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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큰 바보 이론

만유인력으로 현대 물리학의 근간을 세운 아이작 뉴턴은 25년간 영국 왕립 조폐국장(1699~1724년)으로 일하면서 열심히 주식에 투자했다. 하지만 말년에 재산의 90%를 탕진하고 만다. 튤립과 더불어 경제사에 대표적인 거품사건으로 기록된 남해회사(South Sea Company)에 투자하면서다. 당대 석학의 실패는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다. “천체의 움직임은 계산할 수 있어도 인간의 광기는 계산할 수 없었다”는 출처 불명의 말이 뉴턴 어록으로 회자할 정도였다.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더 큰 바보 이론(the greater fool theory)’을 제시했다. 부동산이나 주식이 비정상적으로 올라도 계속 사들이는 투자 심리를 설명하는 말이다. 투자자들이 나보다 더 비싼 값에 자산을 사려는, ‘더 큰..

좋은 기사 2021.02.26

시인에 대한..

시인은, 진정한 시인은 줄타기 곡예사의 예술을 지니고 있네. 시를 쓴다는 건 아름다움의 줄을 한 단어 한 단어 걸어가는 것일세. 시의 줄은, 한 작품의 줄은. 한 이야기의 줄은 비단 종이에 누워 있지. 시를 쓴다는 건 한 걸음씩, 한 페이지 씩. 책의 길을 걸어가는 일일세. 가장 어려운 건 지상 위에 떠서. 언어의 줄 위에서. 필봉의 도움을 받으며 균형을 잡는 일이 아닐세. 가장 어려운 건 쉼표에서의 추락이나 마침표에서의 장애와 같이 순간적인 현기증을 주는 것으로 중단되곤 하는 외길을 걷는 일이 아닐세. 시인에게 가장 어려운 일은 시 쓰기라는 줄 위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일세. 삶의 매 순간을 꿈의 높이에서 사는 일. 상상의 줄에서 한순간도 내려오지 않는 일일세. 그런 언어의 곡예사가 되는 일이 가장 어..

책향기 2021.02.23

세배

세배하라는 총각 삼촌에게 두 조카가 첫 세배를 한다 납작 엎드리긴 했는데 언제 일어날지 몰라 이마는 땅에 둔 채 고개 돌려 서로를 훔친다 절값 넣어 달라고 입벌리던 복주머니가 삼촌에게도 뻗쳤다 보는 대로 하는 따라쟁이들에게 보여주는 일 외에 줄 게 무애 있을까 내년은 어떤 설이 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세배는 자라 있으리라 서툴러서 예쁜 것들 소소한 순간들이 지나고 있다 행복인 줄 아는 채 모르는 채

사람향기 2021.02.18

"아이에겐 딱 이것만 주면 된다, 자유"

다들 고민입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나.” “어떤 식으로 교육을 해야 하나.”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살아온 삶을 기준선 삼습니다. 거기에 맞추라고 자식에게 요구합니다. 왜냐고요? 나한테는 그게 ‘정답’으로 보이니까요. 그게 ‘전부’로 보이니까요. 그런데 그게 정말 정답일까요? 기성 세대는 주입식 교육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암기식 교육을 받으며 컸습니다. 그래서 주어진 정답에 익숙합니다. 그런데 젊은 세대, 혹은 어린 세대는 다릅니다. 그들은 자신의 답을 스스로 만들어가야 하는 세대입니다. 여기서 간격이 생기더군요. 부모가 받았던 교육 방식과 자식이 받아야 할 교육 방식. 둘이 너무 다르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오늘은 최재천 교수에 이어 두 번째 편입니다. ‘100세 철학자’ 김형석 교..

좋은 기사 2021.02.18

유시민, 말무덤에 말을 묻어라

경북 안동에서 대구로 복귀 발령을 받은 날, 찾은 곳이 있다. 예천군 지보면 대죽리 한대마을의 언총(言塚)이다. 말(馬)의 무덤이 아니라, 말(言)을 묻은 곳이다. 우리 조상들은 참 신박하다. 묻을 수 없는 '말'을 묻고, 그것을 '언총'이라 불렀으니. 언총은 400여 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마을은 예부터 각성바지들이 살던 곳. 사소한 말 한마디가 씨앗이 돼 문중 간 싸움이 그칠 날이 없었다. 마을 어른들이 해결책을 모색했다. 여기서도 전설의 단골 캐릭터 '나그네'가 등장한다. 나그네가 제안한 해법은 쾌도난마(快刀亂麻). 마을을 둘러싼 야산이 개가 짖는 모습과 비슷해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래서 ▷싸움의 발단이 된 거짓말 ▷상스러운 말 ▷가슴에 상처가 되는 말 등을 사발에 모아 구..

