라면 더듬어 봐도 그 사람이 없는 건 그때 내가 거기에 머물지 못한 마음이었기 때문일까 함께이긴 했으나 사랑이 사랑이 아니기도 하는 것 같이 춥고 메말랐던 나목의 날들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눈부신 봄날이어라 문득문득 추억이 정겨운 때가 있다 내 일상에 꽃이 피는 순간이다 봄꽃들이여 만개하기를 이 계절의 주인은 당신이므로

사람향기 2022.03.24

시간이 필요해

익숙하지 않다고 불편하기만 할까 불편해도 편한 게 있다 시간에게 시간을 주자 두부가 콩에서 왔듯이 온전히 탈바꿈하기를 바라는 기대가 사람에게도 두부를 내밀 때가 있지 않은가 부드러운 것에는 자신을 견딘 시간이 있으니 기꺼이 믿자 시간을 지난겨울이 피워 올린 꽃봉오리 꽃대까지 싱그러운데 당신은 편해졌는지 나는 그 시절 겨울이었을까 꽃이었을까 22.3.12

사람향기 2022.03.11

닮은 돌!

강구항엔 지난 주말 바람이 많았다 큰아들이 점심때가 다 되어 번개를 모의했고 강구항에서 만나기로 하고 청주서 출발 연이어 구미서도 출발을 했다 일상적이지 않은 바다 그곳에 집중하는 아이들을 보는 일이란 선물 같은 시간이었다 구김살 없는 아이들의 모습은 밝은 미래를 보는 일 같다 꽃삽을 가져온 녀석 준비할 때부터 마음은 이미 바다였으리라 먹고 마시고 해산물도 보고 갈매기도 배도 맘껏 구경했다 더 놀다 가겠다기에 손 흔들어 주고 출발하려는데 "할머니, 잠깐만 잠깐만 " 푹푹 빠지는 모래길을 달려와 고사리 손에서 무얼 건네며 내 귀를 잡아당긴다. 귓속말이 주는 친밀함이란 참 든든한 빽 같다. "할머니 이거 내 고추 닮았어요! " .ㅎㅎ 나는 어찌나 고맙던지 귀한 고추를 덥석 받았다 강구 다녀온 지가 열흘쯤 지..

사람향기 2022.03.10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우울한 날을 견디면 믿으라! 기쁜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사는 것 현재는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 적인 것, 지나가는 것이니 그리고 지나가는 것은 훗 날 소중하게 되리니 ㅡ 알렉산드르 푸시킨 ㅡ *삶을 사랑하는 그녀 나는 의무감으로 겪어낸 걸 그녀는 사랑으로 견뎌 내는 중이다 흐르는 물은 쉬지 않을 테니 훗날 그것이 무엇이었든 그때 추억할 이 계절은 그녀에게 풍요로우리라 지독한 사랑 나는 할 말도 해줄 말도 못 찾고 긴 호흡이 찰나에 흐르고 푸쉬킨이 응답처럼 왔다 물안개가 많은 아침이다 치매 걸린 엄마와 떠난 여행 중 그녀가 보내온 사진 풍경도 그녀를 아는 것 같은데. 21.10.10

사람향기 2021.10.10

물을 나온 구피

오늘 아침 수조 항마리 밖에 티끌 같은 게 보여 아무 생각없이 집고 보니 구피다!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 무모한 도전을 왜 했는지 물 밖 세상이 아무리 궁금해도 그렇지 어제 수조에 물을 채워 주었는데 살싹만 뛰어 올라도 늘어난 수위로 물 밖이 가능 했으리라. 내 방심도 일조를 했다 오래전 물을 채운 뒤 얼마지나지 않아 물을 나와 펄떡이는 녀석을 본적이 있다 그때 내가 본건 인연이었으리라 물이라야 되는데 물밖이라니 유영도 보기 좋고 개체수가 늘어가는 것도 신기하고 멱이를 주는 재미도 크다 어쩌다 내 손을 넣어 두고 기다리면 구피들의 경계는 풀리고 너도 나도 내 손을 톡톡 두드린다 먹인 줄 아는지 호기심 때문인지 교감이라고 할 수야 없지만 그 작은 몸짓에서 오는 묘한 촉이라니 물을 나온 구피! 내 삶..

사람향기 2021.0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