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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는 연습

지고 싶다는 소망을 간절하게 가져본 적이 있는가? 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에 환멸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일부러 져주는 인정(人情)의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지는 것이 이기는 것인 전략적 상황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한 번쯤은 져주어야만 하는 호혜(互惠)의 상황을 말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기려는 욕망이 괴물처럼 자라나, 삶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이 이겨야만 하는 비극적인 상황을 말하는 것이다. DNA처럼 박힌 이기는 습관 삶의 여유와 따뜻함 가지려면 지는 경험 두려워하지 말아야 지지 못하는 괴물 지지 않는 사람들은 이기는 방법을 어떻게든 찾아낸다. 때로는 합법적으로 또는 불법적으로. 이겨야만 큰 성공이 뒤따르는 상황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절대 지지 않는다. 아니 지지 못한다. 사소한 영역에서조차 그..

좋은 기사 2021.04.07

고향의 봄 맛을 해마다 보여 주는 이가 있다 여려서 재우면 안 된다고 경비실 가보라는 전화를 귀가하는 차 안에서 하는 것도 언제나 같다 나물 봉지는 새순이 가지고 있던 온기인지 채취할 때의 태양열 때문인지 밤이 이슥한 시간인데도 한낮의 열기가 그대로다. 순이 봉지에 갇히면 열을 내는지 체온이 없다고 열기가 없는 건 아니다 정성 아니고는 불가능한 일이라 그걸 받아먹는 일이란 또 얼마나 송구스러운지 그녀의 유년기 고향이 내게로 온 것 같다 어릴 적 고향 논두렁 밭두렁을 쏘 다닌 걸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녀에게도 고향의 들판은 봄마다 도지는 지병 같기도 할 것이다 또 봄이 오기 전에 나는 무얼 해야 하나......

사람향기 2021.04.05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 이영미

“루게릭 판정 받고 일 년 만에 벌레가 되었다. 인간과 벌레도 한 끗 차이다. 사람이라고 잘난 척하지 말았어야 했다.” 잡지 디자이너였던 작가는 2016년 루게릭병을 진단받고 지금까지 병석에 있다. 혼자 힘으로 글을 쓸 수 있었던 2018년 여름까지 페이스북과 메모장에 남긴 글과 사진을 책으로 냈다. 제목 『누울래? 일어날래? 괜찮아? 밥 먹자』는 그가 “하루종일 듣는 고마운 말”이다. ‘왜 나일까’ 받아들이기 힘든 고통의 순간을 지나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에 이르는 여정이 먹먹한 울림을 준다. 죽음 앞에서 오히려 넓고 깊어진 마음이다. “강한 햇빛을 쬐며 눈을 감는다. 그저 붉은 빛뿐 새소리만 들린다. 가끔 개 짖는 소리. 새는 말한다. 무슨 걱정이 그리 많니? 그저 나처럼 노래하렴.” “우리 눈에 ..

카테고리 없음 2021.04.05

하버드생 달력은 열흘 빠르다…최재천 교수가 본 '공부 비법'

세계 최고의 명문으로 꼽히는 미국 하버드대 학생들의 공부량은 살인적입니다. 오죽하면 “하버드대 졸업 후에는 인생이 아주 쉬워진다(After Havard, life is so easy)”는 말이 학생들 사이에 돌 정도입니다. 매주 몇 권씩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발표를 하고, 시험까지 치러야 합니다. 시험 기간에 하버드 학생들은 하루 두세 시간만 자면서 18시간 이상 공부한다고 합니다. 그뿐만 아닙니다. 하버드대에서는 공부만 잘한다고 ‘최고’가 되지 않습니다. 클럽 활동이나 봉사 활동까지 아주 활발하게 하면서, 공부까지 잘해야 우등생 취급을 해줍니다. 그럴 때 비로소 “쟤는 공부 좀 한다”는 평가를 듣습니다. 궁금하지 않으세요? 아니, 도대체 뭘 어떻게 하길래 그게 가능할까요? 살인적 일정의 공부까지..

