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류 염화시중의 미소 필시 우리 반 아이가 분명할진대 누군가 석류 한 송이를 내 책상 위에 가져다 놓았다 나는 교실에 가서 다만 석류를 들어보이며 누가 이 이쁜 일을 했느냐고 묻지 않았다 부처의 연꽃에 가섭이 미소지었다지만 다행히 아무도 웃지 않았다 가슴 가득 반짝이며 물밀어오는.. 카테고리 없음 2017.05.24
고요히, 입 다무는 것들 1 나, 몹시 괴로웠다 내 눈에 젖은 것이 혹, 너였는지 모르겠구나! 먼지 날리는 골목길에서 오지 않는 애인 지나가기를 기다리기 은행 앞에 쪼그리고 앉아 하릴없이 땅바닥 내려다보며 낙서하기 공중전화 앞에서 동전 구걸하기...... 가령, 부재를 통해서만 네가 내 안에 존재한다면 2 꽃눈.. 시와 수필 2017.05.17
애월 하귀에서 애월 가는 해안도로는 세상에서 가장 짧은 길이었다 밤이 짧았다는 얘긴 아니다 우린 애월 포구 콘크리트 방파제 위를 맨발로 천천히 걷기도 했으니까 달의 안색이 마냥 샐쭉했지만 사랑스러웠다 그래선지, 내가 널 업기까지 했으니까 먼 갈치잡이 뱃불까지 내게 업혔.. 시와 수필 2017.05.16
박물관 /쉼보르스카 접시들은 있지만, 식욕은 없어요. 반지는 있지만, 이심전심은 없어요. 최소한 삼백년 전부터 쭉. 부채는 있는데 – 홍조 띈 뺨은 어디 있나요? 칼은 있는데 – 분노는 어디 있나요? 어두운 해질 녘 류트를 퉁기던 새하얀 손은 온데간데없네요. 영원이 결핍된 수만 가지 낡은 물건들이.. 시와 수필 2017.05.14
사랑은 내 사소함부터 사랑은 내 사소함부터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과 해라 밥은 먹었는지 잠은 잘 잤는지 언젠가 흘러가는 말로 어디가 아프다고 했던 말을 되물어 기억해주는 진심을 가진 사람과 해라. 내 얘기에 내 마음에 귀 기울여주는 사람과 사랑을 해라 이맘때쯤이면 걸리는 감기 때문에 고생을 하고 .. 시와 수필 2017.05.11
저녁 여섯시 1 네가 한 풍경을 바꾸는 동안 나는 액자 속과 탁자에도 있었고 걸레 빤 물과 먼지들 속에도 있었다 하루가 제 얼굴을 부비는 시간, 봄 들녘, 타오르던 아지랑이 하마 저물어 식고 놀던 동네 아이들, 배고파 앞이 캄캄해지는 시간 강변마을 해사한 흰 꽃들이 조용히 입 다무는 때 저.. 시와 수필 2017.05.08
불안의 책/페르난두 페소아 오늘날 사람들은 도덕적 상태와 지적 수준이 원시적이거나 형편없이 낮지 않는 한, 사랑할 때 낭만적인 사랑을 한다. 낭만적인 사랑은 기독교적 영향이 여러 세기 지속된 결과 발생한 극단적인 형태다. 잘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그것의 본질과 전개 과정을 설명하자면, 낭만적 사랑이.. 책향기 2017.05.06
베트남 다낭시의 이모저모 3박 5일 간의 일정이 끝났다. 시차까지 더해 온 몸이 부은 것 같은 피로감, 젊어 놀면 더 잘 놀긴 하겠다. 다행히 한 곳에서 사흘을 묵었다. 아침은 꼬박꼬박 했지만 신호는 오지 않았고, 칠곡 휴계소에 와서야 반응하는 이런 현상을 보면 몸도 귀신이다. 인상적이었던 풍경들, 다낭시의 이.. 포토 or 여행 에세이 2017.05.04
물처럼 ‘별을 바라보듯 그렇게 꿈꾸면서, 느리게 가거라. 살아가는 일에 왜 그렇게 바빠야 하는지 나는 모른다. 느리게 그러나 쉬지 말고 끝까지 가거라. 물처럼’ 한수산의 산문집 ‘꿈꾸는 일에는 늦음이 없다’ 중에서 그러나 쉬지는 말고 끝까지 가라 이곳 풍경은 날씨만큼 느리다 .. 카테고리 없음 2017.05.03
물방울 무덤들 아그배나무 잔가지마다 물방울들 별무리처럼 맺혔다 맺혀 반짝이다가 미풍에도 하염없이 글썽인다 누군가 아그배 밑동을 툭, 차면 한꺼번에 쟁강쟁강 소리내며 부스러져 내릴 것만 같다 저 글썽거리는 것들에는 여지없는 유리 우주가 들어있다 나는 저기서 표면장력처럼 널 만났다 하.. 시와 수필 2017.05.02