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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 터널

왜관 파미 힐스 cc 동코스 출입로는 이맘때 꽃터널이다 기다린 만큼 제대로 꽃마중 한 하루다 꽃이 달뜨니 꽃마중 가는 마음도 들뜨는데 아주 오래오래 전 나무를 심은 이들은 이런 길을 상상했을까 앞서간 이들의 선경지명 덕분에 누리는 것들 시간도 함께여야 가능한 것에 성급하지 않은 이들이 장인이고 그들이 작품을 만든다 뒷좌석에 앉았던 터라 폰만 창밖으로 내놓았는데 볼만장만이다 이 터널을 보여주고 싶은 아우님이 있어 보냈더니 감흥이 없다고 일상이 일상적이지 않으면 내 마음이어도 컨트롤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어서. 수많은 인과 연! 그게 무엇이든 혼자라도 좋고 함께여서 좋은 건 고마운 일이다.

봄날

참을 수 없었나 아직은 삼월인데 너도나도 총총 난필 봄꽃들이다 한나절 원 없이 피었다가 꽃샘추위에 살 내리듯 내리고 나면 성글어진 가지 애달파서 어이할거나 이맘때 목련에 눈이 가는 건 그래서 더 눈부신 일 나무는 제 가슴만큼 꽃자리를 펼쳐놓았다 바람 한 점 없었는지 간밤 비가 순하게도 다녀간 흔적이다 바람처럼 떠난 사람의 자리도 어느 곳이든 제 품만큼 아름지리라 아래서도 한 번 더 피는 신부의 그것 같은 꽃 '목련꽃그늘 아래서 베르테르의 편지를 읽노라' 사월을 노래한 목월의 시가 여기저기서 흥얼흥얼 꽃봉오리처럼 핀다 사월이든 삼월이든 봄날 꽃 본 나비처럼 설레는 건 나만의 일은 아닌 듯 라운딩 하기 좋은 날들이 다가온다 꽃이 하루하루 그러하듯.......

사람향기 2023.03.25

장항아리

'언니들 이것 다음과정은 어떻게 해야 해요? 걱정돼서 와 봤는데 인터넷을 찾아봐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단체톡방에 올라온 지인의 사진과 글이다 지난겨울, 지인의 어머님은 하늘로 가셨다 가을에 장 담그는 일이 흔한 일은 아닌데 담그는 마음이 어땠을지 유품이 된 장항아리 어머니는 당신 손 아니어도 며느리가 어떻게든 마무리해 내리라 믿었을 것이다 저 장맛 보고 나면 아마도 입맛이 익숙해질 테고 앞으로 장을 담그게 될지도 모를 일 내리사랑 중에 손맛에 손맛까지 더해 누리는 일이란 얼마나 맛난 일일지 메주와 간장 빛이 곱다 장항아리에 드는 햇살이 어머님 손맛같이 정겹다

사람향기 2023.03.19

아소 그랑 비리오cc 3월 풍경

3월 초에 일본으로 골프여행을 다녀왔다. 대구공항 출발 후쿠오카행이다. 아소 그랑 비리오 cc는 온천욕까지 가능한 골프리조트다 공항에서 구마모토에 있는 클럽까지는 두어 시간 걸리는 동선이다. 어두운 밤에 도착, 잠 깨자마자 내다본 풍경이다. 먼데 산 능선은 밋밋했고 그린에는 찬이슬이 내렸다. 아직은 겨울 느낌이다. 숙소에서 뷰를 좌우로 돌려본 풍경이다 동백나무는 붉은 그림자를 피우고 있었다. 꽃이 우리의 그것보다 작고 여렸다. 조식 후 8시 반쯤부터 티업이 진행되었다. 계절 탓인지 골퍼는 많지 않았고 노캐디로 2인 플레이도 가능했다. 서 코스는 전동카트가 페어웨이로도 들어갈 수 있었고 동코스는 언듈레이션이 심해서 5인용 카트가 지정 도로로만 운행되는 시스템이었다. 이국적이었던 풍경들, 중간중간 눈에 들어..