좋은 기사 2021.03.10

대학나무

남도엔 봄꽃이 찾아왔다. 겨울바람을 뚫고 꽃망울을 터뜨린 매화는 벌써 봄바람에 꽃잎을 떨군다. 다음 차례는 노란 산수유 꽃이다. 전남 구례군은 국내 최대 산수유 산지다. 국내에서 생산되는 산수유 70%가 구례에서 난다. 풍부한 일조량과 비옥한 토양 덕분이다. 매년 이맘때 산수유 축제를 열었던 구례군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축제를 취소했다. 산수유나무는 자생종은 아니다. 구례군 산동면 계척마을에 있는 산수유 시목(始木)이 증거다. 마을 주민이 할머니 나무라 부르는 이 나무는 한국에 처음으로 심은 산수유나무다. 중국 산둥성에서 한국으로 시집온 여인이 가져와 한국에 처음으로 심었다는 전설도 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진 이야기지만 마을 주민은 매년 시목에 풍년을 비는 시목제를 지낸다. 빨간 산수유 열매는 예부터..

좋은 기사 2021.03.09

'눈' 이후 눈이 자꾸 밟힌다. 눈 뒤의 발자국처럼.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 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려운 일일세." p100 * 네에 주가 줄타기를 좋아한 이유는 '균형'이었고 소세키는 무사에서 무너진 '균형'을 예술에서 찾았다고 했다. 유코의 시는 통합을 의미하는 회화에도 이르게 되고 봄눈송이는 그걸 보고 "엄마를 그린 그림 중 가장 아름답다" 했다. 이 책 어딘가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는 문장도 나온다. 태어나. 연기하다, 죽는 사람과 삶의 줄 위에서 '균형' 잡는 사람으로요 전자가 배우라면 후자는 곡예사라고.. 언어의 곡예사는 아니지만 '꿈..

책향기 2021.03.06

그리다

다섯 살 아이가 그린 애꾸눈 해적 성한 눈은 윙크하는 것 같고 입 모양은 웃고 있다 해적은 아이에게 무슨 짓을 한 걸까 뱀을 보고 놀란 아이에게 보이는 건 무섭지 않은 거라고* 알려 주었나 우리는 눈을 감고도 서로를 볼 수 있을까 안 보는 줄 안다고 3월 새순 같다면 꽃은 피지 말아야 하리 먼저 나간 말들이 날개를 달 때 마음은 어디에 가 있었는지 못 본 눈으로 돌이킬 수 없어 질끈 기다린 걸 당신은 알고나 있었는지 내 눈을 내 안으로 돌릴 수 있다면 해적이 될 수 있을까 아이 눈은 요원하고 내 눈은 멀어 버렸네 *영화 '미나리'

사람향기 2021.03.03

문장으로 읽는 책ㅡ소로의 문장들

그대의 눈을 자기 안으로 돌려보라. 그대의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하지 못한 1000개의 지역을 만나게 되리니. 그곳들을 여행하고, ‘자신’이라는 우주의 전문가가 돼라.…그대 안에 있는 신대륙과 신세계를 발견하는 콜럼버스가 돼라. 그리하여 무역이 아닌 생각을 위한 새로운 항로를 개척하라. 박명숙 엮고 옮김 『소로의 문장들』 “아무래도 나는 집에 머무는 데 천부적 재능을 타고난 것 같습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문장들을 골라 엮은 책이다. 인용문은 『월든』에 나온다. 자연과 더불어 내면으로 침잠하는 삶을 살며 물신주의를 비판했던 그다. “가장 심오하고 독창적인 사상가란 멀리 여행한 사람”이다. 하지만 “집 밖을 나다니는 사람들이라고 해서 헛간 안을 오가는 사람보다 하늘을 자주 보는 것은 아니다.” “어떤 ..

좋은 기사 2021.0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