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활을 쏘다 연애할 때 내 화살 과녁으로 받아주고 빈잔의 삼십 년을 웃음 살풋 채워주던, 아내가 시위를 당긴다 자음모음 날이 서다 -이종현 중앙일보시조백일장 2월 당선작 시와 수필 2015.02.27
그리움 물결이 다하는 곳까지가 바다이다 내가 속에서 그 사람의 숨결이 닿는 데까지가 그 사람이다 아니 그 사람이 그리워하는 사람까지가 그 사람이다 오 그리운 푸른 하늘 속의 두 사람이여 - 고은 먼 것을 가까이 끌어당김이 그리움이다. 멀리 있는 당신을 쉬이 못 놓는 마음 한 자락, 이 안.. 시와 수필 2015.02.16
십일월 사람을 두고 마음만 사랑할 수 있을까 널 사랑한 게 아니라 네 마음을 사랑했다고 가을도 다 지난 산언덕 가끔 지는 가랑잎 널 보내고 네 마음 다시 그립다고 먼 파도소리처럼 살 비비는 가랑잎 와 오백 년 그 너머 歌人(가인)에게 말해줘도 좋을까 -홍성란 사랑, 그 허무함에 대하여 말해.. 시와 수필 2015.01.27
수제비 둔내 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루나무 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 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 길 거슬러.. 시와 수필 2015.01.18
각축 어미와 새끼 염소 세 마리가 장날 나왔습니다. 따로 따로 팔려나갈지도 모를 일이지요. 젖을 뗀 것 같은 어미는 말뚝에 묶여있고 새까맣게 어린 새끼들은 아직 어미 반경 안에서만 놉니다. 2월, 상사화 잎싹만한 뿔을 맞대며 툭, 탁, 골 때리며 풀리그로 끊임없는 티격태격 입니다. 저러면 .. 시와 수필 2014.12.16
그때는 그때의 아름다움을 모른다 머리가 희끗한 오십대 중반의 모 언론사 편집국장 야유회 마무리시간 취기가 올랐는데 마지막 인사를 하라는 호명을 받았다. 흔들리는 버스보다 더 흔들리는 몸으로 통로에 섰지만 말은 한마디도 않고 셔츠 윗주머니에서 무언가 꺼내 주섬주섬 펴는데 동전만하던 것이 천원짜리 지폐만.. 시와 수필 2014.11.19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 시와 수필 2014.11.03
사과를 먹으며 사과를 먹는다 사과나무의 일부를 먹는다 사과꽃에 눈부시던 햇살을 먹는다 사과를 더 푸르게 하던 장마비를 먹는다 사과를 흔들던 소슬바람을 먹는다 사과나무를 감싸던 눈송이를 먹는다 사과 위를 지나던 벌레의 기억을 먹는다 사과나무 잎새를 먹는다 사과를 가꾼 사람의 땀.. 시와 수필 2014.09.12
나도 이제 기와불사를 하기로 했다 금강산 관광기념으로 깨진 기왓장쪼가리를 숨겨오다 북측출입국사무소 컴퓨터 화면에 딱 걸렸다. 부동자세로 심사를 기다린다. 한국평화포럼이란 거창한 이름을 지고 와서 이게 뭔 꼬락서닌가. 콩당콩당 분단 반세기보다도 길다. “시인이십네까?” “네.” “뉘기보다도 조.. 시와 수필 2014.08.23
나 하나 꽃피어 나 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느냐 나 하나 물들어 산이 달라지겠느냐고도 말하지 말아라 내가 물들고 너도 물들면 결국 온 산이 활활 타오르는 것 아니겠느냐 조동화의 '나 하.. 시와 수필 2014.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