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인사, 모든 존재가 행복하기를 김형경 소설가 지난 원고에서 우리는 심리치료 과정에서 맞닥뜨리는 ‘저항’ 때문에 변화하기 어렵다는 내용의 글을 썼다. “그래서 어쩌라고?” 피드백이 들리는 듯했다. 자아의 저항은 그나마 대응할 만하다. 자신의 멱살을 잡아 끄는 심정으로 애쓰면 어떻게든 저항을 넘어설 수 있.. 시와 수필 2017.01.01
속수무책 도마 위에서 안간힘을 쓰는 광어를 어찌할까 이를테면 연민 때문인데 납작 엎드려 살아온 것이 죄는 아니지 않은가 한쪽만 보고 살아 다른 한쪽을 외면한 것이 정말 죄는 아니지 않은가 저 살 속에 저며 있는 바다의 노래에 귀 기울이면 가시들의 일상이 다 무엇을 위한 것이었는지 마지.. 시와 수필 2016.12.27
산산조각 룸비니에서 사온 흙으로 만든 부처님이 마룻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팔은 팔대로 다리는 다리대로 목은 목대로 발가락은 발가락대로 산산조각이 나 얼른 허리를 굽히고 무릎을 꿇고 서랍 속에 넣어두었던 순간접착제를 꺼내 붙였다 그때 늘 부서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 시와 수필 2016.12.24
일기예보 보도블럭 한 페이지에 지렁이 한 마리 온 몸을 밀어 무언가 쓰고 있다 철자법이 맞지 않아도 똑똑한 사람들 모두 비라고 읽는다 한 획만으로도 충분히 천기를 누설하고 있다 내일은 꿈틀꿈틀 비 오시는 날 비라고 써도 사랑이라고 읽는 사람에게 긴 긴 연애편지나 써야겠다 - 이화은(1947~).. 시와 수필 2016.12.13
늘 혹은 늘, 혹은 때때로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생기로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늘, 혹은 때때로 그리워지는 사람이 있다는 건 얼마나 인생다운 일인가 그로 인하여 적적히 비어있는 이 인생을 가득히 채워가며 살아갈 수 .. 시와 수필 2016.12.03
병아리 육십 촉 전구만 한 노랑 병아리가 강아지 집으로 들어갔다 어둑하던 강아지 집이 환해졌다 ㅡ곽해룡 갓 부화한 병아리다. 털도 마르기 전이이었다. 부화기에서 꺼내 세우고 찍으려는 휘청하는 바람에 얼른 손을 갇다댄 순간이다. 이 병아리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구미 지인의 집에서 태.. 시와 수필 2016.12.02
구부러진 길 나는 구부러진 길이 좋다. 구부러진 길을 가면 나비의 밥그릇 같은 민들레를 만날 수 있고 감자를 심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구부러진 하천에 물고기가 많이 모여 살 듯이 들꽃도 많이 피고 별도 많이 뜨는 구부러진 길. 구부러진 길은 산을 품고 마을을 품고 구불 구불 간다. 그 구부러진.. 시와 수필 2016.11.13
눈의 사원 아버지가 나를 오래 쳐다본 적이 있지 돌아가시기 몇 달 전 나는 이상하게도 눈을 마주칠 수 없어 왜 당신의 막내아들을 처음 보는 사람처럼 쳐다보실까 생각한 적이 있지 눈이 그의 영혼이므로 사람은 죽을 때 두 눈을 감지 사랑을 할 때도 두 눈을 감지 독수리는 죽은 자의 두 눈을 가장.. 시와 수필 2016.11.04
꽃나무를 나설 때 산길에 혼자 피어 있던 개살구꽃이 그새 지고 없다 갓 나온 잎새가 꽃의 얼굴을 대신해 나를 맞는다 계시냐?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해 돌아서야 했던 저녁과 찾아왔으나 만나지 못하고 끝내 돌아가야 했던 저녁 우린 모두 아주 깨끗하고 순수했던 시절이 있었지 꽃이 가고 없어 대.. 시와 수필 2016.10.27
사는 게 참, 참말로 꽃 같아야 선인장에 꽃이 피었구만 생색 좀 낸답시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 선인장이 꽃을 피운 건 그것이 지금 죽을 지경이란 거유 살붙이래도 남겨둬야 하니까 죽기살기로 꽃 피운 거유 아이고 아이고 고뿔 걸렸구만 이러다 죽겠다고 한 마디 하면 마누라가 하는 말이 있어야 .. 시와 수필 2016.1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