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고백을 하고 만디린 주스 달콤 달콤 부풀어 오른다 달콤 달콤 차고 넘친다 액체에게 마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에게 무슨 말을 하나요 고백을 하고 돌아서서 만다린 주스 고백을 들은 너는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고.. 시와 수필 2013.07.03
츄리닝 너를 츄리닝이라고 부르겠다 츄리닝이라고 해야 너는 가장 너답다 반갑다 츄리닝 약속에 불과한 것이다 너라고 불러도 되는 너를 그냥 추리닝이라고 부르기로 한 것이다 츄리닝 속에 들어 있는 너는 변함없다 끄떡없다 걱정 마라 츄리닝 우리가 너를 츄리닝이라고 부르면 너는 온몸으로.. 시와 수필 2013.07.02
구조(構造) 그는 나를 사랑했네 나는 그를 사랑했네 우리는 서로 사랑하지 않았네 그는 나를 사랑했을 뿐 나는 그를 사랑했을 뿐 우리는 서로 사랑할 틈이 없었네 우리는 자신의 사랑을 사랑하기에 바빴네 그는 나를 아직도 -김록(1968~ ) ‘서로’나 ‘우리’의 용법은 너무나도 다양하며 심지어 난.. 시와 수필 2013.06.28
봄을 기다리며 남대문 시장 추운 뒷골목에 들어섰을 때 난 남루한 길바닥에 줄줄이 앉아 있는 보라빛 구근들을 보았네 추위 때문인지 쇠단추처럼 단단하게 오그라진 구근들의 이름은 그러나 광석질이 아니고 화사하게도 히아신스와 크로커스라고 했지 어디서 굴러먹다 온 돌멩이처럼 볼품없는 구근들.. 시와 수필 2013.06.27
글쓰기 작업 드디어 긴 원고작업이 끝났다. 갑자기 펜이 너무 무거워졌다. 난 지금까지 펜이 가는 대로 썼을 뿐이었다. 펜은 정상인이 맹인을 안내하듯 아름다운 여인이 당신을 춤으로 유혹하듯 나의 손을 이끌어 주었다. 그래서 원고작업은 만족스럽게 끝났다. 만약 어느 단어 하나만 빼더라도 잉크.. 시와 수필 2013.06.26
이 책 낭독을 하겠습니다. 나는 이 책의 저자를 알지 못하지만, 킁킁 짐승의 냄새를 맡듯이 책의 숨소리, 문체를 느낄 때. 내가 이 책을 쓰고 있다고 생각해요. 이 책 뒤에 숨겨진 사랑을 내가 은신시켰다고 생각해요. 아아, 나는 사랑 없이 단 한 문장도 쓰지 못해요. 바람에 맡겨진 나뭇잎 같은 .. 시와 수필 2013.06.14
빵 부서지지 않으면 안 된다. 밀알이여! 고운 흙이 고운 청자를 빚듯 가루가 되지 않고서는 이루어지지 않은 빵. 한 때 투명했던 이성과 나는 욕망도 고독의 절정에서는 소멸된다. 가장 내밀한 정신이 깊이로 화해되는 물과 불. 빵은 스스로 자신이 이념을 포기하는 까닭에 타인을 사랑할 줄 .. 시와 수필 2013.06.11
시인에게 시인이여! 군중의 사랑에 연연치 마라 열광적인 칭찬도 순간의 소음처럼 지나가니 우매한 자의 비판과 냉정한 군중의 조소 들려 와도 동요 없이 굳세게 침착하게 견디라. 너는 제왕, 고고하게 살아라. 네 자유로운 지성 이끄는 대로 자유의 길을 걷고 애정 어린 상념의 열매 거둘지라도 .. 시와 수필 2013.06.08
신부 신부는 초록 저고리와 다홍 치마로 겨우 귀밑머리만 풀리운 채 신랑하고 첫날밤을 아직 앉아 있었는데, 신랑이 그만 오줌이 급해져서 냉큼 일어나 달려가는 바람에 옷자락이 문 돌쩌귀에 걸렸습니다. 그것을 신랑은 생각이 또 급해서 제 신부가 음탕해서 그 새를 못 참아서 뒤에서 손으.. 시와 수필 2013.06.05
새 1 하늘에 깔아논 바람의 여울터에서나 속삭이듯 서걱이는 나무의 그늘에서나, 새는 노래한다. 그것이 노래인 줄도 모르면서 새는 그것이 사랑인 줄도 모르면서 두 놈의 부리를 서로 죽지에 파묻고 따스한 체온을 나누어 가진다 2 새는 울어 뜻을 만들지 않고 지어서 교태로 샤랑을 가식하.. 시와 수필 2013.05.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