좋은 기사 2021.01.25

유시민의 사과

유시민 씨가 사과를 했다. 언뜻 보기에는 나무랄 데가 없어 보인다. 동기야 어쨌든 사과를 한다는 것은 커다란 용기를 요하는 일. 그 용기를 냄으로써 그는 적어도 자신이 김어준류와는 다르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사과하는 그의 모습에서 이상한 안도감까지 느꼈다. 그 사과문을 읽고 나는 그를 거의 용서할 뻔했다. 하지만 아직 화가 안 풀린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누군가 조만대장경에서 기어이 2010년 조국 교수의 말을 찾아내 SNS에 올렸다. "파리가 앞발을 싹싹 비빌 때 이놈이 사과한다고 착각하지 말라. 내 말을 추가하자면, 파리가 앞발 비빌 때는 뭔가 빨아 먹을 준비를 할 때이고, 우리는 이놈을 때려잡아야 할 때다." close 사과를 했는데도 왜 많은 이들이 그를 곱지 않은 눈으로 보는 것일까? 그럴 만..

좋은 기사 2021.01.25

문장으로 읽는 책 ㅡ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잘 사는 사람들, 즉 삶에 탁월한 사람은 좋은 성격을 가졌다. 이 사람들의 성격과 덕성은 모두 즐거움과 고통을 대하는 방식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의 성격과 도덕적 덕성은 행동적인 동시에 감정적이다. 행동적이라는 것은 이론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실천과 습관에 의해 만들어진다는 의미다. 성격과 덕성이 감정적이라는 것은 그것이 대부분 감정의 형태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ㅡ 이진우 『균형이라는 삶의 기술』 얼핏 도덕과 감정을 연결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인용문에 따르면 도덕의 기초는 감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좋은 감정교육에 대해 말한 바 있다. “마땅히 기뻐해야 할 것에 기뻐하고, 마땅히 괴로워해야 할 것에 고통을 느끼도록 어떤 방식으로 길러졌어야만 한다.” 철학자 이진우 포스텍 교수가 ‘철학이..

좋은 기사 2021.01.25

욕망에 대하여

고독은 혼자 있는 자의 심정이 아니라 욕망하지 않는 것과의 연결을 끊은 자가 확보한 자유다.” 어제 일자(1월 13일) 중앙일보 문장으로 읽는 책 ㅡ양성희 칼럼니스트가 쓴 신작 '은둔기계'(김홍중)에 관한 글의 마지막 문장이다. 처음 이 문장을 읽었을 때 오타난 문장인 줄 알았다. 마지막 문장 (것과의 연결을 끊은)은 없어도 되는 비문으로 보였다. 왜 이렇게 비틀어 놓았을까! 그리고 몇 번 더 보고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끝내고 다시 되새김 한 뒤에야 해독이 가능했다. 나는 '욕망하지 않을 줄 아는 게' 고독을 선택하는 거라는 고정관념에 갇혀 있었다. 관계에서 내 사적욕망을 제한하는 것이 고독이고 선택한 자유라고, 그래서 욕망을(원하는 것)에 제한해 두었다. 원하지 않는 것도 욕망이라고 인식했던 이라면 위..

사람향기 2021.01.14

문장으로 읽는 책ㅡ은둔기계 <김홍중>

사회의 지배적 여론과 정동으로부터 집요하게 탈주하는 것, 과잉 연결된 관계들을 해체하는 것, 인간들의 세계를 떠나 비인간의 소리를 경청하는 것, 과열된 자본주의적 삶의 형식을 벗어나는 것, 우리가 아직 알지 못하는 새로운 가능세계를 발명하는 것, 이것이 21세기의 새로운 은둔의 실천이다. 말도, 욕망도, 연결도, 소비도 많은 ‘과잉의 시대’다.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인 김홍중은 ‘은둔’을 이 시대를 헤쳐가는 삶의 방법으로 제안한다. “사회적인 것, 지배적인 것, 패권적인 것으로부터의 필사적 탈주” “사적 삶의 추구가 아니라 지구적 공(公)과 연결되는 현장의 구축”으로서의 ‘은둔’이다. 예컨대 ‘과도한 연결, 과도한 생산, 과도한 학습, 과도한 경쟁 등에서 벗어나 덜 움직이고, 덜 먹고, 덜 쓰고, 덜 존재..

좋은 기사 2021.01.13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깜빡 눈 감을 때 연두와 눈뜰 때 연두가 같지 않고 조금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같지 않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내가 있었음과 당신의 없었음은 또 어떻게 말할까 늦은 오후에 후둑 비 떨어진다 비와 비 그 사이가 바로 연두 말하려다 만다 연두를 설명할 수 없었던 일처럼 사랑도 그러했는데 다 듣고는 믿지 않을 거면서 당신들은 말하라 말하라 다그친다 설명하라 한다 할수록 점점 다른 뜻이 되어가는 절망 배신 희생 죽음 따위와 뭐가 달라 그들 생애엔 순간을 포함하지 않았으리 비루하지도 않았으리 연두가 어떻게 제 변화를 설명할 수 있겠는지 10시의 잎이 11시의 잎에게 마음이 있어도 마음이 영 옮기지 못하는 그 결별들을 다 어떻게 ㅡ이규리 중에서

사람향기 2021.0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