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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동네 산책길

엘리엇은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문장으로 시작되는 시 '황무지'를 백 년 전에 발표했다. 시대적 배경이 더해져서 황무지는 독자들에게 무수히 회자되는 시다 시의 본령을 잘 드러냈고 그 난해만큼 오래도록 사랑받고 있다 4월은 죽은 듯 멈춘 것 같았던 대지의 새명들이 일제히 깨어나는 걸 확인하는 달이다 '잔인함'이란 단어는 어떤 역경 속에서도 살아내고야 마는 인간의 의지를 위무해 주는 깊은 속내의 완결을 보여준다 시간 날 때마다 산책을 한다.그야말로 눈 가는 곳마다 "나도 나도"라고 몸짓하는 꽃들이 잎들이 질서 정연하게 자신을 색을 꾸려가고 있다 이 '잔인함' 앞에서 나도 더 더 잔인해질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는다. 희망을 보는 사월이다

사람향기 2022.05.01

연두처럼

이맘때 산은 하루가 다르다 코로나가 짝지에게 오고 이틀 뒤 내게도 왔다 당첨되고 보니 후련한 맘도 있다 격리되기를 열흘! 칩거에 적응 잘하는 나를 보며 내 일상도 참 단조로왔구나 그런 걸 실감한다. 다만 운동을 못하는 게 아쉽다 주변 지인 둘은 3킬로씩 빠졌다 하고 엄청 아팠다는데 내게 온 코로나는 고약한 놈은 아니었나 보다 미각도 잃지 않아서 당기는 대로 먹었고 푹푹 쉬었다 창밖이 푸르다 머지않아 초록이 될 연두가 산을 물들이고 있다. 코로나 이전으로 곧 돌아가리라. 몸과 마음은 더 건강해지고 이참에 패턴을 바꾸어도 될 일상도 기대하게 된다. 언젠가부터 작심하면 밀고 나가는 동력이 강해졌다. 나이와 무관치 않은 것 같다 22 04 28

사람향기 2022.04.28

겹벚꽃

겹겹이 결 찬 겹벚꽃이 한창이다 꿈이 꿈으로 피어나고 있다 알아서 결을 접어야 했던 꽃봉오리는 스스로 자신을 소외시키게도 되는데 쳇바퀴는 돌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나이 들어서야 알었다 꿈을 베어 버리거나 짓누르면 억압도 싹이 되어 자라는데 겨울 보리밭도 아닌데 밟아 주어야 한다는 이도 있고 모르고 밟는 이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생각이란 걸 입장 바꿔 못하는 인격도 있다 두레박을 넣어 보지 않아도 우물의 깊이는 알 수 있듯이 말이 서툴러도 마음은 전해지는데 해마다 결 따라 꽃들은 눈부시고 햇살은 꽃 속에서도 눈부시다 기지개 켜듯 켜는 봄 맘껏 꿈꾸라고 응원해 본다 겹벚꽃 그늘 아래서......

사람향기 2022.04.17

산책길

길을 나서면 눈가는 곳마다 사월이다 흔치않은 하얀 민들레도 들어오고 산에라도 가야 볼 수 있는 할미꽃이 화분에서 여리여리한 모습으로 빛을 발한다 야생인데 이사오느라 손을 탔을 테고 보살핌도 받으리라 특별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아서 너도 나도 손을 댄다면 어떻게 될까 그냥 알아만 주는 것이 더 특별한 일이 되겠는데 봄 무엇이든 다 피는 때다

사람향기 2022.04.13

금오산 아침풍경

때 맞춰 오는 비는 오랜만에 소식을 전해 온 이처럼 반갑다 삼월부터 걷기를 시작했다 걷다 보면 새싹들의 오종종한 도열과 나뭇가지에 꽃송이가 느는 걸 보느라 수시로 걸음을 멈추게 된다 겯는 동안 몸이 수월해지고 의식도 몸 따라 걸림 없이 자유로워지는 느낌이다 여행길처럼 잠시 날개를 편 것 같은 시간이 된다 이렇게 꾸준하게 걸어본 기억이 성인이 되고는 없다. 차가 대신해 준 이동 덕분에 두 다리는 오래도록 퇴화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초. 중. 고 12년 등하교 길은 다 멀었다 30~40분 정도는 걸어서 등교하는 환경이었다 지각이나 결석 같은 걸 한 적이 없으니 내 다리는 건강하고 성실했다 덕분에 성장판 자극도 되었는지 키가 형제들보다 큰 걸 보면 여축없었던 등굣길 덕분이 아니었나 싶다 어른이 되고 걷는 걸 ..

사람향기 2022.04.07

할미꽃 추억

할미꽃색 한복 치마가 고왔던 친구는 스물세 살에 서울로 시집을 갔다 저를 낮추고 제 속 같은 건 없는 양 태생이 숙일 줄 밖에 모르는 족속인가 자세히 보아야 찾을 수 있는 꽃 내 눈이 어려서 더 고왔는지도 모르지만 결혼한다고 한복감을 사러 갔던 날 서문시장 그 많은 포목점에서 친구를 찾듯 할미꽃색 옷감만 찾고 있는 내가 보였다 봄은 언제나 돌아오는 데 서울 간 친구는 지천명이 지나도록 소식도 없네

사람향기 2022.04.03

봄의 꽃들에게

기억은 있는데 기억에 없는 이도 있다 시간을 소환해 주는 게 추억이라면 더듬어 봐도 그 사람이 없는 건 그때 내가 거기에 머물지 못한 마음이었기 때문일까 함께이긴 했으나 사랑이 사랑이 아니기도 하는 것 같이 춥고 메말랐던 나목의 날들 후회하지 않아도 되는 눈부신 봄날이어라 문득문득 추억이 정겨운 때가 있다 내 일상에 꽃이 피는 순간이다 봄꽃들이여 만개하기를 이 계절의 주인은 당신이므로

사람향기 2022.03.24

자기를 함부로 주지마라

자기를 함부로 주지 말아라 아무 것에게나 함부로 맡기지 말아라 술한테 주고 잡담한테 주고 놀이한테 너무 많은 자기를 주지 않았나 돌아 보아라 가장 나쁜 것은, 슬픔한테 절망한테 자기를 맡기는 일이고 더욱 좋지 않는 것은 남을 미워하는 마음에 자신을 던져 버리는 일이다 그야말로 그것은 끝장이다 그런 마음들을 거두어 들여 기쁨에게 주고 아름다움에게 주고 무엇보다도 사랑하는 마음에 주라 대번에 세상이 달라질 것이다 세상은 젊어지다 못해 어려질 것이고 싱싱해 질 것이고 반짝이기 시작할 것이다 자기를 함부로 아무것에나 주지 말아라 부디 무가치 하고 무익한 것들에게 자기를 맡기지 말아라 그것은 눈 감은 일이고 악덕이며 인생한테 죄 짓는 일이다 가장 아깝고 소중한 것은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보다 많은 시간을 자기 ..

시와 수필 2022.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