뒷모습

어떤 스님이 정육점에서 돼지고기 목살 두어 근 사들고 비닐봉지 흔들며 간다 스님의 뒷목이 발그럼하다 바지 바깥으로 생리혈 비친 때처럼 무안한 건 나였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분홍색 몸을 가진 것 어쩌면 우리가 서로 만났을까 속세라는 석쇠 위에서 몇 차례 돌아누울 붉은 살들 누구에겐가 한 끼 허벅진 식사라도 된다면 기름냄새 피울 저 물컹한 부위는 나에게도 있다 뒷모습은 남의 것이라지만 너무 참혹할까 봐 뒤에 두었겠지만 누군가 내 뒷모습 본다면 역시 분홍색으로 읽을 것이다 해답은 뒤에 있다 ㅡ 이규리

시와 수필 2023.03.16

시가 있는 아침

문틈에 배달되는 조간신문이 날마다 시 한 편을 달고 온다 주석이 달린 처음 만나는 아침의 언어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왜 시 한 편을 건질 수 없었는지 언어의 사유에 감동하고 나와 아무 관계없는 사람을 스쳐 지나듯 증권소식과 지구 반대편 전쟁소식들을 뒤판으로 넘기며 아침이 바삐 지나간다 전쟁과 평화 그 사이에 시가 있다 날마다 시 한 편을 달고 오는 사이 전쟁으로 몇몇은 죽고 누군가는 시 한 편을 쓰고 있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무 일도 없는 듯 - 강동수 (시와 소금, 2018) ** 이웃 나라를 다녀온 아침 운동 갈 시간인데 갈 마음이 없다 여행 중 내 안에서 일어난 생경한 날것들이 여운으로 남았다. 몸과 마음을 재정비할 과제가 남은 것 같다 나를 굴복시키지 못한 역경은 나를 성숙하게 ..

시와 수필 2023.03.06

달콤쌉쌀' 초콜릿 관에 잠든 美 할머니…초코알마다 이름도 새겨

생전 M&Ms 초콜릿 좋아해 관 제작 후 수년간 준비 평소 좋아했던 초콜릿 엠앤엠즈(M&Ms) 캐릭터 모양으로 자체 제작된 관에 영면한 한 미국 할머니의 사연이 전해져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27일 영국 데일리메일과 현지 매체 등을 종합하면 지난 18일 미국에 사는 라운드트리 스콧은 자신의 SNS 계정을 통해 세상을 떠난 할머니 메리 이스터 스톡스 마틴 게일리의 이색 장례식 장면을 공개했다. 30년간 언어과목 교사로 근무했던 메리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 초콜릿 엠앤엠즈(M&M’s)를 무척 좋아해, 생전 학생들로부터 이를 이름 메리와 관련지어 'M&M'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메리의 교실 역시 평소 학생들에게 선물 받은 수많은 엠앤엠즈 관련 상품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는 파란색 엠앤엠즈 캐..

좋은 기사 2023.02.28

체호프 단편선 / 내기

오늘 문득 체호프 단편 '내기'가 생각났다. 12년 전에 읽고 서재에 꽂아둔 이 책이 왜 보고 싶어 졌는지는 모르겠다. 니체를 보다가 생각하다가..... 읽어 본 단편 중 임팩이 가장 컸던 책.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기에 좋은 책, 그 속으로 들어가 보자. 체호프 단편선에는 열 편이 실려 있다 '내기'는 그중 여덟 번째 이야기다. 도입부 시점은 늙은 은행가가 십오 년 전 그날을 회상하며 들어간다. 십오 년 전 그는 젊었고 부자였다. 자신이 주재한 파티장에서 흥미로운 주제가 오갔다. 사형과 종신형에 관한 열띤 토론이었는데 은행가는 당당하게 자신의 주관을 밝혔다. "사형이 종신형보다 더 윤리적이고 인간적이라고 봅니다. 사형은 단번에 죽이지만 종신형은 천천히 죽이는 거죠" 파티장소에 있던 스물다섯 살 젊은 변호..

책향기 2023.02.18

옛집 ㅡ 카페 무명유실

식사자리 만들어 보겠다던 작은아들이 정해준 장소는 삿뽀로 대구반월점이었다. 반월당은 70년 대 후반 부모님이 논 팔고 집 팔아서 고향을 등지고 이사 온 대구의 첫 집 근처이기도 하다. 열네 살 사춘기로 넘어 갈듯 말듯한 시절이었다. 시골서만 살다가 전학 와 적응하느라 애를 먹었다. 하늘도 안 보이는 마당 없는 집에는 정이 안 갔고, 논과 들판과 산만 보이던 고향에서 집 앞으로 차들이 지나다니는 걸 보는것도 신기했다. 고향 동무들 생각만 났고 방학만 기다렸다. 추억도 더듬을 겸 두어 시간 전에 출발했다. 옛 건물들은 남은 게 거의 없었다. 휘어가고 굽어가기도 하는 길을 기준으로 집터를 찾아야 했다. 이 골목인가 저 골목인가 싶은데, 엄마는 반대편 집을 기준으로 옛집터를 찾아냈다. 그 터에는 멋지고 예쁜 건..

사람향기 2023.0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